서울 평양 스마트시티
민경태 지음
미래의창 / 2018년 9월
PART 1 북한은 한반도의 미래다
우리는 미래 세상을 상상할 때 새로운 기술에 따른 변화를 기대한다. 그래서 미래학에서는 기술 변화를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꼽는다. 그런데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매우 중요한 요인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북한이다. 한반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즉 남북한이 함께 잘사는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래 변화를 선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런데 과거와 같은 개발도상국 발전 방식을 북한에 적용해서는 남북한이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조건을 갖추기 어렵다. 오히려 남한보다 앞선 첨단 기술을 북한에 도입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현재 북한은 낙후된 인프라를 거의 모두 새롭게 구축해야 하는 형편이다. 그런데 한국과 달리 북한은 토지 수용과 보상에 따른 문제가 복잡하지 않고, 일단 정책이 결정되면 일사불란하게 집행할 수 있는 정치체제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가장 이상적인 미래 도시 모델을 실험해보기에는 남한보다 북한이 적합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남북한이 함께 첨단 스마트시티의 이상적 모델을 실험하고 제안하여 미래 사회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이 아직 시도해보지 못한 일을 새롭게 추구하는 것이 창조적 혁신이다. 그런데 창조적 혁신에는 기존 시스템에서 주도적이었던 패러다임이 파괴되는 과정이 반드시 수반된다. 한편 현재 북한은 전반적인 시스템이 매우 미비한 실정이다. 평양권을 제외하고는 인프라 및 산업시설이 너무도 열악하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런 상황이 남북한 경제협력에는 오히려 유리한 배경이 될 수 있다. 새롭게 조성하는 북한의 경제특구와 지방도시에는 기존 인프라와 산업시설을 개ㆍ보수하기보다 도시 전체를 새로 구축하는 편이 더욱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전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았을 때 북한에 첨단 스마트시티를 건설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매우 효율적이다.
① 첨단 인프라 구축의 효용 가치가 높다 - 북한의 인프라 수준은 현재 매우 미비하고 열악해서 부분적 개선보다는 완전히 새로 건설하는 것이 적합한 상황인데, 이는 기존 인프라의 해체나 전환 비용 없이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② 신속하고 효율적인 정책 추진이 가능하다 - 최고 지도자의 의지와 당의 결정을 통해 필요한 정책을 신속하게 집행할 수 있다.
③ 토지 보상이나 건설비용이 적게 든다 - 북한에는 사유재산권이 없으므로 토지 수용 문제나 보상에 대한 부담이 남한에 비해 현저히 적거나 없다.
④ 이상적 도시 모델을 구현해볼 수 있다 - 사회주의 체제 아래에서는 비록 단기적으로 보면 사업성이 낮다 해도 중장기적으로 볼 때 가치가 있고 이익이 된다면 정부가 주도하여 미래지향적 투자를 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은 이상적인 도시를 시험해볼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⑤ 시장과 산업 기득권의 저항이 없다 - 북한에는 시장과 산업 기득권의 저항이 매우 미약하다. 따라서 정책적 결정을 통해 신도시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첨단 기술을 바로 도입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동안 제안되어왔던 남북한 경제협력 방식에는 남한이 주도한다는 전제가 암묵적으로 내재되어 있었다. 남한이 북한 경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추진한 뒤 점차 상호보완적인 경제협력으로 확대해간다는 것인데, 이때 북한은 기회 요인이라기보다는 위험 요인으로 인식되었다. 북한 경제를 일정 수준까지 향상시키려면 인프라 구축이 불가피한데 그 비용이 걱정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로부터 어떻게 투자를 받아 재원을 마련하느냐 하는 것도 고민이었다.
