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신을 훔치다
KBS 파노라마 <신의 뇌> 제작진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5년 4월
제1장 신의 목격자들
“천국은 진짜다(Heaven is Real)!” 이 짧고 강렬한 문장은 2012년 10월 8일 자 《뉴스위크》의 특별한 표지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기사는 이븐 알렉산더라는 뇌과학자가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7일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놀라운 이야기인데, 정말 놀라운 건 그다음이다. 뇌사 상태에 빠져 있던 7일 동안 그가 천국에 다녀왔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왔다는 임사체험자는 사실 그렇게 드물지는 않다. 세계적으로 임사체험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만 수백만 명에 이른다. 임사체험은 말 그대로 죽음에 임박한 경험을 말한다. 심폐소생술의 발견으로 삶과 죽음은 흑과 백으로 딱 나뉘는 게 아니라 그 중간에 회색 지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학계에서는 회색 지대를 통과하는 시간을 4분 정도로 본다. 일단, 심장이 멈추면 몇 초 뒤부터 뇌로 가는 혈액 공급이 끊기게 되고 신경 활동이 하나하나 붕괴되기 시작한다. 생물학적으로 완전히 사망에 이르기까지는 이렇게 4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흔히 ‘골든타임’이라고 부르는 시간이다.
현대의 의사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인 이 4분 정도가 임사체험이 일어나는 시간이라고 본다. 즉, 심장은 멈추었지만 아직 뇌는 살아 있는 상태로, 이때 우리의 뇌는 죽음의 공포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며 그때 만들어진 환각을 사후세계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임사체험은 뇌가 일으킨 환각 또는 착각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뇌과학자 이븐 알렉산더의 임사체험은 두 가지 점에서 남다르다. 첫째, 골든타임 4분이 아니라 무려 7일 동안이나 뇌가 멈춰 있었다는 점이다. 그의 주장이 맞다면 의학계에서 설명하고 있는 임사체험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 있는 것이다. 둘째, 임사체험 당사자인 자신이 바로 신경외과 의사라는 점이다. 더욱이 그는 하버드 대학 메디컬스쿨 교수로서 반평생 뇌를 연구해왔으며 세계적으로도 저명한 뇌과학자다. 그래서 그의 사례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 중 가장 완벽하고 설득력 있는 임사체험이다.
우리는 미국 버지니아 주 린치버그에 있는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이븐 알렉산더는 인터뷰 내내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예전에는 당연히 뇌가 의식을 만들어낸다고 믿었다고 했다. 뇌과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3대째 뇌과학자였다. 명목상으로는 크리스천이었지만 평생을 과학적 세계관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신이나 영혼, 천국의 존재는 믿지 않았다. 사람이 죽고 나면 그걸로 끝이고 사후세계 따위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 생각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일이 일어난 건 2008년 11월 10일 새벽이었다. 그는 등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지만, 엄청난 고통으로 잠시 후 의식을 잃었다.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는 남편을 발견한 건 그의 아내였다. 병원에 도착한 뒤 그는 곧바로 혼수상태에 빠지고 만다. 당시 의사들이 내린 진단명은 그람 음성 세균성 구막염이라는 병이었다. 일종의 박테리아성 뇌수막염이라고 하는데, 성인들에게는 천문학적인 확률로 드물게 발생하는 희귀한 병이었다. 의사들은 각종 항생제를 처방했지만 그의 몸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증세는 갈수록 악화되기만 했다.
그런데 의식을 잃은 지 일주일째 되던 날 아침, 그는 거짓말처럼 깨어났다. 그리고 자신이 천국에 다녀왔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가 맨 처음 기억하는 건 아주 단순하고 원초적인 지하 세계 같은 것이었다. 나무뿌리 같은 게 주변을 감싸고 있었는데 별로 유쾌한 곳은 아니었다. 다행히 빙빙 회전하는 아름다운 빛이 다가와 그를 구출했는데, 완벽한 멜로디가 흐르고 있던 그 빛은 새하얗고 눈부시게 빛났다. 그 빛을 따라가자 어떤 문이 열렸고 그는 하늘을 날듯 문을 통과한 후 아름다운 계곡으로 나갔다. 그곳은 정말 완벽히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한다. 날아오르는 천사들, 생명으로 가득 찬 폭포, 기쁨 속에 춤추는 영혼들…… 그 이야기의 핵심은 그곳이 바로 신의 나라였고 거기서 신을 만났다는 것이다.
