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한국문학

조세희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삼생지연 2020. 11. 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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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난장이(김불이)  키 백십칠 센티미터에 몸무게 삼십이 킬로그램인 난쟁이.

             가족들을 부양하는 데 힘겨운 생을 살아가다 공장 굴뚝 아래로 떨어져 죽은 채 발견된다.

영수       난장이의 장남. 아버지가 죽은 후 은강시 공장에서 노조활동을 한다.

영호       난장이의 둘째 아들. 공장의 직공으로 가정의 생계에 도움을 주었으나 나중에 공장에서 쫓  겨난다. 은강시 전기 공장에서 일을 한다.

영희       난쟁이의 딸.

             철거촌 매매 브로커를 따라가서 처녀성을 잃고 대신에 집문서를 훔쳐서 돌아온다.

어머니    난쟁이의 아내. 가난한 살림을 이끌어가는 성실한 주부.

지섭       자신이 직접 노동현장에 참여하여 노동자가 되는 활동적인 대학생. 진실한 동료로 난장이의 편에 서며, 난장이나 큰아들 영수에게 정신적 교화력을 가지고 있다.

신애    난쏘공 시리즈 중 칼날, 육교 위에서 등에 등장하는 중년의 여성.

             난장이와 이웃해 살며 그를 따뜻하게 대하는 인물이다.

윤호    지섭이 가정교사로 있었던 집의 학생.

             부유한 변호사 집안에서 자랐으나 지섭의 영향으로 난장이류의 사람들을 동정한다.

경훈     은강그룹 경영주의 셋째 아들. 난쏘공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 에서 영수의 재판을 지켜본다. 철저하게 경영자의 입장에서 편견으로 노동자를 대한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난장이는 벽돌 공장의 높은 굴뚝 맨 꼭대기에 서 있었다. 바로 한걸음 정도 앞에 달이 걸려 있었다. 난장이는 피뢰침을 잡고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자세로 그는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수학 담당 교사가 교실로 들어가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고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잠시 후 한 학생이 일어나 대답했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한 아이는 깨끗한 얼굴, 한 아이는 더러운 얼굴을 하고 굴뚝에서 내려왔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는 깨끗한 얼굴의 아이를 보고 자기 얼굴도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깨끗한 얼굴을 한 아이는 상대방의 더러운 얼굴을 보고 자기도 더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학생들은 놀람의 소리를 냈다. 그들은 교단 위에 서 있는 교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한 번만 더 묻겠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고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저희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얼굴이 깨끗한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그 답은 틀렸다. 두 아이는 함께 똑같은 굴뚝을 청소했다. 따라서 한 아이의 얼굴이 깨끗한데 다른 한 아이의 얼굴은 더럽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이 두 가지의 답을 연달아 제시하고 교사는 분필을 들고 돌아섰다. 그는 칠판 위에다 뫼비우스의 띠라고 썼다. 제군이 이미 교과서를 통해 알고 있는 것이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주기 바란다. 면에는 안과 겉이 있다. 그런데 평면인 종이를 길쭉한 직사각형으로 오려서 그것을 한번 꼬아 양끝을 붙이면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즉 한쪽 면만 갖는 곡면이 된다. 이것이 제군이 교과서를 통해 잘 알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이다. 여기서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곡면을 생각해 보자.

 

난장이네 집은 개천변 방죽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무허가 건물에 있었다. 주소지는 낙원구 행복동 46번지의 1839. 난장이네 집 근처에 벽돌공장 굴뚝이 있었다. 난장이네 집 조각마루 끝에는 재개발 사업 구역 및 고지대 건물 철거 지시라는 제목의 철거 계고장이 놓여 있었다. 거기 적힌 대로 곧 난장이네 집은 철거될 것이었다. 

 

난장이네 집은 바로 방죽가였다. 바람에 밀린 잔물결이 난장이네 마당 끝에 와 찰싹거렸다. 난장이는 그 마당에 앉아 낡은 그의 공구들을 손질하곤 했다. 절단기, 멍키 스패너, 플러그 렌치, 드라이버, 해머, 수도꼭지, 펌프 종지굽, 크고 작은 나사, T자관, U자관, 줄톱 등 모두 쇠로 된 이 공구들은 달빛 아래서면 더욱 난장이를 닮아보였다. 난장이는 닳고 닳은 이 기계 부대를 짊어지고 일을 하러 다녔다. 난장이가 평생 해온 일은 채권매매, 칼갈기, 고층건물 유리 닦기, 펌프설치하기, 수도 고치기 같은 것이었다.

 

그런 난장이 옆에선 난장이의 큰아들 영수가 라디오를 고치고 있었다. 그는 라디오가 고장이 나 방송통신고교의 강의를 받지 못했다. 난장이의 딸 영희는 팬지꽃이 피어 있는 두어 뼘 꽃밭가에서 줄 끊어진 기타를 쳤다. 난장이와 그의 아들딸이 사용하는 것들은 모두 최후의 시장에서 사온 것이었다. 영수가 라디오를 사러 갈 때 영희가 따라갔었다. 쓸만한 라디오가 있었다. 그런데, 영희가 먼지 속에 놓인 기타를 들어 퉁겨보는 것이었다. 긴 머리를 약간 숙이고 기타를 치는 영희의 옆얼굴이 아주 예뻤다. 영수는 먼저 골랐던 라디오를 좀더 싼 것으로 바꾸면서 영희가 든 기타를 샀다. 그 라디오가 고장이 나고 기타는 줄이 하나 끊어졌다. 난장이의 부인은 인형집에서 일했다. 소녀 인형에 치마를 입히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종일 백 개의 인형에 백 벌의 치마를 지어 입히고 와 늦은 저녁밥을 지었다. 두 홉 보리쌀을 씻어 안쳐 끓이고 그 위에 여섯 개의 감자를 까넣었다. 난장이와 그의 식구들은 조각마루에 앉아 저녁식사를 했다. 그들은 보리밥과 삶은 감자를 먹고 검은 된장에 시든 고추를 찍어 먹었다.  

