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민주주의
알렉시스 드 토크빌 지음
미국체제가 기초한 원칙,
다시 말해 질서, 세력균형,
진정한 자유, 권리에 대한
깊고 진정한 존중의 원칙은
모든 공화국들에게 필수불가결한다.
이들 원칙은 모든 공화국들에게
공통적이어야 하며,
이들 원칙을 찾을 수 없는 곳에서는
공화국이 머잖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발표됐을 당시 영국·프랑스·미국에서 대대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이 책을 쓴 토크빌의 의도는 프랑스인을 겨냥한 것이었고, 특별한 사회조건으로서의 평등이 미국의 정치제도와 시민들의 습관과 태도에 어떻게 반영돼 있는지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프랑스에서는 왜 그렇지 못한가”라는 질문이 모든 소제목에 감춰진 부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까지만 해도 이 책은 영국인들과 미국인들의 전유물이었다.
당대 영국의 자유주의자인 밀(J.S. Mill)의 경우 아버지 제임스 밀(J.Mill)과 벤담(J. Bentham)의 철학적 급진주의와 결별하고 새로운 사회, 정치적 비전을 찾고 있던 시점에서 이 책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놀라운 일은 영미에서 이 책이 계속해서 생명력을 갖는다는 점이다. 영국의 보수주의자들은 토크빌이 비판한 미국 민주주의의 약점에 관심을 갖는 반면, 미국인들은 사회조건에 대한 그의 비교적 호의적인 평가를 국가적 자부심과 자신감의 기초로 사용했다.
이 책에서 토크빌이 노린 것은 사실상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거울에 비춰본 조국 프랑스의 모습이었다. 그는 자유를 궁극적인 원칙으로 본 도덕주의자였다. 그의 기본적 사상이 어디서 비롯되는가는 “나는 매일 약간의 시간을 파스칼, 몽테스키외, 그리고 루소 세 사람과 더불어 보낸다”고 한 그 토크빌의 말에서 알 수 있다. 그는 특히 파스칼을 좋아해서, 인간을 합리적 차원에서 바라보지 않고 인간이 갖는 기본적인 한계를 인정했다.
물질문명이 팽배한 민주사회의 부정적 모습 예견
이 점에서 토크빌은 계몽주의 사상의 맥락과는 조금 그 위치를 달리한다. 귀족적 가풍의 엄격한 가톨릭 집안의 분위기에서 성장했으나, 구태의연한 종교의식에 공허감을 느낀 그는 독특한 종교관을 가슴에 담게 된다. 즉 종교를 갈망하면서도 갈등하고, 회의하며, 언제나 이유 없는 불안함을 내면에 가득 안고 있었다. 토크빌의 감성 체계는 기본적으로 종교적인 불안정함과 사회적인 고뇌 두 가지에서 비롯된다. 『미국의 민주주의』 저변에는 민주 사회의 정치와 함께할 기틀로 종교와 도덕을 자리매김한다. 토크빌의 자유 사상은 이런 그의 내면세계로 설명할 수 있다. 토크빌은 정신적 도덕주의자 성향을 이미 안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토크빌의 자유주의적 기질은 필연적으로 물질문명이 팽배하게 될 민주사회의 부정적 모습을 예견한다. 즉 민주사회는 모든 조건이 평등해지는 사회이므로, 그 곳에서 살게 될 시민은 자연스럽게 상업과 물질주의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만연과 함께 급기야 정치적 자유의 신성함도 헌신짝 버리듯 하는 사회가 되리라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자유’보다 ‘평등’을 원하게 되며, 심지어는 그 평등이 곧 자유라고까지 착각하게 된다. 하지만 미국의 민주주의의 경우 프랑스와는 지형적 조건, 지방분권제, 그리고 종교와 자유의 자연스러운 어우러짐이 다르고, 또 귀족 신분의 부재, 외국과의 전쟁 부재 등으로 훨씬 우월한 조건 속에서 민주주의를 맞이했다.
