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미국을 움직이는가
소에지마 다카히코 지음/
들녘/2001년 7월
1. 신보수주의파의 정체
먼저 진 커크패트릭 여사를 살펴보자. 원래 워싱턴 명문 조지타운 대학의 교수였는데, 레이건 정권 때 미국의 UN대사를 지냈고 현재는 다시 같은 대학에 적을 두고 있다. 젊었을 때는 좌익계열의 학생이었으며, 민주당의 급진 자유파에 속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민주당의 불분명한 자유주의와 결별하고 신보수주의로 돌아섰으며 레이건 공화당 정권의 각료인 유엔대사가 되었다. 이때가 1981년인데, 그녀의 변신은 미국의 지식층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원래 그녀는 민주당에서도 매파에 속했다. 매파는 이른바 “전쟁도 불사한다.”를 외치는 부류들로,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냉전 시대를 이끌어나갔던 사람들이다. 신보수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것도 바로 이 소련을 증오하는 강경한 반공정신이다. 신보수주의파는 나중에 레이건 민주주의자들이라 불리는, 미국의 정치적 대변동의 파도를 만드는 원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야말로 미국 좌익 지식인들의 사상변화의 산물이다. 다시 말해 원래 무조건 민주당을 지지하고 부유층을 혐오하는 서민들이었는데, 레이건 대통령의 대 소련 강경노선을 열렬히 지지하여 1980년대에 공화당에 표를 던진 약 2천만 명의 미국 유권자를 말한다.
이 거대한 흐름은 언론을 통해서 이루어졌으며 이 언론인들의 사상변화를 가져온 신보수주의파의 중심인물이 바로 진 커크패트릭 여사와 에드워트 루트워크, 월터 라퀘어이다. 진 커크패트릭 여사의 동료들은 모두 신보수주의 집단에 속하며 현재 뉴욕주 출신 상원의원이자 원로정치인인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한도 여기에 속한다. 모이니한은 하버드 대학 정치학 교수였다가 정계로 진출했다.
조지타운 대학파는 소비에트 붕괴 이전부터 “세계 경찰론”을 일찍이 제기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입장은 한 마디로 글로벌리즘이다. 즉 미국은 앞으로도 힘으로써 세계를 관리, 지도, 통제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이들 신보수주의파는 민주당뿐만 아니라 공화당까지도 점령하고 있는 글로벌리스트의 첨병인 셈이다. 1980년대 미국 최대의 정치적 변동은 “소비에트를 용서할 수 없다.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는 레이건 데모크라토이다. 이것은 민주당을 지지했던 자유적 성향 서민들의 태도를 변화시켜 공화당 출신 레이건 대통령에 대한 80% 지지율로 나타났다. 이후 미국은 소비에트를 무너뜨리고 공산 중국을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었으며 걸프 전쟁을 통한 ‘외부 지향’ 글로벌리즘 시대를 밀고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전의 미국 공화당 계열은 원래 고립주의의 입장을 취했었다. 그러나 트와이트 아이젠하워 시절 이후 공화당 내에 글로벌리스트들이 나타났다. 공화당 내의 전통적인 고립주의와 글로벌리즘에는 이처럼 뿌리깊은 갈등이 있었던 것이다. 글로벌리스트들이 주류를 형성한 것은 소비에트 공산주의와의 대결 필요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비에트가 무너지고, 걸프전에서 승리한 후 공화당의 팻 뷰캐넌에 의해 국내 우선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로 인해 레이건의 뒤를 이어 90%의 지지까지 받았던 부시는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는 패배하고 말았다.
이제 보수사상가들을 살펴보자. 냉전 구조 아래에서 지식인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졌는데 긴장완화를 역설하는 자유파, 또 하나는 대결노선을 주장하는 반공보수파였다. 후에 반공 바이블이 된 『노예로 가는 길』을 쓴 하예크와 그의 선배 루트비히 폰 미제스를 중심으로 이러한 대립 속에 하나의 새로운 흐름, 즉 하예크주의자라는 그룹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수많은 미국 수재들을 길러냈다. 밀턴 프리드만의 ‘통화주의’ 이론은 하예크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게리 S. 베커 시카고 대학 교수도 하예크주의자이다.
그와 반대 진영에서 오늘날 미국의 경제학 제국을 쌓아온 인물로는 조제프 슘페터가 있다. 슘페터가 키워낸 하버드 대학파는 미제스와 하예크가 키워낸 보수파의 시카고 대학파와 대립한다. 예를 들어 수재인 폴 새뮤엘슨은 슘페터의 제자였다. 그밖에도 당시 슘페터가 가르쳤던 제자들 중에는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존 힉스, 앨빈 한센, 케인즈 좌파인 존 로빈슨, 일본의 쓰루 시케토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있다.