우리는 신이 어떤 모습인지 물었다. 그는 좀 난감해했다. 그는 신을 설명할 수 있는 이미지나 단어는 없다고 했다. 신은 우리의 이해나 설명을 훨씬 넘어선 무한하고 경이롭고 강력한 존재여서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신의 나라의 핵심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신의 나라가 보여주는 순수함과 풍부함과 영원함과 완전함을 느끼고 나면 그 단어가 부족하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인정, 용서, 수락, 자비죠. 신은 우리를 대단히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신이 바라는 오직 한 가지는 우리가 신과의 연결을 기억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제가 만났던 신입니다.”
그가 정말 신을 만났는지, 그 진위를 파악할 길은 없다. 하지만 그가 왜 이런 주장을 하는지,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따져볼 수는 있다. 과학적 세계관으로 볼 때 뇌는 의식을 만들어내는 기계에 불과하다. 텔레비전 전원을 끄면 화면이 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뇌가 없다면 의식도 없다. 그런데 이븐 알렉산더는 무려 7일 동안 뇌가 꺼진 상태였는데도 천국의 모습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전원 코드를 뺐는데 텔레비전 화면이 켜진 것이다.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된다. 환각을 만들어내야 할 뇌가 꺼져 있었다면 천국을 본 것은 대체 누구였을까?
과학은 뇌가 의식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하지만, 뇌가 ‘어떻게’ 의식을 만들어내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뇌와 의식’은 현대 과학이 가장 최근에 연구를 시작한 분야로, 솔직히 말해서 과학은 의식에 대해 아직 아는 게 많지 않다. 세계적인 양자물리학자인 닉 허버트도 이런 고백을 했다. “우리가 의식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발이 아니라 머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뿐이다.”
과학이 세운 가설이 모두 무너지자, 이븐 알렉산더는 조심스럽게 또 다른 가능성을 생각했다. 바로 영혼의 존재다. 뇌가 의식, 즉 영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뇌와 영혼이 존재할 가능성 말이다. 그는 천국을 본 것은 자신의 영혼, 즉 육체에서 분리된 의식이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의 임사체험도 시간이 지나면 과학이 설명해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의 주장처럼 천국에 다녀온 것이 정말 ‘영혼’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리고 후자가 맞다면 그것은 신이 존재한다는 매우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신을 만났거나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당장 이름만 대도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 고흐, 노벨, 나폴레옹, 카이사르, 도스토옙스키, 모파상, 단테, 파스칼 등 시대도 분야도 아주 다양하다. 특히 천재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블레즈 파스칼의 영적 체험은 인상적이다. 그에게는 ‘수학자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될 뻔한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신학을 연구하느라 수학 연구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그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다. 파스칼이 31세 때였던 1654년 11월 23일 밤, 그는 불꽃같은 영적 체험을 했다고 한다. 파스칼은 그때의 체험을 약 600자 분량의 시 형태로 양피지에 기록했으며, 1662년 경련 발작으로 죽을 때까지 약 8년 동안 옷 속에 꿰매 넣고 다녔다. 그 시는 현재 프랑스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아래는 그 시의 일부를 옮긴 것이다.
불!
오!
철학자와 학자들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안전,
확신,
감격,
기쁨,
평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당신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
인간 영혼의 위대함이여,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해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습니다.
