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어서 술술 읽히는 경제 교양 수업
박병률 지음
메이트북스 / 2020년 4월
1장 문학에서 경제를 캐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손실이다 - 자중손실 『크리스마스 선물』
가진 돈은 1달러 87센트뿐: 『크리스마스 선물』은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는 가난한 부부, 델라와 짐의 이야기다.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아내 델라가 가진 돈은 1달러 87센트뿐이다. 짐이 버는 주당 20달러가 이 가정의 수입 전부다. 주당 8달러의 임대료를 내고 나면 12달러밖에 남지 않는다. 남편에게 사줄 게 없어 울던 델라는 우연히 거울에 비친 자신의 머리칼을 본다. 그녀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보물이다. 델라는 과감히 자신의 머리카락을 팔았다. 20달러다. 델라가 남편에게 사주고 싶은 것은 시곗줄이다. 남편 짐은 시계를 소중히 여기지만, 돈이 없어 낡은 가죽을 시곗줄로 쓰고 있다. 머리를 팔아서 얻은 20달러로 시곗줄을 사서 ‘깜짝선물’을 한다면 남편을 얼마나 행복해할까.
크리스마스 선물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오 헨리는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은 동방박사들로부터 시작되었다”며 “아주 오래전 말구유에 있는 아기 예수에게 선물을 가지고 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이 항상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선물사기는 골치 아픈 일이다. 내 마음보다는 상대방이 좋아하는 선물을 사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크리스마스다. 상대는 기대가 크다. 웬만한 선물을 주어서는 만족시키기 어렵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크리스마스의 자중손실’이라고 부른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기대치가 크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의 조엘 월드포겔 교수는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받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 선물의 가치를 평가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학생들은 자신들이 받은 선물의 가치를 구입가의 적게는 67%, 많게는 90%로 보았다. 쉽게 말해 1만 원짜리 선물을 받고도 6,700~9,000원짜리 선물 정도 밖에 안될 것이라고 평가했다는 말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구입하기 위해 쓴 돈보다 실제 체감은 10~33% 낮았다. 이렇게 저평가된 가치가 자중손실이다. 개개인에게 발생한 효용손실을 모두 더하면 사회 전체의 효용손실이 된다.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주고받는 서양의 전통은 크리스마스가 낀 연말을 최고의 마케팅 시즌으로 만들었다.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와 영국의 박싱데이 기간에는 연중 최고 규모의 빅세일이 진행된다. 블랙프라이데이는 추수감사절 다음날로 11월의 마지막 주 금요일이다. 박싱데이는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12월 26일이다. 소비자의 소비심리가 개선되어 그 이전까지 기록된 장부상의 적자가 흑자로 전환된다고 해서 블랙프라이데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하지만 이런 크리스마스 마케팅이 오히려 거시경제에는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부 전문가들은 ‘다수 미국인들이 연말에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흥청망청 쓰면서 자중손실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한다”며 “차라리 크리스마스 소비를 줄이는 것이 경제 전체적으로 이득”이라고 밝혔다.
연말에는 선물을 받는 사람의 기대가 커서 효용(만족감)을 충족시키기 힘들다. 문제는 이때 돈을 쓴 만큼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기 때문에 다른 때는 소비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 미국에서도 12월까지 급증했던 소비가 이듬해 1월이 되면 급감한다. 자신이 꼭 필요할 때 소비를 해야 효용이 극대화된다. 효용이 낮은 크리스마스 선물 사기에 집중하느니 아껴두었다 꼭 소비를 해야 할 시점에 선물을 사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효용을 높이는 방법이라는 게 《월스트리트저널》의 주장이다.
자중손실을 줄이는 가장 안전한 선택: 비단 크리스마스 선물뿐 아니다. 통상 선물은 그 자체로 효용손실이 발생한다. 정말 받고 싶어 했던 깜짝선물이 아니라면 말이다. 자중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고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사줘야 한다. 하지만 선물을 사주면서 상대방에게 일일이 의사를 묻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자중손실을 줄이는 가장 안전한 선택은 ‘현금’이다. 현금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객관적인 효용가치를 줄 수 있다. 그 돈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사면 된다. 경제학적으로 보자면 선물의 자중 손실을 줄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금이 최고의 선물일까? 안전한 선택은 될 수 있어도 최고라고 하기는 어렵다.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은 선물은 오래 기억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난 지 100일 째 되는 날, 지금의 남편에게서 받은 손편지 한 장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선물이 될 수 있다.
