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한국문학

흙 - 이광수

삼생지연 2020. 12. 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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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문학과 지성에서 펴낸 책이고

내가 읽은 책은1996년 소담에서 출판한 상,하권으로 나뉜 책임

흙 - 이광수 지음



일단 등장인물을 알아야 한다


허숭 - 주인공. 농촌 계몽운동에 일생을 바친 변호사로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 윤참판댁 딸 정선과 유순 사이에서 우유부단함을 보이다 정선과 결혼한다. 

유순 - 순박한 시골 처녀로 허숭을 흠모하는 여인. 허숭을 따르는 한갑과 결혼하지만 한갑은 유정근의 말에 속아 임신 중인 그녀를 구타하여 끝내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정선 - 윤참판의 딸. 허숭과 결혼했지만 남편의 농촌계몽 사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갑진과 불륜에 빠진다. 기차에 몸을 던저 불구가 되지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농촌계몽에 헌신한다. 

갑진 - 교활한 성격의 소유자. 정선과 불륜 관계를 맺고 농촌계몽운동에 대해 비판적이다. 나중에 허숭의 활동에 감명을 받아 농촌 계몽운동에 뛰어든다.

한민교 - 조선주의 사상을 몸소 실천하고 가르치는 민족의 지도자. 허숭이 농촌계몽 운동에 뛰어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백선희 - 산월이란 이름의 서울 기생. 허숭의 활동에 감화되어 농촌 계몽운동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산여울로 와 유치원을 설립한다.





‘내가 유순과 약혼을 하였느냐. 

그의 몸을 버렸느냐. 

내가 유순에게 대하여 지킬 의리가 무엇이냐. 

내가 유순을 사랑하는 것은 내 맘밖에 아는 이가 없고, 

유순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유순의 맘밖에 아는 이가 없지 아니하냐. 

하느님? 신명? 그런 것이 정말 있느냐. 

있기로니 내가 유순에게 죄를 지은 것이 무엇이냐?’


허숭은 가난한 고학생으로서 윤참판 댁에 일을 돌보며 보성전문학교 법과에 다니는 학생이다. 그는 자신이 존경하는 한민교 선생의 가르침을 받들고 매년 여름방학 때마다 고향인 산여울에 내려가 농민 계몽운동을 했다. 그러던 중 그는 한 여자를 알게 됐다. 유순이다. 통통하고 실한 몸에 강한 볕에 그을려 피부는 거무스름하나 부드러운 맛을 잃지 않은 아름다운 처녀였다. 허숭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유순에게 끌린다. 가난한 고학생의 처지인 그로서는 유순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는 것마저 미안한 일이었다.

본래 허숭의 집은 부자였다. 그러나 아버지 겸이 신민회사건과 만세사건으로 일경에 불려다니면서 가산이 줄어들었고, 잃은 재산을 보충하려 시작했던 장사가 실패하자 병을 얻어 죽는 바람에 허숭은 천애 고아가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허숭은 고학으로 전문학교까지 다니면서 농촌 봉사활동을 계속하였다. 

허숭이 산여울을 떠나기 전날 밤, 유순은 숭의 가슴에 이마를 대고 허숭이 산여울을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였을 뿐 아니라, 떠날 때는 삶은 옥수수를 건네며 숭이 떠나는 모습에 눈물을 지었다. 숭은 유순에게 “내년 여름에 올께‘라는 말을 남기고 아쉬운 작별을 했다. 

허숭은 서울에 도착해 윤참판댁으로 갔다. 윤참판은 허숭의 아버지 겸과 막연한 친구 사이로 자신이 믿고 의지하던 큰아들 인선이가 죽자, 집안의 모든 사무를 허숭에게 맡기고 있었다. 당시 세상사람들은 누가 윤참판 댁의 사위가 되느냐가 관심거리였다. 큰아들이 죽은 마당에 윤참판댁의 많은 재산은 의당 딸 정선의 몫이 될게 뻔했다. 

