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후의 미국
박선규 지음
미다스북스 / 2015년 1월
1부 국가와 국민, 우리는 운명공동체
상처 속에서 더 강해지는 사람들
보스턴 스트롱: 2013년 4월, 보스턴 마라톤 대회 결승점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는 참으로 끔찍했다. 보스턴이라는 유서 깊은 도시에서 거행된 평화와 축제의 현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장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테러는 끔찍했지만 그 직후부터 보스턴 시민들이 보여준 놀라운 일체감과 헌신, 봉사의 모습은 가슴 뭉클한 감동이었다. 다음 날 보스턴 레드삭스 운동장에 내걸린 현수막이 인상적이었다. “보스턴은 한 도시가 아니다. 가족이다.” 이 현수막이 모든 상황을 감동적으로 웅변하고 있었다.
테러 사건 바로 1년 뒤인 2014년 4월 15일, 외신을 전하는 TV 화면에 시선이 고정됐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경기가 열리는 야구장에 바로 1년 전 테러의 피해자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BOSTON STRONG’이라고 쓰인 셔츠를 입고 있었다. 맨 앞에는 테러 현장에서 두 다리를 잃은 바우만 씨의 휠체어가 섰고 그 뒤로 의족과 목발에 의지한 다른 피해자들이 따랐다. 또한 ‘4ㆍ15 STRONG 그룹(사고 당시 결승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그날을 잊지 말자고 만든 모임)’ 멤버들이 함께했다. 관중들은 뜨거운 기립 박수로 그들을 맞았다. 경기에 앞서 20분 동안 그들은 관중들과 함께 1년 전 테러로 사망한 사람들을 추모하여 그날을 잊지 말자는 기념식을 가졌다. 이날 외야 펜스 쪽에는 50개 주에서 보낸 격려 메시지들이 내걸려 있었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6개월 전에 슬픔에 잠긴 주민들에게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기쁨을 선물했었다. 놀랍게도 그 전해에는 리그 최하위에 머문 팀이다. 기적 같은 우승 후 선수들은 “테러로 실의에 빠진 보스턴 주민들에게 용기와 기쁨을 주기 위해, 다시 일어서자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한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보스턴 레드삭스가 단순히 이 지역을 연고로 하는 야구 구단이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하는,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가족임을 분명히 확인시켜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감동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우승을 축하하는 퍼레이드 중에도 깜짝 이벤트가 진행됐다. 테러가 발생했던 마라톤 결승선 근처에 차를 세운 그들은 우승컵을 결승선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BOSTON STRONG’이라고 쓰인 야구복을 입혔다. 현장에 있던 수천 명의 주민들은 환호했고 <God Bless America>를 합창하며 하나가 됐다. 언론은 “테러의 상처와 아픔으로 얼룩진 끔찍한 곳을 회복과 승리의 상징으로 바꾸는 거룩한 의식이었다”고 평가했다.
2014년 4월 15일 오후 2시 49분(현지 시각), 백악관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참모들과 함께 테러 희생자들을 기리며 30초 동안 묵념했다. 대통령과 함께 1년 전의 테러를 기억하는 수많은 보스턴 주민, 미국 국민들도 침묵 속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그리고 가는 빗줄기가 내리는 가운데 압력솥 폭탄이 터져 끔찍했던 현장에서는 짧은 기념식이 열렸다. 참석자들은 우산도 들지 않고 내리는 비를 맞으며 1년 전을 기억했다. 조 바이든 부통령은 “우리는 대처했고 견뎌냈고 극복했다. 결승선은 (테러범들의 것이 아닌) 우리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드발 패트릭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테러는 엄청난 아픔이었지만 오히려 우리는 그 시련을 통해 더욱 결속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왜 강한지 깨닫게 된다. 상처를 피하지 않고 아픈 기억으로 기죽지 않고 오히려 그에 맞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는 모습, 끔찍한 아픔조차 통합과 발전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모습, 대통령부터 지역 주민들까지 하나가 되는 이런 모습에 숙연해지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리고 그런 조직이 어찌 강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아프고 부끄럽지만… 바로 세우기 위해 공개한다: 2014년 12월 9일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미국 상원의 정보위원회가 테러와의 전쟁 과정에서 CIA가 자행한 잔인한 고문 사실을 전격 공개했기 때문이다. 17일 연속 잠 안 재우기, 266시간 동안 관 같은 박스 속에 가둬두기, 항문을 통해 물 주입하기, 눈 가리고 머리에 총구 대기…. 공개된 고문 방식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었다. 이러한 잔인하고 지극히 반인간적인 행위가 ‘강화된 심문’이라는 이름으로 8년 동안 자행됐으며 최소 39명이 그 대상이었다는 것이 공개된 보고서의 내용이었다. 보고서는 정보위원회가 CIA의 관련 자료 600만 쪽을 5년여 동안 면밀하게 검토해 완성한 것이었다. 공개된 내용 가운데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등 외국에 설치된 5개 비밀수용소에 최소 119명 이상이 구금됐으며 수용소 바닥의 쇠사슬에 발이 묶인 채 저체온증으로 숨진 구금자가 있다는 사실도 포함돼 있었다.