『경제학 콘서트』의 저자인 팀 하포드는 《파이낸셜타임즈》 주말판의 ‘경제학자에게’란 상담코너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는 법에 대해 이처럼 조언했다. “자중손실 때문에 선물이 무익하다고 오해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선물에는 ‘정서적 가치’가 있다. 최고의 전략은 ‘자중손실은 최소화하고, 정서적 가치는 최대화하라’다. 비싸지 않은 걸 사고 거기에 편지나 사진을 함께 줘보라.”
소설에서 델라는 귀가한 남편에게 시곗줄을 내민다. 델라는 남편에게 온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산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기뻐할 줄 알았던 남편이 멍한 모습으로 단발머리가 된 델라를 바라본다. 그러고는 슬그머니 머리핀을 내민다. 아내 델라가 너무나 갖고 싶어 하던 선물이다. “난 이제 시계가 없어.” 짐은 자신이 아끼던 시계를 팔아 아내의 머리핀을 산 것이다. 시계가 없는 남편 짐에게 시곗줄은 효용 가치가 전혀 없다. 단발머리의 아내 델라에게도 머리핀은 효용가치가 없어졌다. 두 사람은 허튼 짓을 한 것일까?
역설적이게도 짐의 시곗줄과 델라의 머리핀은 세계인이 기억하는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놓은 마음이 준 감동은 경제적 효용가치를 뛰어넘었다. 오 헨리는 『크리스마스 선물』 말미에 두 사람의 선물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두 사람은 어리석게도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선물로 주었다. 하지만 이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고 이것이 바로 선물을 주는 이유다. 두 사람은 누구보다도 현명했다.”
어린 왕자만 볼 수 있는 것 - 보아뱀 전략 『어린 왕자』
사하라 사막에서 만난 그 아이: ‘나’는 6년 전 사하라 사막에 비행기를 타고 가던 중에 불시착했다. 단 일주일 분의 물만 갖고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 그곳에서 어린 왕자를 만났고 그와 친구가 되었다. 알고 보니 어린 왕자는 B-612라는 소혹성에서 왔단다. 지구는 어린 왕자의 일곱 번째 방문지였다.
소혹성을 찾아 떠난 어린 왕자의 첫 번째 행선지는 임금 홀로 다스리는 소혹성. 백성이 없는 공허한 곳이었다. 두 번째 별에는 허영쟁이가 살았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찬양한다고 생각하는 착각 속에 사는 인물이다. 세 번째 별에는 술주정꾼이 살았다. 술을 마시는 자신이 부끄럽다는 것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자제력 없는 어른이었다. 네 번째 별에는 기업가가 있었다. 자신이 헤아린 5억 개의 별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남자다. 다섯 번째 별에는 가로등을 켜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1분에 한 번씩 점등하는 일을 하면서 항상 불행하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간다. 여섯 번째 별에는 어린 왕자는 지리학자를 만났다. 하지만 현장에는 나가지 않는 탁상공론자다.
어디에서도 배울 것을 발견하지 못해 실망하는 어린 왕자에게 지리학자가 한 곳을 추천했다. 그게 지구였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어린 왕자는 지구에 왔다. 어린 왕자는 아프리카 사막에서 뱀을 만나고, 3장의 꽃잎을 가진 볼품없는 꽃을 만났다. 그러다 5천 송이가 핀 정원에 들렀다. 지천이 장미다. 자신이 소중히 여겼던 장미 한 송이가 그저 평범한 꽃 한 송이에 불과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어린 왕자는 실망감에 울음을 터트렸다. 이때 여우를 만났다. 여우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아.”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대하게 된 어린 왕자는 대번에 ‘내’가 6세에 그린 보아뱀 그림을 알아챘다. 다른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 모자라고 생각했지만 어린 왕자는 속을 들여다봐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보아뱀 그림은 ‘진정한 사물의 가치는 겉이 아니라 내면에 있다’는 가르침을 일깨워주는 『어린 왕자』의 상징물이다. 실제로 유로화가 도입되기 전 프랑스가 썼던 50프랑 지폐 앞면에는 생텍쥐페리 초상과 어린 왕자와 함께 코끼리를 집어삼킨 보아뱀 그림이 인쇄되어 있다.