2. 공화당 보수본류는 어떤 존재인가
월리엄 F. 버클리 2세는 미국 보수주의의 수호신이다. 그는 정치사상적으로 버크주의자로서 전통적인 질서와 사회윤리를 중시하며, 정부의 적절한 통제 아래 실현되는 정치, 경제 질서의 안정을 주장한다. 그가 발행인 겸 편집장으로 발간하는 잡지가 바로 「내셔널 리뷰」이다. 버클리는 예일대학 재학 당시, 뉴딜정책을 지지하는 자유파 교수들과 학생조직들이 학부와 연구기관을 점령하고, 자신들의 주장만 고집하는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했고 이후 CIA에서 일했다. 사실 예일대학은 일찍이 CIA의 인재공급원 역할을 해 온 대학이다. 보수적인 예일대학과는 반대로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버클리가 있다. 미국의 동부 아이비리그의 명문대학들은 모두 국가를 위한 인재양성소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하버드 대학에서 정치인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지만 오히려 수수하고 보수적이기까지 한 예일대학에서 더 많이 배출한다. 조지 부시와 빌 클린턴도 대학원은 예일대학을 다녔을 정도다. 윌리엄 F. 버클리파로는 「포츈」 편집장였던 존 체임벌린, 로버트 노박, 롤런드 에번스가 있으며, 미국의 국민시인 로버트 펜 워런도 포함된다.
현재 젊은 보수파 언론인의 필두는 조지 F. 윌이다. 미국 정치평론가의 황태자인 그는 동부의 명문교를 졸업하고 강사 활동을 하던 시절 오스트리아에서 망명 온 사상가 하예크의 영향을 받아 고전보수사상으로 전향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하예크에 불만이 있었다. 그래서 시카고 대학 정치철학 교수이며 아리스토텔레스 고전철학의 대가인 레오 스트라우스와 18세기 영국 보수사상가 버크의 흐름을 이어받은 전통중시주의자의 주류파 보수사상으로 자신을 다듬어간다. 이후 조지 윌은 「내서널 리뷰」의 정치문제 담당편집자가 되어 활동하다 마침내는 전세계 수백 개의 영자신문에 평론을 실어보내는 일류 정치평론가로 발돋움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본래 의미는 무엇인가? 건국 초부터 왕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미국에서는 영국의 토리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대신 휘그의 전통이 건너와 보수파인 공화당이 되었다 한다. 실제로도 원조 자유주의자인 버크는 휘그당 좌파의 지도자였다. 민주당은 20세기에 들어오기 전까지 과격파 취급을 받았고, 공화당은 연방주의자와 대립하고 있었다. 보수 또한 세 분류로 나뉜다. 시카고 대학에서 고대 그리스 철학, 아리스토텔레스를 연구하는 레오 스트라우스파를 고전보수파, 공화당 보수본류 사람들을 전통보수파, 그리고 프리드리히 하예크는 유럽의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의 계보를 이어받은 현대의 자유주의자, 즉 신자유주의로 나눌 수 있다.
공화당 내에는 또한 차이나 로비파(현재 반공, 대만 독립지지파)가 있다. 1930년대 일본 군대가 만주와 중국을 침략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 국민당을 열렬히 지원한 헨리 루스(「타임」의 창시자)가 그 시초로 현재 타임 워너, CNN계 역시 공화당 내 강경보수 세력의 하나인 차이나 로비파다. 그러나 이들은 최근 들어 글로벌리스트들에게 밀리고 있다.
『역사의 종말』을 저술하여 미국 지식인 사회에 큰 화제를 제공했으며 레오 스트라우스 그룹으로서의 신념을 피력한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신보수주의파에 가담해 있다. 이러한 신보수주의파와 대립하고 있는 현실주의자들로는 한스 요아힘 모겐소가 있다. 이들의 냉혹한 논지를 줄이면 다음과 같다. “약소국이나 보통 국가의 운명은 강대국간의 국제적 패권 다툼 속에서 결정된다.”
