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한국문학

김동인 - 감자

삼생지연 2020. 11. 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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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김동인 지음


 무슨 이야기일까?    

복녀        엄한 규율이 남아 있는 집안에서 자라 도덕에 대한 저픔(두려움)을 가졌던 인물이다. 결혼 후 가난한 생활에 시달리면서 매춘의 길로 들어선다. 왕서방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복녀 남편 극도로 타락한 가부장 복녀보다 나이가 스무 살이나 많다. 자신의 마지막 재산인 팔 십 원을 주고 복녀를 사서 결혼했다. 

왕서방     복녀가 감자를 도둑질한 밭의 주인. 금전적인 대가를 지불하면서 복녀와 성관계를 맺는다. 나중에 새로 사온 처녀와 결혼한다. 



규칙 있게 자라난 복녀와 게으른 남편 


싸움, 간통, 살인, 도둑, 구걸, 징역, 이 세상의 모든 비극과 활극의 근원지인 칠성문 밖 빈민굴로 오기 전까지 복녀 부처는 농민이었다. 복녀는 원래 가난은 하지만 정직한 농가에서 규칙 있게 자라난 처녀였다. 이전 선비의 엄한 규율은 농민으로 떨어지자 없어졌다. 그러나 어딘지는 모르지만 딴 농민보다는 좀 똑똑하고 엄한 가율이 그의 집에 그냥 남아 있었다. 그 가운데서 자라난 복녀는 물론 다른 집 처녀들같이 여름에는 벌거벗고 개울에서 멱감고, 바짓바람으로 동네를 돌아다닌 것을 예사로 알기는 알았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막연하나마 도덕이라는 것에 대한 저픔(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열 다섯 살 나는 해에 동네 홀아비에게 팔십 원에 팔려서 시집이라는 것을 갔다. 그의 새서방이라는 사람은 그보다 이십 년이나 위로서 원래 아버지의 시대에는 상당한 농민으로 밭도 몇 마지기가 있었으나 그의 대로 내려오면서는 하나 둘 줄기 시작하여서 마지막에 복녀를 산 팔십 원이 그의 마지막 재산이었다. 그는 극도로 게으른 사람이었다. 동네 노인의 주선으로 소작밭깨나 얻어 주면 종자만 뿌려 둔 뒤에는 후치질도 안 하고 김도 안 매고 그냥 버려 두었다가는 가을에 가서는 되는대로 거두어서 ‘금년은 흉년입네.’하고 전주집에는 가져도안 가고 자기 혼자 먹어 버리곤 하였다. 그는 한 밭을 이태를 연하여 부쳐 본 일이 없었다. 이리하여 몇 해를 지내는 동안 그는 그 동네에서는 밭을 못 얻을 만큼 인심과 신용을 잃고 말았다. 


복녀가 시집 온 뒤 한 삼사 년은 장인의 덕으로 이럭저럭 지내갔으나 이전 선비의 꼬리인 장인도 차차 사위를 밉게 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처가에까지 신용을 잃고 말았다. 그들 부처는 여러 가지로 의논하다가 하릴없이 평양성 안으로 막벌이를 들어왔다. 그러나 게으른 그에게는 막벌이나마 역시 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지게를 지고 연광정에 가서 대동강만 내려다보고 있으니 어찌 막벌이인들 될까. 한 서너 달 막벌이를 하다가 그들은 요행 어떤 집 막간(행랑)살이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집에서도 얼마 안 하여 쫓겨나왔다. 복녀는 부지런히 주인집 일을 보았지만 남편의 게으름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매일 복녀는 눈에 칼을 세워 가지고 남편을 채근하였지만 그의 게으른 버릇은 개를 줄 수는 없었다.


“벳섬 좀 치워 달라우요.” “남 졸음 오는데, 님자 치우시관.” “내가 치우나요?” “이십 년이나 밥 처먹구 그걸 못 치워.” “에이구 칵 죽구나 말디.” “이년 뭘.” 이러한 싸움이 그치지 않다가 마침내, 그 집에서도 쫓겨나왔다. 이젠 어디로 가나? 그들은 하릴없이 칠성문 밖 빈민굴로 밀리어 오게 되었다.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의 거라지 생활


칠성문 밖을 한 부락으로 삼고 그 곳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의 정업은 거라지요, 부업으로는 도둑질과 (자기네끼리의) 매음, 그밖에 이 세상의 모든 무섭고 더러운 죄악이었다. 복녀도 그 정업으로 나섰다. 그러나 열 아홉 살의 한창 좋은 나이의 여편네에게 누가 밥인들 잘 줄까? 