기쁨,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
제2장 신의 뇌
지금은 ‘종교 연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적 발견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중에서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토머스제퍼슨 의과대학 부속병원의 신경의학자 ‘앤드루 뉴버그(Andrew Newberg)’라는 이름은 기억해둘 만하다. 그는 뇌와 영성 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독보적인 인물이다. 그가 말하는 ‘신의 사진’을 찍는 과정은 이렇다. 먼저 성직자들을 촬영 장비가 설치된 방 안에 들여보낸 후 기도나 명상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신을 만나거나 강렬한 영적 체험에 이른 순간 재빨리 촬영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실험 결과, 일반인보다 성직자들의 뇌가 더 활발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곳이 전두엽이다. 이어서 뒤쪽에 있는 두정엽의 활동도 증가하기 시작한다. 또 전두엽은 뇌의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와 연결되어 더없는 행복함과 고요함 등을 느끼게 해준다. 기도나 명상이 극에 도달하면, 이번에는 시상과 두정엽의 활동이 점차 줄어든다. 이때 우리는 시공간의 감각을 잃고 무아지경에 빠질 수도 있다. 행복감과 고요함이 점점 증가하다가 어느 순간, 신비한 영적 체험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때 자극과 진정을 담당하는 자율신경계가 활성화되면서 엄청난 에너지와 극도의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은 어떤 특정한 부위보다 뇌 전체가 골고루 활동하고 있는 매우 복잡하고 역동적인 과정이다. 그러므로 갓 스폿은 우리 뇌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인간의 뇌가 신을 만들었을까? 21세기 최첨단 과학은 우리의 뇌 전체가 갓 스폿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물론 갓 스폿이 신이 있다는 증거는 아니다. 앤드루 뉴버그도 한 가지 당부를 했는데, 수녀와 승려의 뇌 사진은 신이 정말 그 방에 있었는지, 아닌지를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가 신이 정말 존재하는지, 아닌지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현대 과학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지만, 뇌가 신을 느낀다는 신경학적 증거는 아주 많이 찾아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둘 중 하나다. 뇌가 신을 경험한다는 것은 뇌가 신을 만들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또는 뇌가 신을 경험한다는 것은 실제로 신이 존재한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종교가 금기시하는 질문과 맞닥뜨리고 말았다. 그 질문은 이것이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을까? 인간의 뇌가 신을 만들었을까?’
제3장 죽음과 영혼
과학계는 영혼의 증거를 찾기 위한 시도를 포기하지 않았고 그 실험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제 이 분야의 대가인 ‘샘 파니아(Sam Parnia)’를 만나볼 차례다. 그는 현재 미국 뉴욕의 스토니브룩 대학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응급의학과 의사다. 지난 20여 년간 응급실에 근무하면서 그는 수많은 죽음을 지켜보았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수많은 환자를 살려내기도 했다. 그런데 간혹 임상적으로 완전히 죽었다가 살아난 환자들 중에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환자는 자신의 영혼이 공중으로 둥실 떠올라 응급처치를 하고 있는 의사를 내려다보았다고 했다. 그 환자는 의사의 등 쪽에 반점이 있는 것을 보았다면서 그게 어떤 모양이었는지도 설명했다. 다른 환자도 육체에서 영혼이 분리되어 떠올랐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자신을 치료하던 의료진이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는지를 이야기했다. 또 다른 환자는 옆방에서 간호사가 실수로 약병을 깨뜨렸던 일을 기억했다. 연구팀은 실제로 그때 그런 일이 있었는지를 조사했고, 환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임상적 죽음이란 심장 박동이 멈추고, 호흡이 없고, 뇌가 정지한 상태를 말한다. 샘 파니아가 연구하고 있는 대상은 이처럼 임상적으로 사망한 사람들이다. 죽음에 근접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몇 분 혹은 몇 시간 동안 실제로 죽음의 문턱을 넘은 상태라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행히 살아난 사람들 중에는 뇌로 혈액이 흐르지 않아 뇌가 기능을 멈추었는데도 완전한 기억과 의식이 계속되는 경우가 있었다. 샘 파니아는 임상적으로 사망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사람 중 1퍼센트 정도가 임사체험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샘 파니아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뇌가 의식을 만든다’는 기존의 학설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뇌세포가 의식을 만드는 거라면, 뇌가 멈춰 있는 동안에는 의식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임상적 죽음의 기간을 넘어선 환자들, 즉 뇌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환자들에게 의식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증거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샘 파니아는 현대 과학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난제가 바로 ‘의식의 미스터리’라고 했다.