한편 닉슨 정권의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A. 키신저는 모겐소의 제자로 이러한 정치 철학을 실천에 옮긴 인물이다. 조지 캐넌은 모겐소와 나란히 거론되는 냉전시대의 외교전략가로서 그가 익명으로 발표한 『소비에트 봉쇄』는 아주 유명하다. 이와 반대로 임마뉴엘 월러스타인은 세계 시스템론을 내세웠는데, 그는 실제적인 이데올로기만을 언급하며, 남미의 미국에 대한 종속 상태의 불가피성과 그것으로부터 탈피하는 수단으로 순정치주의적 대응(무력 투쟁)을 주장하는 좌익학자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름인 밥 돌은 1980년 선거 때 대통령 후보의 자격으로 레이견과 대결하여 공화당 내에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밥 돌의 출신지인 캔자스주는 보수 기반이 압도적으로 강한 곳인데, 이러한 분위기를 업고 한때 루즈벨트와 맞섰던 앨프레드 랜던이 있다. 밥 돌은 이 랜던의 바통을 이어 받았다. 밥 돌 등의 구보수파는 정부의 재정적자를 증세로 해결할 것을 주장한다. 반면 같은 공화당 내 자유의지론파는 감세와 복지삭감, 그리고 작은 정보를 주장한다. 자유의지론파의 공격수로 우리가 잘 아는 뉴트 깅그리치가 있다. 그는 클린턴의 민주당 정권에 대한 공격의 선봉장이었으나 1988년 11월 선거 패배 후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미국의 보수사상은 전통 속에서 자라왔다. 구보수파의 사상을 실현한 두 명의 거물 사상가로는 리처드 위버와 러셀 커크가 있다. 러셀 커크는 미국이 군사적, 경제적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것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서 미국이 될 수 있으면 국내에서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걸프전쟁을 반대했던 뷰캐넌의 주장도 이 러셀 커크 사상과 연장선상에 있다. 요컨대, 리처드 위버와 러셀 커크의 구보수파 사상은 토착 미국 지식인의 전통 속에서 자라난 보수사상이며, 이러한 점에서 하예크나 고전보수 사상가인 레오 스트라우스와 구분된다. 이들은 미국의 사상가 중에서 중농주의자로 분류되는데 과학의 힘으로 사회를 개조하려 했던 자유파 사상에 대립하여, 가족의 가치와 경건한 기도, 그리고 근면한 생활을 소중히 여기는 진짜 보수사상으로 대두했다.
3. 시련에 직면한 민주당 내 자유주의와 행동과학
1960년대 민주당 내의 정치가, 평론가 및 학자들 사이에서 ‘신자유주의’를 정책사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이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는 그룹으로는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한, 리처드 게파트, 빌 브래들리 상원의원, 게리 하트 전 민주당 대통령 후보 등 유력한 정치가들이 있고, 학자들로는 레스터 서로, 로버트 라이슈 등이 있다.
MIT 교수 레스터 서로는 정부의 기업에 대한 보조금 삭감 문제를 “대기업의 경영이 위기에 직면해 있더라도 정부가 종래와 같이 보조금을 물 쓰듯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로버트 라이슈는 『국가의 역할』이라는 책을 통해 복지정책으로 정부가 골병 든 상태임을 지적했다. 공화당의 정책에 대한 고육책으로 민주당 내부에서 제시한 것이 라이슈와 레스터 서로의 신자유주의이다.
신자유주의 그룹의 다수는 클린턴 정부의 핵심부에 포진해 있다. 라이슈는 클린턴의 첫 번째 임기 때 노동성 장관을 역임했다. 또한 통상문제 담당이었던 미키 캔터가 있다. 미키 캔터는 ‘일본 두들겨 패기’를 주도했던 인물인데, “일본은 오랫동안 미국에 무임승차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미국의 일본과 동아시아에 대한 무역적자를 외교교섭을 통한 정치적 압력으로 줄여보겠다는 외교전략이었다. 이런 생각을 제도화한 것이 클린턴 정권의 핵심인 경제안정보장회의(후에 격상된 국가경제회의)였다.
중진 정치가 모이니한은 민주당의 기둥으로 신보수주의자면서 신자유주의 그룹에 속한다. 그는 1927년 생으로 민주당 중진이다. 77년부터 뉴욕주 상원의원을 지내고 있는 그는 민주당 내 상원의원들의 조정역으로 클린턴 정권을 의회 측에서 지지하는 원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민주당 내 현실감각이 좀 뒤지는 젊은 급진 신자유주의 그룹의 주장도 잘 달래고 설득해 왔다. 또한 공화당 상원 원내총무였던 밥 돌과 의회에서 예산과 법안의 가결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부딪쳐왔다.
민주당의 또 다른 기둥으로는 대니얼 벨이 있다. 그도 모이니한과 마찬가지로 신보수주의 그룹, 즉 “소련을 붕괴시켜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좌익학자에서 보수파로 전향한 신자유주의 그룹으로, 콜롬비아 대학을 거쳐 현재 하버드 대학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70년대에는 민주당 신자유주의파의 중요인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개혁파 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는 심리학자나 이론경제학자 그리고 정치학자를 사회과학자라고 총칭한다. 사회과학은 인간사회에 일관되는 법칙을 발견하고 이로써 인간사회의 구조를 밝히는 학문이다. 미국 지식인들은 원래 과거에는 후진국이었던 미국으로 건너온 독일인 학자들을 화이트 갓즈(White Gods)라고 부르면서 유럽에 대한 열등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하예크나 슘페터, 미제스, 아인슈타인들이 화이트 갓즈에 해당된다. 그 후 1950년대로 접어들자 미국의 학문은 독자적인 위치 확보를 위해 독립운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행동과학으로서. 비로소 미국에서도 하나의 큰 학문이 시작되었다.