“젊은 거이 거랑은 왜?” 그런 소릴 들을 때마다 그는 여러 가지 말로 남편이 병으로 죽어가거니 어쩌거니 말로 핑계는 대었지만 그런 핑계에는 단련된 평양 시민의 동정은 역시 살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 칠성문 밖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 가운데 드는 편이었다. 그 가운데서 잘 수입되는 삶은 하루에 오 리짜리 돈뿐으로 일 원 칠팔십 전의 현금을 쥐고 돌아오는 사람까지 있었다. 극단으로 나가서는 밤에 돈벌이 나갔던 사람은 그날 밤 사백여 원을 벌어 가지고 와서 그 근처에서 담배장사를 시작한 사람까지 있었다.


복녀는 열 아홉 살이었다. 얼굴도 그만하면 빤빤하였다. 그 동네 여인들의 보통 하는 일을 본받아서 그도 돈벌이 좀 잘하는 사람의 집에라도 간간 찾아가면 매일 오륙십 전은 벌 수 있었지만 선비의 집안에서 자라난 그는 그런 일은 할 수가 없었다. 그들 부처는 역시 가난하게 지냈다. 굶는 일도 흔히 있었다. 


기자묘 솔밭에서의 매음, 타락의 시작


기자묘 솔밭에 송충이가 끓었다. 그 때 평양부에서는 그 송충이를 잡는 데(은혜를 베푸는 뜻으로) 칠성문 밖 빈민굴의 여인들을 인부로 쓰게 되었다. 빈민굴 여인들은 모두 다 지원을 하였다. 그러나 뽑힌 것은 겨우 오십 명쯤이었다 복녀도 뽑힌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복녀는 열심으로 송충이를 잡았다. 소나무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는 송충이를 집게로 집어서 약물에 잡아넣고 또 그렇게 하고 그의 통은 잠깐 사이에 차고 하였다. 하루에 삼십 이 전씩의 품삯이 그의 손에 들어왔다. 


그러나 대엿새 하는 동안에 그는 이상한 현상을 하나 발견하였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젊은 여인 한 여남은 사람은 언제나 송충이는 안 잡고 아래서 지절거리며 웃고 날뛰기만 하고 있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놀고 있는 인부의 품삯은 일하는 사람의 삯전보다 팔 전이나 더 많이 내어 주는 것이다. 감독은 한 사람뿐이었는데 감독도 그들의 놀고 있는 것을 묵인할 뿐 아니라 때때로는 자기까지 섞여서 놀고 있었다.


어떤 날 송충이를 잡다가 점심 때가 되어서 나무에서 내려와서 점심을 먹고 다시 올라가려 할 때에 감독이 그를 찾았다. “복네! 얘 복네!” “왜 그릅네까?” 그는 약통과 집게를 놓고 뒤로 돌아섰다. “좀 오나라.‘ 그는 말없이 감독 앞에 갔다.  “얘, 너, 음…데 뒤 좀 가 보자.” “뭘 하례요?” “글쎄, 가야…” “가디요, 형님.” 그는 돌아서면서 인부들 모여 있는 데로 고함쳤다. “형님두 갑세다가례.” “싫다, 얘. 둘이서 재미나게 가는데, 내가 무슨 맛에 가갔니?” 복녀는 얼굴이 새빨갛게 되면서 감독에게로 돌아섰다. “가 보자.” 감독은 저편으로 갔다. 복녀는 머리를 수그리고 따라갔다. “복네 돟갔구나?” 뒤에서 이러한 조롱 소리가 들렸다. 복녀의 숙인 얼굴은 더욱 발갛게 되었다. 그 날부터 복녀도 ‘일 안하고 품삯 많이 받는 인부’의 한 사람으로 되었다.


복녀의 도덕관 내지 인생관은 그 때부터 변하였다. 그는 아직껏 딴 사내와 관계를 한다는 것을 생각하여 본 일도 없었다. 그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요, 짐승의 하는 짓쯤으로만 알고 있었다. 혹은 그런 일을 하면 탁 죽어지는지도 모를 일로 알았다. 그러나 이런 이상한 일이 어디 다시 있을까. 사람인 자기도 그런 일을 한 것을 보면 그것은 결코 사람으로 못할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일 안하고도 돈 더 받고, 긴장된 유쾌가 있고, 빌어먹는 것보다 점잖고…. 일본말로 하자면 ‘삼박자’, 갖은 좋은 일은 이것뿐이었었다. 이것이야말로 삶의 비결이 아닐까. 뿐만 아니라 이 일이 있은 뒤부터 근 처음으로 한 개 사람이 된 것 같은 자신까지 얻었다. 그 뒤부터는 그의 얼굴에는 조금씩 분도 바르게 되었다. 


