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톺아보기 <49~61>필사3회자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에서 활동한 학자들 중에는 에라토스테네스 이외에도 별자리의 지도를 작성하고 별의 밝기를 추정한 히파르코스가 있었고, 기하학을 명쾌하게 체계화하고 어려운 수학 문제로 끙끙거리던 임금에게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라는 말을 건넨 유명한 유클리드가 있었다. 기하학에 유클리드가 있었다면, 한편 언어학에서는 트라키아의 디오니시우스가 있어 말의 품사를 정의하고 언어학의 체계를 확립했다. 생리학자였던 헤로필로스는 지능이 심장이 아니라 두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증명했고, 알렉산드리아의 헤론은 톱니바퀴 열차와 증기 기관을 발명하고 로봇에 관한 최초의 책 [오토마타]를 저술했다. 페르가의 아폴로니우스는 타원, 포물선, 쌍곡선이 원추곡선임을 밝힌 수학자였다. 현재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행성, 혜성, 별들의 궤도는 원추곡선으로 기술된다. 아르키메데스는 페오나르도 다 빈치가 등장하기 이전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천재적인 공학자였다. 천문학자이자 지리학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는 오늘날의 사이비 과학이라 할 점성술을 수집하여 정리했다. 그가 주창한 지구 중심 우주관인 천동설이 1,500년 동안 맹위를 떨쳤다. 지성적 역량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형편없이 틀릴 수가 있음을 상기케 하는 인류사의 좋은 예였다. 이러한 위인들 중에 위대한 여인도 있었다.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였던 히파티아는 도서관의 마지막 등불을 지킨 여인으로서, 초석을 쌓은 지 700년이 된 이 도서관이 파괴되고 약탈당할 때 그곳에서 함께 순사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할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을 계승한 그리스 출신의 이집트 왕들은 학문을 아주 진지하게 대했다. 그들은 수백 년 동안 대를 거듭하면서 연구 활동을 지원했고 그 시대의 인재들이 자신들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도서관의 학구적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노력했다. 도서관은 열개의 대형 연구실로 나뉘어 각각이 특정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였다. 곳곳에 분수대가 있었고 멋지게 늘어선 원기둥들, 식물원, 동물원, 해부실, 천문 관측대가 있었다. 커다란 식당에서 학자들이 여유로이 토의하며 중요한 의견을 자유럽게 교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도서관의 생명은 모아 놓은 책들에 있다. 도서관 관계자들은 세상의 모든 문화와 모든 언어를 샅샅이 뒤졌다. 사람들을 해외로 보내서 책을 사들였고 장서를 확충해 갔다. 알렉산드리아에 정박한 상선은 관리의 검문을 받았는데, 검문의 목적은 밀수품 적발이 아니라 책 찾기에 있었다. 책 두루마리가 발견되면 즉시 빌려다가 베낀 뒤, 사본은 도서관에 보관하고 원본은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정확한 수치를 어림하긴 어렵지만,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에는 일일이 손으로 쓴 파피루스 두루마리 책이 50만여 권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많던 책들은 다 어떻게 됐는가? 알렉산드리아와 그 대도서관을 낳은 고전 문명이 붕괴되면서 도서관도 서서히 파괴되어 갔다. 장서의 극히 일부만이 후세로 전해졌고 그나마 남은 것도 사방으로 흩어져서, 고작 글 몇 줄, 종이 몇 조각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들의 전부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남은 몇 줄의 문장이나 종잇조각을 읽은 사람들은 누구나 애를 태우며 안타까워 할 수밖에 없다. 한 예로 우리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서가에는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라는 천문학자가 쓴 책이 한때 소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지구도 하나의 행성으로서 여타의 행성처럼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고 주장했으며, 별들이 대단히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내린 결론은 모두 다 옳았지만 이 사실을 재발견하기까지 인류는 거의 2000여 년의 세월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아리스타르코스의 업적이 소실됐기에 느끼게 되는 우리의 애석함에 10만 배를 곱하면, 고전 문명이 이룩했던 업적의 숭고함과, 그의 파괴가 얼마나 큰 비극을 인류에게 안겨 줬는지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과학은 고대 세계가 알고 있던 과학의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적 자료에는 메울 수 없는 공백이 이가 빠진 듯 여기저기 뚫려 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도서 대여중 하나만 남아 있었더라면 과거의 수수께끼들을 많이 밝혀낼 수 있을 터인데 하는 생각을 하면 참으로 안타깝기가 이를 데 없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는 바빌론의 사제인 베로소스가 쓴 3권짜리 세계사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실제 작품은 오늘날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천지 창조부터 대홍수까지를 다루는 제1권에서 베로소스는 그 기간을 43만 2000년으로 잡았다. 이것은 구약성서의 연대기보다 100여배나 긴 기간이다. 나는 그 책에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 궁금해서 지금도 견딜 수가 없다.
고대인들은 세계가 아주 오래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먼 과거까지 들여다보고자 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주가 옛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됐음을 알고 있다. 인류는 지구 바깥으로 나가서 우주를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한점 티끌 위에 살고 있고 그 티끌은 그저 그렇고 그런 별의 주변을 돌며 또 그 별은 보잘 것 없는 어느 은하의 외진 한 귀퉁이에 틀어 박혀 있음을 알게 됐다. 우리의 존재가 무한한 공간 속의 한 점이라면,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찰나의 순간밖에 차지하지 못한다. 이제 우리는 우주의 나이가 -적어도 가장 최근에 부활한 우주가-약 150억~200억년 되었다는 사실을 안다. 이것은 '대폭발' 또는 '빅뱅'이라고 불리는 시점에서부터 계산한 우주의 나이다. 우주가 처음 생겼을 때에는 은하도 별도 행성도 없었다. 생명도 문명도 없이, 그저 휘황한 불덩이가 우주 공간을 균일하게 채우고 있었을 뿐이다. 대폭발의 혼돈으로부터 이제 막 우리가 깨닫기 시작한 조화의 코스모스로 이어지기까지 우주가 밟아 온 진화의 과정은 물질과 에너지의 멋진 상호 변환이었다. 이 지극히 숭고한 전환의 과정은 물질과 에너지의 멋진 상호 변환이었다. 이 지극히 숭고한 전환의 과정을 엿볼 수 있음은 인류사에서 현대인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우주 어딘가에서 우리보다 지능이 더 높은 생물을 찾을 때까지, 우리 인류야말로 우주가 내놓은 가장 눈부신 변환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는 대폭발의 아득히 먼 후손이다. 우리는 코스모스에서 나왔다. 그리고 코스모스를 알고자, 더불어 코스모스를 변화시키고자 태어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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