하지만 이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 만약 북미 간의 핵 문제가 성공적으로 해결된다면, 전 세계의 자본이 북한을 매력적인 투자 대상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높고, 한국은 북한에 투자하고자 하는 국제사회의 여러 그룹과 경쟁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국이 일방적으로 리드하는 방식의 남북한 경제협력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남북 협력 방식을 구상할 때, 북한이 과연 우리의 구상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북한의 수용성 문제를 먼저 검토해야 한다. 또 무엇보다도 북한의 특성과 상황에 적합한 산업을 육성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북한을 단순한 개발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북한의 입장에서, 그리고 북한 주민들을 위해서 가장 적합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남북한 협력을 통한 한반도 경제권 형성이 다른 어떤 경제협력보다 북한의 지속적인 발전에 유리하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
북한의 경제개발이 외국자본 유치를 통해 개방적으로 진행될 경우, 가장 문제 되는 점은 무분별한 개발과 국부 유출이다. 그러므로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관점에서 투자 계획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조율하는 기능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시장경제 체제와 대규모 개발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북한이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남북한 경제협력의 거버넌스 체계를 설계할 때 남한의 노하우를 반영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남북한이 공동으로 협의 기구를 만들어 정책적 컨트롤 타워의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는데, 경제특구 또는 개발구의 정책을 관장하는 거버넌스 시스템에 남한의 전문 인력이 참여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북한의 단천 지구에 자원개발 특구를 조성한다면, 남한의 자원 개발 분야 전문 인력이 참여하는 의사 결정 기구를 통해 전반적인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것이다.
남북한이 협력하는 거버넌스를 구현하는 데 싱가포르 시스템이 참고가 될 수 있다. 싱가포르는 경제개발위원회(EDB)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적인 거버넌스 구조를 통해 정부 주도로 혁신성장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정부가 임명한 위원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투자와 관련된 제반 사항을 협의하고, 필요시 유관기관들과 협업하는 컨트롤 타워로서 기능한다. 이와 같이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위원회에 남한의 해당 정부기관 인사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방안을 고려해보아야 한다.
남한과 북한은 궁합이 잘 맞는 천생연분: 발상을 전환해보면 남북한은 서로 궁합이 아주 잘 맞는 상대다. 남북한의 경제통합을 국가 간 M&A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남한은 북한 경제 규모의 40배에 가까운 대기업에, 북한은 경영 상태가 부실한 중소기업에 비유해볼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은 남한의 절반에 불과한 2,500만 명의 저임금 직원들을 고용하고 있으나 보유한 부동산의 면적은 오히려 대기업인 한국보다도 더 크다. 게다가 한국이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지하자원도 많이 가지고 있으며, 매력적인 관광자원까지 보유하고 있다. 한편 대기업은 이미 경쟁력을 상실했지만 중소기업은 여전히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 따라서 남한에서 경쟁력을 잃고 해외로 이전했던 산업 또는 수입으로 대체했던 산업 분야일지라도 북한의 임금 경쟁력을 바탕으로 다시 육성할 수 있다. 중소기업인 북한과의 합병을 통해, 한반도로 제조업을 귀환시키는 리쇼어링(Re-shoring)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반면 첨단 기술과 글로벌 경험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대기업의 노하우가 중소기업을 견인해줄 수 있다. 즉, 남한의 지원을 받아 북한 제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남북한의 협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호보완적 합병을 통해 경쟁력을 상실했던 업종에 다시 새로운 활력을 부여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남북한 인구 통합의 효과: 북한과의 경제통합은 한국이 갖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저출산ㆍ고령화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이 가능해 보인다. 남북한의 인구를 산술적으로 합산해보기만 해도 인구구조의 불균형이 해소될 실마리가 보여 남북한 인구 통합의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한에서는 남아 선호 현상 때문에 성비(여자 100명당 남자의 숫자)가 항상 100을 초과해왔다. 그런데 통계청이 발표한 ‘북한의 주요 통계지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북한의 성비는 95.3이다. 따라서 남북한의 인구를 합칠 경우 성비는 98.8이 되어 균형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그리고 남한은 2018년에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4%를 초과하는 ‘고령 사회’에 진입하게 되는데, 가장 큰 원인은 낮은 출산율이다. 그런데 북한은 최근 20여 년 동안 출산율이 높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인구구성이 젊다. 따라서 남북한의 인구를 더하면 인구피라미드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다.
