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생각의 출현
박문호 지음
휴머니스트 / 2008년 10월
1부 우주와 생명,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주의 대칭이 깨어지다 - 의식의 출현, 생각의 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봐야 하고, 생명이란 현상 속에서 뇌를 이해해야 하며, 그 생명을 가능케 한 우주 차원으로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결국 뇌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2003년 이전에는 우주의 나이를 대략 150억 년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다가 2003년 말, WMAP 관측위성의 관측 결과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최근의 우주론에서 도약적인 발전으로 꼽히는 일대 사건이었죠. 이 결과는 미국의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 Science》에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WMAP 관측위성은 우주의 나이와 함께 전 우주 영역에서 우주의 온도를 측정하여 초기 우주의 모습도 포착했습니다. WMAP 관측위성은 초기 우주가 그 온도에 있어 10만 분의 1도 내로 균일하다는 것을 관측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세한 온도의 불균일입니다. 10만 분의 1도 내의 아주 작은 차이지만 조금 더 차가우냐, 조금 더 온도가 높으냐 하는 온도 불균일에 따라 물질들의 응집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 10만분의 1이라는 온도차가 물질의 응축을 가져올 수 있고, 이러한 물질의 응축은 137억 년이 지난 현재 우주의 은하와 별 그리고 우리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WMAP 관측위성 관측 결과를 시뮬레이션하면 현재 은하의 분포 양상이나 형태들을 연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주의 은하와 우리별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는 물질의 응집(응축) 과정에서는 어떤 힘이 작용했을까요? 빅뱅 당시에 하나로 통일되어 있던 힘은 우주 팽창과 더불어 순식간에 네 가지 힘으로 분화되었습니다. 동일한 성격을 띠고 완벽한 대칭을 이루다가 우주가 팽창하고 온도가 서서히 식어가면서 다른 특성의 힘이 출현하게 된 것이죠. 중력, 강력(강한 상호작용), 약력(약한 상호작용), 전자기력(전자기상호작용)입니다. 이 현상을 입자물리학에서는 자발적 대칭 파괴(spontaneous symmetry broken)라고 하죠. 파키스탄의 살람(Abdus Salam, 1926~1996) 교수가 이를 주장하여 1979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분화된 힘인 중력, 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 태양계 같은 행성계를 만드는 데는 중력이, 지구 표면에서의 생명 탄생을 가져오고 생각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는 데는 주로 전자기 상호작용(전자기력)이 작용했습니다. 전자기력은 고분자를 만듭니다. DNA도 생체 고분자죠. 고분자는 세포도 만들고, 세포막에서 전자기 작용도 일으킵니다. 이러한 것들이 모여 유기체가 되고, 세포가 되고, 동물과 식물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애셔의 해방 - 그런데 사실 우주의 대칭이 깨어지고(즉 대칭의 자발적 붕괴로 우주의 입자들이 질량을 획득하게 되었죠) 그 다음에 우주의 네 가지 힘이 분화되고, 그중 전자기 상호작용에 의해서 화학적 현상과 생명현상이 출현하는 방향과는 정반대로 우주가 분화되기 이전의 상태, 즉 빅뱅 초기로 돌아가서 대칭이 회복되는 본원적 흐름도 있습니다. 모리스 에셔(Maurits Esher, 1898~1972)의 그림 <해방 Liberation, 1955>을 보면 대칭과 대칭 붕괴로 생명이 만들어지는 모습이 직관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완벽한 대칭에서 개별 생명체로 분화되는 한 방향과 반대로 대칭성을 회복해가는 또 다른 방향을 볼 수 있죠. 에셔의 그림에는 대칭이 깨어져서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이 생겨 분화로 나아가는 양상과 일어남이 없는 본래의 대칭으로 돌아가는 두 가지 흐름이 담겨 있습니다. 입자물리학에서 대칭은 곧 보존법칙을 말 하는 것인데, 이러한 사실을 표현한 것이죠.
생명의 탄생 - 생명의 기본 단위는 세포입니다. 세포 없이는 생명체가 구성될 수도 없고 살아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물론 생각하는 것도 불가능하죠. 이제 인간의 뇌도 단지 세포의 집합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생명의 근원인 최초 세포로 거슬러 가봅시다.