“뇌가 의식을 만든다는 가정이 옳지 않다면, 조심스럽게 다른 가능성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샘 파니아는 텔레비전을 예로 들었다. 어린아이에게 텔레비전을 보여주면, 아이는 진행자가 텔레비전 속에 앉아 있다고 생각할 것이지만, 아시다시피 진행자는 방송사 스튜디오에 앉아 있다. 이때 텔레비전은 생산자가 아니라 중개인 역할을 한다. 바로 그런 가능성이다. 즉, 뇌는 의식이나 영혼의 생산자가 아니라 중개인이라는 것이다. 샘 파니아는, 전자파를 갖고 소리와 이미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텔레비전과 뇌는 상당히 비슷하다고 말했다. 둘 다 소리와 이미지를 운반하는 중개인이라는 이야기다.
이 대목에서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떠올린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데카르트는 그 둘이 합쳐진 것이 인간이며, 뇌 속에 있는 솔방울샘(pineal gland)을 통해 영혼이 깃든다고 했다. 영혼이나 의식은 육체와 따로 존재하며 뇌는 그 중개인이라는 샘 파니아의 생각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영혼의 존재를 입증하는 일이다. 실제로 그는 2008년부터 실험에 착수했다. 어웨어 프로젝트라고 부르는데 미국과 유럽 등 25개 응급센터, 1만 5,000개 병실이 참가한 초대형 프로젝트다. 이 실험을 통해 ‘뇌의 착각’이라고 볼 수 없는 사례가 상당수 보고되었다. 샘 파니아의 가설이 입증된다면, 우리는 천국과 영혼을 증명하는 길에 한 걸음 가까워질 것이다.
제4장 믿음의 생물학
기도가 정말 효과가 있을까? 미국 인디아나 대학의 캔디 브라운 교수팀은 2010년 매우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기도가 병을 고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이었다. 실험 대상은 시각 장애인과 청각 장애인들이었고, 실험 지역은 아프리카 모잠비크와 남미 브라질이었다. 상대적으로 의료 시설이 부족하고 장애 환자들을 찾기가 쉽기 때문이었다. 먼저 연구팀은 모잠비크에서 시각 장애 환자 11명, 청각 장애 환자 14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과정은 이렇다. 먼저 장애 환자의 장애 정도를 측정한 다음에 이들의 병이 낫게 해달라고 중보기도를 한다. 그런 다음 장애 정도에 변화가 있는지를 다시 측정하는 것이다. 중보기도를 하는 사람은 그 지역 선교단체와 주민들로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이었고, 기도 방식은 환자의 몸에 직접 손을 대거나 포옹을 하며 기도하는 것이었다.
비록 표본의 크기는 작았지만, 연구팀은 일정 수준의 ‘통계적 유의성’을 나타냈다고 결론지었다. 사실 표본의 크기가 작으면 통계적 유의성을 갖추기가 오히려 더 어렵다. 아주 극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구팀이 오히려 당황했을 정도로 매우 극적인 효과를 얻었다.
캔디 브라운은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인 두 사람의 사례를 소개했다. 한 명은 미리엄이라는 시각 장애인이고, 한 명은 조던이라는 청각 장애인이었다. 기도를 받기 전 미리엄의 시력을 측정했는데, 약 30센티미터 앞에 있는 자기 손가락이 몇 개인지도 셀 수 없었다. 그런데 중보기도를 받고 난 후에는 시력표의 아주 작은 글자까지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조던은 청각 장애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세상의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고, 말도 배우지 못했다. 연구팀은 중보기도를 하기 전에 조던의 청각 장애가 어느 정도인지 측정했다. 청력검사기가 아주 큰 소리, 오토바이 소리만큼 큰 소리를 냈지만, 조던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를 위해 몇 분 동안 중보기도를 한 후, 조던은 사람들이 하는 단어를 따라 했다. 동네 사람들이 조던의 말소리를 들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했다.