 

난장이는 지섭에게 받은일만 년 후의 세계라는 책을 읽었다. 지섭은 개천 건너 밝고 깨끗한 주택가 삼층집에 살았다. 그는 그 집에 사는 윤호라는 학생을 가르치는 가정교사였다. 난장이와 그는 서로 통하는 데가 있었다. 지섭은 난장이에게 달나라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그에 의하면 달나라에 세워질 천문대에서 일할 사람은 행복할 것이다. 그에게 달은 황금색의 별세계였다.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너무 끔찍하다. 지상에서는 시간을 터무니없이 낭비하고, 약속과 맹세는 깨지고, 기도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눈물도 보람없이 흘려야 하고, 마음은 억눌리고 희망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는 지상에서 우리가 기대할 것은 이제 없다고 말했다.

 

? 난장이가 물었다. 지섭은 말했다.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 이제 이 죽은 땅을 떠나야 됩니다. 떠나다니? 어디로? 달나라로! 난장이는 자신이 달에 가 천문대 일을 보게 될 날을 기다렸다. 지섭이 그를 위해 미국 휴스턴에 있는 존슨 우주 센터에 편지를 냈으니, 그곳 관리인 로스씨가 답장을 보내올 것이다. 그가 할 일은 망원 렌즈를 지키는 일이다. 달에는 먼지가 없기 때문에 렌즈를 소제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렌즈를 지켜야 할 사람은 필요할 것이다.

 

아버지, 도대체 그런 일이 가능할 것 같아요? 난장이의 큰아들 영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넌 이때까지 뭘 배웠니? 난장이는 지섭에게 말해서 쇠공을 쏘아올리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했었다.  철거계고장이 온 날, 난장이 부인은 아버지를 찾아보라고 아이들을 독촉했다. 영희는 아버지가 아까 아무 말 없이 나갔다고 말했다. 영수는 아버지가 보던 책을 읽고 있었다. 어머니의 불안한 음성이 높아졌다. 영호와 영희는 엉뚱한 곳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영수는 방죽가로 나가 곧장 하늘을 쳐다보았다. 벽돌공장 굴뚝 맨 꼭대기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아슬아슬한 굴뚝 맨 위에서 그는 종이 비행기를 날렸다.

 

 

달세계의 몰락과 난장이의 죽음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사람들은 그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그의 신장은 백십칠 센티미터, 체중은 삼십이킬로그램의 난장이였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다고 난장이 큰아들은 생각했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사람들은 신체적 결함이 주는 선입관에 사로잡혀 그가 늙는 것을 몰랐다. 그는 이제 힘든 일을 할 기력이 없었다. 그는 삼 년 반 전에 서커스단 일을 해보겠다고 처음 보는 꼽추 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 그러나 난장이 부인과 아이들은 난장이 아버지를 성토했다. 난장이의 꿈은 깨졌고, 그는 다시 무거운 부대를 메고 일을 찾아가야 했다. 난장이 아들딸은 차례로 학교를 그만두고 영수와 영호는 인쇄공장에서, 영희는 빵집점원으로 죽어라 일해야 했다.

 

동사무소 바깥 게시판에는 아파트 입주절차와 아파트 입주를 포기할 경우 탈 수 있는 이주보조금 액수 등이 적혀 있었다. 무허가건물들의 철거시한일자가 다가왔다. 시에서 아파트를 지어놓았다 하지만 그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아파트에 입주할 돈이 없었다. 동사무소 주위에는 주민들과 아파트 거간꾼들이 몰려 시장바닥과 같았다. 

 

난장이 부인은 대문 기둥에 붙어 있는 알루미늄 표찰을 떼기 위해 식칼로 못을 뽑았다. 무허가건물 번호가 새겨진 이 표찰은 아파트 입주자격을 증명해주는 표식이었다. 너희들이 놀게 되지만 않았어도 난 별 걱정을 안 했을 거다.

 

난장이 부인이 말했다. 영수와 영호는 사장에게 부당한 처사를 항의하다 다니던 공장에서 쫓겨났다. 사장이나 그의 참모들은 공원들에게 쓰는 여러 형태의 억압을 감추기 위해 종종 불황이란 말을 사용하곤 했다. 그렇지 않을 때는 힘껏 일한 다음 자기와 공원들이 함께 누리게 될 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희망은 공원들에게 아무 의미를 주지 못했다. 사장은 회사가 당면한 위기를 말했다. 경쟁사에게 지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공원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말이었다. 공장규모는 반대로 점점 커져서 활판윤전기를 들여오고, 자동접지기계를 들여오고, 옵셋윤전기를 들여왔다. 근무시간은 늘어나고 임금은 줄어들었다.

 

집이 무너지기 며칠 전, 영희가 어딘가로 없어졌다. 영희를 보았다는 사람은 마을 주정뱅이밖에 없었다. 주정뱅이는 비행접시를 탄 외계인들이 태워가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백여 채의 집이 헐리고 남은 것은 몇 채 안 되었다. 영희만 집을 나가지 않았다면 그들도 떠났을 것이다. 철거일을 어길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승용차 안의 사나이에게 이십오만 원에 입주권을 팔았다. 그날 밤 사나이는 그 동네의 나머지 입주권을 모두 사버렸다. 다른 투기업자들이 이십이만 원에 사는 것을 그는 이십오만 원씩 주고 샀다. 그날 밤에도 영희는 팬지꽃 앞에 앉아 기타를 쳤다. 난장이 부인은 소중하게 싸두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그에게 넘겨주었다. 식칼 자국이 난 표찰, 철거 계고장, 인감 증명 두 통, 명의 변경 신청서, 주민등록등본 두 통. 마당가 팬지꽃 앞에 앉아 있던 영희가 고개를 숙였다. 사나이가 돈을 내밀었다. 난장이 부인은 두 손으로 돈을 받아들었다.