정선은 키가 호리호리하고 살이 희고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이화전문학교 음악과에 다니는 수재에 미인이었다. 갑진은 이런 정선을 짝사랑했다. 정선의 빼어난 미모도 탐이 났지만 무엇보다 정선과 함께 올 엄청난 재산도 갑진으로 하여금 정선에게 더욱 빠져들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그는 사립전문학교를 다니는 학생들과 허숭과 같은 시골 출신의 전문학교 학생들에 대해 강한 우월의식의 소유자였다. 그는 인선이가 죽고 허숭이 인선이 쓰던 방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내심 허숭을 비웃었다. 허숭은 이런 갑진의 행동을 무시했지만 갑진은 농촌계몽운동과 조선 사람에 대해 늘 비하의식을 드러냈다. 허숭 또한 갑진의 그런 태도거 좋을 리 없었다. 허숭은 울적한 마음을 달랠 겸 평소 존경하던 한민교 선생 댁을 찾아갔다.


한민교 선생은 민교(民敎)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조선 청년의 교육자로 이름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는 조선을 뜨겁게 사랑하여 책상머리에는 조선지도와 조선의 역사, 문집 등이 놓여 있음은 물론, 매일 단 한 페이지라도 조선에 관한 무엇을 읽은 것을 규칙으로 삼는 사람이다. 허숭은 한민교 선생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할 일이 농민들과 함께 하는 일이어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허숭은 돈을 많이 벌고, 자신의 이름을 빛나게 하겠다는 예전의 꿈을 버리고 농민 속으로 들어갈 것을 결심했다. 반면 갑진은 명재판관이 되어 이름을 높이고 조선에서 제일 가는 변호가사 되어 돈을 많이 벌고 인권을 옹호하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한민교 선생은 이러한 허숭과 갑진을 격려했다. 

봄이 되어 허숭이 졸업시험을 치르고 나자, 윤참판은 허숭을 불러 정선과 혼인할 생각이 없냐고 묻었다. 단 한번도 정선과의 혼인을 생각해 보지 않은 허숭은 일단 공부를 하려 한다는 말로 대답을 피했다. 그러자 윤참판은 이왕 한 공부니 도쿄에 가 변호사 시험을 보라고 했다. 허숭은 변호사가 되어 농촌에 들어가 농민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는 것을 상상해 보았다. 너무나 황홀하고 기분 좋은 일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는 듯 했다. 그러나 시골에 있는 유순을 생각하니 마음한 구석이 찡하니 아파왔다. 그녀와의 사랑에 미련이 남은 탓이었다. 하지만 허숭은 윤참판의 제의를 거절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변호사 시험을 위해 마음을 잡고 공부에 열중했다. 


도쿄에서 변호사 시험이 있자, 윤참판은 허숭에게 일본에 갈 여비를 마련해 줬다. 갑진과 함께 도쿄로 향하던 허숭은 우리 농부들의 처참한 모습을 보았다. 비참한 현실에 처한 농민들의 실상에 대해 허숭은 다시 한번 가슴이 저려옴을 느꼈다. 그러나 이런 허숭의 모습을 보고 갑진은 연신 빈정거렸다. 게다가 그는 당시 농촌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신문들에 대해서도 ‘조선의 신문과 잡지’라는 이유로 멸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배에 오른 허숭은 그곳에서 빚 때문에 딸을 일본으로 파는 농민을 만나고 나서 다시금 농촌의 참담한 현실을 깨달았다. 일본에 도착한 허숭은 변호사 시험인 고등문관 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나 함께 간 갑진은 시험에서 떨어졌다. 

허숭이 변호사가 되자, 윤참판은 더욱 딸 정선과 허숭의 혼인을 서둘렀다. 이 일로 허숭은 갈등을 겪게 됐지만, 자신이 평생 무식한 유순과 살수는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변호했다. 정선은 자신이 시골 출신 허숭과 결혼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못마땅했지만, 허숭이 변호사라는 점에 결혼을 결심했다. 

결혼을 하루 앞둔 날 밤, 허숭은 정선으로부터 유순이 보낸 편지를 전달받았다. 정선은 편지를 전해주면서 허숭을 향해 ‘더러운 놈’이라 길길이 날뛰었다. 편지에는 허숭을 남편으로 생각하며 기다렸던 유순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었다. 변호사가 되었다는 소식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던 것과 허숭이 정선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슬픔,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원한다 것까지도. 

편지를 읽고 난 허숭은 당장 유순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내일 오후 세시만 지나면 만사는 해결되는데―행복(?)된 길로 해결되는데.’라며 애써 스스로를 억누르며 결혼을 했다. 