토크빌의 연구방법은 보편적 인간성에 관한 고찰로부터 정치제도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했던 17,8세기의 다른 이론가들의 방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토크빌은 인간성이 아니라 사회조건에 관한 이해를 통해 정치적인 것들을 설명하는 순서를 밟았다. 그는 역사적 증거를 활용해서 당시 대세로 자리잡아가던 민주 사회의 정치적 전망에 관한 교훈을 가르치고자 했다. 이런 이유로 토크빌은 자신의 새로운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학(New Science of Politics)’을 정립하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적 양자의 보루로 해석됐다. 토크빌 자신은 ‘당파적 해석’이 주는 천박한 논평에 대한 불만을 침묵으로 대신해왔다.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이 책은 민주주의의 옹호자들이나 비판가들 모두 외면할 수 없다. 토크빌은 귀족 출신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옹호자들의 열정과 귀족주의 비판가들의 우려를 동시에 누그러뜨리며 온건한 민주주의의 대의를 제시했다. 토크빌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대세로서 전개되고 있는 민주화의 추세를 일찍부터 간파했다. 또 그 약점을 누구보다도 예리하게 꿰뚫어봤고, 전적으로 민주적인 방식으로 그 약점들을 치유하려고 노력했던 지적 선구자다.
‘본질적 귀족주의자’ 토크빌
토크빌은 스스로 “새로운 유형의 자유주의자(un lib ral d'une esp ce nouvelle)”라고 칭했다. 흔히 그를 몽테스키외의 사상적 계보를 이어 받은 자유주의적 귀족으로 평가해왔다. 토크빌의 시대에 대한 자기 분석과 귀족주의에 대한 성찰은 그가 표현한 ‘본능적 귀족주의자’의 모습에서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귀족주의 시대의 끝자락에 서 있길 스스로 원했던 ‘본질적 귀족주의자’, 혹은 ‘심정적 귀족주의자’로서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통적인 귀족 집안의 내력 내지는 분위기(l'air de famille)에서 자란 그의 고매한 심성 구조는 확실히 귀족주의적인 성향을 강하게 풍긴다. 그가 자신의 출신 성분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토크빌은 귀족 시대가 지녔던 숭고함을 높이 샀던 그런 냉철한 귀족주의자였다. 그는 미덕과 책임감을 귀족이라는 개념과 동일한 것으로 이해하려 했다. 토크빌은 자신도 강조했듯 19세기의 당대 자유주의자들과는 다른 시대적 안목을 지녔던 매우 고상하고 고결한 자유사상을 지닌 귀족이었다. 수많은 연구자들이 그를 일러 19세기 정치적, 혹은 경제적 자유주의자들과는 다른 고결하고도 명예로운 자유주의자라고 높이 평가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였다.
인간을 존중하는 열정,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 시대 흐름을 진단하는 것에서 보이는 토크빌의 귀족관은 다분히 고매하다. 그는 품위 있는 민주 사회의 개개인이 되기를 바랐다. 그가 그리워했던 것은 민중을 착취하고 갈취해 왔던 귀족이 아니라, 그들에 대해 가부장적인 따뜻한 배려를 베풀고, 강력한 왕권과의 완충제 역할을 했던, 미덕을 갖추고 공적인 생활의 가치를 존중한 그런 귀족이었다. 또한 부르주아의 천박한 물질적 탐욕을 갖지 않은, 그리고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품성을 갖지 않은 귀족을 의미했다. 그가 말한 ‘본능적 귀족주의자’ 란 말은 바로 이러한 성향을 가리킨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7월 왕정 이후 프랑스 사회에서 토크빌이 느낀 시대적 환멸과 혐오감은 바로 이런 고상한 귀족주의를 잃어가는 시대에 대한 슬픔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귀족주의 담론이 이미 일종의 ‘엘리트 이론’을 담보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즉 토크빌이 귀족주의와 민주주의와의 시대적 중립성 내지 ‘형평성’을 강조한 것은 그것이 지닌 근본적인 모순과 한계를 누구보다도 토크빌 자신이 인식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토크빌은 어쩌면 귀족주의적인 면모로 무장하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의 우아하고 고상한 자기 착각 혹은 무의식적 거짓말이 그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간에,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고결한 자유주의자’로 여기게 해 그를 더욱 근사한 귀족주의자로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토크빌이 부르주아 사회가 가져다 줄 물질적 풍요가 본연적으로 정신에 해로운 것이라 믿는 그런 종류의 도덕론자·보수주의자이거나 민주사회를 거부하려 한 고루한 귀족주의자는 아니었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그의 인식 구조는 다른 귀족주의자들처럼 사라져 버린 귀족주의 시대가 복원되길 원하거나 그에 연연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사상이 갖는 새로움은 그것을 넘어 선, 귀족주의와 민주주의의 장·단점들을 검토함으로써 보다 나은 미래의 역사를 예측한 데 있었다.