 

영호는 주정뱅이가 비행접시를 보았다는 방죽가 풀섶에 엎드려 마지막 밤을 새웠다. 주정뱅이의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찾아나설 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날 밤 지섭이 손에 쇠고기를 들고 찾아왔다. 영희가 없는 가운데 지섭과 난장이네 식구들은 고깃국을 끓이고 고기를 구워 식사를 했다. 동사무소 근처에서 쇠망치를 든 사람들이 난장이네 집을 향해 오고 있었다. 영호가 대문을 잠갔다.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꼼짝도 않고 식사를 했다. 사람들이 난장이네의 시멘트 담을 쳐부수었다. 그래도 말없이 식사를 계속했다. 사람들은 뿌연 시멘트 먼지 저쪽에 서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식사를 마치고 영수와 영호는 난장이 부인이 싸놓은 짐을 하나하나 밖으로 끌어냈다. 마지막으로 난장이 아버지가 공구들이 들어 있는 부대를 메고 나오자 쇠망치를 든 사람들이 집을 쳐부수기 시작했다. 집은 금새 내려앉았다. 쇠망치를 든 사람들 앞에 쇠망치 대신 종이와 볼펜을 든 사나이가 서 있었다. 지섭이 그 사나이를 주먹으로 쳤다. 다음엔 사람들이 지섭에게 달려들어 한꺼번에 치고, 받고 밟았다. 잠시 후 지섭은 땅에 죽은 듯 쓰러져 있었다. 그들은 지섭을 끌고 갔다. 난장이는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작은 그림자도 그를 따라갔다. 영호는 부서진 대문 한 짝을 끌어내어 그 위에서 햇살을 등에 느끼며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그는 햇살 속에서 꿈을 꾸었다. 영희가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 속에 던져넣고 있었다.

 

그때 영희는 영동에 있는 사나이의 아파트에 있었다. 영희네 입주권을 사간 그 사나이였다. 영희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영희는 약병의 뚜껑을 열고 수건을 대어 흔들어 그 수건으로 그의 입과 코를 가볍게 누르고 속으로 열을 세었다. 처음 일이 떠올랐다. 그는 나이든 사람이 매매 계약서를 쓰는 동안 영희 옆에 서 있었다. 그는 돌아서 나가면서 바른손을 내려 영희의 가슴 쪽을 살짝 건드렸다. 영희는 울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영희는 방죽가 골목길을 빠져 동사무소 앞으로 가서 게시판 앞에 세워져 있는 그의 승용차 앞에 서서 그를 기다렸다. 그는 영희를 보자 우뚝 섰다. 나이든 사람이 검은 가방을 넘겨주자 그는 그의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영희를 향해 걸어왔다. 그의 검은 가방 안에는 난장이네 집 문서가 있었다. 영희는 그의 차에 올라타서 그와 함께 갔다.

 

그는 영희에게 친절하게 해주었다. 그는 영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날마다 주택에 관한 신문 기사를 오려 스크랩북에 옮겨 붙이는 게 일이었다. 그는 스물 아홉에 못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재개발 지구의 표를 거의 몰아 사들이다시피 했다. 그의 집은 부자였다. 그는 아버지 회사로 들어가 더 큰 일을 하기 위해 지금 작은 훈련을 하는데 지나지 않았다. 그는 난장이네 동네에서 사온 아파트 입주권을 사십오만 원에 팔았다. 그는 자라면서 더욱 강해졌지만 난장이네 아들딸은 자라면서 반대로 약해졌다. 그는 원하고 또 원했다. 영희는 밤마다 알몸으로 잤다.

 

영희는 그가 잠든 새 그의 금고 번호를 알아내서 거기서 자기네 것을 꺼냈다. 영희는 택시를 타고 행복동 동사무소에 가서 표찰과 철거 계고장을 주고 철거 확인증을 받았다. 직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무언가 영희에게 말하고 싶어했다. 건설계원이 집이 이사간 건 아느냐고 물었다. 큰길 건너 포도밭 아랫동네 위에서 세 번째 집에 사는 윤신애 아주머니를 찾아가면 그 아주머니가 다 말씀해주실 거라고 했다. 영희는 다시 택시를 잡아 타고 구청 주택과에 가서 철거 확인증을 내주고 입주 신청을 하고, 다시 주택공사에 가서 임대 신청을 했다.

 

일을 다 끝내고 영희는 아픈 몸을 이끌고 간신히 신애 아주머니네 집까지 갔다. 아주머니와 아주머니의 딸은 영희를 안아다 방에 눕혔다. 아주머니가 말했다. 네가 집을 나가구 식구들이 얼마나 찾았는지 아니? 너는 둘째치구 이번엔 아버지가 어딜 가셨는지 모르게 됐었단다. 성남으로 가야 하는데 아버지가 안 계셨어. 길게 얘길 해 뭘 하겠니. 아버지는 돌아가셨어. 벽돌 공장 굴뚝을 허는 날 알았단다. 굴뚝 속으로 떨어져 돌아가신 아버지를 철거반 사람들이 발견했어.

 

영희는 일어날 수도 숨을 쉴 수도 없었다. 까만 쇠공이 머리 위 하늘을 일직선으로 가르며 날아갔다. 영희는 아버지가 벽돌 공장 굴뚝 위에 서서 손을 들어 보이는 것을 보았다. 아아아아아아아 하는 울음이 느리게 그녀의 목을 타고 올라왔다.

 

 

은강 노동 가족의 최저생존비

네 명의 가족을 둔 그해 도시 근로자의 최저 이론 생계비는 팔만삼천사백팔십 원이었다. 어머니가 확인한 삼남매의 수입 총액은 팔만이백삼십일 원이었다. 그러나 보험료, 국민저축, 상조회비, 노동조합비, 후생비, 식비 등을 제하고 어머니 손에 온 돈은 육만이천삼백오십일 원밖에 안 되었다. 이 돈을 벌어오기 위해 우리는 죽어라 일했고 어머니는 늘 불안해했다.