일 년이 지났다. 그의 처세의 비결은 더욱더 순탄히 진척되었다. 그의 부처는 이제는 그리 궁하게 지내지는 않게 되었다. 그의 남편은 이것이 결국 좋은 일이라는 듯이 아랫목에 누워서 벌신벌신 웃고 있었다. 복녀의 얼굴은 더욱 예뻐졌다. “여보, 아즈바니. 오늘은 얼마나 벌었소?” 복녀는 돈 좀 많이 번듯한 거지를 보면 이렇게 찾는다. “오늘은 많이 못 벌었쉐다.” “얼마?”  “도무지 열 서너 냥.” “많이 벌었쉐다가래. 한 댓 냥 꿰 주소고레.” “오늘은 내가…” 어쩌고 어쩌고 하면, 복녀는 곧 뛰어가서 그의 팔에 늘어진다. “나한테 들킨 댐에는 뀌구야 말아요.” “난 원 아즈마니 만나믄 야단이더라. 자 꿰 주디. 그 대신 응? 알아 있디?” “난 몰라요. 해해해해.” “모르믄, 안 줄 테야.” “글쎄, 알았대두 그른다.” 그의 성격은 이만큼까지 진보되었다.

  


왕서방을 만남, 복녀의 타락의 심화

가을이 되었다. 칠성문 밖 빈민굴의 여인들은 가을이 되면 칠성문 밖에 있는 중국인의 채마밭에 감자(고구마)며 배추를 도둑질하려 밤에 바구니를 가지고 간다. 복녀도 감자깨나 잘 도둑질하여 왔다. 어떤 날 밤, 그는 고구마를 한 바구니 잘 도둑하여 가지고 이젠 돌아오려고 일어설 때에, 그의 뒤에 시꺼먼 그림자가 서서 그를 꽉 붙들었다. 보니 그것은 그 밭의 주인인 중국인 왕서방이었었다. 복녀는 말도 못하고 멀찐멀찐 발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 집에 가.” 왕서방은 이렇게 말하였다.  “가재믄 가디. 훤, 것두 못 갈까.” 그 뒤부터 왕서방은 무시로 복녀를 찾아왔다. 복녀는 엉덩이를 한 번 홱 두른 뒤에 머리를 젖히고 바구니를 저으면서 왕서방을 따라갔다. 


한 시간쯤 뒤에 그는 왕서방의 집에서 나왔다. 그가 밭고랑에서 길로 들어서려 할 때에 문득 뒤에서 누가 그를 찾았다. “복네 아니야?‘ 복녀는 홱 돌아서 보았다. 거기는 자기 곁집 여편네가 바구니를 끼고, 어두운 밭고랑을 더듬더듬 나오고 있었다. “형님이댔쉐까? 형님두 들어갔댔쉐까?” “님자두 들어갔댔나?” “형님은 뉘 집에?” “나? 눅(陸)서방네 집에. 님자는?” “난 왕서방네…. 형님 얼마 받았소?” “눅서방네 그 깍쟁이 놈, 배추 세 페기….” “난 삼 원 받았디.” 복녀는 자랑스러운 듯이 대답하였다. 


십 분쯤 뒤에 근 자기 남편과 그 앞에 돈 삼 원을 내어놓은 뒤에, 아까 그 왕서방의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있었다. 그 뒤부터 왕서방은 무시로 복녀를 찾아왔다. 한참 왕서방이 눈만 멀찐 멀찐 앉아 있으면 복녀의 남편은 눈치를 채고 밖으로 나간다. 왕서방이 돌아간 뒤에는 그들 부처는 일 원 혹은 이 원을 가운데 놓고 기뻐하고 하였다. 복녀는 차차 동네 거지들한테 애교를 파는 것을 중지하였다. 왕서방이 분주하여 못 올 때가 있으면 복녀는 스스로가 왕서방의 집까지 찾아갈 때도 있었다. 복녀의 부처는 이제 이 빈민굴의 한 부자였다. 