고문 내용 못지않게 놀라운 것은 그런 고문이 효과도 없었다는 결론이었다. 보고서는 고문을 통해 테러 음모를 막거나 테러 지휘부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얻어내지 못했다는 사실, 그런데도 강화된 심문 기법으로 추가 테러를 막았고 오사마 빈 라덴 등 테러 지휘부를 추적하는 데 성공해 많은 생명을 구했다고 의회와 백악관에 거짓 보고를 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소재지는 다른 정보기관에서 파악했으며 조작된 기밀정보를 특정 언론에 흘리는 수법으로 여론을 호도했다는 것이 정보위의 결론이었다.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엄청난 사실의 공개에 미국 내부는 물론 전 세계가 경악했다. 인권을 가장 귀중한 가치로 떠받들어온 미국, 모든 일에 인권을 앞세워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임해온 미국의 이중성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당장 전 세계적인 비난과 조롱이 빗발쳤다. 특히 중국은 틈만 나면 중국의 인권실태를 지적한 미국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유엔과 국제인권단체는 고문 관련자들을 전원 기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슬람국가(IS)를 비롯한 이슬람 무장단체와 조직원들은 미국에 대한 피의 복수를 다짐하기도 했다.
많은 나라,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이중성, 부끄러운 모습에 혀를 찼고 미국은 더 이상 매력적인 모범국가가 아니라는 비판도 쏟아졌다. 드러난 사실만 본다면 비난과 질책이 당연했다. 하지만 한 단계만 더 생각하면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오히려 다른 한편으로 미국이 왜 미국인지, 미국이 왜 강한지를 확인시켜주는 사례였기 때문이다. 왜 그들은 엄청난 후폭풍이 있을 것을 예상하면서도 고문 사실을 공개했을까? 그것도 외부의 폭로나 고발이 없는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조사를 주도한 다이앤 파인스타인 정보위원장의 얘기가 그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그는 “CIA의 고문 프로그램은 미국의 가치와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 보고서 공개는 미국의 가치를 회복하고 전 세계에 미국이 정의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중요한 조치이다”라고 말했다.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공개했다는 말, 감동적이지 않은가? 국내외에서 닥칠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보고서 공개를 지지한 오바마 대통령의 말도 의미심장했다. “어느 국가도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미국을 특별히 강하게 만드는 힘 가운데 하나는 과거를 솔직하게 직시하고 결함을 인정한 뒤 더 좋게 변화시켜나가려는 우리의 의지이다.”
분명 현상적으로 볼 때 미국은 멋진 나라도, 위대한 나라도 아니다. 오히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가장 위험스런 나라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현실 속의 미국은 강하다. 불리하다고 숨기지 않고 욕먹을 것이 예상된다고 도망하지 않고 무거운 현실에 맞서는 이런 용기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충격적인 고문 사건을 풀어가는 두 지도자의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 속에서, 이 문제를 대하는 미국 사회의 성숙한 분위기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한 미국’의 비결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지도자를 믿고 따르는 국민
‘문제아’ 부시에게 보내는 신뢰: 미국에 있는 동안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볼 때마다 ‘참 여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TV를 통해 보는 부시 대통령의 모습 속에서 과거 그에게 따라다니던 ‘나쁜 평판’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술꾼에 한때 마약까지 손댔던 문제아,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데다 연설까지 잘 못하는…. 지금 나는 그런 모습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나는 부시 대통령을 볼 때마다 정말 연설을 잘한다고 느낀다. 단호한 어투에, 때때로 빙긋이 웃는 그의 얼굴에서는 강자의 여유가 느껴진다. 대통령 선거 전의 부시를 지켜봤던 많은 사람들은 그가 엄청나게 달라졌다고 말한다.