 

죽은 난장이의 아들딸은 은강시에서 일하고 있었다. 은강은 크고 그 안은 복잡하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서해 반도에 있고, 면적은 백구십육 제곱킬로미터, 인구는 팔십일만 명이다. 우리 나라의 주요 도시와 비교해보면 면적도 넓고 인구도 알맞은 편이지만, 은강 사람들은 자기네 도시를 두고 갑갑하다고 이야기했다. 은강은 역사에 전례가 없는 생물학적 악조건 속에서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었다.

 

난장이의 아들딸이 거기서 일하고 거기서 생활한다. 은강에 도착한 난장이의 큰아들 영수는 도착한 첫날  일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은강자동차에 들어가던 날 일곱 명의 조립공이 아무 잘못 없이 쫓겨났다. 은강의 노조는 사용자를 위해 일하고 있었다. 은강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서울에 있었다. 그의 꿈은 새로운 노조를 만드는 것이었다. 난장이의 큰아들은 은강에 가 일하기 시작한 이후 수없이 울었다. 협박도 수없이 받고, 폭행도 당했고, 병원에도 입원했었고, 구류까지 살았다.

영희는 영수에게 독일 하스트로 호수 근처에 있다는 릴리푸트읍 이야기를 하곤 했다. 릴리푸트읍은 국제 난장이 마을이다. 여러 나라의 난장이들이 그곳에 모여 살고 있다. 난장이들에게 릴리푸트 읍처럼 안전한 곳은 없다. 집과 가구는 물론이고, 일상생활용품의 크기가 난장이들에게 맞도록 만들어져 있다. 여러 나라에서 모인 난장이들은 세계를 자기들에게 맞도록 축소시켰다. 그들은 투표를 해서 마리안느 사르를 읍장으로 뽑았다. 여자 읍장의 키는 일미터이다. 해결해야 될 몇 가지 문제점이 있지만 우리는 극히 행복하다고 마리안느 사르 읍장은 말했다.

 

행복이라고 영희는 썼다. 영희는 돌아간 아버지를 생각하고 눈에 눈물이 괴었다. 릴리푸트 읍 같은 곳에서 아버지는 살았어야 했다. 타살당한 아버지라는 말을 영호가 했었다. 영수는 영호의 말을 막을 수 없었다. 은강 생활 초기에 영수는 아버지 꿈을 자주 꾸었다. 아버지 키는 오십 센티미터밖에 안 되어 보였는데, 작은아버지가 아주 큰 푸른 놋수저를 끌어가고 있었다. 지친 아버지는 키보다 큰 수저를 놓고 쉬었다. 쉬다가 그 수저 안으로 들어가 누워 잠을 잤다. 아버지의 몸은 불볕을 받아 뜨거운 놋수저 안에서 오므라들었다. 영수는 울면서 아버지의 놋수저를 잡아 흔들었다.

 

난장이네 남은 식구들은 살기 위해 은강에 왔다. 아버지의 몸은 화장터에서 반 줌의 재로 분해되었다. 아버지의 죽음이 그들의 생명 활동의 양식에 변화를 주었다. 은강으로 온 그들은 호흡까지 조심스럽게 했다. 은강은 릴리푸트 읍과는 전혀 다른 도시였다. 모든 생명체가 고통을 받는 땅이었다.

 

영호가 먼저 은강전기 제일 공장에 들어갔다. 영희는 은강방직 공장에 들어갔다. 영수는 은강자동차에 들어갔다. 삼남매가 똑같이 은강 그룹 계열 회사의 공장에 훈련공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큰 공장 안에서 기계를 돌려 일하는 수많은 공원들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그것도 아직, 기술을 익히지 못한 훈련공이었다. 영수는 한 달이 채 못 되어 권총 모양의 손드릴을 받았다. 그가 하는 일은 승용차 시트 뒤에 달려 있는 트렁크에 구멍을 뚫고 십자나사못을 틀어넣는 것이었다. 그는 권총 모양의 두 가지 공구를 사용했기 때문에 쌍권총의 사나이로 불렸다. 그는 나사못과 고무 바킹을 한입 가득 물고 일했다. 그는 혓바늘이 빨갛게 돋고, 입에서는 고무 냄새와 쇠 냄새가 나서 점심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점심 식사는 날마다 보리가 더 많아 푸석한 밥에 시래기와 꽁치를 넣어 끓인 국과 허연 김치 몇 조각뿐이었다.

 

영희는 생산부 직포과에서 일했다. 영희는 일 분에 백이십 걸음을 뛰듯 걸으며 기계의 죽은 틀을 살리고, 이상 작업을 하는 틀에서는 관사를 풀어 이어 정상으로 돌렸다. 영희에게 주어지는 점심 시간은 십오 분밖에 안되었다. 영희는 시간에 쫒겨 허겁지겁 먹고 다시 현장으로 달려 들어가 직기 사이를 뛰듯 걸었다. 작업장의 실내 온도는 섭씨 삼십구 도였고, 작업장의 소음은 90데시벨이 넘었다. 영희는 일이 끝나면 노동자 교회에 갔다. 목사는 더러운 옷을 입고 오목 렌즈를 통해 아이들을 보았다. 영희는 공원들 틈에 끼어 앉아 노래를 불렀다.

 

영수는 두 번째 월급을 탄 날 노동조합 사무실로 지부장을 만나러 갔다. 임금이 부당하다고 노동조합 지부장에게 항의하면서, 그는 오려두었던 신문 기사를 내밀었다. 은강그룹의 회장이 사회 복지를 위해 해마다 20억원을 내놓겠다는 기사였다. 그 돈은 조합원들의 것이었다. 아무도 일한 만큼 받지 못하고 있으니, 그들이 받아야 할 정당한 액수에서 깎여진 돈도 그 20억원에 포함되는 것이다. 그후 사흘 동안 그는 회사로부터 은근한 압력을 받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의 음모를 알아차리고 해고자 명단이나 블랙 리스트에 이름이 오르기 전에 은강자동차에서 나와 은강방직으로 옮겼다. 