토크빌 사상의 시대적 초월성
이런 관점에서 토크빌의 시대적 중립 선언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민주시대의 분위기를 감지한 그의 현실적 안목을 보여주는 징표와 같은 것이었다. 오히려 그는 귀족사회와 민주사회의 장·단점을 마치 의사가 환자를 진단해 처방하듯 예방 조치하기를 희망했다. 이런 점에서 토크빌 사상이 갖는 시대적 초월성은 여전히 그 매력을 잃지 않는다.
공적인 의무와 책임감, 그리고 정치에 대한 관심, 종교와 미덕을 강조하고 중요시했던 토크빌의 자유사상은 그의 귀족주의가 단순한 편견이 아니라 그 시대 다른 자유주의자들이 그릴 수 있는 밑그림을 더 다채롭고 공정하게 해줬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토크빌은 귀족제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평등해지는 민주사회가 출현하는 역사적 현실 앞에서 마음을 놓지 못하고 귀족주의와 민주주의 양쪽에 본능적 두려움과 지적 선호도를 공평하게 나눴던 것이다. 마지막 지적·도덕적 귀족의 후예로 스러져가는 귀족사회를 바라보면서 그 시대를 충실하게 살아가려 중립을 애써 지키는 토크빌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역사를 과거로 되돌리거나 현재에 머물게 하려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의 장래를 더욱 자유롭고 인간답게 하려고 더 멀리까지 내다봤던 사상가로서의 토크빌은, 역설적으로 그가 지닌 귀족주의라는 특성 때문에 더욱 돋보인다.
민주주의의 평등 사회는 미래에 행복이 온다는 기약과 함께 사람들에게 많은 평등과 물질적 번영을 갖다 줬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이 약속은 우리에게 과연 참다운 자유를 보장해 주었던가? 답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그 사회가 갖다준 기만과 배신 속에서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야 했던가? 욕망은 끝이 없고 위기도 끊임없이 닥치므로, 그것의 충족과 극복을 위해서는 또다시 희생이 필요하다. 현대 사회는 지금도 이 과업을 가히 경탄할 정도로 수행하고 있지 않은가? 날로 번창해 가는 물질주의의 열기 속에서, 토크빌의 평등사회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진단은 자칫 “물질에 대한 결벽증세를 가진 귀족 환자의 진부한 순진함”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무관심 속에 부대끼며 지나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주는 상처를 보듬을 새조차 없이 정신없이 앞으로만 내달리며 사는 고독한 우리에게, 정치적 무관심과 물질만능의 권위 앞에서 움츠러든 우리에게, 민주사회가 겪어야만 할 ‘대가성 고통’을 미리 가슴에 끌어안았던 그의 고뇌어린 이야기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따라서 토크빌 자유사상의 새로움은 민주주의의 본성과 자유에 대한 그의 본질적 인식에서 나온다. 그에게 민주사회란 서구 사회가 서서히 움직여 왔으며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신의 섭리와 같은 것이다. 그는 민주사회가 지속적으로 평등을 추구함으로써 자유는 숙명적으로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점을 공식화했다. 그것은 평등과 전제주의가 결합하면 심성과 정신의 수준이 낮아진다는 것, 곧 자유가 유린당하는 사회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바로 여기에 민주사회에 대한 토크빌의 남다른 두려움과 경고가 숨어 있다.