사람은 분명히 그대로일 텐데 무엇이 그토록 부시를 달라지게 만들었을까? 나는 대통령에 대한 미국 국민의 사랑과 인정이 그를 그렇게 달라지게 만들었다고 나름대로 결론지었다. 부시는 선거 당시 50%의 지지도 얻지 못하고 당선된 반쪽 대통령이었다. 그것도 법원까지 동원되는 구차스런 과정을 통해 그리 당당하지 못한 모습으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국민들은 그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주기 시작했다. 한때 90%가 넘는 국민이 그의 업무 수행에 박수를 보냈다. 거대 기업 엔론과 월드컴이 쓰러지고 기업들의 연쇄적인 회계 부정 사건으로 주식회사 미국이 휘청거리는 최악의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나아가 부시 대통령 자신이 과거의 주식 내부자거래 의혹을 받는 상황에서도 그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는 65%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물론 9ㆍ11 테러라는 초유의 사태가 부시에게는 오히려 큰 힘으로 작용했고 미국인들에게는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전통이 있다고는 하지만 모든 것을 감안해도 쉽게 이해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의회에서 경험한 두 가지 사건이 나에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었다. 2002년 3월, 테러와의 전쟁 선포 이후 처음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꺼번에 8명의 미군이 숨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테러와의 전쟁 분위기 속에서 공격 기회를 엿보던 민주당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상원 리더인 톰 대슐 의원은 부시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잘못 이끌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는 테러와의 전쟁 이후 야당의 첫 번째 공격이었다. 그러나 미군이 희생되는 상황을 이용해 분위기 반전을 노리던 민주당을 국민이 성토하고 나섰다. 힘을 합치지는 못할망정 중요한 시기에 무슨 목적으로 지도자를 흔드냐는 것이 대슐을 향한 국민들의 비난이었다. 같은 당인 민주당 소속 의원들도 국민들 편에 섰다. 결국 본전도 못 건진 그는 일주일 뒤 대통령의 리더십을 칭찬하는 쪽으로 완전히 방향을 틀었다.
또 하나의 사건은 2002년 5월에 발생했다. 당시 언론은 “부시 행정부가 9ㆍ11 테러에 관한 사전 정보를 입수하고도 대처를 잘못해 비극을 맞은 것일 수도 있다”는 의혹 기사를 경쟁적으로 다루었다. 언론의 논지는 정부가 제대로 했다면 9ㆍ11 테러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9ㆍ11 직전 정보기관 책임자들이 현장의 중요 보고 수상한 중동 사람들이 비행 훈련을 받고 있다는 등 를 묵살한 것이 밝혀지는 등 여러 곳에서 구체적인 정황 증거들도 드러났다. FBI와 CIA 두 정보기관의 해묵은 문제, 즉 지나친 경쟁의식이 ‘예방 가능한 일’을 그르친 원인이라는 비판 기사도 줄을 이었다.
야당인 민주당은 부시 대통령을 공격하는 데 이를 적극 활용했다. 처음에는 여론도 민주당 편이었다. 급기야 민주당은 이 문제를 조사할 독립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백악관을 몰아붙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여론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열흘 이상 계속된 야당의 공세에 여론은 해도 너무하다는 반감을 보였다. 그러자 같은 민주당의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을 포함한 여러 의원들도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이미 상ㆍ하 양원 합동위원회가 9ㆍ11 테러 전반에 관해 조사를 벌이고 있는 마당에 무슨 새로운 위원회를 구성하자는 것이냐”고 주장했다. 결국 대슐은 이번에도 공격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주장의 주류는 “지금은 서로 손가락질하고 비난할 때가 아니라 지도자를 중심으로 힘을 모아야 할 때”라는 것이었다.