인구 1억의 새로운 시장 탄생 - 내수만으로도 어느 정도 소비가 이루어져 산업의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인구 규모를 보통 1억 명 정도로 본다. 현재 남한 인구는 약 5,000만 명이고 북한 인구는 약 2,500만 명이므로, 산술적으로 통합하면 총 7,500만 명이 된다. 한편 남북한의 경제적 통합이 진행되고 한국이 유라시아 대륙과 육로로 직접 연결되는 미래에는 국가 단위의 시장 개념보다 ‘한반도 경제권’이라는 개념이 더 적절해 보이는데, 이런 관점에서는 남북한을 통합한 경제권뿐만 아니라 중국ㆍ러시아와의 접경 지역 도시들도 초국경 광역경제권으로 한데 묶어서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북한 지역에 새로운 사업과 고용의 기회가 생기면 국내외의 많은 기업들이 한반도로 몰려올 것이고, 한반도가 동북아 경제의 중추적 허브로서 외국 기업에게도 매력 있는 투자처가 되면 해외투자와 인구 증가를 촉진시킴은 물론이고 관광 중심지로도 성장하게 될 것이다. 한편 오늘날의 내수 시장 개념은 거주 국민의 인구만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한반도 경제권과 긴밀하게 연결된 주변 국가의 경제 인구 및 유동 인구를 포함하면 한반도 경제권의 시장 규모는 지금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커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와 연결된 경제권의 인구는 현재 남한의 두 배가 되는 1억 명에 육박하게 되고, 이를 기반으로 현재와는 다른 산업 발전 패러다임이 가능해질 것이다.
최근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된 이후 북한 투자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각과 분위기가 달라졌는데, 이런 움직임은 북한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중국에서 먼저 느껴진다.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인을 소집해 북한의 개혁ㆍ개방에 대비해 북한에 대한 투자를 선제적으로 실행하라고 독려하고 있다고 한다. 또 투자의 귀재인 짐 로저스는 북한의 인력과 자원, 한국의 경험과 자본이 결합하면 세계적 불경기 속에서도 한반도는 가장 흥미로운 곳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1987년 미국 증시의 대폭락을 예측해 ‘닥터 둠’으로 불리는 월가의 비관론자 마크 파버도 통일의 신호가 포착되면 세계의 펀드매니저들이 한국 증시에 투자하기 위해 뛰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남북통일이 국가 신용 등급에도 큰 호재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북한에 매장되어 있는 지하자원의 경제적 가치는 3,200조 원에서 7,000조 원까지로 추정된다. 북한 지하자원 개발은 남북한 경제협력이 재개되면 우선적으로 진출해야 할 분야다. 만약 우리가 선점하지 못한다면, 여러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 것이 뻔하다. 북한에는 석회석, 마그네사이트, 철광석, 무연탄, 금 등 42개 광종이 매장되어 있다. 특히 현재 한국이 전량 수입하여 사용하고 있는 마그네사이트와 희토류 매장량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자원의 개발은 광산에서부터 가공시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고용 창출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개발의 플랫폼, ‘북한개발은행’ 설립: 북한의 경제 재건을 위한 전용 기금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국내 자본시장을 통한 차입을 추천하는 것과 병행하여,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등 다자개발은행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또한 단기적으로는 정부의 출연금 등을 우선 조달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정책금융기관이 국내외 자본시장 차입과 펀드 조성을 주도하되 민간 금융이 참여하는 형태를 검토할 필요가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다양한 투자 자본들의 참여를 관장하고 기획하는 통합적 플랫폼, 가칭 ‘북한(조선)개발은행’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북한개발은행의 설립은 남북한이 주도하고 외국계 개발은행 등이 참여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PART 2 스마트시티 네트워크
중소도시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광역경제권: 인구 100만 명 이상이고 국가의 정치, 경제, 정보 등 중추적 기능이 통합된 대도시를 메트로폴리스(metropolis)라고 부르고, 메트로폴리스가 주변 지역에 영향을 미쳐서 확장된 넓은 권역을 메트로폴리탄(metropolitan)이라 한다. 한편 도시 간의 네트워크가 확장됨에 따라 메트로폴리스 여러 개가 연결되어 형성된 것을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 또는 메가시티리전(mega-city region)이라고 부르는데, 메가시티리전은 핵심도시를 중심으로 일일 생활이 가능하도록 기능적으로 연결된 인구 1,000만 명 이상의 광역경제권을 의미한다.