지나친 평등 추구는 가장 무서운 독재
그는 앞으로 민주사회가 스스로 만들어낼 새로운 사회 구조를 예견했던 것이다. 당시 자유주의자들이 자유에 대한 위협을 국왕의 절대 왕권이나 귀족들의 과두제에서 찾으며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했던 반면 그는 신성한 자유에의 위협이 바로 민주사회 자체에 내재해 있음을 간파했다. 또한 민주사회에서 독재가 선동적 폭력, 대중의 야만적 지배를 의미한다고 봤을 때, 토크빌은 평등의 지나친 추구로 무지한 집단이 절대권력을 휘두르게 되는 민주주의야말로 가장 무서운 독재라고 파악했다. 토크빌 자신이 당시의 자유주의자, 민주주의자들과 자신을 혼동하지 말아 줄 것을 당부한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변화하는 시대에 느끼는 그의 좌절과 절망에는 민주사회의 자유와 평등간의 위기와 위험성에 대한 의식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단지 19세기 유럽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구체제와 대혁명』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어 20세기 유럽 민주사회의 분석틀로 부각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본능과 기질이 귀족적이었고, 안락과 예속을 위한 비굴한 자유가 아니라 미덕과 도덕으로서의 자유를 추구했던 토크빌은 사람들이 스스로 “노예근성의 취향”에 길들여지는 것을 가장 비통해했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목숨처럼 사랑했던 토크빌은, 민주사회의 도래와 그 문제들을 명확하게 분석했던 토크빌은 자연히 당시 경제적 자유주의자들과 달리 부르주아의 산업사회에 대해 부정적이고 비판적 시각을 가졌다. 부르주아 사회와 산업 사회가 가져올 위험성에 적대감을 느꼈던 도덕적·귀족적 자유주의자 토크빌은 다가오는 평등사회 앞에서 질식감을 느꼈다.
그가 사랑한 자유는 근대 사회를 주도할 부르주아들의 이기심에 의해 철저히 위협, 파괴되고야 말 것이었다. “신과 법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주인으로 섬기지 않고 거리낌없이 말하고 행동하고 숨쉬는 기쁨”으로서만의 자유를 추구했던 토크빌은 시대와 타협할 수 없었던 자유를 품은 댓가로 애증과 환멸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그 환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고, 진정한 자유의 힘을 부르짖게 했다. 토크빌의 섬세한 통찰력과 사상적 지위의 독특함이 돋보이는 것은 바로 이런 자유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여기에 그만이 갖는 새로운 자유의 의의가 있다.
그는 19세기 자유주의의 한계를 초월해 있었다. 도덕과 종교에 바탕을 둔 토크빌의 자유주의는 19세기의 자유주의 사상에 섬광 같은 빛을 더해줬다. 그가 느꼈던 민주 사회에 대한 인식과 그로 인한 절망이 현재의 우리에게도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은 평등과 산업화의 확대 속에서 정신적 자유를 지키려 했던 토크빌의 문제 제기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여전히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우리 정치 현실에 많은 시사점을 주리라 기대한다.
제1권
제1장 북아메리카의 외형
북아메리카는 거의 균등하게 두 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한 지역은 북쪽으로 거의 평원을 이루고 있다. 거기에는 높은 산도, 깊은 계곡도 없으며, 강들이 불규칙적으로 굽이치고 있다. 두 번째 지역은 좀 더 굴곡이 심한 지역으로 사람 살기에 더 적합하다. 앨러게니와 로키 산맥이 있는데, 이 계곡의 맨 아래는 인디언들이 그들의 호방한 언어로 “모든 강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붙인 미시시피 강이 흐르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자연의 무진장한 비옥함과 함께 신께서 인간의 삶의 터전으로 준비하신 곳 중 가장 훌륭한 곳이다.