대통령을 자신들의 지도자로 인정하고 그의 권위를 존중하는 의식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또 어려울 때일수록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의식이 매우 투철해 보였다. 그런 국민의식이 심각한 정쟁으로 흐를 수 있는 상황을 막아냈다. 2002년 11월 공화당이 예상과 전례를 뛰어넘어 압승을 거둔 것은 무엇보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외부 요인에 힘입은 바 크다.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는 미국인들의 의식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2부 원칙 있는 사회, ‘균형감각’ 갖춘 국민
강한 미국을 떠받치는 기둥, 원칙
원칙은 지키기 위해 있는 것: 2001년 5월 24일, 버몬트 주의 제임스 제포즈 상원의원이 돌연 공화당 탈당을 발표했다. 제포즈 의원은 “지역구민의 의견과 당의 입장이 너무 달라 더 이상 공화당에 있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탈당 이유를 밝혔다. 실제로 그는 모든 투표에서 당의 입장을 따르지 않는 대표적인 의원으로 유명했다. 탈당 후 그가 민주당으로 옮기지는 않았지만 공화당과 부시 행정부는 난리가 났다. 1석 차이로 지배하던 상원을 민주당에 넘겨줘야 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까지 나서 그의 탈당을 막아보려고 노력했지만 그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어부지리로 상원을 장악하게 된 민주당은 완전 잔치판 분위기였다. 우선 17개 상임위원장을 임명했다. 의석 비율로 상임위원장을 나누는 우리와 달리 미국은 다수당이 상임위원장을 모두 차지한다. 여기에 상원의 모든 일정을 조정하면서 부시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게 된 것은 대단한 파워였다.
이런 상황에 대해 공화당에서 볼멘소리를 할 만도 한데 이렇다 할 반발이 없었다. 물론 사석에서야 어쨌는지 모르지만 ‘변절자’다 ‘배신자’다 하면서 제포즈 의원을 원망하는 소리가 공개적으로 나도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깨끗이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내주고 의사일정과 관련해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처지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것이 원칙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결국 이렇게 민주당에 상원을 내준 뒤, 부시 대통령은 고위직 인준 청문회부터 시련을 겪어야 했다. 취임 후 2년이 다 되도록 청문회가 필요한 자리 513개 가운데 99개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부시 대통령이 상원을 잃음으로써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대통령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상원에 빨리 처리해달라고 부탁하는 정도이고 채우지 못한 자리를 ‘대행’으로 끌고 가는 것뿐이다. 전체 자리의 약 1/5을 채우지 못하고 있지만 ‘행정공백’이니 ‘국정마비’니 하는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냥 모두 “원칙이 그러니까”라고 받아들일 뿐이다.
핵폐기물 처리장을 건설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에서도 미국의 원칙주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부시 행정부는 미국 전역에 산재해 있는 핵폐기물을 한곳에 보관ㆍ처리하기로 하고 적합한 장소를 물색한 결과, 네바다 주의 유카 산맥 지역이 최적지로 떠올랐다. 공화당은 2010년부터 이곳에 핵폐기물을 보관ㆍ처리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마련했다. 이에 대해 네바다 주지사와 주민들 그리고 환경보호단체들은 강도 높은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네바다 주지사는 워싱턴을 방문해 의원들을 설득했고 주민들의 상경 데모도 수차례 있었다. 그러나 거센 반대 속에서도 결국 법안은 일정대로 처리됐다. 반대 의견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그것 때문에 계획 자체를 보류하거나 일정을 되돌릴 수는 없다는 것이 의회의 확고한 입장이었다. 결국 하원 투표에서 306 대 117로 통과됐고 상원에서도 역시 바로 통과됐다.
원칙은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으로, 질서유지를 위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원칙이 수시로 변한다거나 원칙보다 변칙이 더 잘 통하는 곳은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미국이 강한 이유는 이렇게 원칙이 존중되기 때문이다. 유리하면 인정하고 불리하면 무시하는 변칙이 아니라 조건에 상관없이 똑같이 적용되는 원칙, 그것을 쉽게 변해서는 안 될 가치로 존중하는 사회라는 점은 분명히 미국을 강하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였다.