보아뱀을 경제학이 빌려가다: 여기서 경제학 용어도 파생되었다. 이른바 ‘보아뱀 전략’이다. 보아뱀 전략이란 자신보다 규모가 큰 기업을 인수합병해 기업을 성장시키는 전략을 말한다. 보아뱀이 자신보다 훨씬 덩치가 큰 코끼리를 삼킨 것을 빗댔다. 자신보다 규모가 큰 기업을 삼키다보니 기업의 형태가 달라진다. 주력산업이나 조직이 크게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길고 가는 보아뱀이 모자형태로 바뀌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보아뱀 전략의 성공적인 사례로 인도의 타타그룹을 들었다. 2009년 보고서 ‘글로벌 M&A시장의 보아뱀, 타타그룹’을 보면 타타스틸은 연간 500만 톤의 생산규모를 가진 세계 56위의 철강회사였다. 2007년 이들은 연간 1900만 톤(세계 9위)의 조강생산 능력을 가진 영국의 코러스를 121억 달러에 인수해 세계 5위의 철강 회사로 도약했다. 또한 타타모터스는 2008년 영국의 자동차 브랜드 재규어와 랜드로버를 23억 달러에 인수했다. 타타모터스는 나노 등저가 소형차를 생산하는 소규모 자동차 회사였지만 인수합병으로 일약 글로벌 브랜드를 소유하게 되었다. 이 같은 타타그룹의 성장사는 세계 주요 경영자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국내에서도 작은 회사가 큰 회사를 인수하려는 시도가 종종 있었다. 대표적 사례가 2009년 효성그룹의 하이닉스 인수추진이다. 효성그룹은 자산 6조 원, 하이닉스는 13조 원이었다. 하나은행이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사들인 것도 일종의 보아뱀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인수 당시 하나은행 총자산은 150조 원으로 외환은행을 외형에서는 앞섰지만 오랫동안 외환업무를 전담해왔던 외환은행의 국내외 평판이나 해외 네트워크를 비롯해 그들이 가진 노하우는 따라가지 못했다.
보아뱀을 삼킨 뒤 여섯 달은 꼼짝 말아야: M&A시장에서 작은 기업이 큰 기업을 인수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덩치가 큰 만큼 막대한 인수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수자금을 끌어모으다 보면 현금흐름이 압박을 받게 되고, 유동성이 위축되면 기업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 인수를 무리하게 추진하려다 자금부담으로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졌다. 10년간 유동성 위기를 겪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주력사였던 아시아나항공을 시장에 내와야 했다. 설사 합병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아 있다. 인력풀이 상대적으로 약해 단기적으로 인수기업을 장악하기 힘들고, 피인수 기업의 거대 조직들과 충돌하다가 통합에 진통을 겪을 수 있다. 외환은행을 인수한 하나은행도 한동안 외환은행 노조와 갈등을 겪었다.
인수한 기업의 가치가 인수가격에 미치지 못하거나, 인수에 성공한 기업의 재무부담이 너무 크다고 판단되면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폭락한다. 주식을 팔아 자금을 마련할 요량이었던 기업이라면 곧바로 인수자금 부족사태에 빠지고, 추가 자금을 은행에서 대출받으면서 이자부담에 허덕이게 될 수 있다.
보아뱀 전략의 리스크는 『어린 왕자』에도 나온다. “보아 구렁이는 먹이를 씹지 않고 통째로 삼켜. 그러고는 꼼짝하지 않고 소화시키기 위해 여섯 달 동안 잠을 자.” 큰 먹이를 제대로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공룡기업을 인수한 M&A도 목표한 성과를 거두기까지 어려움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자금부담과 조직융합에 실패해 인수기업이 무너지는 것을 ‘승자의 저주’라고 부른다. 미국 석유회사인 애틀랜틱 리치필드사에서 근무한 카펜, 클랩, 캠벨 등 3명의 기술자들이 1971년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언급된 단어다.
1950년대에 미국 석유기업들은 멕시코만의 석유시추권 공개입찰에 참여했다. 과잉경쟁이 이뤄지면서 가격이 치솟았다. 마침내 한 기업이 2천만 달러를 써서 낙찰을 받았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 석유매장량을 들여다보니 문제가 생겼다. 석유매장량 가치는 1천만 달러에 불과했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1992년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탈러는 이 사례를 내세워 『승리의 저주』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했고 경제학계에 널리 알려졌다.