남아메리카가 육감적 환희의 영역으로 창조됐다면, 북아메리카는 지성의 영역으로 창조된 것 같았다. 인디언들은 자신들 말고는 아무에게도 빚진 것이 없었다. 그의 덕성, 악 및 편견은 자신들이 만든 일이었고, 무엇에도 구애되지 않고 그들의 본성대로 야성적으로 자랐다. 문명화된 나라에서 최하층민들이 거칠고 예절이 없는 것은 그들이 가난하고 무지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상태로 부유하고 교육받은 사람들과 매일 접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디언들은 비록 무지하고 가난하기는 해도 평등하고 자유롭다.
제2장 영국계 아메리카인들의 기원과 그들의 미래와 관련한 그 기원의 중요성
이주민 자치의 핵을 이룬 것은 북부에서는 ‘타운’이고, 중부 이남의 식민지에서는 ‘카운티’였다. ‘타운’에는 주변에 농지가 있고 교회가 있어 거기서 예배 뿐 아니라 정치적 모임도 갖고 주민의 전체적인 공통 관심사를 논의하고, 식민지 회의에 파견할 대표를 선출하기도 했다.
버지니아에 1607년 첫 영국 식민지가 세워졌다. 처음에는 황금광, 재산도 품위도 없는 모험가들, 하인들, 은행 사기꾼들, 방탕자 등 식민지의 복리를 증진하기보다는 약탈과 파괴를 일삼는 무리들이었으나 한참 뒤에 부유한 영국인 지주들이 나타났다. 노예제는 1620년경 제임스 강변에 20명의 흑인을 상륙시킨 네덜란드 선박이 도입한 것이다.
무엇보다 뉴잉글랜드(허드슨 강 동쪽으로 코네티컷, 로드아일랜드, 메사추세츠, 뉴햄프셔, 버몬트, 메인 등 6개주) 해안에 정착한 사람들은 상당히 독립적인 계급에 속한 사람들로서 특이한 사회현상을 나타냈다. 지식, 교육 등이 상당한 수준이었으며, 이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재능과 업적으로 유럽 대륙에서도 알려져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에게 순례자라는 명칭을 붙일 정도로 엄격한 교리 때문에 청교도라는 별명을 얻은 영국의 한 교파에 속했다. 이들이 황량한 해안에 도착하자마자 맨 먼저 한 일은 사회규약을 만드는 일이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우리는 일치단결하여 시민 공동체를 이룩하며. 평등[1]한 법률, 제도, 기관들을 제정, 조직, 설립하며, 그 모든 제도에 대해서 우리 모두는 마땅히 복종할 것을 서약한다.
이들은 ‘종교정신’과 ‘자유정신[2]’을 훌륭히 결합하는 데 성공을 거뒀다. 자유는 종교를 도덕성의 수호자로, 도덕성을 최선의 법 보상자로, 자유가 지속되기 위한 가장 확실한 약속으로 간주한다.
제3장 영국계 아메리카인들의 사회상태
뉴잉글랜드 해안에 정착한 사람들은 지식과 덕성의 대표자로서 몇 명사들을 존경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허드슨 강 남서쪽은 대토지 소유자들이 상층계급을 형성, 정치활동의 중심을 형성했다. 이들은 유럽의 토지소유자들과는 다른 귀족계급으로서, 후에 독립혁명의 가장 우수한 지도자들을 배출했다.
아메리카에서 평등한 것은 재산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자질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처럼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없으며, 부가 빨리 유통된다. 그들은 거의 직업을 가져야 하며, 인간의 능력이 서로 다를지라도 그 능력을 사용하려고 찾아낸 방법은 평등하다. 그리고 귀족제가 약한 반면, 민주적 원칙은 입법 등에 의해 사회에 지배적일 뿐 아니라 만능이다. 가문이나 단체적 권위도 전혀 느낄 수 없다.