생명이란 우주적 현상이고, 단세포에서부터 의식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가늠하기도 힘들 만큼 긴 시간 동안 끊임없이 일어난 변화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생명 탄생과 의식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세포, 세포입니다. 세포는 어떻게 생겨났죠? 태초, 즉 원시대양에서 코아세르베이트(coacervate, 여러 유기물이 모인 액체 상태의 무생물로, 생물 발생의 최초 단계로 여겨진다)가 생긴 후 박테리아 같은 독립된 단세포가 나타났습니다. 그 뒤로 20억 년쯤 전에 이 박테리아 같은 운동성 세포들이 자기 몸집보다 더 큰 아메바성 세포에게 잡아먹히죠. 그리고 박테리아성 세포는 아메바성 세포 안에서 소화되지 않고 숙주 상태로 공생 관계를 이룹니다.
세포 내 공생은 다세포 생명체가 생겨나는 과정입니다. 여기서 하나 짚어볼 것은 하나의 세포(단세포)가 지닌 세포의 운동성입니다. 그 운동은 자발적이며 바이브레이션한다는 특징이 있어요. 율동을 하는 거죠. 이러한 세포들이 많이 모였을 때, 즉 다세포가 되면서 각각의 세포가 가지고 있던 운동성들은 하모니를 만듭니다. 동일한 맥박을 가지게 되고 조화로운 운동을 하게 되는 거죠. 또한 단세포 생명체는 각각이 모여 전체가 되는 다세포 생명체의 하모니를 이루기 위해 단세포의 자유, 자율성을 포기합니다. 그 결과 어떤 동물이든 죽을 때는 살아 있는 근육 세포까지 몇 분, 길어도 몇 시간 내에 다 같이 죽습니다. 이나스(Rodolfo R. Llins, 뉴욕 의대 생리학 및 신경학과. 1934~)의 표현을 빌면 ‘함께 죽는 메커니즘’이 개발된 것이죠. 이것이 다세포 생명체를 이해하는 근본적인 현상입니다. 이나스는 또한 이렇게 단세포에서 다세포 생명체로 진화하는 데는 20억 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20억 년 동안 단세포에서 다세포 생명체로 진화해가며 동물, 식물, 균류가 출현한 겁니다.
그런데 다세포 생명체를 움직이는 데는 특별한 세포의 출현이 있었습니다. 바로 신경세포(neuron)이죠. 신경세포는 어떻게 진화되었을까요? 다세포로 모였을 때 핵심은 모인 세포 덩어리들이 먹이나 성(性) 파트너를 찾아서 함께한 방향으로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각의 세포들 모두 통신을 하여 한쪽 방향으로 움직여야겠죠. 그래서 세포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 즉 세포들이 통일된 행동을 하기 위해서 특별한 세포인 신경세포가 진화되어 온 겁니다.
신경세포는 척추동물의 출현으로 이어집니다. 해면동물 등 초기 동물들의 신경계를 보면 하나의 세포가 감각 자극을 받아들이고 움츠러들거나 하면서 곧바로 반응합니다. 감각 수용과 운동 출력을 하나의 세포가 담당하는 거죠. 그런데 히드라 같은 강장동물에서는 들어온 감각세포에서 자극을 전달받아 전문적으로 움직임을 만드는 운동세포가 출현합니다. 감각만 전담하는 감각세포와 받아들인 감각을 운동으로 표현하는 운동세포로 분화되는 거죠. 거기서 더 나아가 생명체가 진화하면서 감각세포와 운동세포, 이 두 세포 사이를 연결해주는 신경세포가 출현하면서 신경세포들이 하나로 모이는 과정에서 척추동물이 출현하게 되는 겁니다. 정리해보면, 감각세포와 운동세포를 연결해준 신경세포들의 조절 작용이 통합되어서 신경세포인 척수신경이 발달하고 그것이 위로 집중화되어 올라간 것이 대뇌, 즉 중추신경 시스템이죠.