왕서방의 결혼과 복녀의 죽음

그 겨울도 가고 봄이 이르렀다. 그 때 왕서방은 돈 백 원으로 어떤 처녀를 하나 마누라로 사 오게 되었다. “흥!” 복녀는 다만 코웃음만 쳤다. “복녀, 강짜하갔구만.” 동네 여편네들이 이런 말을 하면, 복녀는 흥 하고 코웃음을 웃고 하였다. 내가 강짜를 해? 그는 늘 힘있게 부인하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 생기는 검은 그림자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놈 왕서방, 네 두고 보자.” 왕서방이 색시를 데려오는 날이 가까웠다. 왕서방은 아직껏 자랑하던 기다란 머리를 깎았다. 동시에 그것은 새색시의 의견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흥!” 복녀는 역시 코웃음만 쳤다. 


마침내 색시가 오는 날이 이르렀다. 칠보 단장에 사인교를 탄 색시가 칠성문 밖 채마밭 가운데 있는 왕서방의 집에 이르렀다. 밤이 깊도록 왕서방의 집에는 중국인들이 모여서 별한 악기를 뜯으며 별한 곡조로 노래하며 야단하였다. 복녀는 집 모퉁이에 숨어 서서 눈에 살기를 띠고 방안의 동정을 듣고 있었다. 다른 중국인들은 새벽 두 시쯤 하여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복녀는 왕서방의 집안에 들어갔다. 


복녀의 얼굴에는 분이 하얗게 발리어 있었다. 신랑 신부는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것을 무서운 눈으로 흘겨보면서, 그는 왕서방에게 가서 팔을 잡고 늘어졌다. 그의 입에서는 이상한 웃음이 흘렀다. “자, 우리 집으로 가요.” 왕서방은 아무 말도 못하였다. 눈만 정처 없이 두룩두룩 하였다. 복녀는 다시 한 번 왕서방을 흔들었다. “자, 어서.” “우리, 오늘밤 일이 있어 못 가.” “일은 밤중에 무슨 일.” “그래두, 우리 일이….” 복녀의 입에 아직껏 떠돌던 이상한 웃음은 문득 없어졌다. “이까짓 것.” 그는 발을 들어 치장한 신부의 이마를 찼다. “자, 가자우, 가자우.”


왕서방은 와들와들 떨었다. 왕서방은 복녀의 손을 뿌리쳤다. 복녀는 쓰러졌다. 그러나 곧 다시 일어섰다. 그가 다시 일어설 때는 그의 손에는 얼른얼른 하는 낫이 한 자루 들리어 있었다. “이 되놈, 죽어라. 이놈, 나 때렸디! 이놈아, 아이구 사람 죽이누나.” 그는 목을 놓고 처 울면서 낫을 휘둘렀다. 칠성문 밖 외따른 밭 가운데 홀로 서 있는 왕서방의 집에서는 일장의 활극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활극도 곧 잠잠하게 되었다. 복녀의 손에 들리어 있던 낫은 어느덧 왕서방의 손으로 넘어가고 복녀는 목으로 피를 쏟으면서 그 자리에 고꾸라져 있었다.


복녀의 송장은 사흘이 지나도록 무덤으로 못 갔다. 왕서방은 몇 번을 복녀의 남편을 찾아갔다. 복녀의 남편도 때때로 왕서방을 찾아갔다. 둘의 사이에는 무슨 교섭하는 일이 있었다. 사흘이 지났다. 밤중 복녀의 시체는 왕서방의 집에서 남편의 집으로 옮겼다. 그리고 시체에는 세 사람이 둘러앉았다. 한 사람은 복녀의 남편, 한 사람은 왕서방, 또 한 사람은 어떤 한방 의사. 왕서방은 말없이 돈주머니를 꺼내어 십 원짜리 지폐 석 장을 복녀의 남편에게 주었다. 한방 의사의 손에도 십 원짜리 두 장이 갔다. 이튿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한방의의 진단으로 공동묘지로 가져갔다. 



  서두에 보면 복녀 부처가 칠성문 밖 빈민굴로 밀려나오기 전에는 사농공사 제2위에 드는 계층이었음이 특별히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뒤를 이어서 복녀가 엄한 가율이 남아 있는 집안에서 규칙 있게 자라난 처녀라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도 그녀가 도덕에 대한 저픔(두려움)을 지니고 있는 인물임이 재차 언급되었다. 길지 않은 분량의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복녀의 이러한 인물됨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것은 분명 독자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한 부분을 염두에 두고 읽기를 계속하다 보면 복녀의 인물됨에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처음에 거라지일을 하던 복녀는 어느 날 기자묘 솔밭에서 송충이를 잡는 일을 하다가 그곳의 감독관과 매음행각을 벌인다. 그 사건을 계기로 복녀의 인생관에 변화가 생긴다. 복녀는 매음을 돈벌고 긴장된 유쾌가 있고 거라지일보다 점잖은, 그야말로 '삼박자'를 갖춘 좋은 일이라고 여긴다. 그리하여 이후 복녀의 매음행각은 계속된다. 