3부 인정ㆍ애정, 미국식 인본주의
훈련으로 기르는 시민정신
생활화된 기부는 축적된 훈련의 결과: 미국에 사는 동안 아이들 셋이 모두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녔기에 종종 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처음에 조금 당황스러웠던 것은 갈 때마다 기부를 부탁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이었다. “예산이 많이 깎여 필요한 기자재가 부족하다”거나 “학교 운영에 필요한 기금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꺼내기 힘든 말일 텐데 그곳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부모는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그런 학교의 요청에 기꺼이 응해주는 모습이었다. 그런 흐름에 우리도 자연스럽게 함께하게 됐다. 가만히 살펴보니 학교의 요청에는 모두 응하면서도 눈에 띌 정도로 거액을 기부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그 모습이 내게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학교 기부와 관련해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기부를 훈련시키는 모습이었다. 교과서나 특별한 절차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학교 생활 속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아픈 사람들을 위한 작은 정성’이라는 모금 활동을 한다는 안내문을 보내왔다. 아이들이 용돈을 아껴 어려운 환자들을 도울 수 있도록 집에서 잘 챙겨달라는 내용이었다. 모금을 공지하면서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조건을 제시했다. 모금액이 2,000달러를 넘으면 선생님들이 머리를 핑크색으로 염색하고 전교생이 보는 가운데 춤을 추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파격적인 제안에 아이들은 신이 나 경쟁적으로 모금함에 동전을 넣었고 최종 모금 결과 2,500달러 넘게 모였다. 당연히 교장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은 다음 날 핑크색 머리로 학생들 앞에서 춤을 추었고 누군가의 또 다른 기부로 학생들은 피자와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신나는 파티를 벌였다.
아이들의 기부 훈련을 위해 선생님들은 종종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 흔한 것은 농구 시합 같은 운동 경기인데 아이들은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1달러짜리 티켓을 사야 한다. 가을철, 추수감사절 같은 절기에는 학교에서 축제도 연다. 축제라고 거창한 것은 아니고 기부받은 생활용품을 판매하거나 자원봉사자들이 간단한 스낵류를 판다. 그 모든 것은 쿠폰으로만 사거나 이용할 수 있는데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들은 기꺼이 수십 달러어치씩 쿠폰을 사 아이들과 함께 그 모든 것을 즐긴다. 물론 수익금은 전액 기부되고 모든 참가자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생활 속에서 훈련받으니 기부는 자라서도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다. 기부와 관련해 내가 확실히 아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어릴 때 남에게 1,000원을 줘보지 않은 사람은 성인이 되어도 10,000원을 주기 어렵다는 사실을. 형편이 어렵다고 10,000원을 줘보지 않은 사람은 나중에 부자가 되어도 10만 원, 100만 원을 내놓기 어렵다는 사실을…. 미국이 냉정한 자본주의 중심 체제로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도 깜짝 놀랄 만한 기부자들이 계속 나오는 것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기부를 익히는 훈련 덕분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사람, 그 자체에 대한 애정
버지니아 공대의 비극, 조승희도 피해자: 2007년 4월 16일, 버지니아 공대에서 발생한 최악의 총기 사고는 충격이라는 말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엄청난 비극이었다. 32명 사살 후 본인 자살, 멀쩡해 보이던 한 학생에 의해 저질러진 참극에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경악했다. 특히 미국 현지 교민들과 우리 정부는 그가 한국계라는 사실에 더 긴장하며 노심초사해야 했다. 다행히 우리를 향한 반감이나 실제적 위협은 없었지만, 그런 와중에 충격적인 사진 한 장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버지니아 공대 캠퍼스에 마련된 희생자 추모석. 조승희에게 희생당한 안타까운 32명의 학생들 추모석 옆에 가해자인 조승희의 추모석도 함께 있었다. 그 앞에 꽃다발도 놓여 있었고….
뭉클한 마음으로 기사를 더 검색해봤다. 추모비 앞에 꽃다발과 함께 여러 사람들의 글들도 있었다. “너를 향한 사람들의 가슴속 분노가 사랑으로 변하기를! 33명 희생자 모두 고난이 아스라한 기억으로 사라지기를!”, “네가 그렇게 절실히 필요로 했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가슴이 아팠단다. 머지않아 네 가족이 평온을 찾아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축복을 기원한다.” 등 하나같이 조 씨의 끔찍했던 삶을 위로하고 평안을 기원하는 내용들이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엄청난 참극에 가해자를 비난하고 원망하는 대신 그들은 ‘내 탓’을 되뇌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는 나흘 후 희생자 애도의 날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미국 전역에서 희생자들을 기리는 촛불집회와 추모식, 기도회가 잇달아 열렸다. 특히 비극의 현장인 버지니아 공대에서는 33개의 풍선이 날려지고 33번의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32개는 희생자들의 것, 마지막 33번째는 범인인 조승희를 위한 것이었다. 조승희도 가해자라기보다 피해자라는 인식,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참석자들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명복을 비는 데 마음을 모았을 뿐 오열하는 유가족의 모습도,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성난 목소리도 없었다. 조승희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참사 후 진행된 거의 모든 일이 이렇게 나의 상식을 넘어서고 있었다. 내게 가장 관심 있게 다가온 것은 상처의 치유와 극복을 위한 전체적인 노력이었다. 특히 언론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무분별한 추측 기사를 남발하지 않았다. 무책임한 선동성 주장을 펴지도, 편을 갈라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지도 않았다. 초기 늑장 대응을 비판하며 대학 당국과 총장을 탓하는 목소리가 나올 만도 했지만 그런 것도 없었다. 어디서도 참사를 인종이나 국적과 연결 지으려는 위험한 시도를 하지 않았다. 참사는 철저히 정신병 이력을 가진 개인이 저지른 사건일 뿐임을 언론들은 강조했다. 시청자들의 냉정함도 한몫했다.