실상 유순은 허숭이가 혼인한 기별을 들은 후로는 넋이 없는 사람이었다. 

유순의 생각에 허숭은 이 세상에 가장 완벽한 남자, 그러니까 가장 믿음성 있는 남자였다. 

유순의 참되고 단순하고 조그마한 가슴은 오직 허숭으로, 허숭에게 대한 믿음과 존경과 사랑으로 찼던 것이다.

허숭이 결혼을 하자, 유순은 견디기 어려운 가슴앓이를 했다. 불현듯 허숭이 했던 말이 떠오르고, 기차라도 지나가면 자신도 모르게 혹시 허숭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미 남이 되어 버린 남자를 기다리는 것은 여자의 도리가 아니라며 스스로를 타일렀지만 허숭에 대한 미련은 버리지 못했다. 자연히 하는 일에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다. 

한번은 모내기를 하던 중, 허숭을 생각하다 모를 잘못 심게 되었다. 이것을 본 농업기수는 유순을 지목하여 나오라고 했지만, 유순이 부끄러워하자 강제로 유순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이때 유순의 실수로 농업기수의 양복이 흙으로 더러워지자, 농업기수는 유순의 뺨을 때렸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한갑(유순을 사모한 청년)은 화를 참지 못하고 농업기수의 행패를 막으려다 오히려 뺨을 맞게 되었다. 싸움은 커졌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사람들은 농업기수를 두들겨 팼다. 농민들은 한갑의 행위에 속이 시원했지만 한편으로는 닥칠 보복에 두려워졌다. 유순은 한갑이가 자신 때문에 보복을 당할 것이 못내 슬프고 걱정이 되었다.

다음날 아침 유순은 평소대로 물을 기르러 나갔다. 역 근처에 다다르자 유순은 혹시 하는 마음으로 허숭을 생각했지만 곧 바로 잘못된 생각이라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물을 길어 나오는데, 누군가 유순을 불렀다. 순간, 유순은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꿈에도 못 잊을 허숭이 있었다. 그러나 유순은 모른 척 길을 걸었다. 허숭은 이미 남의 남자였다. 허숭은 유순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어젯밤 가정을 버리고 서울을 떠나던 일을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 나왔다. 허숭은 정선과 부부싸움을 하고 시골로 내려온 것이었다. 

허숭이 정선과 부부싸움을 한 직접적인 원인은 착수금이 이 천 원이나 하는 장안의 갑부인 이남작의 소송권을 허숭이 맞지 않는 것 때문이었다. 이 일로 인해 허숭은 정선과 심한 말싸움을 했다. 게다가 허숭은 정선이 돈만을 제일로 생각하고 성욕을 중심으로 한 향락생활을 부부간의 사랑으로 생각하는 것이 못마땅하여 일부러 정선과의 부부관계를 억제했다. 그런데 정선은 이러한 허숭의 행위를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유순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질투심에 휩싸였다. 이러한 정선에 대해 허숭은 자신이 정성을 다하면 정선이 나아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정선의 생활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결국 허숭은 매일같이 정선과 다투다간 자신의 아까운 인생을 다 허비할 것이란 생각에 그만 산여울로 내려오게 되었다.

산여울에 내려온 허숭은 한갑과 기수의 일로 한갑을 잡으러 온 순사들에게 봉변을 당하고 다시금 척박한 식민지 현실을 몸소 체험했다. 게다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조차 할 수 없는 농민들의 현실 속에서 허숭은 그들을 위해 자신의 온 힘을 다할 것을 결심했다. 


한편 정선은 홧김에 허숭에게 다시는 들어오지 말라고 했지만 막상 그날 밤 집에 들어오지 않자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이틀동안 산여울의 처참한 현실을 목격한 허숭은 자신의 힘으로 산여울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점검한다. 그는 우선 산여울을 위해 자신이 할 일로, 읍내에 가서 의사를 데려오고, 양식 없는 이에게 양식을 주고, 농촌의 위생 문제를 해결하고, 마지막으로 억울하게 잡혀간 사람들을 나오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읍에 도착한 허숭은 경찰서를 찾았다. 허숭이 서장을 만나려 하자, 순사는 못마땅한 표정을 보였지만, 허숭이 꺼낸 명함을 받아 들고는 태도를 바꿨다. 그리고 서장을 만나 잡혀 온 농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서장은 허숭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서장과 순사의 대화를 통해 사건의 전모를 어느 정도 파악한 허숭은 곧바로 농업기수를 진찰한 의사를 찾아갔다. 