  빈민굴에서도 돈푼이나 있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자신의 몸을 파는 행위를 계속하는 것이다. 매음이란 과거 도덕에 대한 저픔을 지닌 복녀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런 그녀가 적극적인 매음행각에 나선 것에서 독자는 그녀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부끄러움으로 붉어지던 그녀의 볼에는 어느덧 분이 발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녀가 매음행위를 통해 도덕적으로만 타락해 가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인 욕망에 충실한 존재로도 전락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녀의 타락은 시간이 흐르면서 보다 심화되는데, 중국인인 왕서방과 성관계를 맺는데 이르면 그것은 극대화된다. 왕서방의 밭에서 감자를 훔치다 들킨 것이 계기가 되어 그에 대한 복녀의 매음이 시작된다. 처음 왕서방의 성적 요구에 응하는 복녀의 태도는 뻔뻔하기까지 하다. 이후 왕서방이 복녀를 찾아오거나 복녀가 왕서방을 찾아가면서 둘의 관계는 계속된다. 그러던 것이 왕서방이 돈 백 원을 주고 여자를 사와 장가를 들면서 문제가 심각해진다. 왕서방이 자신을 두고 장가를 가는 것에 질투와 분노를 느낀 복녀는 왕서방이 장가드는 날 밤에 낫을 들고 신혼방을 찾아간다. 그때 복녀의 얼굴에는 분이 하얗게 발리어 있었다고 작품은 전하고 있다. 얼굴에 하얗게 분을 바른 채 낫을 들고 신혼방을 찾아드는 복녀의 모습은 그녀가 철저하게 본능적인 존재로 전락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런 그녀는 결국 왕서방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복녀는 인간적인 품위를 잃어버린 존재의 비극적인 종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복녀가 매음을 시작한 것은 굶기를 자주 하는 가난한 상황 때문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가난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게으른 남편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들 부처가 그곳 칠성문 밖 빈민굴로 온 것도 남편의 게으름 때문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녀의 남편은 남의 땅을 빌어 놓고는 제대로 농사도 짓지 않았고, 그런 그에게 아무도 땅을 빌려주지 않자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지게꾼 노릇이나 막실살이도 모두 제대로 행하지 않아 결국 그들은 그곳 빈민굴로 쫓겨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복녀는 게으른 남편이 열심히 일을 하도록 애를 써 보지만 여자인 그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여자의 힘은 큰 의미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복녀가 타락의 길로 들어선 데에는 가부장인 남편의 게으름 때문이라는 또 다른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복녀는 왜 그렇게 게으른 사람에게 시집간 것일까? 이에 대해 작품에서는 복녀가 지금의 남편에게 돈 팔십 원에 팔려 시집을 갔다고 전한다. 결국 복녀는 인간이라는 존엄성을 빼앗긴 채 물건과 같이 돈에 팔려 시집을 갔던 것이다. 돈을 주고받으며 복녀를 사고 팔았다는 사실은 사회가 타락한 가부장제 사회임을 의미한다. 결국 복녀는 여성의 인간적인 존엄성을 무시하는 타락한 가부장제 사회 때문에 그와 같이 게으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게 된 것이다. 


복녀가 속한 사회가 타락한 가부장제 사회임은 이후 복녀의 남편의 모습에서 더욱 분명하게 확인된다. 복녀가 매음을 해서 벌어온 돈을 앞에 놓고 “벌신벌신 웃으며 좋아라”하는 모습이나 왕서방이 복녀를 찾아오면 자리를 피해주기까지 하는 모습은 그가 얼마나 타락한 가부장인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복녀가 왕서방에게 죽임을 당한 후 그녀의 주검을 처리하는 부분에서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남편은 왕서방에게서 돈 삼십 원을 받고 왕서방의 죄를 눈감아 준다. 아내의 주검조차 돈을 받고 팔아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타락한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복녀가 교육받았던 도덕에 대한 저픔은 참으로 무력하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복녀의 매음과 그것에 이은 복녀의 타락과 전락은 필연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것은 타락한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여성의 비극적인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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