연구팀은 25명의 실험 결과를 그래프로 정리했다. 그 결과 중보기도를 받은 환자 25명은 증상이 대부분 호전되었다. 캔디 브라운은 혹시 일시적인 현상이거나, 단순한 플라세보 효과일 가능성을 고려해서 장기적인 추적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호전된 상태가 몇 년이 지나도 지속적으로 유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캔디 브라운은 “단순한 플라세보 효과였다면 몇 주,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 호전된 상태가 지속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로써 연구팀의 실험 결과가 전 세계로 타전되었다. ‘기도가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과학적인 데이터가 마련된 것이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의 몸과 마음 사이에는 무엇이 작용했던 것일까? 일대일 상담을 통해 밝혀진 사실은, 그들은 기도를 하면 병이 나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놀라운 기적들을 만들어낸 건 다름 아닌 ‘믿음의 힘’일 수도 있다.
믿음의 기도에 관한 신경생물학적 증거는 또 있다. 기도가 진행되는 동안의 뇌파는 평상시의 각성 상태와는 아주 다르게 특이한 변화가 관찰된다. 알파파가 감소하면서 잠잘 때 나오는 델타파가 나타난다. 그러니까 의식은 완전히 깨어 있지만, 수면 중일 때처럼 깊은 안정 상태를 보이는 것이다. 원래 델타파는 상당히 깊은 수면 상태나 안정 상태에서 나타나는 뇌파다. 델타파가 나올 때 보통 사람들은 졸리거나 잠에 빠지게 되지만, 실제로 기도하는 사람들은 졸기는커녕 오히려 약간 흥분 상태를 보이며 심박수가 빨라진다. 심박수가 빨라진다는 것은 불안이나 긴장으로 교감신경계가 흥분되었기 때문인데, 희한하게도 기도하는 뇌에서는 긴장이나 불안할 때 나타나는 베타파는 올라가지 않았다. 또한 기도 중 희열을 느끼거나 안정과 평화를 느끼는 것은 화학적으로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이때 뇌파와 화학적 변화가 제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은 전두엽, 그중에서도 가장 앞쪽에 있는 전전두엽이다. 전두엽은 인간의 뇌 부위 중에서도 가장 인간다운 기능을 하게 만들어주는 곳이다. 지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연결하고, 연합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전두엽의 기능이다. 실제로 이곳에 이상이 생긴 사람들은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잘 참지 못하고, 폭력을 휘두르며, 짐승처럼 행동한다. 다시 말해서 전두엽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가장 인간다운 행위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쩌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행위가 기도라고 할 수 있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신을 믿는 것은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행위라고 말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 전제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신에게 드리는 기도는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이성적’인 행위인 것이다.
제5장 신들의 생존법
2008년 6월 26일은 인간의 달 착륙에 견줄 만한 인류사의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인간 게놈 31억 쌍의 유전자 염기 서열을 밝힌 인간게놈프로젝트 초안이 미국 백악관의 이스트룸에서 발표된 날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인간 생명체의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청사진을 손에 쥐었다.
그럼 31억 쌍의 유전자 중에 믿음의 본능이 새겨진 것도 있을까? 미국 국립보건연구원의 유전학자 딘 해머는 그런 유전자가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인간은 왜 신을 믿는가’라는 인류의 오랜 질문에 대해, 최첨단 과학인 분자생물학에서 증거를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그는 신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간의 유전자 차이를 분석하기 위해 1,001명의 유전자 정보를 분석했다. 드디어 3만 3,050번째 서열에서 신을 믿는 사람들만 갖고 있는 유전자 변종을 찾아냈다. 그는 여기에 ‘신의 유전자’라는 대담한 이름을 붙였다.