의사는 허숭이 마을 사람들의 왕진을 부탁하자, 거절 의사를 내비쳤다. 허숭은 의사에게 경비는 자신이 부담하겠다고 하자 의사는 노골적으로 경멸의 모습을 보였다. 허숭은 의사에게 의사법을 들먹이며 거절하면 경찰의 힘을 빌리겠다고 말했다. 결국 의사는 허숭의 말에 동의를 하고, 숭은 빈대약, 석유 제품, 기타 소독약을 가지고 의사와 함께 마을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유순과 마주쳤다. 그곳에서 비로소 허숭과 명함을 교환한 의사는 깜짝 놀라며, 그동안의 태도를 버리고 겸손한 자세로 허숭과 가까워졌다.  마침내 허숭은 마을에 자신이 기거할 집을 짓기로 결정했다. 터를 다지던 날 밤 허숭은 유순을 만나 자신이 산여울로 온 것은 마을 사람들을 위해 온 것이지만, 실상은 유순이 있기에 왔다고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유순은 묵묵부답이었다. 이에 허숭은 자신이 사랑하여서는 아니 될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통한 심정에 사로잡혔다. 이의사는 허숭과의 약속대로 사흘에 한번씩 마을에 와 환자들을 치료해 주었는데, 그것은 허숭과의 약속도 중요했지만 유순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허숭은 이의사에게 장질부사(장티푸스) 등에 관해 간략한 치료법을 배웠다. 

마을에서 장질부사가 어느 정도 사라질 쯤에 유순의 아버지 유초시가 장질부사에 감염되었다. 그런데 유초시는 집안 제사라고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제사를 지내며 몸을 혹사했다. 이 일로 유초시의 건강은 몹시 나빠졌다. 이의사는 유초시를 치료하던 끝에 유순을 자신의 첩으로 달라고 했다. 이에 유초시는 대노하여 화를 내고 의사를 내쫒았다. 그날 밤 유초시는 숨을 거뒀다. 허숭은 혼자서 모든 일들을 처리했다. 그리고 나서 마을 사람들을 위해 변론을 했다. 그러던 중 허숭 또한 장질부사에 걸렸다. 한갑 모친과 유순이 간호를 했지만 열흘이 넘도록 낫질 않았다. 유순은 정선에게 허숭이 장질부사에 걸렸다는 사실을 편지로 붙였다. 


편지를 받은 정선은 그 즉시 의사를 대동하고 남편의 병구완을 위해 산여울행 열차를 탔다. 정선은 동네 사람들이 자신을 마중 나온 것에 놀랐다. 정선을 만난 허숭은 눈물을 흘렸다. 정선은 이런 남편을 정성스럽게 간호했다. 둘은 이제껏 서로에게서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정선은 마침내 허숭과 함께 농촌에 있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서울에서 처리할 일들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정선은 한잔 두잔 받아 먹는 술이, 

모든 도덕적 속박을 끊어 주는 것이 재미었어서 더욱 한잔 두잔 받아 먹었다. 

그래서 술이 양심의 옷을 다 벗겨 버린 뒤에 정선은 

남의 사내 앞에서 제 옷을 벗어 버린 것이다. 

정선이 잠이 깨매 술도 깨었다. 

술과 잠이 함꺼번에 깬 정선은 열 두 방망이로 몰이치는 듯한 뉘우침의 아픔을 당하였다.' 