인간에게는 평등에 대한 씩씩하고 정당한 정열이 있어서 그 정열에 자극 받은 사람들은 만인이 힘을 갖고 존경받기를 바란다. 하지만 평등에 대한 천박한 정열도 있어서 약자로 하여금 강자를 자신들의 수준으로 이끌어 내리도록 하며, 노예 상태의 평등을 자유 속의 불평등보다 낫게 여기도록 만든다. 그들은 자유를 본능적으로 사랑하지만 평등이 없으면 어느 것에도 도달할 수 없다.
제4장 아메리카의 주권 재민 원칙
뉴잉글랜드의 타운은 프랑스의 코뮌과 컹통의 중간 쯤에 위치하며 그 인구는 2, 3천 명이다. 다수가 공공업무를 수행할 때는 대표를 통해서 한다. 행정권은 대부분 매년 선출되는 행정위원 몇 사람에게 부여된다. 정치생활은 타운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자기 자신에만 관련된 한에서 그들은 자주적이다. 그 타운은 자주성과 권위라는 두 정신을 갖고 있다. 세금은 주에 의해서 가결되지만, 부과하고 징수하는 것은 타운이다. 학교의 설립은 의무적인 것이긴 해도 세우고 돈을 내고 감독하는 것은 타운인 셈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국가 징세관이 지방 조세를 거두지만 아메리카에서는 타운 징세관이 주의 세금을 걷고, 프랑스 정부가 정부 관리들을 지방에 파견하는 반면 아메리카에서는 타운이 그 관리들을 정부에 빌려준다.
타운은 그 자신이 구성원을 이루고 그만큼 자유롭고 강력한 공동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애착을 갖는다. 그 정신은 인간의 심성 가운데 야망을 부추기지 않으면서도 가장 따뜻한 인간애를 끌어내도록 되어 있고, 카운티 관리들은 선출되지 않으며 그들의 권위는 아주 제한돼 있다. 공익에 가능한 한 많은 수의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놀랄 만큼 정교하게 권력이 배분돼 있고, 마을 사람 모두가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참가하며, 자기 손이 닿을 수 있는 작은 영역 안에서 정부의 일을 실천한다.
제5장 타운제도와 자치기구
내가 아메리카에서 찬탄한 것은 지방 분권의 ‘행정적’ 성과가 아니라 ‘정치적’ 성과다. 합중국에서는 국가 이익이 어디에서나 명백히 드러나 있다. 국가 이익은 전체 국민의 열렬한 관심의 대상이며 자신에게도 돌아오기는 전체의 번영에 기뻐한다. 유럽인에게 공직자는 우세한 힘을 나타내는 것이지만, 아메리카인들에게는 공직이란 자기들의 권리를 말해준다. 아메리카에서는 인간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정의와 법률에 대한 복종을 강조한다. 행정 당국은 일반 시민들의 곁에 놓여 있으며, 또한 행정 당국이 어느 정도는 시민들을 대표하기 때문에 그것이 시민들의 질시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제6장 합중국의 사법권과 정치사회
모든 시민은 일반법원에 관리를 고발할 권리를 갖고 있고, 모든 판사들은 공직자들을 유죄판결할 권리를 갖고 있다. 사법이 확실하고 온화할 경우, 훨씬 효율적이다. 영국인과 아메리카인들은 폭정과 억압정치도 형량을 줄이고 혐의 입증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다른 범죄와 마찬가지로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7장 합중국의 정치적 재판 관할권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상원과 귀족원이 각각 최고의 형사법원을 이루고 있는 반면, 합중국에서의 주요 목표는 권력을 악용한 사람으로부터 권력을 박탈하고 그 이후로 다시는 얻지 못하게 한다. 그 권위에 자발적으로 복종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단지 간접적으로만 권력 분립에 적대적이고, 시민들의 생명은 오히려 안전하다. 정치사건 관할법원들이 사법적 처벌을 가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아메리카인들은 폭정 자체보다도 입법부 폭정의 극악한 결과를 회피한 것이다.