의식의 진화적 뿌리가 된 것도 단세포성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운동성입니다. 이나스는 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생각은 진화적으로 내면화된 움직임입니다. 생각은, 의식은 움직임이 내면화된 결과라는 것이죠. 결국 우리의 의식의 다양한 형태인 사고, 감정, 느낌 같은 의식 작용들은 궁극적으로는 운동이 내면화된 겁니다. 감정을 영어로 이모션(emotion)이라고 하죠, 앞의 e가 뭡니까? out의 의미죠. 즉 motion이 밖으로 나온 겁니다. 운동이 바깥으로 분출된 겁니다. 결국 이 말은 감정이란 외부로 표시된 운동이라는 거죠.
운동하는 신경세포 - 뇌의 활동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신경세포의 진화를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신경세포와 신경세포의 연결망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살펴보도록 하죠.
학습 후 수상돌기 소극의 변화모습 - 동물하고 식물이 다른 점이 뭡니까? 신경 시스템이 있느냐 없느냐죠. 식물은 신경 시스템이 없어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식물은 태양에너지를 받아서 유기화학에너지, 즉 녹말과 같은 탄수화물을 만드는 겁니다. 동물은 어떻게 합니까? 동물에게도 태양에너지, 즉 햇빛이 오죠. 하지만 태양에너지를 이용하는 방식이 식물과는 다릅니다. 식물은 태양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동물은 시각 시스템으로 흘러가는 전압 펄스로 바꾸죠. 전압의 파(波), 전기적 에너지로 변환하는 겁니다. 그래서 동물이 배가 부르냐? 당연히 태양에너지를 흡수하여 생체 에너지로 바꾸지 못하므로 배가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물은 태양의 빛을 통해서 시각 시스템을 진화시키죠. 그 결과 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보게 됨으로써 먹이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빛의 자극을 펄스로 바꾸어 정보를 전달하는 게 뉴런, 즉 신경세포입니다. 신경세포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배터리인 겁니다. 지속적인 전류를 만들어주는 배터리요. 『꿈꾸는 기계의 진화』에서 이나스는 이런 주장을 하죠. 뉴런(신경세포)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배터리다.
그러면 정보전달은 어떻게 할까요? 그것은 신경세포들의 연접으로 이루어집니다. 신경세포와 신경세포가 만나는 지점, 그 연접부위가 바로 시냅스입니다. 학습할 때 나타나는 시냅스의 형태 변화를 살펴보죠. 학습은 뇌에서 이루어지는 시냅스의 활성 변화에 따른 신경세포 간의 네트워킹, 즉 신경망의 구성이라고 볼 수 있죠. 학습할 때 나타나는 시냅스의 형태 변화는 전자현미경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학습 전에는 신경세포의 수상돌기 소극(dendritic spine, 가시처럼 튀어나온 부분)이 뚜렷하지 않죠. 그러나 학습한 후에는 수상돌기 소극이 변화합니다. 시냅스의 형태 변화가 바로 학습의 결과이고 기억이고 감정이 되는 것입니다.
2부 인간의 뇌,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뇌, 상상하는 기계가 되다 - 뇌를 쉽게 이해하기 위한 한 방법은 진화의 긴 시간을 통하여 관찰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만을 중심에 두고 뇌를 들여다보면 뇌가 잘 안 보입니다. 물고기, 파충류, 포유류 등의 뇌와 인간의 뇌를 비교해보면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언어라는 요소(factor)가 인간의 뇌에서 어떻게 발현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뇌를 이해하기 위한 또 한가지 방법은 뇌가 하는 궁극적인 일인 운동성을 주의 깊게 살피는 것입니다.
인간의 뇌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살펴보죠. 갑각류를 생각해봅시다. 곤충이나 게, 새우 같은 것들요. 갑각류는 외투, 단단한 바깥껍질로 되어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바깥껍질이라기보다는 외골격이죠. 갑각류를 보면 딱딱한 껍질이 바깥으로 나와 있고 그 안에 속살이 있습니다. 속살이 바로 근육입니다. 근육이 그 안에 갇혀 있으니 갑각류 입장에서는 자기 몸의 움직임, 근육의 움직임을 볼 수가 있죠.