당시 그들 어머니의 가계부에는 콩나물 50, 왜간장 120, 두통약 100, 두부 80…… 이런 내역들로 꽉 차 있었다. 은강에서 받는 그들의 임금은 생활비가 아니라 살아 남기 위한 생존비였다. 그들 남매는 죽어라 공장 일을 했지만, 그들의 생산 공헌도에 못 미치는 돈을 받았다. 그해 도시 근로자의 최저이론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돈이었다. 그 돈을 받아오기 위해 그들은 죽어라 일했고 그들의 어머니는 늘 불안해했다. 결국 영수는 영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릴리푸트 읍에서는 이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영수는 또 하나의 릴리푸트 읍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미나리아재비꽃줄기에 사랑이 머무는 세상

아버지가 꿈꾼 세상에서 강요되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 사랑으로 비를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루고,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꽃줄기에까지 머물게 한다.

 

영수는 아버지가 꿈꾼 세상보다 단순한 세상을 그렸다. 아버지가 꿈꾼 세상은 모두에게 할 일을 주고, 일한 대가로 먹고 입고, 누구나 다 자식을 공부시키며 이웃을 사랑하는 세계였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네 집에는 햇빛도 가려버리고, 바람도 막아버리고, 전깃줄도 잘라버리고, 수도선도 끊어버린다. 아버지가 꿈꾼 세상에서는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 사랑으로 비를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루고,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꽃줄기에까지 머물게 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린 세상도 법을 가져야 한다면 이 세계와 다를 것이 없을 뿐 이상 사회는 아니었다. 영수가 그린 세상에서는 아버지가 꿈꾼 세상에서처럼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을 벌하기 위한 법률같은 것이 없이 누구나 자유로운 이성에 의해 살아갈 수 있었다. 교육의 수단을 이용해 누구나 고귀한 사랑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 영수의 생각이었다.

 

그도 아버지처럼 사랑에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은강시는 머릿속 이상 사회와 너무나 달랐다. 은강에서 영수는 일만 할 수 없었다. 그들 삼남매는 공장에 나가 죽어라 일했으나 남는 것은 없었다. 그들만이 아니라 은강 노동자들은 똑같은 생활을 했다. 좋지 못한 음식을 먹고 좋지 못한 옷을 입고,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오염된 환경, 더러운 동네, 더러운 집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은강에 온 후 계속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호흡 장애, 기침, 구토 증상도 자주 일으켰다. 영희는 청력 장애를 일으켰다. 직포와 작업 현장의 소음이 영희를 괴롭혔다.

 

한편 은강방직 노조는 조용히 침몰해가고 있었다. 사라진 노동조합 지부장은 공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회사측에서는 부지부장을 새 지부장으로 선출하게 했다. 회사측은 조합이 아주 알맞게 힘을 잃었다고 믿었다. 영희가 새 지부장 영이를 영수에게 데리고 왔다. 똑똑하고 예쁜 아이였다. 영수가 하는 이야기를 영이는 빨리 알아들었다. 영수는 영이가 근로자측 대표위원으로 사용자에게 할 말을 하나하나 기록해나갔다. 영이는 영수와 함께 토론하고 검토하여 만든 작은 노트를 들고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회의는 사용자측의 일방적인 몰이해와 노조측에 대한 공세로 끝맺었다. 영수는 그날 밤 아버지가 그린 세상을 다시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기로 했다.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을 벌하기 위해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믿었던 아버지가 옳았다. 모두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예외란 있을 수 없었다. 은강에서는 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조합 활동에 깊게 관여한 근로자들의 취업기회를 봉쇄하기 위해 은강 공장의 사용자들이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영수 이름이 올랐다. 사용자들에게 영수는 작은 악마로 보였다. 그들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노동자 교회의 목사였다. 일종의 의식화교육으로, 영수의 머리에 발전기를 설치한 이가 바로 그였다. 영수는 그가 마련한 여섯 달 과정의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많은 것을 배웠다. 목사는 그들의 교육을 위해 과학자를 부르고는 했다. 과학자는 매주 일요일 오후에 와서 기술과학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노동자 교회의 교육을 받은 직후 영수는 다시 은강대학 부설 노동문제연구원에 나갔다. 3주의 교육을 받기 위해 3주 내내 밤일을 해야 했다. 그때 남쪽 공업 단지에서 일하는 한 사나이가 영수를 만나러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여러 공장에서 일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그가 가는 곳마다 조합이 생기고, 조합원들은 경영주의 이윤을 덜어 나눈다고 했다. 그가 노동자 교회에 도착해 영수를 기다린다는 전갈을 받고 달려가서야, 그가 지섭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눈 밑에 상처가 있었고 코뼈도 약간 내려앉았으며 약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이 뭉툭 잘려져 있었다.

 

은강에 온 지섭은 여러 가지 면에서 목사, 과학자와 비슷한 사람이었으나, 그 자신이 바로 노동자였다는 점이 달랐다. 영수가 은강 공장에 나가며 겪은 일은 그가 여러 공장에서 겪은 일들 중에서도 아주 작은 어느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영수에게 그가 안 해도 할 사람이 있는 일을 그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수가 해야 할 일은 현장을 지키는 일이라고 했다. 현장 안에서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오히려 이야기해줘야 알 사람이 있는 바깥에 나가서 눈을 떴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했다. 그는 노동자 교회에 모인 은강 근로자들을 위해 한 시간 반 정도의 강연을 했다. 모두 감명을 받았다. 그가 강연을 하는 동안 영희는 내내 울고 있었다. 지섭이 떠나던 날, 그들은 작업 때문에 지섭을 배웅할 수 없었다.

 

지섭의 갑작스런 방문은 영수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다. 그걸 알아차린 과학자는 그에게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병을 보여주었다. 대롱 벽에 구멍을 뚫어 한쪽 끝을 그 구멍에 넣어 만든 이 병을 그는 클라인씨의 병이라고 했다. 안팎이 없는데 닫힌 공간이 있었다. 그날 영수는 이 병을 왜 나에게 보여주느냐고 물었다. 과학자는 병을 완성한 순간에 네가 왔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영수에게는 우연 같지가 않았다.