1960년대 미국은 이 행동과학으로 전세계의 학자들을 매료시켰고 그 업적 앞에 무릎꿇게 했다. 측정하고 실험 및 조사분석해서 데이터 처리한다는 행동과학이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된 분야는 미국의 이론경제학이다. 케인스의 거시경제학을 힉스와 새뮤엘슨이 잘 갈고 다듬은 결과, 하나의 과학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론경제학은 사회학에도 영향을 끼쳐 탈콧 파슨스는 미국 사회학을 대성시켰다. 또한 행동과학이 효과적으로 응용되어 뜻하지 않게 큰 성과를 이룬 분야가 있는데, 바로 컴퓨터 과학분야이다. 60년대 대니얼 벨과 대니얼 모이니한 등 미국의 학자 지식인들이 커다란 희망에 불타 사회개혁에 임했던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민주당의 신자유주의 그룹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진보파 학자 지식인들이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 자유파는 어떤 의미일까? 자유파는 한마디로 사회주의적 복지 우선주의자, 약자구제를 지상최대의 가치로 삼는 사람들이다. 이를 사상이나 학문 또는 지식적인 측면에서 자리매김한다면, "엄밀한 과학인 학문의 힘으로 현실사회 병리 현상을 낫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과학신봉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미국은 실제로 뛰어난 과학의 힘을 가지고도 사회의 병을 치유하지 못했다. 복지가 필요한 인구는 점점 더 늘어나고, 국가재정도 바닥이 드러났다. 이에 이의를 제기하고 70-80년대 보수파들의 브레인들과 지식인들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실 70년대까지는 군사학을 연구하는 랜드 연구소와 민주당계 연구자들의 아성인 브루킹스 연구소가 대부분의 정부위탁연구를 독점해왔다. 그러나 이후 공화당 보수파 연구소인 헤리티지 재단을 포함하여 후버 연구소, 카토 연구소 등의 다른 연구소들이 참여하게 됐다.
60년대까지는 ‘가족들의 유대중시’ 등을 주장하는 보수학자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지만 80-9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의 자유파들은 점점 약화되기 시작했다. 이들의 퇴조와 함께 미국의 보수사상과 보수파 지식인 세력이 점차 대두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정책 사상은 진퇴양난의 상태이다. 자유파가 약해졌다고는 하나 국민 다수의 사회복지 증대의 요구는 약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재 민주당 자유파가 비록 정치사상면에서 주류가 아니라 할지라도 금방 쇠퇴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4. 법을 둘러싼 사상 투쟁과 정치대립의 구도
미국 법학계에서 가장 강경하며, 보수적인 정치 발언을 하는 인물로 로버트 벅이라는 법학자가 있다. 현재 그는 예일대학 법학부 교수로 있는데, 그 전에는 연방고등재판소의 판사를 지냈다. 그러다가 1987년에 레이건 정권의 지명으로 연방최고재판소 재판관에 임명될 예정이었으나 민주당의 반대로 상원의원의 승인을 받지 못해 다시 교수직으로 돌아간 인물이다.
미국의 법학자와 법 사상가들을 크게 나누면 보수파와 자유파로 이들은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 보수파 내부는 크게 자연법 학파와 자연권 학파로 나누어진다. 자연법은 고전철학의 원조인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대사상이다. 이것은 “인간 사회에서 사회는 사회로, 인간은 인간으로 성립시키는 자연의 규칙 또는 법칙이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자연법’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사람은 시카고 학파의 해리 재퍼 교수이다. 그의 스승이 바로 레오 스트라우스다.
자연권을 인류 역사상 최초로 주장한 사람은 영국의 근대 정치철학자이자 대사상가인 존 로크다. 그는 ‘자연법’ 자체를 인정하면서도 그것보다는 ‘자연권’을 더 강조했다. 즉,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천부적인 고유의 권리로써 하늘 또는 신의 섭리로 자연권을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존 로크의 자연권 사상에 정면으로 대결한 사상가는 에드먼드 버크다. 그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 평등하다.”는 자체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또 하나의 파는 자연권파에서 파생된 인권파이다. 자연권파가 말하는 자연권은 인권과 중복되는 부분이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살 권리, 사회복지 우선, 정치적 소수측의 권리 등 소위 사회적 인권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와 달리 인권파는 인권의 측면에서 가난한 자, 흑인, 동성애자 등을 도와주자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이다. 인권파의 대표적 인물로는 존 롤스 교수와 옥스퍼드 대학의 로널드 드워킨 교수가 있다.