제8장 연방헌법
하원은 국민이 뽑으며 상원은 주 의회가 뽑는다. 하원은 직접 선출되지만 상원은 선출된 기구가 선출한다. 하원의 임기는 단 2년이지만 상원의원의 임기는 6년이다. 하원의 업무는 순수하게 입법적인 것이며 하원이 사법권에서 차지하는 몫도 공직자들을 탄핵하는 일에 그친다. 상원의 구성은 각 주가 가진 독립성의 원칙에 따르고, 하원의 구성은 국가 주권의 원칙을 따른다. 각 주는 두 명의 상원의원을 의회에 보내도록 돼 있으며, 인구 비례로 그에 상당하는 만큼의 하원의원을 의회에 보내도록 돼 있다.
합중국의 주권은 연방정부와 각 주들이 나눠 갖지만 프랑스에서는 주권이 분권되지 않고 단일하다. 합중국에서의 행정권은 주권이나 마찬가지로 제한적이고 예외적이나 프랑스에서의 주권은 국가의 권위와 마찬가지로 보편적이다. 합중국을 옹호하는 것은 자신의 주나 카운티의 번창을 옹호하는 것이다. 합중국 정부는 직접 주들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강제명령을 시민들에게 직접 전하고 시민들을 그 요구를 따르도록 개별적으로 강제한다.
제9장 합중국의 민권지배의 원리
아메리카에서는 국민이 입법권과 행정권을 임명하며 법률의 모든 침해를 처벌하는 법관까지 공급한다. 모든 제도는 원칙 뿐 아니라 모든 결과에 있어서도 민주적이다. 그리고 국민은 그들의 대표자들을 직접 거의 해마다 선출하는데, 그것은 대표자들이 국민에게 의존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국민이 실질적인 지배권력이다.
제10장 합중국의 정당
정당들이 승리를 얻기 위해서 사용하는 두 가지 주요한 무기는 신문과 공공결사다.
제11장 합중국의 언론자유
언론 자유의 영향은 정치적 여론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견해에 미치고 법률은 물론 관습까지 바꾼다. 제 신문을 갖고 있지 않은 마을은 거의 없다.
제12장 합중국에 있어서의 정치결사
합중국에서는 공공의 안녕, 상업, 산업, 윤리 및 종교를 증진하기 위한 결사들이 만들어진다. 아메리카에서는 소수파를 형성하는 시민들이 결사를 형성하는데, 그 이유는 첫째 그들의 수적 세력을 드러내 다수파의 도덕적 우위를 상쇄시키기 위해서이고, 둘째 경쟁을 유발해서 다수파를 공격하기에 가장 적합한 논거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그들의 의도는 평화적이고, 사용하는 방법도 지극히 합법적이다. 정치결사들의 폭력성을 완화시켜주는 것 가운데 가장 강력한 요인은 보통선거다.
제13장 합중국의 민주정치
시민들 가운데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많은 반면 정부 관리들 가운데는 별로 찾을 수 없었다. 민주주의에는 진정으로 신뢰를 받을 만한 인물들을 뽑는데 필요한 건전한 판단이 결여돼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려는 의욕도, 성향도 결여돼 있다. 민주주의 제도는 인간의 심성 속에 시기하는 감정을 강렬하게 불러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국민은 저명한 사람들을 자기네 지도자로 선택하지 않고, 능력 있는 인물들은 정계에서 밀려난다. 보통선거제는 결코 국민적 선택의 지혜를 보장하는 방법이 아니다.
제14장 아메리카 민주주의의 장점
민주적 법률은 일반적으로 최대다수의 복지를 증진하려 한다. 그 이유는 그 법률들이 다시 시민들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장점은 공공정신과 권리의 개념이다. 그들은 누구나 자기 재산 소유의 원칙을 인정하고 정치적 권리를 가장 낮은 계층의 시민들에까지 준다. 마지막으로는 준법정신과 사회의 권리에 참여하고 그 문제를 토의하는 것에서 느끼는 즐거움까지도 생활습관에 포함돼 있다. 즉 자유가 형성시켜 놓은 습관의 힘인 것이다.