언론의 관심은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찾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총기 소지 규제의 허점이나 정신이상자의 총기 소유, 대학 내부의 치안 문제 등 사회적 시스템이 주요 쟁점으로 거론됐다. 그러나 어디서도 수사 결과를 재촉하거나 서둘러 대책을 내놓으라는 무모하고 위험스런 주장은 하지 않았다. 대신 믿고 기다리는 차분함이 이어졌다. 그런 상황에 학교에서는 며칠 지나지 않아 일상적인 모습이 재개됐다. 애도 기간임에도 잔디밭에서는 피크닉 행사가 다시 열리고 결혼식이 열렸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이미 슬픔에는 차분히 대처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일상을 이어가는 균형감각이 인상적이었다.
미국을 다시 보게 하는 일은 또 있었다.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한국 정부와 관계자들에게 그들은 “미국에서 일어난 문제에 왜 당신들이 죄의식을 느끼냐?”고 되물었다. 그들은 “조승희가 한국계이기 때문에…”라는 우리의 반응에 “무슨 소리냐? 조승희는 미국 시민이다. 그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를 잘못 가르친 우리 잘못이지 결코 당신들 잘못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 국민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미안해한다. 따뜻한 관심에 감사드린다”고 우리의 걱정스런 호의에 관심을 표하기도 했다. 버지니아 공대 학생회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 한국 대사관에 “한 명의 행동이 학생들과 한국인들 사이에 장벽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일은 폭력을 극복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단합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일이 터졌다고 허둥대지 않고 의연히 자기 중심을 지켜가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엄청난 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도 분풀이성 비난 대신 그의 고통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며, 참사의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보다 자신들의 안에서 찾으려는 ‘내 탓이오’ 분위기를 보며, 흉악한 범죄자를 진심으로 불쌍하게 여기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런 그들에게 “당신도 같은 편이냐?”고 비난하지 않고 지켜봐주는 사회 분위기를 보며, 격한 감정을 토해내기보다 속 깊은 울음으로 더 큰 슬픔을 표현하는 유족들과 추모식의 분위기를 보며…. 그들의 그런 모습이 많이 부러웠다.
국민을 묶어주는 확실한 코드 ‘애국심’
카트리나 피해, 위기 극복을 위한 초당적 협력: 2005년 8월 29일, 초대형 태풍 카트리나는 재즈의 고향인 뉴올리언스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도시의 80% 이상이 물에 잠겼고 사망과 실종만 2,541명, 10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미국 사회는 대혼란에 빠졌고 초기 늑장 대응에 대한 책임 논란도 벌어졌다. 그러나 의회는 대응 과정에서 나타난 정부의 무능을 지적하면서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요청한 피해 복구지원금 518억 달러를 초당적으로 승인했다.
태풍 피해 발생 2주 만인 9월 15일에는 공화, 민주 양당 의원들이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도 출범했다. 조사위원회는 1주일 후 첫 청문회를 시작으로 활동 기한인 6개월 동안 22차례의 청문회를 열었다. 뉴올리언스 시장과 연방재난관리청장 등 325명이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했고 그 기간 위원회가 검토한 각종 자료만 83만여 페이지에 이른다. 그 작업을 거쳐 위원회는 이듬해 2월 최종 보고서를 냈다. ‘주도권 잡기 실패’라고 이름 붙여진 보고서는 지방정부부터 중앙정부까지 각 단계를 세밀히 조사해 어디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왜 효과적인 대응이 되지 못했는지 세세히 밝혔다.