이들을 정리하면 자연법파의 보수주의자, 자연권파의 실무 우선 현실적 보수주의자들, 그리고 인권파인 자유법학자나 법률가 등 크게 세 가지 세력이다. 그런데 이 대립구도와는 별도로 자연법파와 대립하는 보수파 법사상으로 또 하나의 큰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 바로 인정법(人定法)파다. 이들은 “법은 인간이 결정하는 것으로 신이나 자연과 같이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환상이 결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은 인간계를 지배하는 법칙이 자연 속에 방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의욕적으로 결정한다는 사고방식이다.
인정법파의 창시자는 18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사상가인 제레미 벤담이다. 그는 자연법과 자연권을 모두 비웃으며 “인간은 쾌락,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고자 행동하는 생물이다.”라는 전제하에 공리주의를 주창했다. 미국에서 이러한 벤담주의자의 보수사상을 계승한 사람들이 바로 자유의지론자들이다. 오늘날 미국의 법인정주의의 대표적인 인물은 하바드 대학의 로버트 노직 교수이다.
현대보수사상 최대의 대립은 자연법파와 인정법파다. 이것은 버크주의와 벤담주의 모양으로 구분되고 현대 미국 공화당 내에서 대립하고 있는 월리엄 버클리파 보수본류(정치중시파)와 자유의지론자 보수파(경제중시파)의 대립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5. 유대계 지식인과 재계 인사들의 정치력
미국의 지식인 세계는 보수파와 자유파로 구분된다. 지식인이 종교적으로 어느 종파에 속하는가에 따라서도 나뉜다. 또한 인종 민족에 의해서도 구분된다. 따라서 미국의 정치사상은 정치 이데올로기, 종교, 인종 이 세 가지 기본 요소를 입체적으로 조합시켜서 살펴봐야 한다. 미국 전 국민의 2% 정도밖에 되지 않는 400만 명의 유대계 미국인이 가진 엄청난 정치적 힘을 살펴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민주당 내에서 급진자유파였던 인물들이 민주당을 떠나 신보수주의파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 신보수주의파 언론 매체에 모여드는 학자, 지식인의 대부분이 유대계다. 이 파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코멘터리」 지의 주간을 맡고 있는 노먼 포도레츠를 비롯해 어빙 크리스톨, 네이던 글레이저도 유대계다. 한편 공화당 보수본류인 빌 버클리의 「내셔널 리뷰」지에는 로마 카톨릭의 온건 보수사상을 지닌 지식인들이 모여 있다.
미국의 금융계와 매스미디어 업계를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우수한 유대계다. 「뉴욕 타임스」를 살펴보자. 미국의 주요 일간지이자 자유파를 이끄는 총 리더의 역할을 맡고 있는 이 신문에는 쟁쟁한 기자와 편집자, 그리고 칼럼니스트들이 포진되어 있다. 그들 중 정점에 있는 인물이 제임스 레스턴, A.M. 로젠탈인데 과거에는 막스 프랭클린이 편집 총국장이었다. 이들이 편집장으로 미국 언론을 주도해왔고, 주류 언론을 형성한 것이 자유파 저널리스트들의 공적이었다. 이 신문의 기자 대부분이 유대계이며 오늘날 사주 역시 유대계다.
「뉴욕 타임스」가 자유파의 총본산이라면 수도 워싱턴에 있는 「워싱턴 포스트」지는 좀 보수적일까? 그렇지 않다. 1974년 8월 닉슨 정권을 붕괴시킨 ‘워터게이트 사건’은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공화당의 압력을 뿌리치고 사운을 걸고 ‘표현의 자유’를 지켜낸 「워싱턴 포스트」는 이후 92년 클린턴 정권 탄생에 가장 큰 공헌을 했다. 워싱턴에 입성하자마자 클린턴이 제일 먼저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이 마련한 파티장으로 달려간 이유도 그러한 내막이 있기 때문이다. 그레이엄은 세계유대인회의 임원이기도 한데 이 단체는 이스라엘 보수당을 지지하는 강경보수파인 미국시오니스트협회와 대립하여 중동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모임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야당인 온건파 노동당을 지지한다.