 

어머니는 영수 때문에 불안해했다. 어머니는 은강에서 큰아들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영수를 불러 말했다. 아주 나쁜 꿈을 꾸었단다. 네가 잡혀가는 꿈을 꾸었어. 네가 서울 본사로 올라가 높은 사람을 죽였다는 거야. 끔찍한 꿈을 꾸었지, 끔직한 꿈을. 영수는 어머니에게 걱정하시지 말라고 했다.

 

영수는 회사의 높은 사람들이 우리 모두가 한 배에 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주기를 바랐다. 그들은 그들만의 다른 배를 탔다고 고집했고, 일방적으로 원하기만 했다. 어느 날 영수는 과학자를 찾아갔다. 클라인씨의 병은 그의 창가에 놓여 있었다. 그는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이 병은 안팎이 없기 때문에 내부를 막았다고 할 수 없었다. 여기서 갇힌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한 떼의 고기들이 내 그물을 향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살찐 고기들이 아니었다. 앙상한 뼈와 가시에 두 눈과 가슴지느러미만 단 큰가시고기들이었다. 그것들이 그물코에서 빠져나와 수천 수만 줄기의 인광을 뿜어내며 나에게 뛰어올랐다. 가시가 몸에 닿을 때마다 나의 살갗은 찢어졌다. 그렇게 가리가리 찢기는 아픔 속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다 깼다.

 

경훈이 아직 잠을 덜 깬 채 침대에 누워 있을 때, 그의 숙모와 사촌이 변호사를 데리고 새벽 같이 찾아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직도 그들 방에서 자고 있었다. 그의 사촌은 숙부가 돌아갔을 때 미국에 있었다. 그는 은강에서 올라온 젊은이가 왜 날카로운 칼을 뽑아 살인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사람들에게 묻고는 했다. 그는 그의 아버지를 죽인 자의 계획 살인을 정당 방위라고 우겨 주위 사람들을 갑갑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노동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고 그는 말했었다. 한국 섬유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이 19센트라고 했을 때 사촌은 그들이 우리 제품의 수입을 규제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은강방직에서 올라온 젊은이가 칼을 뺀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이었다. 우리는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현실에 의해 한 차원을 빼앗긴 그들은 2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그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갑갑한 사람이라고 경훈은 생각했다.

 

아버지의 비서가 숙모의 변호사를 내쫓았다. 아버지는 숙모를 무시한 채 사촌에게 공부를 끝내고 와 숙부가 하던 일을 물려받을 사람은 너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숙모가 손아래 남자와 엉뚱한 일을 저지른 현장을 찍은 사진을 넘겨주며 말 한마디 못하게 했다. 면담은 간단히 끝났다. 경훈은 멀지 않은 장래에 형들과 사촌과 함께 일하게 될 것이다. 경훈은 어려서부터 친형 둘을 무서워했다. 둘다 머리도 좋고 힘도 세었다. 경훈은 언제나 그들에게 지기만 했다. 형들이 집을 떠나 있는 동안 그는 아버지의 인정을 받아두어야 한다고 믿었다. 사촌은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는 약한 사람이었다.

 

사흘 후, 법정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경훈이 지나갈 때 공원들은 꼼짝않고 서서 보기만 했다. 그는 매점 공중 전화기 앞에 서 있는 두 여공에게 다가가 피고인의 아버지가 난장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밤일을 하느라고 잠을 못 잔 듯한 두 여공은 핏발이 선 눈으로 경훈를 쳐다보았다. 그 중 한 아이가, 잠시 후에 판결을 받을 피고인의 아버지는 사실은 굉장히 큰 거인이었다고 단숨에 말했다. 누렇고 모가 진 얼굴에 유난히 눈만 살아 움직이는 아이들이 경훈을 둘러싸고 적의와 반감을 나타내는 짧은 노래를 불렀다.

 

우리 회장님은

마음도 좋지.

거스름돈을 쓸어

임금을 준대.

 

경훈는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경훈은 얼굴도 모르는 난장이를 생각했다. 그는 자식들의 작은 잘못도 결코 용서하지 않고, 잘 때리고, 벌도 심한 것으로 골라 주고, 아이들에게는 잠을 안 자는 독재자였을 것이다. 그가 죽었기 때문에 그의 큰아들은 공격 목표를 잃고 숙부를 죽였을 것이다. 그때 법원에 오는 사촌을 잡고 이런 생각을 말했지만, 그의 사촌은 듣지도 않고 손을 저으며 간단하게, 아니라고, 네가 틀렸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의 아버지들이 이들을 괴롭혔다고 말했다. 인간을 위해 일한다면서 인간을 소외시켰다고 했다. 경훈은 우리가 공장을 지어주고, 일을 주고, 돈을 주어서, 제일 혜택을 입은 게 바로 이들이라고 말했다. 사촌은 웃었다.

 