정선은 서울로 떠나면서 허숭의 손을 잡고 재산을 다 처분하고 다시 오겠다는 말을 하고 차에 올랐다. 차안에서 정선은 비로소 그간 자신의 행위에 대해 반성했다. 정선이 집에 도착하니 마침 갑진이 집에 와 있었다. 그동안 갑진은 허숭이 떠난 집에 와서 밤늦게까지 놀고 가곤 했다. 이러한 갑진에게 정선은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끼곤 했다. 그럴 때면 자신도 모르게 허숭과 갑진을 비교하곤 했다. 다음날 아침 갑진은 또다시 정선을 찾아왔다. 갑진은 숭이 농촌에게 계몽운동을 하겠다는 소식을 정선으로부터 듣고는 다시금 농촌계몽운동에 대해 비하를 했다. 이런 갑진의 태도에 정선은 화를 내지만, 자신에게 저자세로 나오는 갑진에게 미안함 또한 가졌다. 정선은 서울 지식층들이 보인 사치와 향락에 점점 빠져들었다. 그러다 그만 술에 취해 갑진에게 몸을 허락하고 말았다. 

술에서 깨어난 정선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뼈아픈 뉘우침을 했다. 그러던 중 마침 허숭이 보낸 편지를 받았다. 남편의 편지엔 정선에 대한 그리움이 넘쳐 나고 있었다. 남편의 편지를 받은 정선은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그때 갑진이 정선의 방으로 들어왔다. 갑진에 대해 정선은 악마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갑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남편이 있는데도 남자와 정분이 난 정선의 행위에 대해 오히려 비난하고 나섰다. 갑진에 대한 분노와 숭에 대한 미안함으로 정선은 몸둘 바를 몰랐다. 

한편 허숭은 여러 날 기다려도 정선에게 소식이 없자, 송사 문제로 서울로 왔다. 그곳에서 우연히 갑진과 정선의 분륜 현장을 목격했다. 허숭은 가슴 속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의 불길을 참을 길이 없어 팔이 떨리기까지 했다. 허숭은 분노에 휩싸여 구체적인 원수 갚음까지 생각했으나 뾰쪽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번민했다. 


그때 불현듯 한민교 선생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한민교 선생 같으면 어떠한 허물이라도 용서를 할 것이란 생각에 마침내 허숭은 갑진과 정선의 잘못을 용서하기로 마음먹고 정선에게는 자신이 간통 사실을 알고 있다는 내색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정선을 만난 숭은 평소와 다름없이 아내를 대하고 함께 산여울에 내려가서 농촌계몽운동을 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정선은 자신의 잘못이 탄로 날 것을 두려워 해, 허숭의 제안에 대해 한마디로 거절했다. 숭은 정선에 대한 실망에 몸을 떨었다. 정선은 허숭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에 죽고만 싶었다. 죄악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승려도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죽을 수만 있으면 죽고만 싶었다. 그러나 이런 자신의 마음을 남편에게 온전히 내 보이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생각하니 죽을 만큼 죄를 짓는 것 같지도 않고, 이 기회에 허숭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마치내 숭과 정선은 이혼문제를 협의하게 됐다. 그러나 허숭은 윤참판을 생각해 이혼은 하지 않고, 정선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갑진을 만난 허숭은 정선을 부탁하고 산여울로 내려오기 위해 경성역으로 가 기차를 탔다. 허숭에 대해 평소 우습게 생각하고 있던 갑진조차 허숭의 사려 깊은 마음에 감동을 받았다.

기차 안에서 허숭은 술집에서 하룻밤을 지낸 기생 산월을 우연히 다시 만났다. 산월은 자신도 농촌계몽운동에 헌신하겠다는 말을 하면서 숭에게 자신의 사랑을 받아 줄 것을 요청했지만 허숭은 아내와 헤어진 몸으로 다시는 혼인을 하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 그때 갑자기 기차가 큰 경적소리를 내며 멈췄다. 사람이 기차에 뛰어든 사고였다. 숭은 사고 소식을 듣자 이상스레 가슴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차에 치인 사람은 정선이었다. 허숭의 응급처치로 정선은 다행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허숭은 날마다 밤을 세워 정선을 간호했다. 정선은 다리를 하나 잘리게 되었다. 다리 절단 수술에 들어간 정선을 보며 허숭은 ‘이제부터야 말로 무한한 사랑으로 사랑해주자’고 결심했다. 정선은 자신의 다리가 잘린 사실을 알고는 차라리 죽는 것보다 못하다면서 울먹였다. 이런 정선을 향해 허숭은 온 정성을 다해 아내의 마음을 달랬다.