미국 민주당은 노동자, 가난한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당이다. 하지만 그 속을 보면 록펠러 재단을 중심으로 하는 뉴욕의 유대계 재계인들이 정치가들에게 선거자금을 제공하고 있다. 왜 유대인들은 민주당을 지원할까? 그것은 전세계로 흩어져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자신들의 국익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들은 예로부터 세계 각 지역을 떠돌며 장사를 해 왔기 때문에 어느 지역에 난리가 일어나면 언제라도 돈과 귀금속을 갖고 다른 나라로 피난 갈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세계 어느 지역이 위기에 처해 분쟁지역이 되면 포트폴리오 이론(위험의 분산과 배분)에 따라 다른 지역에서의 자산보전을 계획한다. 동시에 그 지역분쟁이나 에너지 위기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각종 국제회의나 정보 네트워크 결성에도 힘쓴다.
실제로 미국의 유대계는 대학을 졸업해도 차별을 받는다. 앵글로색슨계 기업 경영주들이 기피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히 특정 유대계의 금융기관이나 석유회사, 미디어 산업 쪽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기업들은 다국적 기업으로 전세계에 공장과 자산, 석유채굴, 판매권과 같은 이권을 쥐고 있다. 만일 그러한 자산과 이권이 현지의 민족주의자인 국민 정치가들이 호언장담하는 애국적 정열로 인해 단숨에 ‘국유화’되는 일이 생긴다면 그들로서는 큰 손해를 입게되는 것이다.
6. 자유의지론자 보수사상의 대두
자유의지론자에는 전체를 통합하는 인물이 없다. 자유의지론자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입장을 취하는 부류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되기란 원래 어려운 일이다. 하버드대학의 철학교수 로버트 노직은 현대 자유의지론자의 대표적인 인물이지만 스스로 현실정치에 뛰어들어가 자유의지론자들을 선도할 사람은 아니다. 또 그 외에도 로버트 노박, 롤런드 에번스와 같은 유명한 인물들이 있으나 이들 역시 좀 어중간한 성향의 자유의지론자다.
그럼에도 자유의지론파는 많은 지식인들이 출현해 저술도 많이 하면서 이미 큰 세력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당분간 그들이 결속을 다지고 공화당 안팎에서 지도적이고 정치적인 힘이 되어 보수 세력을 이끌고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아직까지는 현실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려 하고,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세력이 공화당을 지도해 나간다는 사실에 저항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비슷한 경향을 지니고 있는 세력으로 공화당 내 종교우파가 있는데, 이들은 자유의지론자 이상이다. 이렇듯 수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자유의지론자가 보수 본류보다 훨씬 많다. 보수파의 대규모 싱크탱크인 카토 연구소도 스스로 자유의지론자임을 밝히고 있다. 자유의지론자의 기본적인 태도는 국내경제문제 우선주의로, 국제정치에는 가능한 한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ACLU(미국시민자유연합)이라는 전국적인 정치로비단체가 있는데, 이들 역시 자유의지론자 그룹에 속한다. 다만 이 조직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적극 개입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어 민주당 자유파로 분류되기도 한다.
고집 센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자로 배우 클린트이스트우드가 있다. 그는 자유파가 압도적으로 강한 영화산업도시 헐리우드에서 보기드문 보수파 배우이다. 그러나 한때 캘리포니아주 카멜시의 시장을 2기 동안 역임하기도 한 클린트이스트우드가 시장 선거에 나와 내건 슬로건은 “각종 경제 규제 철폐”였다. 그는 공화당으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지 않은 채 무소속으로 입후보해서 당선됐다. 어쨌든 그의 4년 동안의 임기는 일종의 정치실험이었다. 그러나 보수본류인 「내셔널 리뷰」지 등은 악의에 가득한 문체로 ‘거꾸로 가버린 클린트이스트우드’라는 비판의 글을 싣기도 했다.
「내셔널 리뷰」 그룹(빌 버클리 그룹)은 글로벌리스트에 가까워 국가나 정치의 역할을 중시하면서 정치 체제와 사회질서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자유의지론자는 외교 국제문제에 대해서는 우파온건으로 전쟁을 싫어한다. 군대는 필요 없고, 있다고 해도 국내 주둔만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공산주의 그 자체를 싫어하지만 군사력으로 서로 부딪치는 것에는 반대한다.
자유의지론자들은 연방 정부의 거대한 재정적자에 분노한다. 이들의 핵심 사상은 “복지국가는 필요 없다.”,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이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국민들로부터 무리하게 세금을 징수해 사회복지라는 명목 아래 마음대로 써버리고, 결국은 거대한 재정적자와 증세라는 악순환을 남긴 것을 비판하며, 중앙정부는 없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대중적 자유의지론자로는 1993년 미국에서 가장 인기 높은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 러시 림바우가 있다. 보수적인 백인 중산층들에게 인기가 있는 림바우의 요지는 안티 택스로서 “선심성 복지에 반대하고 가난한 사람들도 스스로 노력하여 자기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통화주의자로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밀턴 프리드만은 시카고 학파의 경제학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사상적으로는 확실한 자유의지론자이다. 물론 본인 스스로도 자유의지론자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와 대립하는 인물로는 케인스주의의 폴 새뮤엘슨, 케인스계 사회복지파 경제학의 거두인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가 있다. 케인스주의 대 통화주의의 대립은 1970년대 이후 팽팽하게 맞서온 미국 이론경제학의 양대 축이다.