검사의 질문에 난장이의 큰아들은 뉘우치는 빛 하나 없이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는 아버지를 살해할 마음으로 와 아버지를 너무나 닮았던 숙부를 아버지로 잘못 알고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변호사는 그를 변호하면서 그가 우발적으로 살의를 품게 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난장이의 큰아들은 머리를 떨어뜨렸다. 몇몇 여공들이 참지 못하고 울음소리를 내었다. 마침내 난장이의 큰아들은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것은 우발적인 살의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인간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왜 그 따윌 생각해야 된단 말인가. 경훈은 이렇게 생각했다. 아버지는 그런 것 말고도 계획하고, 결정하고, 지시하고, 확인할 게 수도 없이 많은 바쁜 사람이다. 그들은 우리가 남다른 노력과 자본, 경영, 경쟁, 독점을 통해 누리는 생존을 공박하고, 저희들은 무서운 독물에 중독되어 서서히 죽어간다고 단정한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모든 사람이 함께 웃는 불가능한 이상 사회가 들어 있다. 증인으로 나온 한지섭도 같은 류의 인간이다. 그는 손가락이 여덟 개밖에 안 된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이 세상 최고의 악당은 반대로 우리다. 지섭은 난장이의 큰아들이 상대한 것은 어떤 계층집단이 아니라 바로 인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와 난장이의 큰아들이 처음부터 일깨워 분명히 해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노동자와 사용자는 다 같은 하나의 생산자이지 이해를 달리하는 두 등급의 집단은 아니라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정작 선고 공판 때 그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경훈이 공판을 보고 집으로 돌아갈 때 거리는 여전히 불볕더위였다. 그는 집에 닿자마자 샤워부터 했다. 법정 방청석을 메웠던 공원들이 풍긴 너무 더러운 냄새가 자신에게 옮겨왔다고 생각했다. 그의 어머니가 재판은 어떻게 됐는가고 물었다. 경훈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말씀드렸다. 그는 이번 일들로 해서 매우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공장 노동자들이 행복한 마음을 갖고 일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약을 쓰면 돼요. 약이라니? 그들이 행복한 마음으로 일만 하게 하는 약을 만드는 거예요. 그들어 공장에서 먹는 밥이나 음료수에 넣어야죠.

 

경훈은 어머니가 애국 부녀 봉사회의 불우 이웃 돕기 모금 집회에 나가고 나서 침대에 누워 책을 읽었다. 아버지가 돌아올 때까지 경제사를 읽을 참이었다. 그는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고, 깨기 직전에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물을 쳤는데 살찐 고기가 아니라 앙상한 뼈와 가시에 두 눈과 가슴지느러미만 단 큰가시고기들이 몰려왔다. 그 가시고기들은 경훈에게 뛰어올라 그의 살갗을 가리가리 찢어놓았다. 그는 살려달라고 외치며 깼다. 그때 아버지의 승용차가 이팝나무숲을 끼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가 약하다는 걸 알면 아버지는 제일 먼저 그를 제쳐놓을 것이다. 사랑으로 얻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밝고 큰 목소리로 떠들 말들을 떠올리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난장이가 상징하는 것: 산업 사회의 난장이성, 혹은 불구성

조세희가 난장이를 말한 이래, 난장이는 70년대 한국 사회와 경제의 생산과 소비 및 분배구조에서 억압받고 소외받는 계층을 표상하는 전형적 인물을 상징해왔다. 경제생활이 인간 생활을 대표하는 산업사회에서, 자신의 노동으로 일궈낸 경제적 이윤으로부터 정작 자신들은 소외된 채, 열악한 환경조건과 저임금 가운데 사는 노동자계층을 물리적,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것이 바로 난장이다. 따라서 난장이는 그런 계층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구조의 모순을 폭로한다.

 

우리들의 난장이는 키 백십칠 센티미터에 몸무게가 삼십이 킬로그램밖에 안 되는, 누가 보아도 분명한 난장이다. 그러나 난쏘공의 영수는, 사람들은 아버지가 난장이라는 것을 아는 것 말고는 모두 틀렸다고 단언한다. 영수는 할 수만 있었다면 아버지더러 난장이라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도 난장이와 다를 것이 없다고 말했을 것이다.

 

난쏘공의 세계는 안과 밖의 구별이 없는 세계를 이상사회로 보고 있다. 뫼비우스의 띠나 클라인씨의 병이 상징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라는 것이다. 세계는 안이 밖이고 밖이 곧 안인 클라인씨병 같아서, 그 안에서는 갇혔다는 것 자체가 착각이다. 즉 난장이가 꿈을 잃고 벽돌공장 굴뚝에서 떨어져 죽을 때, 거인이라고 해서 자기 집 정원에 높은 담을 쌓아놓고 그 안에서 안전하게 먹고 마실 수는 없으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을 때 한 아이의 얼굴만 깨끗하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세상은 모두 한 편이 되면서 마비되는 것이다.

 

조세희난쏘공 이후에도 시간여행이라는 단편집에서 난장이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한다. 이 단편집에는 난쏘공에 나왔던 등장인물인 영희, 경우(영수가 죽인 은강그룹 간부의 아들, 경훈의 사촌), 윤호, 신애 등의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난장이와 난장이 큰아들 영수가 죽고 난 후, 그 뒤에 살아 남은 사람들이다. 시간여행 속의 난장이 마을의 유리병정편에는 난장이의 딸인 영희가 난장이 아버지와 큰오빠 영수가 한 일에 대해 평가하고 있는 구절이 있다.

 

행복동에서 우리를 지키기 위해 싸운 병사가 아버지였다는 생각 오빠는 안 들어? 아버지는 작고 투명한 유리병정이었어. 누구나 아버지 속을 환히 들여다볼 수 있었지. 약한 아버지는 무엇 하나 숨길 수도 없었어. 하루하루의 싸움에서 유리병정은 후퇴만 했어. 어느 날, 더 이상 후퇴해 디딜 땅이 없다는 걸 작고 투명한 유리병정은 알았어. 유리병정은 쓰러지고 깨어져 피를 흘렸어. 그렇게 작고 그렇게 투명한 몸 어디에 그것이 있었을까. 큰오빠도 아버지와 같은 유리병정이었어. 난 알아. 큰오빠는 후퇴를 하지 않았어. 큰오빠 이야기를 난 길게 하래도 못 하겠어. ……뜨거운 무엇이 내 목을 막아.” (난장이 마을의 유리병정 중에서)

 

결국 살아남은 이들 역시 난장이 마을의 사람들이었고, 이들을 지키기 위해 난쏘공에서는 유리병정 둘을 희생시켰던 것이다. 조세희난쏘공 이후에도 난장이 이야기를 그치지 못한 것을 사랑이고 희망인 난장이를 죽인 작가적 양심의 소리 때문이라고 쓰고 있다(연극, 시간여행).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작가의 짧은 호흡이나 시대적 상황을 탓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이유야 어찌 됐든 우리가 난쏘공을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 그것이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거부감 없이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소중한 자산이 되어줄 것이다.