2장 경제는 합리적이지 않다
함께하긴 싫고 버리긴 아깝고 - 현상유지편향 『오페라의 유령』
파리 오페라하우스 2층의 5번 박스석을 기억하라: 프랑스 파리에 있는 지상 25층, 지하 5층의 대형 오페라하우스. 2,3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이 오페라하우스에는 모두가 쉬쉬하는 비밀이 있다. 2층 5번 박스석에 유령이 출몰한다는 것이다. 새로 극장 지배인이 된 몽샤르맹과 리샤르는 코웃음을 친다. 세상에 유령이 어딨냐고.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잇달아 일어나면서 두 지배인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이 극장의 디바는 마담 카를로타이다. 하지만 유령은 크리스틴 다에를 디바로 내세우라고 요구한다. 크리스틴을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 그는 라울 샤니 자작이다. 크리스틴이 주인공으로 데뷔하던 날, 극장에서 그녀를 본 자작은 사랑에 빠지지만 크리스틴은 그의 사랑을 쉽게 받아주지 않는다. 크리스틴은 비밀이 있다.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음악의 천사’로부터 오페라 교습을 받고 있다. 라울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면 음악의 천사는 떠나버릴지도 모른다. 알고 보니 ‘음악의 천사’는 ‘오페라의 유령’이었고 그도 크리스틴을 사랑하고 있었다. ‘라울-크리스틴-오페라의 유령’은 삼각관계가 된다.
크리스틴은 누구를 좋아할까?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은 라울이다. 유년시절을 함께 보낸 데다 지체 높은 귀족 집안인 것도 끌렸다. 하지만 크리스틴은 오페라의 유령을 떠나지도 못한다. 유령은 자신을 교습시켜준다. 그가 없다면 프리마돈나의 꿈을 이루기 힘들다. 크리스틴은 라울에게 자신의 마음을 실토한다. “나는 유령 목소리를 더는 못 듣게 될까봐 두려운 한편, 당신에게로 자꾸만 향하는 이 감정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 감정이 초래할지도 모를 온갖 부질없는 위험들을 끊임없이 가늠해보는가 하면, 당신은 나를 못 알아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으니까요.”
오페라의 유령을 버리지 못하는 크리스틴의 심리는 행동경제학에서 ‘현상유지편향’으로 설명된다. 현상유지편향이란 큰 이득이 주어지지 않는 한 현재의 상황을 바꾸려 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말한다. 상황을 바꾸면 좋을 수도 있지만 더 나빠질 수도 있다. 확실히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가 없다면 사람들은 현재 상황을 바꾸는 리스크를 굳이 껴안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왜 단골이 되었을까?: 윌리엄 새뮤얼슨과 리처드 제크하우저는 1988년 논문 ‘의사결정에서 현상유지편향’을 통해 현상유지편향을 널리 알렸다. 이는 단골손님이 만들어지는 이유를 설명한다. 사람들은 다른 거래처가 확실히 다른 효용을 주지 않는 한 기존 거래선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다. 늘상 가는 미용실에 가고, 항상 가는 식당에 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갑자기 미용실을 바꿨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헤어스타일을 만나게 되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마케터들은 이런 심리를 이용해 ‘충성고객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무료 공장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변신로봇 애니메이션 ‘카봇’에도 적지 않은 투자를 했다. 어린이 고객을 잡기 위해서다. 어릴 때 현대차에 좋은 이미지를 가지게 되면 커서도 좋은 이미지를 가질 가능성이 크다. ‘로열티 마케팅’도 현상유지편향을 극대화하기 위한 마케팅이다. 로열티 마케팅이란 쿠폰, 할인권, 마일리지 적립 등을 제공해 고객들에게 서비스하는 것을 말하는데, 한 번 맺은 고객과의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한 판매전략 중 하나다. 고객들은 그동안 쌓은 마일리지가 아까워서라도 거래처를 쉽게 바꾸지 못한다.
현상유지편향은 개별상품 판매전략으로도 쓰인다. 스마트폰 개통 때 몇백 원짜리 부가서비스를 일정 기간 이용하면 스마트폰 요금을 큰 폭으로 할인해주겠다는 상품이 종종 보인다. 소비자들은 그 얘기에 솔깃해 상품에 가입했다가 해당 서비스를 몇 년간 쓰는 경우도 있다. 한 달에 몇 백 원밖에 안 되다보니 굳이 서비스 종료 기간을 기억해 통신사에 서비스를 끊어달라고 연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전화걸기가 귀찮다’는 것이다.