앞으로 메가시티리전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은 대도시 공간이 연속적으로 이어진 도시 지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고유한 경쟁력을 가진 중소도시들이 서로 긴밀하게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여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글로벌 메가시티리전은 네트워크 효과를 보다 극대화할 수 있는 형태로의 전환을 모색해야 하는데, 네트워크 경제를 담기에 가장 적합한 구조로 전환하는 동시에, 기존의 도시 환경을 개선하여 과밀화ㆍ환경오염ㆍ생태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여러 대안 중에서도 중심도시와 주변의 거점도시를 네트워크로 연계한 도시구조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제 전 세계의 주요 도시들은 대부분 광역경제권화되고 있다. 따라서 도시의 경쟁력이 곧 해당 광역경제권의 경쟁력을 의미하게 된다. 글로벌 경영컨설팅 기업인 AT 커니의 2017년 글로벌 도시 경쟁력 순위를 살펴보면, 뉴욕, 런던, 파리, 도쿄, 홍콩 순으로 상위 5개 도시를 선정했는데, 여기에서 경쟁력의 지표가 되는 것은 기업 활동(30%), 인적 자본(30%), 정보 교류(15%), 문화 경험(15%), 정치 참여(10%) 등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지표는 현재의 도시 경쟁력을 나타내는 것이고, 미래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지표는 별도로 있다는 것이다. 도시의 미래 경쟁력 지표는 개인 복지(25%), 경제(25%), 혁신(25), 지배 구조(25%)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미래 경쟁력 지수가 높은 도시로는 샌프란시스코, 뉴욕, 파리, 런던, 보스턴 등이 꼽혔다. 참고로 이 평가에서 서울의 2017년 현재 경쟁력은 12위이지만 미래 경쟁력은 아쉽게도 38위로 매우 낮게 평가되어 있다. 따라서 앞으로 서울의 미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북한 수도권과의 연결을 통해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야 하는데, 우선 신경의선 교통망을 구축해 서울과 평양을 연결할 뿐만 아니라, TCR(Trans China Raliway)이나 TSR(Trans Siberian Railway)을 통해 동북아와 유라시아까지 네트워크를 확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한 서울 인근의 북한도시인 개성, 해주와 상호보완적 경제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동시에, 평양과 남포까지도 아우르는 광역경제권, 즉 ‘서울-평양 메가시티리전’을 형성해나갈 필요가 있다.
효율적인 남북한 경제협력 구조를 만들기 위한 방안으로서, 서울과 평양을 연결하는 경의선축과 인근 서해안 중소도시들을 연계하는 ‘서울-평양 네트워크 경제권’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 지역을 인구와 산업시설이 집중되어 있는 남북한 공동의 광역경제권으로 만들게 되면, 초고속 교통ㆍ통신망 등 네트워크 인프라를 통해 남한의 산업 역량이 급속하게 북한으로 확산될 수 있고, 동시에 북한의 상대적 경쟁력을 남한이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될 수 있다.
서울-평양 네트워크 경제권은 초고속 교통ㆍ통신 및 에너지 등 첨단 인프라를 기반으로 형성되는 일련의 도시 네트워크인데, 여기서 도시 간의 네트워크는 기존의 물리적 연결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초고속 교통망과 광대역 통신 기술을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 효과는 서울-평양 간의 공간적 제약을 없애고 두 지역을 동일한 경제권으로 통합시킬 수 있다. 이와 같은 조건에서는, 북한이 물질적 생산요소를 직접 ‘소유’하지 않더라도, 남한의 수도권 인프라에 단지 ‘접속’함으로써 네트워크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 필요한 환경을 갖출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기존에 불가능했던 남북한의 ‘신경제’적 협력 추진이 가능하다. 이 지역은 남북한의 네트워크 경제를 실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남북한 협력 초기 단계에서 서울-평양 경제권은 국경을 초월한 광역경제권이라는 점에서 ‘메가시티리전’의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경제적 협력이 성숙되고 정치적 통합까지도 실현되는 단계에서는 서울과 평양을 포함하는 정치ㆍ외교적 중심이자 한반도의 통합적 수도권 기능을 수행하는 ‘메가수도권’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렇게 되면 수도의 기능 및 정부 조직도 하나의 도시에 집중할 필요 없이, 메가수도권을 구성하는 각 도시들의 특성과 장점을 고려하여 분산 배치할 수 있다. 즉, 미래 한반도의 수도는 하나의 도시만을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메가수도권 지역의 여러 도시들이 네트워크로 연계되어 정치ㆍ경제적 기능을 공유하는 도시 네트워크 형태가 바람직하다.