7. 종교우파의 운동과 사회문제 대립의 격화
미국의 정치 운동 가운데 1980년대에 시작되어 아직까지 그 영향력이 지속되고 있는 종교적 우익 “종교우파”의 운동을 보자. 미국 보수주의의 본질적인 요소로 유럽 여러 나라와 비교하더라도 미국은 강한 종교 성향을 지니고 있는 나라다. 미국의 ‘종교우파’ 운동 역시 그런 배경 속에서 동성애 권리를 인정하자는 운동과 임신중절 권리의 합법화하려는 자유파의 운동에 대항해 격렬하게 일어났다.
종교우파 운동은 1980년 보수적인 복음전도파의 종교가인 제리 팔웰의 ‘도덕적 다수파’ 운동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운동을 위한 회의에 프로테스탄트 각파의 보수적 종교가(목사)들이 한 곳에 모였는데, 팔웰은 이 회의에서 인공임신중절반대를 결의하고 자유파와 정면으로 대결하는 국민운동을 시작했다. 현재 종교우파의 최대조직은 팻 로버트슨 목사가 이끌고 있는 ‘그리스도교 연합’으로 회원이 3백만 명이나 된다. 그는 침례교계 복음전도파 목사로 1990년대부터 ‘그리스도 방송 네트워크’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자가 될 사람은 이 단체를 무시하고는 선거에서 이길 수가 없다. 이러한 종교 우파의 중절반대운동은 점점 과격해져서 때로 폭력, 살인 사건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에는 ‘텔레비언게리스트(TV 전도사)’라고 불리는, 복음전도파계의 독립일파를 이루고 있는 단체가 있는데, 이들은 극히 보수적으로 패밀리 밸류 즉, 반듯한 가정생활을 영위하는 것을 중시하는 입장을 주장한다. 이 방송은 의외로 상당한 설득력이 있어 미국의 보수적 중산계급을 매료시키고 있다.
급진파로 학창 생활을 보냈던 클린턴 같은 인물도 이 가족가치의 회복을 무시할 수 없었다. 아무리 민주당 급진파 세력이라 할지라도 언제까지 “인권, 인권!”만을 외치면 되는 시대는 끝이 난 것이다.
8. 흑인 이슬람 세력의 움직임
오늘날 흑인들은 보수파나 공화당을 매우 싫어하고 민주당을 지지하는데, 최근에는 흑인 사회 내부에서도 흑인 사회의 현상황에 대한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는 지식인과 정치가들이 나오고 있다. 윌리엄 래즈베리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흑인 집단의 현실과 높은 범죄 발생률, 흑인 사회의 낮은 도덕성에 대해 냉정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흑인 문제에 대해 드러내놓고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직까지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일로 인식되고 있다.
이와 같은 흑인 내부의 의견대립에 있어서 주목받는 흑인 정치가로는 마틴 루터 킹의 비서로 그와 함께 행동을 했던 제시 잭슨이 있다. 현재 그는 흑인 사회를 향해서 ‘평온한 질서의 회복’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제시 잭슨은 중산계급 흑인층이기 때문에 가난한 흑인들로부터는 “글로리 혹(Hlory Hog: 금발을 한 검은 돼지)”이라는 경멸 섞인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제시 잭슨은 현재 흑인 이슬람교도 세력의 흑인 지도자 루이스 파라칸과 공동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이슬람 교도 흑인 단체인 이슬람의 국민(The Nations of Islam, 이하 네이션)은 현재 흑인 정치 세력으로서는 미국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루이스 파라칸의 후계자로 주목받고 있는 차세대 지도자인 칼라이드 무하마드는 94년 6월 중순, 대학에서 강연을 마치고 나오다가 괴한의 총에 맞기도 했다.
미국의 흑인 문제를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큰 세력인 네이션은 세력을 계속 확대하고 있는 추세이며, 현재는 미국 전 도시의 흑인 거주구역에 교회와 하부조직을 거느리고 있다. 네이션 안에는 군대와 같은 규율을 가지고 있는 조직적인 방위집단이 있는데, 이 집단을 FOI(Fruit of Islam)라고 한다. 이들은 군복과 같은 제복을 입고 규율을 지키면서 집회를 방위하는 역할을 한다.