딘 해머가 찾은 3만 3,050번째 유전자, 즉 신의 유전자는 시토닌이라는 염기를 지닌 유전자 변종 VMAT2(Vesicular Monoamine Transporter 2 : 소포 모노아민 전달체)라고 하는데, 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이 VMAT2가 공통적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딘 해머는 신의 유전자 VMAT2가 믿음의 생물학적 증거라고 주장했다. 즉, 신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며 진화 과정을 거치며 전승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환원주의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인간이 ‘유전자의 탈것’ 혹은 ‘유전자를 담는 그릇’에 지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초안이 발표되던 날,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텔레비전 앞에서 빌 클린턴은 이 위대한 발견을 특정한 나라가 독점해서는 안 되며 새로운 의약품 개발을 위해 공개하자고 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의학의 혁명을 기대한다는 환영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총책임자인 프랜시스 콜린스의 차례가 되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경사스러운 날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던 우리 몸의 설계도를 처음으로 직접 들여다보았다는 사실에 겸허함과 경외감을 느낍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동시에 게놈의 하나님이기도 합니다.” 과학이 신의 유전자를 찾아냈으므로, 실험실에서도 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
제6장 이로운 믿음, 해로운 믿음
정진홍은 1937년생으로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한국종교학회 회장,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평생을 종교 연구에 헌신해온 우리나라 1세대 종교학자라는 점이다. 특정 종교나 신학 일변도였던 종교를 인문학 차원으로 끌어올린 주인공이 다름 아닌 그였다. 그가 연구해온 종교학은 ‘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두고 논쟁하는 학문이 아니다. 우리가 ‘왜 신을 믿는지’, 그 이유를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다. 이제 팔순을 바라보는 이 시대의 어른이자 유연한 노학자이기도 한 그에게는 과연 우리의 의문들을 해소시켜줄 ‘신의 한 수’가 있을까?
먼저 첫 번째 질문은 종교 분쟁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물었다. “종교는 사랑과 평화를 추구합니다. 그런데 왜 종교 때문에 수많은 분쟁이 일어날까요?” 정진홍은 종교 또한 인간의 삶의 경험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삶의 경험 ‘안’에 있기 때문에 갈등과 다툼 같은 부정적인 현상이 드러나게 마련이라고 했다. 누구나 생각이 다르고, 의견도 다르고, 가치도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교의 다툼과 갈등을 보면서 ‘종교도 형편없구나’, ‘말뿐이구나’ 하고 손가락질을 한다. 정진홍은 그럴 때 손가락질을 할 게 아니라, 종교가 온전해지도록 하기 위해 힘을 보태주어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종교가 가르치는 사랑이나 평화 같은 것들이 사실상 우리 삶 속에서 가장 결핍되고,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종교가 어떻게 하면 온전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배신당했다며 손가락질하거나 실망하고 나가떨어지는 건 초등학생 수준의 대응이지, 결코 성숙한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종교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하면, 그 사람이 종교보다 정의롭고 훌륭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것은 책임지려는 태도가 아닙니다.” 종교에 대해 비판할 건 하더라도 내가 책임을 질 수 있는 건 뭔지 같이 고민해야 하며, 아껴줄 건 아껴주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두 번째 질문을 했다. “그래도 종교는 세속과 멀리 떨어져서 순결함을 유지해야 되는 게 아닐까요?” 그러자 정진홍은 종교가 세속과 멀어지는 것을 염려했다. 세속과 동떨어진 종교는 희망도 없다는 것이다. 종교인들 중에는 “세상이 썩어도 우리 종교는 썩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진홍은 이런 태도가 책임 의식은 좋지만, 동료 의식이 없는 태도라고 했다. 언제나 세상의 심판자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세상은 다 썩어도, 나는 썩지 않았다’는 자의식이다. 이런 태도는 자기 성찰이나 자기 참회의 기회를 차단하게 만든다. 그리고 참회의 기회조차 차단되면, 종교에는 정말 희망이 사라진다. 이것은 비단 종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교육, 정당, 언론도 마찬가지라고 그는 말했다.