PART 3 새로운 미래 도시 모델
미래 한반도 성장 전략의 핵심은 한반도 전체 지역을 광역경제권으로 나누어 인접 도시 간의 상호보완적 협력과 시너지를 활용하는 것이다. 광역경제권은 지정학적 특성에 따라 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주변 국가와 협력을 통해 경제성장을 추진하게 된다. 또한 지역 특성에 맞춰 다양한 형태의 산업을 수용하게 된다. 중소도시 규모의 스마트시티가 서로 연결된 ‘스마트시티 벨트’를 한반도의 광역경제권 모델로 육성할 것을 제안한다. 스마트시티 벨트에서는 지식 기반 산업이나 4차 산업뿐만 아니라, 기존 산업을 ‘지능화’하여 만들어낼 수 있는 다양한 산업군도 육성 대상이다. 따라서 거의 모든 산업 분야와 중소도시들이 스마트시티 벨트로 융합될 수 있다. 스마트시티 벨트를 구성할 때에는 북한의 경제특구ㆍ개발구를 고려해야 하는데, 북한의 경제개발구는 1.5~8㎢ 수준으로 소규모라, 제한적으로 개발해서는 집적 경제의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따라서 경제개발구 구상을 제대로 실현하려면 소규모 경제개발구를 확대하여 클러스터를 만들고, 다시 이와 같은 클러스터 몇 개를 서로 연결하여 산업벨트를 형성해야 한다. 즉, 경제개발구를 ‘씨앗’으로 삼아 관련 산업 분야의 기업, 대학, 연구소가 집중되어 있는 스마트시티를 만들고, 이들을 연계한 스마트시티 벨트를 구축해야 한다.
하나의 산업 벨트 내에서는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여러 개의 클러스터들이 네트워크 경제를 구축하여 상호보완적으로 협력하게 된다. 예를 들어, 북한은 각 지역별 특성에 따라 공업개발구, 농업개발구, 관광개발구 등 경제개발구의 기능을 분류해놓았다. 이러한 씨앗이 성장하면 다양한 산업 분야별로 특성화된 클러스터가 형성될 것이다. 각기 특성이 서로 다른 여러 개의 클러스터가 하나의 벨트 안에서 네트워크로 연결되도록 구성하는 것이다. 서로 산업적 특성이 다른 경제개발구들은 스마트시티 벨트 안에서 산업 간 융합을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한반도 전체를 8개의 광역경제권으로 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신의주-단둥-압록강 벨트
② 평양-남포-숙천 벨트
③ 해주-개성-인천 벨트
④ 새만금-홍성-평택 벨트
⑤ 두만강-나진-청진 벨트
⑥ 백두산-단천-흥남 벨트
⑦ 원산-금강산-양양 벨트
⑧ 목포-부산-포항 벨트
각각의 벨트는 반드시 하나 이상의 항만을 보유하고 있으며, 항만ㆍ철도ㆍ도로망을 연계시키는 거점도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지경학적 특성에 따라 벨트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스마트시티 벨트에서는 지역별 특성에 따라 핵심 산업 분야가 정해지며, 북한 경제 특구 및 경제개발구와 연계하여 발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게 된다.