펀드에 한 번 넣으면 잘 안 뺀다: 현상유지편향은 투자판단을 할 때 많은 영향을 미친다. 주가가 오르거나 내린다는 확신이 없는 한 한 번 넣은 펀드는 대개 그대로 유지한다. 금융거래도 거래를 튼 금융사와 계속 한다. 예적금 가입자들이 펀드가입이나 주식투자자로 돌아서는 시기는 주가가 상승할 때다. 주식시장의 수익이 커보이기 때문이다. 현상유지편향에 관한 윌리엄 새뮤얼슨 교수의 실험을 보면 현금으로 상속받았을 때와 주식 혹은 채권으로 상속받았을 때 피상속인의 행동이 달라진다. 현금으로 받으면 직접투자나 주식투자 등 돈을 굴리기 위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짠다. 하지만 주식과 채권으로 받으면 그냥 보유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주식과 채권을 지금 파는 것이 미래에 매각하는 것보다 확실히 이득이 된다는 자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애매할 때는 행동하지 않는다.
소설에서 라울과 크리스틴은 멀리 도망가기도 한다. 그날 마지막 공연, 크리스틴은 실종된다. 크리스틴은 어디로 간 것일까? 오페라의 유령은 에릭이라는 남자다. 어릴 적 기형으로 태어나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에릭의 꿈은 한 여자와 가정을 꾸리고 일상적인 행복을 느끼는 것이었지만 세상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오페라의 유령』은 선과 악, 미와 추, 생과 사를 버무린 인생종합세트 같은 작품이다. 저자 가스통 루르는 기자 출신이다. 《르 마탱》지에 ‘러일전쟁, 제물포의 영웅들’이라는 내용의 르포를 연재하기도 했다. 제물포 해전 이후 귀국길에 오른 러시아 수병들을 인터뷰한 내용들이라고 한다. 이 기자는 100년 뒤 한국의 한 극장에서 그의 작품이 뮤지컬로 공연될 것이라 상상이나 했을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3장 경제사를 알아야 경제를 이해한다
착각이 필요할 때 - 화폐착각 『돈 키호테』
주막과 성, 풍차의 거인, 신부는 악당: 돈 키호테는 환상에 빠져 있다. 주막을 성이라고 생각하고, 주막집 주인을 성주라고 믿는다. 풍차는 거인이다. 장례행렬을 인도 중인 신부는 시신을 탈취한 악당이다. 양떼는 군대다. 면도용 대야를 쓴 이발사는 황금투구를 쓴 기사다. 돈 키호테의 눈에 사람들은 퇴치해야 할 마법사가 되었다. 싸워야 할 기사가 되었다가, 보호해야 하는 공주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승리는 많지 않다. 풍차에 내동댕이쳐지고 양떼를 지키는 목동들에게 두들겨 맞는다. 주막집에서도 주막집 주인과 마부에게 집단 구타를 당한다. 갤리선 노예들을 구해주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마저 돌팔매질을 당한다. 매번 갈비뼈가 부러지고, 온몸에 멍이 드는 험난한 편력기사의 길이다.
세르반테스는 돈 키호테를 통해 무적함대의 패배 이후 쇠망해가던 스페인 사회를 풍자했다. 국왕과 교회의 서슬이 시퍼런 시기에 사회를 비판하는 글을 쓸 수는 없었다. 이 때문에 도입한 장치가 ‘광인’이다. 미친 사람이 하는 얘기여야 잡혀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돈 키호테는 기사소설을 읽다가 광인이 된다. 요즘으로 치면 게임에 빠졌다가 현실과 게임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환상과 착각, 망상은 정신이 이상한 사람만 빠지는 것이 아니다. 매우 합리적인 사람도 빠진다. 경제주체들도 다르지 않다. 착각을 많이 한다.
경제도 착각에 빠진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화폐착각’이다. 화폐착각이란 화폐의 명목가치를 구매력으로 오해하는 현상을 말한다. (명목)임금이 3% 올랐더라도 물가가 3% 오르면 실제 임금상 승률이 0%이지만 여전히 임금이 3% 오른 것으로 착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월급은 올랐는데 내 삶은 왜 변화가 없지?’라고 생각한다면 화폐착각에 빠진 것이 틀림없다.