한편 경성에서 이름을 날리던 산월은 허숭의 농촌계몽 운동에 감동을 받고 자신도 산여울에서 농민들과 함께 하기로 결심하고 이런 결심을 말하기 위해 정선이 입원한 병원에 찾아왔다. 허숭은 정선에게 산월과의 관계에 대해 사실적으로 이야기했다. 숭의 말을 들은 정선은 다시금 질투에 휩싸였다. 다리가 하나 없는 자신과 미인인 산월을 비교하면 아무래도 숭의 마음이 산월에게 갈 것만 같았다. 정선은 산월에게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하지만 결국 둘은 화해를 하고 산여울에 내려가 함께 농촌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산여울에 내려온 산월은 백선희로 이름을 고치고 유치원에서 일을 하고, 정선은 딸을 낳았다. 


정근의 등장으로 산여울에 풍파가 몰아치는데…….

“… 내 뱃속에 든 아이가 어느 놈의 아이냔 말이야.” 하고 한갑은 땅바닥에 침을 퉤하고 뱉았다. 한갑은 타오르는 분노와 질투에 전신을 떨었다. 유순에게는 한갑의 말은 실로 청천벽력이었다. 

허숭, 정선, 선희, 유순, 한갑, 작은갑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산여울은 농촌계몽운동의 모범으로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호사다마라고, 좋은 일에는 마가 끼는 법. 허숭의 농촌계몽운동으로 인해 농민들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해 가던 마을 갑부 유산장은 아들 정근이 일본에서 돌아오자 허숭에 대한 원망을 정근에게 털어놓앗다. 정근은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이 허숭보다 나은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허숭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 생각해냈다. 정근은 정선과 선희의 과거를 들추어내고, 허숭이 시골로 내려온 이유를 변호사직에서 쫓겨난 것이라 왜곡했다. 게다가 정근은 허숭이 선희를 첩으로 삼고, 유순을 버렸다는 말을 신문에서 봤다며 허숭을 도덕적 타락한 인물로 비난했다. 이 일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허숭을 환영하던 예전의 분위기에서 돌변하여 하나 둘 허숭을 피하고 심지어는 ‘고얀 놈’이라고 여기기까지 했다. 


정근의 복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허숭을 스승처럼 따르는 한갑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한갑은 유순과 결혼한 사이라 허숭을 흠집내기에는 가장 좋은 인물이었다. 그는 허숭과 유순이 불륜을 맺었다는 말을 내비쳐 한갑의 질투심을 유발시켰다. 정근은 허숭이 유순을 가지고 놀다 싫증이 나서 버린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모함을 했다. 

이 말을 들은 한갑은 숭에 대해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만취하여 유순이 허숭의 집에 다녀 온 것을 빌미로 임신중인 유순을 구타하여 실신시켰다. 허숭은 유순을 살리기 위해 의사를 불러오고, 수술을 위해 유순이 피가 모자라자 자신의 피를 직접 나누어줬다. 그러는 동안 허숭은 자신이 유순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잠시 동안 깨어난 유순은 자신은 결백하는 말을 시어머니에 남기고 끝내 숨을 거뒀다. 


술에서 깨어난 한갑은 자신이 정근에게 속아 죄없는 아내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죄의식에 몸을 떨었다. 한갑은 마을 청년들에 의해 경찰에 넘겨졌다. 이 일을 겪고 난 허숭은 산여울에 대해 실망을 했다. 더 이상 자신이 이곳에 있을 아무런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 허숭은 산여울은 너무도 경치가 좋고 토지가 비옥하고 배들이 불러, 좀더 부자들한테 빨려서 배가 고파야 정신들을 차릴 모양이라며 산여울을 떠날 결심을 했다. 


한편 배후에서 일을 조정한 정근은 후환을 없앨 목적으로 허숭, 선희, 한갑을 유순의 살인과 독립운동 혐의로 고발했다. 경찰은 선희와 허숭이 한 농촌 계몽운동을 총독정치에 불만을 품는 독립운동이라 추궁하자, 허숭은 야학을 세우고 조합을 만들고 하는 것은 순전히 문화적, 경제적 활동일 뿐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독립 운동을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유순과 한갑이를 한꺼번에 잃은 한갑 어머니는 유순의 장래를 정선과 둘이 치렀다. 정선은 억울하게 죽은 유순의 넋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 허숭과 선희가 잡혀간 뒤에 유치원은 폐쇄됐다. 