스마트시티 벨트 추진 방향: 북한에서 우선적으로 추진해볼 만한 대표적인 스마트시티로는 어디가 가장 적합할까? DMZ 국제도시를 비롯하여 해주-개성-인천 삼각벨트를 중국의 주장 삼각주에 버금가는 국제경제자유구역으로 만들고, 단천 지역은 자원 개발 및 부품 소재 산업에 특화된 경제특구로 개발할 것을 제안한다. 원산항과 나진항은 동북아 해양 네트워크의 핵심적 거점항만으로서 제2의 싱가포르로 만들고, 남포의 수출가공구에는 스마트팩토리를 구축하여 세계시장을 겨냥한 제조기지로 육성하는 꿈을 담았다. 몇 가지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군사적 대립의 상징이었던 DMZ(비무장지대)는 이제 한반도의 평화를 상징하는 장소로 바뀌었다. 바로 이 DMZ에 국제평화도시와 생태공원을 조성해보면 어떨까? DMZ의 전체 면적은 992㎢다. 동북아의 평화를 상징하는 이 지역에 UN 산하기구, 동북아개발은행(가칭) 등 여러 국제기구를 유치하여 - 유럽 연합의 본부가 있는 벨기에의 브뤼셀이나 UN 산하기구가 모여 있는 스위스의 제네바와 같은 - 국제기구 허브로 육성할 수 있다. 판문점은 70년 가까이 이어져온 한국전쟁의 종전을 선언하고,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할 공간으로서도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DMZ 국제평화도시에는 기존에는 없었으나 새롭게 떠오르는 분야를 담당하는 국제기구를 창설하여 본부를 유치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DMZ 생태공원의 성격을 감안한 글로벌 녹색성장연구소, 신문명 미래도시 연구소 등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부합하는 연구기관과 국제기구를 설립하면 좋을 것이다. DMZ를 미래 세계 문명의 대안을 모색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국제도시 기능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의 인재를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공간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서울과 평양을 잇는 경의선 고속철도와 고속도로망에 연결되어 남북한 수도권에서 모두 접근이 용이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DMZ 국제도시에 지식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지식ㆍ콘텐츠ㆍ컨벤션 산업 분야를 집중 육성하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지식 네트워크의 허브로서 국제회의 관련 콘텐츠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친환경 에너지를 활용한 글로벌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등 지식 산업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한편 DMZ 내에 잘 보존된 자연환경을 활용하여 거대한 생태공원으로 전환하고 이를 국제적인 관광 명소로 개발할 수도 있다.
해주-개성-인천 : 동북아 최고의 국제경제자유구역 - 만약 남북한에 평화가 정착되고 철조망이 제거된다면 어떻게 될까? 한강 하구 지역은 동북아의 물류가 활발하게 오고 가는 무역의 중심지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현재 북한의 군사적 요충지인 해주 지역 또한 큰 변화를 맞게 될 것인데, 여기는 동북아의 중추적 항만으로 잘만 개발하면 중국의 선전 못지않게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지역이다. 참고로 중국은 경제를 서서히 개방하고 오늘날의 선전을 만드는 데 30년이 걸렸지만, 북한은 남한의 도움을 받아 해주를 10년 내에 변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강화도, 교동도, 석모도 등 한강 하구에 있는 세 개의 섬을 합하면 면적이 약 400㎢ 가까이 되는데, 이는 홍콩 면적의 약 5배 크기다. 인천 강화도와 교동도를 홍콩과 같이 만들고, 해주를 선전과 같이 만든다면 중국의 주장 삼각주(홍콩-선전-주하이-광저우-마카오) 못지않은 국제적인 경제 중심지의 탄생이 가능하다. 그리고 해주항은 한반도 서해의 해양 네트워크 중심으로 육성하기 위해 스마트 항만으로 개발되어야 한다.
두만강-나진-청진 : 남ㆍ북ㆍ중ㆍ러 4개국 무역의 중심으로 - 그동안 북한이 경제제재 아래 놓여 있고 남북한의 교류가 단절된 상황에서, 한국의 북방 협력은 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자루비노 항구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남북한의 철도ㆍ도로망이 구축되고 항로가 열리면 나진항이 한반도의 중추적 물류 거점으로 도약하게 될 것을 기대해봄직하다. 북ㆍ중ㆍ러 3국의 무역은 북한의 나선, 중국의 훈춘, 러시아의 하산 등 3개 거점을 잇는 삼각벨트가 협력의 주요 공간으로 발전되어갈 것이다. 또한 청진을 북한의 제철소기지로 만드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북한의 철광석 자원을 활용하기 위한 제2의 포항제철소를 청진에 구축하자는 계획이다. 청진항을 스마트 항만으로 만들고, 스마트 팩토리 개념의 제철소를 청진에 건설한다면 그 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그리고 나진항에서부터 청진항까지의 철로를 연결하여 철광석과 석탄의 운송을 용이하게 하면 북한의 철광석, 러시아의 석탄을 활용한 산업 협력도 구상해볼 수 있다.