행동경제학자인 아모스 트버스키 등은 재밌는 실험을 했다. 3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A는 입사 첫해의 인플레이션은 0%, 2년차 연봉이 2% 인상되었다. 3만 달러 연봉을 받은 B는 입사 첫 해 인플레이션이 4%였고, 2년차에 연봉이 5% 인상되었다. 명목임금은 B가 크지만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임금은 A가 크다. 트버스키는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경제적으로 따지면 누가 더 유리한가”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응답자의 71%가 A가 더 유리하다고 답했다. 사람들은 실질임금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질문을 바꿔서 또 다른 실험 참가자에게 “누가 더 행복할까”라고 물었더니 64%는 B가 행복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 다른 실험자들에게는 “2년차에 다른 회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올 때 두 사람 중 누가 옮길 확률이 더 높을까”라고 물으니 응답자의 65%는 A라고 답했다.
실질가치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명목임금을 사람들이 더 중요시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옆집 아파트 가격이 3억 원에서 4억 원으로 오를 때 내 아파트도 3억 원에서 4억 원으로 올랐다면 상대가치가 달라진 것은 없지만 기분은 괜히 좋아지는 것과 같다. 화폐착각 때문에 가벼운 인플레이션은 경제에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사업주는 임금을 올려 노동자의 욕구를 만족시키면서도 실제 부담은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빙 피셔는 1919년 ‘달러 안정화’라는 논문에서 화폐착각이라는 단어를 처음 썼다.
마이너스 금리로 낮췄는데도 경기가 왜 살아나지 않을까? 여기에도 화폐착각이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대출이자를 절감한 것처럼 보이지만 소득도 줄어들어 실제로는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 예컨대 대출금리 5%를 2%로 낮춰질 때 예금금리도 4%에서 1%로 떨어진다면 예대마진은 3%포인트로 똑같다.
재정지출을 늘려도 경기가 살지 않는 이유: 경제주체들이 쉽게 빠지는 또 하나의 착각은 ‘재정환상’이다. 재정환상이란 재정지출의 효과는 높게 보는 반면 재정수입을 위한 납세자의 부담은 낮게 보는 것을 말한다. 세금을 더 걷을 경우 소비자는 사적 지출을 줄이기 때문에 재정확대에 따른 경기부양 효과가 줄어들 수 있다. 대중들은 정부가 재정을 마련하는 과정이 불투명하거나 복잡할 때 쉽게 재정환상에 빠진다. 혹은 재정에 대한 부담을 먼 미래에 지게 될 때도 재정환상이 손쉽게 일어난다. 정부의 복지 지출이나 공공사업 지출 비용은 결국 국민들에게 세금명세서로 날아온다. 그 명세서는 소득세 같은 직접세가 될 수도 있고, 부가세 같은 간접세가 될 수도 있다. 혹은 교통사고 범칙금이 될 수도 있지만 납세자들은 종종 이를 잊는다.
정치인들은 이런 재정환상을 이용해 ‘큰 정부’를 만든다. 납세자들의 반발이 예상될 경우에는 국채발행을 늘리는 식으로 비판 여론을 피해가기도 한다. 당장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것이 아니어서 재정환상에 빠지기에 훨씬 쉽다. 하지만 국채발행은 조삼모사가 될 수 있다. 미래의 어느 날 우리 아이들이 갚아야 하는 빚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재정환상을 두려워해 과도하게 곳간에 돈을 쌓아두는 것도 적절하지는 않다. 정부지출을 줄이면 공공서비스가 위축되어 삶의 질이 떨어지고, 내수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4장 경제는 현실이다
헌법은 최저임금을 보장하지만 - 최저임금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의미가 바뀐 프리타: 소설집에 실린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는 출퇴근 지하철에서 승객들을 열차 안으로 미는 푸시맨 아르바이트생의 이야기다. ‘나’는 상고 졸업반 고등학생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오후엔 주유소에서, 밤에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나의 편의점 알바일을 주선해주는 형은 일명 ‘코치’형이라 불린다. 코치형이 이번에 주선해준 일은 ‘푸시맨’이다. 시간당 3,000원짜리 고급 일이다. 나는 이제 하루에 3개의 아르바이트를 한다. 아버지는 시간당 3,500원짜리 일을 하시고, 어머니는 청소일을 한다. 할머니는 아프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요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고정적인 직업 없이 2~3개의 겹치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사는 사람들을 일본에서는 ‘프리타’라 부른다. 프리타는 ‘프리 아르바이타’를 줄인 일본식 합성어다. 원래 프리타는 새로운 문화현상이었다. 일본 경제가 한창 좋던 1980년대 말, 기업에 종신 고용되어 평생토록 일하기보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서 남는 시간에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 청년들을 지칭했다. 하지만 1990년대 시작된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의미가 바뀌었다. 정규직 일자리를 잡기 힘들어지면서 아르바이트의 의미가 달라진 것이다.