종교 또한 인간의 삶의 영역 안에 있기 때문에 인간의 삶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정치와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에 대해 일정한 반응을 할 수밖에 없다. 정진홍은 그렇기 때문에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어떻게 서로 공존할 수 있느냐를 함께 모색하는 것이 기계적인 분리 정책보다 실용적이고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므로 종교는 세속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수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의 세 번째 질문은 다음과 같다. “전 세계적으로 이슬람교와 기독교 등 유일신 종교 사이에 유난히 분쟁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 ‘알고 보면 다 같은 신이 아니냐’라는 비판도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정진홍은 그들이 믿는 신은 결코 같은 신이 아니라고 했다. 신이라는 절대적인 존재를 갈망하는 건 어느 사회에서나 보편적이지만,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신은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기독교대로 긴 역사와 문화가 있고, 이슬람은 이슬람대로 다른 문화와 역사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문화와 역사 속에서 요구되는 신의 모습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정진홍은 바로 이 지점, 즉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종교적 갈등이 야기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정진홍이 생각하는 믿음은 어떤 것일까? 그래서 다음 질문을 이렇게 했다. “종교는 믿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어느 강연에서 하신 적이 있는데, 그럼 믿음에는 뭐가 더 필요할까요?” 그는 믿음만 갖고 종교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종교적인 독선’이며, 종교적 믿음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바로 ‘이성’이라고 강조했다. 이성도 믿음과 더불어 같이 있어야 되는 것처럼, 믿음도 이성과 더불어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성을 배제한 믿음은 독단적이고 맹목적인 것이 되어, 결국 판단을 그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무신론자들의 주장처럼, 종교가 사라진다면 세상은 더 평화로워질까요? 그들의 말처럼, 종교의 유통기한은 이제 끝난 걸까요?”라고 물었다.
정진홍은 ‘종교의 시대가 소멸된다든지, 끝났다든지 하는 말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종교의 개념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 우리가 종교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기존에 있던 특정 종교가 소멸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종교에 대한 욕구 자체가 소멸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종교적인 가치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스스로 자기 자신의 삶에 한계를 느끼면서 그 한계를 넘어선 다른 실재를 상상하고 그 실재를 통해서 유한한 자기 삶을 완성해야겠다는 꿈을 갖기 때문에 종교는 언제까지나 지속될 거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정진홍은 종교가 ‘시의 세계’ 같은 거라고 했는데, 그 부분은 정진홍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인간은 상당히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산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죠. 그렇지만 전혀 논리적이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고, 실증적이지 않은 ‘시’도 읽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의 세계가 아무리 기술적으로 발전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그것으로는 채울 수 없는 어떤 다른 상상력의 세계, 마치 산문에 대칭되는 시의 세계처럼, 그런 것이 요청되는 한, 종교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KBS 파노라마 <신의 뇌>는 보지않아서
책을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 같다.
책은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을 열거한다
현재나 과거의 저명한 뇌과학자라 라든가
이론가나 사색가들을 열거한다
그리고 그것에 물음표를 남기고
믿음에 대한 실증을 한다.
내가 보기에는 표본적 실험이 될 수 없지만 말이다
대조군도 명확한 사전적 데이터도 없다.
그래도 시각이나 청각이 살아났다 주장한다
신이 있던 그렇지 않던 믿음은 경이로운 일을 만든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진홍님의 믿음에 대한 질문을 한다.
책은 제목을 잘못지었다
책은 믿음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이라고 해야한다
하지만
인간은 진짜 많은 것을 믿는다
무너지지 않는 많은 믿음 돈에 대한 믿음
불완전에 대한 믿음
꼭 종교만이 이로운 믿음일까?
책을 읽으며 많은 의문이 생겼다
타임킬러로 읽기에는 괜찮다
진실에 근접하고 싶다면
이기적 유전자를 읽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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