조사위원회의 이런 활동을 토대로 의회는 카트리나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여 만에 ‘포스트 카트리나 재난관리개혁법’을 처리했다. 이 법에 따라 9ㆍ11 이후 국토안전부의 한 부처로 위상이 격하됐던 연방재난관리청이 독립적인 기구로 원상복구됐고 독자적인 행동이 가능하도록 권한도 강화됐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원인도 밝혀지기 전에 책임자 문책부터 요구하고 섣부른 추정과 가설로 혼란을 부추기고 설익은 대책으로 여론 무마를 시도하고…. 근본적 문제 해결보다 정치공방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실제로 해야 할 일에는 손을 놓는 우리의 관행이 더 아프게 느껴졌다.
4부 역사적 책임에 늘 깨어 있는 정치
민주주의의 상징, 미국 의회
의원들의 힘은 국민의 지지: 당 지도부는 물론 대통령에게까지 맞서는 미국 의원들의 강한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그 답을 예비선거라는 제도적 장치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예로 1998년 9월 버몬트 주에서 공화당 예비선거가 있었다. 그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3선 현역 상원의원인 패트릭 리히에게 도전할 공화당 대표를 뽑는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회사 컨설턴트 출신의 백만장자인 잭 맥뮬런이 먼저 출사표를 던졌다. 돈 많고 패기만만한 그는 당 지도부가 내심 바라는 후보였다. 여기에 뜻밖에도 은퇴한 목장 농부인 79살의 프레드 터들이 자신이 맞서보겠다고 나섰다. 그는 나이도 나이려니와 누가 봐도 돈 없고 보잘것없는 사람이었다. 지도부는 당연히 잭이 본선에서 경쟁력이 더 있다고 판단했고 그의 승리를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55%의 지지를 얻은 프레드의 승리로 나타났다. 프레드는 당 지도부가 예상했던 대로 두 달 뒤 본 선거에서 패트릭 리히를 꺾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은 미국 예비선거의 위력을 보여주는 예다.
예비선거는 후보자를 위에서 지명하지 않고 아래에서 결정하도록 하는 제도다. 즉 공천이 지도부의 뜻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 유권자들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다. 당연히 의원들은 지도부에 신경 쓰기보다 유권자들의 눈치를 살핀다. 무엇이 유권자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중요한 현안이 대두될 때 찬성과 반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게 된다. 의원들의 정치 생명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때때로 자당 소속인 대통령의 입장까지 곤란하게 만드는 의원들의 소신 투표는 바로 이 예비선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나는 이런 예비선거야말로 강한 의원, 건강한 의회를 만들어내는 핵심적인 제도라고 믿고 있다.
의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의회의 꽃, 청문회
진실을 찾아가는 끝없는 행보: 청문회는 목적에 따라 성격은 다르지만 진실 규명을 최대 목표로 하고 있다. 당연히 감추어진 진실을 끄집어내는 데 모든 노력이 집중된다. 이를 위해 준비가 보통 철저한 것이 아니다. 우선 청문회 실시가 결정되면 의회 특별예산으로 운영되는 조사단이 구성된다. 조사단에는 경험 있는 노련한 수사관이나 전직 검사 같은 외부 전문가도 참여한다. 미국의 역사를 바꾼 것으로 평가되는 1973년 워터게이트 청문회 때는 참여한 수사요원 수만 100명이 넘었다. 이들이 본 청문회에 들어가기에 앞서 사전 준비에 투자한 기간만 5개월 이상이었다. 1987년 이란 콘트라 청문회 준비에도 4개월이 걸렸다. 이러한 철저한 사전 준비는 청문회를 청문회답게 만드는 핵심적인 장치가 되고 있다. 치밀한 준비 없이 정치적인 윽박지름으로 진행되거나 충분한 증거도 없이 떠도는 설만 가지고 목소리를 높이는, 그래서 결론도 없이 끝나버리는 그런 식의 청문회는 미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청문회의 의미를 살리는 제도는 또 있다. 의회는 청문회에 앞서 정보공개법에 의거해 필요한 기관에 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 정보공개법은 국가기밀 등과 관련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공식 문서와 비망록 메모까지 공개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자료 제출 거부나 은폐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워터게이트 청문회 때가 좋은 예다. 당시 닉슨 대통령은 의회의 조사에 협조하지 않았고 오히려 의회가 임명한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까지 하면서 방해했다. 그러나 알렉산더 버터필드 전 백악관 보좌관이 대통령 집무실에서의 대화가 모두 녹음된다는 사실을 증언했고 대법원은 테이프 공개를 명령했다. 결국 청문회에 닉슨 대통령의 발언이 녹음된 테이프가 증거물로 제출됐다. 녹취록 가운데는 닉슨을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결정적인 내용이 포함됐다. 1972년 8월 3일 백악관에서 녹음된 테이프에는 “민주당에 정치자금을 헌금하는 기업들에 대해 법무부와 국세청이 뭔가 조치를 취해야지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닉슨이 투덜거리는 대목이 들어 있었다.