이 소설의 ‘나’는 전형적인 프리타다. ‘나’는 편의점에서 시간당 받은 1,000원은 적다고 생각한다. 편의점 일이 ‘열정페이’인지 아닌지를 확인해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있다. 최저임금을 보면 된다. ‘최저임금’이란 국가가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한 뒤 사용자에게 이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노동자가 저임금상태로 몰리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서다.
1988년 우리나라에서도 최저임금제가 시행되다: 최저임금제는 1988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에는 최저임금제 실시 근거가 있다. 하지만 당시 한국 경제가 최저임금제를 수용하기는 어렵다며 계속 미뤄졌다. 1970년대 중반에 와서야 지나친 저임금은 사회문제로 비화되었다. 정부는 행정지도에 나섰지만 저임금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저임금을 해소하고 노동자에게 일정수준 이상의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주기 위해 법적 장치를 마련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1986년 최저임금법이 제정ㆍ공포되었다. 1987년 개정된 헌법 제32조 1항을 보면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전통 경제학은 최저임금제를 좋아하지 않는다. 최저임금제가 비용을 높여 실업을 불러오고 노동자 간 소득불평등을 확대시킬 것이라는 반론을 편다. 경제학적으로 보자면 최저임금제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주는 제도다. 실제보다 높은 임금을 주니 노동자들은 서로 일을 하려 한다. 반면 비용부담이 커진 기업은 고용을 꺼린다. 노동공급은 늘어나는데 노동수요는 감소하니 노동은 초과공급 상태가 된다. 기업이 초과 공급된 노동자를 해고하면 비자발적 실업이 늘어난다. 실업이 장기화되면 일하는 노동자와 일하지 않는 노동자 간의 소득격차가 크게 확대된다.
최저임금제 효과에 대한 찬반론은 여전히 엇갈린다. 어느 쪽도 명쾌하게 정리된 것은 없다. 다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때 세계는 최저임금 인상 바람이 불었다. 일본의 아베노믹스도 최저임금 인상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2019년 도쿄와 수도권 일부 지역의 최저 임금이 시간당 1,000엔을 달성하기도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고용전망 2015>를 통해 최저임금은 분배와 빈곤에 미치는 영향 외 공정한 임금보장, 노동자 착취예방, 세입 증대 등 다양한 사회적 목표달성에 기여했다며 합리적인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밝혔다. 문제는 ‘합리적인 수준’에 있다.
19대 대선에 나온 대선후보들은 저마다 시급 1만 원 최저임금 공약을 내걸었다.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후보 모두 시기는 다를 뿐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냈다. 당선자인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1만 원 달성 공약을 앞세워 만든 정책이 ‘소득주도 성장’이다. 하지만 시간 당 1만 원은 정치적 레토릭이지 경제학적 분석을 통한 목표치는 아니라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경제를 공부하는 이유는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허구의 문학작품에서 현실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
소설이나 희극 곳곳에 결제학 용어들이 녹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낯설게만 느껴지던 경제학이 익숙한 문학작품만큼 쉽고 친근하게 느껴지게 된다.
경제학자들은 때로 문학작품에서 경제학적 영감을 얻는다.
문학작품 주인공들의 행동 속에도 경제원리가 숨어 있끼 때문이다.
이 책은 문학이 품은 경제용더들을 소설 속에서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대중에게 친숙학 문학작품은 경제논리를 설명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경제는 결코 숫자 속에 갇혀 있지 않으며,
기업과 가계, 정부 등 경제부체들은 심리적 영향을 많이 받는다.
때로는 절대적 기준보다 상대적 기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그래서 경제가 예측하기 어려운 것인데, 행동경제학자들은 이를 주목했다.
이 책은 문학 속에 드러난 행동경제학 용어들을 하나씩 짚어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문학작품들이 모두 우리 각자가 처한 삶의 스토리일 수 있다.
어렵게만 생각한 경제상식이 이 책을 통해 몇 배는 쉽고 흥미진진하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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