 

 

 

환상적 리얼리즘이 담아내는 현실과 꿈 사이

조세희는 자기 문학의 뿌리를 백설공주어린 왕자와 같은 동화에서 찾는다. 거기 그려진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꿈이 자신을 작가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습작 시절 영향을 준 작가는 사르트르를 비롯한 참여파들이었고, 형식에 있어서는 헤밍웨이의 하드보일드 스타일, 독일의 볼프강 보르헤르트나 하인리히 뵐과 같은 전후문학의 짧은 문장들, 영화로 치자면 흑백영화 같은, 전쟁의 상처를 빼어나게 그린 것들, 또 포크너의 의식의 흐름과 카프카 소설의 독특한 분위기 등이 영향을 주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사실주의적인 내용을 비사실주의적인 수법으로 표현함으로써 우리 문학사에 소위 환상적 리얼리즘의 문을 연 대표적인 작가가 되었다. 리얼리즘이란 본디 현실의 실제적인 반영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이지만, 환상적 리얼리즘 수법은 현실의 불가해함을 뛰어넘어 환상과 현실이 접목되고 있는 지점에서 새로운 개연적 세계를 창조해낸다. 난쏘공에 나오는 달나라나 릴리푸트 읍 같은 세계는 한 축에서 전설의 세계를 이루고, 작가가 창조품인 기계도시 은강시는 다른 한 축에서 극단적인 비극적 현실 세계를 이루며 충돌한다. 여기서 리얼리즘이 더 빛을 발하는 것은 비극적 현실 세계의 축이 더 우세한 상태에서, 갈 수 없는 이상세계의 몰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실 난쏘공은 난장이가 이미 이상 세계를 안고 죽고 난 지점에서, 난장이 아들딸의 투쟁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비록 사랑과 희망 같은 이상이나, 달나라와 우주여행 같은 환상을 접목하고 있지만, 난장이가 바라던 세계, 곧 사랑이 가득한 세계는 단 한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었던 헛된 바람으로 나타날 뿐이다. 

 

난쏘공은 첫 장인 뫼비우스의 띠와 열 번째 장인 클라인 씨의 병에서 수학원리를 사용하여 안과 밖이 없고 내부와 외부의 구분이 없는 세계가 이상세계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풀어낸다. 사실 우리 모두는 한배에 타고 있는데 그것을 억지로 나누어 논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 수학원리를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것 또한 구체적인 현실을 추상적인 이론과 대비시킴으로써 환상적인 효과를 자아내는 데 일조하고 있다. 난쏘공이 환상적 분위기를 성공적으로 발산해내는 것은 곳곳에 깔린 이런 장치들과 관습적인 소설의 기법을 추종하지 않는 조세희의 자유로운 서술 덕분이다.

 

난쏘공 연작 형식의 효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75년부터 78년까지 3년에 걸쳐 발표된 12편의 작품을 연작 형식으로 묶어놓은 것이다. 짧은 단편 형식은 서사인 난쏘공이 사뭇 서정적인 분위기를 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시점의 전환이 자유롭고, 서술 시간이 과거와 현재로 오가는 것이 설명없이 자유로운 것은 장편의 긴 호흡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단편 형식을 통해 조세희는 현실을 여러 측면에서 바라보고 조명할 수 있었다.

 

12편의 시리즈에서 작가의 눈으로 보고 말하는 작품은 뫼비우스의 띠에필로그 단 두 편이고, 나머지는 각각 다른 인물들의 시선과 생각으로 서술되고 있다. 칼날육교 위에서는 신애라는 중산층의 중년 주부의 시선으로, 우주여행궤도회전은 윤호라는 삼수생 인물의 생각을 중심으로, 그들의 잃어버린 이상이나 난장이 가족과 관련되었던 자신의 일들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인물들은 난장이 이야기와 직접적인 관련성을 갖고 있지는 않다. 특히 육교 위에서와 같은 작품에는 난장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 작품들은 다른 세계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다른 세계의 시선으로 난장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가 되기도 한다.

 

그 가장 극심한 예를 바로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는 회장 아들인 경훈이 화자가 되어 난장이 큰아들인 영수가 재판받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가 보여주는 계층 간의 불화와 몰이해는 상당히 골이 깊다. 경훈은 영수를 무서운 악당이라고 생각하고 영수가 속한 그룹의 사람들을 피해의식을 가진 열등생 정도로 취급한다. 그는 자신이 속한 계층을 꼬박꼬박 우리라 지칭하면서 그들우리 사이에 분명한 금을 그어 놓는다. 프랑스의 마지막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가 굶주린 백성들에게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라고 말했다던 것처럼, 그는 공장노동자들이 행복한 마음으로 일하게 하려면 행복한 마음이 들게 하는 약을 만들어 먹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작품들보다 산업사회의 모순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물론 직접 노동현장에 있는 난장이의 아들 영수의 시선으로 서술된 작품들이다. 역시 가장 많은 작품이 그의 목소리에 할애되어 있다. 연작집의 제목과 같은 난쏘공을 비롯해서, 은강노동가족의 생계비,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클라인씨의 병이 영수를 로 하여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 연작집의 서사의 바탕을 이루는 핵심적인 이야기는 당연히 난쏘공이다. 여기서 이야기된 난장이 아버지와 그의 죽음은 다른 작품들에서 수시로 반복해서 삽입되고 있다.

 

이 작품집은 난장이에 대한 이야기지만 실상 난장이의 목소리로 서술된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간간이 영수와 영호와 영희의 회상 속에서 슬픈 아버지의 목소리로 울릴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책을 덮을 때 분명히 우리는 난장이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누구나 한번 피 마르게 아파서 소리지르는 때가 있는데, 그 진실한 절규를 모은 게 역사요, 그 자신이 너무 아파서 지른 간절하고 피맺힌 절규가 난쏘공이었다고 조세희는 말한다. 긴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 난장이의 소리에 젊은이들이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난쏘공이 시대문제의 핵심, 인간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갔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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