흑인 정치가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무하마드 알리가 있다. 그는 헤비급 챔피언이 된 후 베트남 전쟁 징병을 당했다. 이때 “나는 동양인에게는 원한이 없다.”고 징병을 거부해 형무소에 들어갔고 챔피언 밸트를 박탈당했다. 그러나 출소 후, 그는 위기를 극복하고 조지 포먼을 물리친 후 챔피언 자리에 복귀했다. 미국의 영웅이 된 것이다. 알리는 “동양인에게는 원한이 없다.”라고 자기의 입장을 밝힘으로써, 미국이 베트남에서 싸워야 할 명분과 국가적 정의가 없음을 명시했다. 그래서 백인 남자들도 그에게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 알리는 1964년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옛 이름을 버리고 일라이자 무하마드라는 인물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이름을 바꾸고 네이션에 가입하여 이슬람교도로 개종했다.
9. 좌파 지식인과 급진 좌파운동의 현재
미국의 좌파 지식인 및 급진파의 현재 모습을 설명하려면, 1920년대 존 리드로부터 시작되는 좌파 지식인들의 언론, 사상 운동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에 좌파 지식인들은 「파티전 리뷰(Partisan Review)」지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미국의 공산당이 그들의 의도와 활동을 알리고자 만든 당 기관지가 바로 이 「파티전 리뷰」다. 그러나 소련의 공포정치가 서방측에 알려지면서 미국의 좌파 지식인들 내부에서는 격렬한 동요와 회의가 일어나게 된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이 잡지는 50년대부터 반소련 독립좌파의 입장으로 바뀌었다. 오늘날에도 이 잡지는 많은 미국 지식인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격식과 품격을 유지하고 있는 고급 언론지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50년대 미국 내 상황은, 한편으로는 맑시즘의 적색분자색출 소동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좌파 성향의 급진파가 석권하고 있는 뉴욕의 문예, 정치 평론계를 중심으로 반소련, 반자본주의 반체제 지식인들이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이러한 뉴욕의 좌파 성향을 지닌 엘리트들의 모임을 “가족”이라 불렀다. 여기에 모인 대표적인 인물로는, 오랫동안 이 언론지의 편집장을 맡았던 필립 라브, 윌리엄 필립스, 맑스주의 철학자 시드니 훅, 작가이자 평론가인 메리 매카시, 엘리자베스 하드윅, 독일에서 망명온 한나 아런트, 시인 델모어 슈워, 어빙 크리스톨, 노먼 포도레츠, 사회학자 대니얼 벨, 극작가 릴리언 헬먼 등이 있다. 컬럼비아 대학 교수이기도 했던 문예평론가 자크 바르죙 역시 손꼽을 만한 인물들이다.
이 언론지로부터 분리되어나간 사람들이 60년대에 형성한 그룹이 신보수주의파다. 신보수주의파의 대표격인 노먼 포도레츠는 「파티전 리뷰」의 편집 원칙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인 뒤 뛰쳐나가 「코멘터리」지를 창간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현대 미국 정치가나 정치적 지식인들의 전체적인 모습들은 미국 또는 서구의 독서 지식인층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들을 글로 옮긴 것이다. 정치가와 정치지식인을 중심으로 해서 썼기 때문에 『미국정계 주요 인물명람』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책 한 권으로 사실상 세계의 패권국인 미국의 현재 정치사상 대립구조를 대략 알 수 있다.
딱 20년전의 미국 상황이었다.
하지만 별반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을 이해하기 위해 미국 관련 책을 읽고 있다.
20년전 책이 훨씬 단순하고 도움이 된다.
사실상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이고 많은 나라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이러한 미국을 움직이는 정치가와 지식인들의
사상적 구조를 구분하기 위한 틀로서
크게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는 정치이데올로기로서 보수파와 자유파다.
둘째는 종교적으로 ‘어느 종파에 속하는가?’다.
종교는 높은 지성과 합리적 정신을 가지고 있는
지식인층에게까지 적용된다.
셋째는 영국계 프로테스탄트부터 시작해서
아일랜드계, 독일계, 이탈리아계,
아프리카계, 동아시아계 등으로
구분되는 민족/인종이다.
저자는 이러한 정치이데올로기, 종교, 인종
및 민족의 세 가지 기본요소를 입체적으로
조화시켜야만 미국의 정치가와 지식인들을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저자는 미디어뿐 아니라
미국 내 지식인들을 통하여 미국 정치관련
유명 인사들 한 명, 한 명이 미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이 책은 또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는
싱크탱크로서 여러 연구소/연구재단에 대한 분석뿐 아니라
정치평론 미디어들의 이력과 성향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하버드, 예일대학을 위시하여
각 대학 지니고 있는 정치 성향과 학문
풍토에 대하여도 흥미로운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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