여기에 청문회 진행 전 증인에게 사전에 서면으로 증언 요지를 제출하도록 하는 진술 제도도 있다. 우리 청문회에서 빈번이 일어나는 중복 질문을 피하고 심문을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제도다. 청문회가 시작되면 증인은 미리 제출한 증언 요지를 진술한다. 불필요한 증인을 소환할 필요성을 없애는 여과 장치인 셈이다. 필요한 경우 증인에게 면책특권을 부여해 필요한 증언을 얻어내기도 한다. 또 어정쩡한 답변이나 자료 제공 거부, 인터뷰 요청 거부 등 수사에 비협조적인 경우에 대해서는 강제소환장을 발부하거나 의회 모독죄로 기소할 수도 있다.
이렇게 진행되는 청문회에는 정해진 기한이 없이 진실 규명이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 워터게이트 청문회는 9개월여 동안, 콘트라게이트 청문회는 15개월 동안 계속됐다. 또한 미국의 청문회는 단순히 비리나 문제를 파헤치는 데만 치중하지 않는다. 미래에 유사한 문제가 재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청문회 결과는 보고서로 작성되고 이는 미래 입법 활동의 중요한 참고자료가 된다. 한 예로 워터게이트 청문회 뒤 발간된 보고서에는 행정부의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한 35가지 제안이 포함되었고 이 가운데 상당수가 그해 말 재정된 정치자금개혁법에 반영됐다.
요즘 들어 미국의 한계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요즘의 미국은 과거의 미국과 다르다’고,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고
정치권과 대기업의 도덕적 타락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특별히 본받을 점이 많지 않은 나라일 뿐만 아니라
어느 한편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나라’라고…….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현상적으로 볼 때 문제가 많은
나라라는 지적에 이의를 달기 어렵다.
아니, 많은 정도가 아니라 가장 심각한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뿌리 깊은 흑백갈등,
끊이지 않는 총기사고,
갈수록 심각해지는
마약, 도박, 살인, 강도 등 흉악범죄…….
부정적인 모습에 집중해보면
미국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나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에 드러난 문제들일 뿐,
조금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생각을 달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부정적인 현상들 너머 깊숙한 곳에
굳게 자리 잡고 있는 그들의 인본주의 정신과
엄격한 원칙주의를 본다.
드러난 문제들과 단점에 집중하기보다
숨겨진 가능성과 장점을 보고 격려하는
저들의 사회적 분위기를 더 크게 본다.
자유분방한 것 같으면서도 공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몸을 던질 줄 아는 시민정신,
눈앞에 펼쳐진 안타까움보다는
그 후의 달라져야 할 모습에 집중하는 냉정한 합리주의가
더 크게 눈에 들어온다.
그런 정신들이 있기에 미국은 많은 문제들 속에서도
여전히 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강국으로서
세계질서를 주도해나갈 것으로 여겨진다.
이 책에서 저자는 미국에 대한 인식만큼은 정확하게 하고 있다.
미국이 강하다는 사실,
미국을 상대하지 않고는 우리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무거운 현실에 대한 인식이다.
그래서 좋고 싫고의 감정을 벗어 놓고
미국을 더 정확히 관찰하고 분석해야 한다고,
배울 것은 과감하게 배우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언젠가는 우리도 미국을 넘어설 수 있고
결국엔 국제사회의 질서를 주도하는
세계중심국가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저자는 특히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눈을 크게 뜨고 적의 장점도 취하겠다는
당당한 열린 가슴이 돼주기를,
열린 가슴으로 가능성을 향해 도전하고
돌파하는 분위기가 활발해지기를,
그리고 미리 정해 놓은 틀에 갇혀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것조차 거부하고 안으로만 움츠러드는
편협함을 던져 버리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리하여 어느 날,
미국을 넘어서 현재 저들이 드러내고 있는
문제들을 극복한 새로운 리더십으로,
세상을 감싸고 이끄는 멋진 일등국가를
만들어주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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