제15장 합중국에 있어서 다수의 무제한한 권력과 그 결과
다수의 횡포는 그 자체로서도, 앞날을 위해서도 위험하다.
제16장 다수의 폭정을 완화하는 요인
다수의 폭정을 완화하는 방법은 중앙집권화된 행정의 결여, 민주주의의 형평을 유지시키는 사법관, 그리고 배심원 제도 등이다. 배심원 제도는 사회의 지배권을, 국민 혹은 그 계급의 시민들에게 부여하는 것이요, 민주정치의 가장 활력을 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제17장 합중국에 민주공화정을 유지시켜주는 주요 원인
합중국에 민주공화정을 유지시키는 주요 원인은 합중국이 처한 독특하고도 우연한 상황, 법률, 국민들의 생활태도와 관습이다. 법률은 연방정부의 채택과 타운제도, 그리고 사법제도다. 그리고 생활태도는 습속(習俗)으로서, 여러 개념과 견해, 심성을 구상하는 사상의 총체로 국민의 윤리적, 지적 전체 조건을 망라하는 것이다.
제18장 합중국에 거주하는 세 종족의 현황과 전망
아메리카인들은 피도 흘리지 않고 위대한 윤리적 원칙도 어기지 않은 채 평온하게 합법적으로 인디언에 대한 이중적인 목적을 달성했다. 주인의 편견, 종족의 편견 및 피부색의 편견 등 세 가지를 우리는 극복해야 한다. 흑인들 스스로 변해야 한다. 아메리카인의 주요 수단은 자유인 반면에 러시아인의 그것은 예속이다. 그들의 출발점은 다르며 각각 지구의 반쪽 운명을 다스리도록 하늘의 계시를 받은 듯 하다.
제2권
제1부 민주주의가 아메리카 지식인의 행동에 미친 영향
아메리카만큼 철학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나라는 없다. 그들은 그것을 자기 자신 속에서, 자기의 이성에서 찾는다. 평등의 시대가 오면 사람들은 공통적인 유사성으로 상호 신뢰하는 일이 없다. 평등화는 인간을 고립시키며 인간으로 하여금 물질적인 쾌락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도록 만들기 때문에 행복에 대한 열정이 가장 강렬해진다. 그들은 이론과학보다 실용과학에 더 몰두한다.
제2부 민주주의가 아메리카인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
민주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들의 특별한 쾌락보다 아주 작은 욕망을 얻으려고 더욱 전념한다. 그들은 타락하기보다는 쇠약해지기가 더 쉽다. 민주주의는 정신을 약화시키며 행동의 탄력성을 느슨하게 한다. 그들은 풍요 속에서의 빈곤을 느끼며 우울증, 인생에 대한 혐오감 등을 경험하게 된다.
제3부 풍습에 대한 민주주의의 영향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대두, 그리고 민주 사회의 평등화가 진행될수록 사회에 만연하게 될 물질주의적 열기에 대한 그들의 애착은 민주 사회의 한 특징적 현상이지만 걱정스러운 면이 있다. 그들은 정치적 자유에 대한 취향도 서서히 상실하고 급기야는 평등의 만연화로 중앙집권화의 강화 현상이 창출된다.
제4부 민주주의적 사상과 감정이 정치사회에 미치는 영향
사회가 평등해짐에 따라 개인의 중요성은 약해지고 사회의 중요성은 증대된다. 모든 사람은 독립적이지만 무기력하다.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두 가지 상반되는 열정에 사로잡힌다. 한편으로 그들은 지배되기 바라며, 한편으로 그들은 자유로운 상태에 머물길 원한다.
나는 인류의 운명에 대해 개탄만 해왔다. 하지만 신은 인간을 완전히 독립되거나,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하지는 않았다. 모든 인간이 초월할 수 없는 숙명적 한계가 설정돼 있으나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자유롭다. 현대 국가에서 인간의 조건이 평등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이 평등의 원리가 인간으로 하여금 자유와 노예상태, 지혜와 야만, 번영과 고통 중 어느 길로 나아가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 자신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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