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톺아보기 <49~61>필사1회자
보통 사람 같으면 쉽게 지나쳐 버릴 관측 보고였다. 나무 막대기, 그림자, 우물 속의 비친 태양의 그림자, 태양의 위치처럼 단순하고 일상적인 일들이 무슨 중요한 의미를 품고 있으랴? 그러나 에라토스테네스는 과학자였다. 그는 이렇게 평범한 사건들을 유심히 봄으로써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어떻게 보면 세상이 다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실험 정신이 강한 학자였다. 그는 실제로 알렉산드리아에 막대를 수직으로 꽂고 그 막대가 6월21일 정오에 그림자를 드리우는지를 직접 조사하였다. 결과는 '그림자가 생긴다.'였다.
이에 에라토스테네스는 어떻게 똑같은 시각에 시에네에 꽂힌 막대기는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는데, 그보다 더 북쪽에 있는 알렉산드리아에서는 그림자를 만드는지 자문해 보았다. 땅바닥에 고대 이집트의 지도를 그려 놓고 똑같은 길이의 막대기 둘을 구해다가 하나는 알렉사드리아에, 다른 하나는 시에네에 수직으로 세워 놓았다고 치자. 어느때이든 간에 각각의 막대가 그림자를 전혀 드리우지 않는 시각이 있을 것이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그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건 그때 태양이 머리 바로 위에서 비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만약 두 막대가 동시에 똑같은 길이의 그림자를 드리운다면 그것 역시 평평한 지구에서는 말이 된다. 태양 광선이 두 막대를 비스듬히 쪼이되, 그 비추는 각도가 똑같다는 뜻이다. 그러나 같은 시간에 시에네의 막대에는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데, 알렉산드리아에는 그림자가 생기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에라토스테네스가 보아하니 나올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은 지구의 표면이 곡면이라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곡면의 구부러지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그림자 길이의 차이도 클 것이었다. 태양이 워낙 멀리 있기 때문에 지구에 다다른 태양 광선은 지구 표면 어디에서나 평행하게 떨어진다. 따라서 태양 광선에 대해 각기 다른 각도로 세워져 있는 두 막대는 서로 길이가 다른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그림자 길이의 차이로 따져 보니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는 지구 표면을 따라 7도 정도 떨어져 있어야 했다. 다시 말해서 두 막대의 끝을 지구 중심까지 뚫고 들어가도록 연장한다면 두 막대의 사잇각이 7도가 된다는 뜻이다. 지구 둘레 전체가 360도이므로, 7도는 전체의 50분의 1정도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사람을 시켜 시에네까지 걸어가게 한 다음 그 거리를 보폭으로 재 봤기 때문에 시에네가 알렉산드리아에서 대략 80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고 알고 있었다. 800킬로미터의 50배이면 4만 킬로미터, 이것이 바로 지구의 둘레인 것이다.
제대로 나온 답이었다. 그 때 에라토스테네스가 사용한 도구라고 할 만한 것은 막대기, 눈, 발과 머리 그리고 실험으로 확인코자 하는 정신이 전부였다. 그 정도만 가지고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의 둘레를 겨우 몇 퍼센트의 오차로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2,200년 전의 실험치고는 대단한 성과를 거둔 셈이다. 따라서 에라토스테네스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한 행성의 크기를 정확하게 측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 지중해 연안의 사람들은 항해술이 뛰어나기로 유명했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는 지구상 최대의 항구 도시였다. 누구든 일단 지구가 그만그만한 지름을 갖춘 공 모양을 하고 있는 줄 안다면, 탐험 여행을 한다든지, 미지의 땅을 찾아 나선다든지, 혹은 한발 더 나아가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오고 싶지 않았겠는가? 에라토스테네스의 시대로부터 400년 전에 이미 이집트의 파라오 네코가 고용한 페니키아의 선단이 아프리카 대륙을 일주한 적이 있다. 그들은 갑판도 없는 작고 약한 배로 홍해에서 출항하여 아프리카 동편 해안을 따라 내려갔다가 대서양을 타고 올라와 다시 지중해를 거쳐 돌아왔을 것이다. 이 서사시적 항해를 마치는 데 3년이 소요됐다고 한다. 오늘날 3년은 보이저 우주선이 지구에서 토성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에라토스테네스의 발견이 있은 후, 용감하고 대담한 선원들이 여러번 대항해를 시도하고는 했다. 그들이 모는 배는 실로 '조막만한' 크기였을 것이다. 항법 도구라고는 초보적인 수준의 것들밖에 없었다. 추측 항법이 전부였으며 해안선을 따라 갈 수 있는 데까지 항해했다. 처음 나선 바다일 경우에는 밤하늘에 뜨는 별자리들의 상대적인 위치를 수평선을 기준 삼아 관찰하는 식으로 현 위치의 위도를 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경도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니 미지의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선원들은, 낯익은 별자리들을 보면서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혔을 것이다. 별은 탐험가의 벗이다. 별은 예전에 지구의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에게 도움을 주었듯이, 지금도 우주의 바다로 나선 우주선에 힘이 되어 준다. 에라토스테네스 이후로 여러 사람이 시도했겠지만, 마젤란이 나타날 때까지 어느 누구도 지구를 일주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뱃사람과 항해장은 원래 세상사에 능하고 실리를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알렉산드리아에 사는 어느 과학자의 계산을 믿고 목숨을 건 도박을 하였으니 많은 이야깃거리와 무용담이 오갔을 것이다.
에라토스테네스 시대에 만들어진 지구의는 지구를 우주에서 내려다본 모습으로 되어 있는데, 이 지구의에서 탐험이 잘 된 지중해 지역은 기본적으로 정확했지만 거기에서부터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부정확했다. 코스모스에 관한 우리의 현대 자료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1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지리학자 스트라본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지구를 일주하고자 나섰다 되돌아온 사람들은 대륙이 앞을 막아 회항 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바닷길은 항상 거침없이 열려 있었건만, 더 못가고 돌아온 까닭은 오로지 자신의 의욕 상실과 식량 부족 때문이라고 한다. 에라토스테네스는 대서양의 넓이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면, 이베리아 반도에서 인도까지 바다를 타고 수월하게 갈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살기 적합한 땅이 온대 지방에 한두 개 정도 더 존재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만약 (세상의 저편에)누군가가 산다면 그들은 이 땅에 존재하는 우리와 같은 사라들이 아닐 것이니, 우리는 그곳을 또 다른 세계로 보아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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