산여울에 홀로 남게 된 정선은 남편이 없는 산여울에서 어찌할까 망설이다 결국 허숭이 못다한 일을 자신이 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불편한 다리에도 불구하고 들에 나가 김을 매고 농사일을 했다. 동네 사람들은 정선이 곧 서울로 쫓겨 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선이 아주 시골 여자가 되어 농사를 짓고 궂은 일을 몸소 하는 것을 보고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열었다. 허숭과 선희는 재판을 받고 5년 형을 선고받았다. 정선은 한민교 선생과 더불어 허숭을 면회했다. 숭은 정선을 통해 자신이 떠난 산여울이 다시 과거의 암울하고 가난한 생활로 되돌아가 행정관리의 탄압과 정근의 횡포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허숭은 정선에게 서울을 갈 것을 종용하지만 정선은 끝내 산여울에 남아 있겠다는 결심을 말했다.


“유정근 선생이 …  우리 산여울 동네를 위하셔서 돈 육만 원을 내어놓으시기로 하였습니다. 삼만 원은 교육자금으로, 삼만 원은 협동조합자금으로 육만원을 내어놓으시기로 하였습니다. 오늘 아침에 이 사람을 부르셔서 이렇게 자필로 증서를 쓰셨습니다.”


삼년의 세월이 흘렀다. 산여울 사람들은 동네가 생긴 이래 처음 당하는 곤경을 당했다. 집간과 논마지기는 유정근이 경영하는 식산조합의 채무로 모두 경매나 가차압을 당하게 되었다. 결국 유정근의 재산은 허숭이 감옥에 들어간 사이에 갑절 이상이나 늘었고, 여학생을 첩으로 데려와 살림을 차리기까지 했다. 정근은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되어 즐거웠으나 오직 하나 머지 않아 작은 갑이가 출소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정근이 이처럼 작은 갑이를 마음에 둔 것은 그가 옳은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란 것과 작은갑이가 감옥에 간 사이 작은갑이 아내와 관계를 맺은 것이 후환거리였다.

감옥에서 출소한 작은갑이는 아내가 정근과 수작을 한 광경을 목격하고 그와 격투를 벌였다. 다음날 아침 작은갑은 정근을 찾아가 마을의 평화를 위해 죽어줘야겠다며 협박을 했다. 정근은 작은갑이가 자신을 죽일 것이란 공포에 휩싸여 요구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줄 것을 맹세했다. 

작은 갑은 마을 사람들을 위해 정근의 재산 전부를 내어놓을 것을 요구했다. 마침내 정근은 증표를 쓰고, 작은갑은 마을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선포했다. 정근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감옥에 있는 허숭과 백선희, 한갑이 죄가 없다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 일로 인해 산여울 사람들은 ‘유정근 만세’를 부르며 잘 살 수 있는 내일이 올 것이란 희망에 부풀었다. 


한편 작은갑은 형무소로 허숭을 면회가 정근이 산여울을 위해 돈 6만원을 내놓는다는 사실을 말하고 정근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앞으로 산여울을 위해 함께 일할 것을 결심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허숭은 정근에게 한민교 선생을 산여울로 모셔오라고 했다. 

한민교 선생은 미국에서 돌아와 이건영에게 배신당하면서도 음악회를 성대히 마친 순례와 같이 산여울로 내려오는데, 마침 한 청년이 차에 뛰어 올라 한민교 선생 앞에 선다. 갑진이었다. 갑진은 정선과의 관계를 뉘우치면서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검불랑에 내려가 농민들과 함께 새로운 천지를 개척해 나가고 있었다. 갑진은 소비조합 물건을 사러 온 길이라면서 내년쯤 선생님을 초청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신촌에서 내렸다. 


모든 사람들이 산여울로 모여들고 한민교 선생이 생각하던 농촌진흥운동이 전개되어 밝고 아름다운 산여울이 됐다.




“농민 속으로 가자.  

가서 가장 가난한 농민이 먹는 것을 먹고, 

가장 가난한 농민이 입는 것을 입고, 

그리고 가장 가난한 농민이 사는 집에서

살면서, 

가장 가난한 농민의 심부름을 하여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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