평양은 살아 숨 쉬는 ‘도시 박물관’: 이상적 사회주의 도시로 계획된 평양은 자본주의 도시에 비해 매우 파괴적인 공간구조를 갖고 있으며, 도시계획 측면에서 상당한 장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요소도 꽤 많다. 풍부한 공원 녹지, 지구 단위 계획, 상징적 공간, 도시의 경관축 등의 요소를 잘 활용하면 도시 공간의 경험을 풍부하게 늘릴 수 있다. 따라서 평양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도시적 맥락을 잘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서울-평양 스마트시티, 서울과 평양을 연결하여 구성하게 될 미래의 광역경제권을 상상해본다. 하나의 광역경제권에 매우 대조적인 특성을 가진 두 개의 수도가 연결되어 있다면 얼마나 멋진가. 전 세계 관광객들이 꼭 방문해보고 싶은 명소가 될 것이다. 현재 평양의 어느 부분을 유지하고, 또 어느 부분을 새롭게 조성하여 세계적인 도시로 재탄생시킬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함께 살펴보자.
평양 도시 개발 프로젝트 제안: 평양의 명소를 따라 걷는 올레길 코스 - 평양을 관광자원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도시 공간을 직접 걸어서 체험하는 올레길 개발을 제안한다. 이 올레길은 공원 녹지 산책로와 연계하고, 상징물이나 기념비, 광장 및 주요 시설을 통과하도록 하면, 평양을 찾는 관광객이면 누구나 경험해보고 싶은 관광 코스가 될 것이다.
보통강변을 세계적 낭만의 거리로 - 평양은 강의 도시라 할 수 있다. 대동강이 S자형으로 평양 시내를 관통하고, 대동강의 지류인 보통강이 도심을 휘감고 있다. 그런데 대동강의 양측 강변 구역에는 공원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 것과 달리, 보통강의 일부 구역은 아직 정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최대한 자연 상태를 보존하면서 수변 공간을 공원화하고,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를 마련하여 사람들이 보다 쉽게 강변 공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강 양측을 연결하는 보행자 교량을 추가로 설치하면 도시 공간의 연결성을 높일 수 있다. 또 강변을 잘 정비한 후 상업시설을 제한적으로 유치하면, 강폭이 좁은 프랑스의 센강이나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운하, 일본 오사카의 강변과 같이 운치 있는 공간을 조성할 수도 있다. 아무튼 보통강이 가진 장점을 살리면 보행자를 위한 매력적인 공간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다. 보통강변의 노천카페에서 세계 각국의 음식을 즐기면서 저녁 시간을 보내는 낭만적인 모습을 꿈꾸어볼 수도 있다.
평양역 주변 재개발과 첨단 산업 유치 - 평양은 ‘철도의 도시’답게 철로가 도시 여러 곳을 가로지르고 있다. 그런데 평양역을 지나는 철로는 남북 방향으로 이어져 있어 동서 방향으로는 공간적 단절이 심하다. 만약 역 주변의 철도차량기지를 도시의 외곽 지역으로 이전하고 고속철도를 지하에 건설한다면, 이 지역의 공간적 특성이 크게 바뀔 것이다. 평양역 및 주변 공간을 포함하는 재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주거, 상업, 문화, 컨벤션 시설이 조성된 복합지구로 개발하는 것도 가능하다. 철로는 지하화하고 지상은 공원화하며, 주변 지역에는 문화 공간과 행사 공간을 배치하는 것이 좋다. 한편 평양역 서편은 다소 낙후된 산업시설들로 구성되어 있다. 과거 공장지대였던 구로공단이 오늘날 서울디지털국가산업단지로 변모했듯이, 평양의 낙후된 산업 지역도 새로운 전환을 맞을 때가 되었다. 특히 첨단 기술 산업 분야에서 남북한의 밀접한 협력을 추진한다면, 평양 고속철도가 지나게 될 평양역 인근 평천구역을 지식 산업과 4차 산업을 위한 첨단 기술 산업단지로 조성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대학거리와 국제문화거리 조성 - 대동강 동쪽의 동대원구역과 대동강구역에는 몇 가지 특별한 곳이 있다.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대학을 뺀 나머지 대학들이 이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또 중국 대사관을 제외한 여러 나라의 대사관들도 거의 모두 이 지역에 모여 있다. 따라서 여러 종류의 대학이 위치한 지역적 특성을 살리면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대학거리를 조성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독일, 영국, 스웨덴 등 여러 국가의 대사관들이 모여 있는 특성을 살려 국제문화거리를 조성할 수도 있다. 대학거리와 국제문화거리를 십(十)자 형태로 교차하게 만들면 교류를 더욱 활성화시킬 수 있고, 평양의 젊은이들이 다양한 국가의 외교관이나 관광객들과 문화를 교류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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