그런데 척추동물에서는 뼈가 안으로 들어가고 근육이 바깥으로 나옵니다. 갑각류처럼 외골격이 아니라 내골격인 거죠. 인간도 그렇죠. 우리의 경우, 뼈가 안으로 들어가고 피부조직에 감싸인 근육이 바깥으로 나옴으로 해서 어떤 변화가 있느냐, 몸집이 더 커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됩니다. 내골격의 지지 작용으로 다양한 골격근이 형성될 수도 있죠. 이나스의 주장처럼 잘 운동할 뿐만 아니라 근육의 움직임을 즐길 수도 있게 되죠. 또한 서로의 근육의 움직임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아주 복잡하고 미묘한 표현들이 가능한 얼굴 근육을 보고 서로의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표정뿐만 아니라 몸짓, 소리 등으로(침팬치나 인간처럼) 같은 종안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척추동물에서 근육이 바깥으로 나오고 뼈가 안으로 들어간 것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습니다. 신경 시스템이 뼈 속에 갇혀버린 겁니다. 중추신경 시스템이 두개골과 척추 뼈에 갇히게 된거죠. 이런 인간의 뇌를 가리켜 이나스는 폐쇄계라고 했죠. 폐쇄계이기 때문에 뇌는 우리 몸에서 유일하게 감각 입력을 통해서 바깥 환경에 대한 정보를 얻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바깥에 있는 세계상을 신체 표면에 존재하는 감각기관을 통해 내면화하고 범주화를 통해 세계상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그래서 궁극적으로 뇌는 가상 머신이며 꿈꾸는, 그리고 상상하는 기계인 겁니다.
상상하는 기계인 뇌가 하는 궁극적인 일은 운동성입니다. 뇌는 감정과 느낌을 바탕으로 적절하게 운동 출력을 내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감정이 손상되어 운동 출력을 내보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어느 날 엘리엇이라는 사람이 신경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 1944~)를 찾아갔답니다. 일하는 직장마다 해고를 당하자 정신질환자임을 인정받아 실업수당을 얻기 위해서죠. 하지만 당시 기술로는 한계가 있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판단을 어떤 정신과 의사도 못 내렸답니다. 그런 엘리엇에게 다마지오가 교통사고나 전투 장면 같은 안 좋은 사진 여러 장을 죽 보여주었는데, 그 사진을 본 후 논리적으로 잘 설명을 하더랍니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 좀 이상했던 거죠. 설명은 논리적으로 하는데 얼굴 표정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던 겁니다. 피부 저항을 측정해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죠. 다마지오는 이 사람을 면밀히 조사하다가 안와전전두엽에 종양이 생긴 걸 알았죠.
운동 출력을 만들어내고, 계획하는 곳은 전두엽입니다. 특히 전전두엽은 뇌 전체에서 아주 중요한 부위인데, 전전두엽에서도 눈동자가 들어가는 부분인 안와전전두엽은 사회적 정서와 관련이 된 곳입니다. 안와전전두엽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결국에는 감정이 이상해집니다. 다마지오는 『데카르트의 오류 Descartes Error: Emotion, Reason, and the Human Brain』라는 책에서 안와전전두엽에 종양이 생기면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안와전전두엽에 문제가 생기면 감정이 손상되는 것이죠. 감정이 아주 평면적으로 바뀌면서 감정 기복이 없고 냉혹해집니다. 이때 결정적으로 손상되는 것이 판단력입니다. 판단력을 상실하죠. 다마지오는 이런 결론을 내리죠. 이성적 판단,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감정이 풍부해야 한다! 감정과 느낌을 바탕으로 상황에 맞게 생각하며 적절하게 운동 출력을 계획하고 선택해야 하는 것이죠.
충격적인 일을 겪으면 뇌의 어떤 부위가 손상되어 물리적으로 변형되기도 합니다. 참사 후 신경회로가 거의 3분의 1수준으로 줄어들어 거의 선으로 되어버린 자료도 있습니다. 외상후증후군을 뇌 과학적으로 확실히 보여주는 예죠.
3부 뇌와 감각, 생각이 인간을 움직이다
예측하다, 감정의 뇌 2 - 어떤 자극이 입력되었을 때 인간은 다른 무생물들과 달리 그대로 출력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삶에는 예기치 않은 입력이 많기 때문에 기존의 기억을 조합하여 새롭고 독특한 출력을 만들어냅니다. 자극에 대한 반작용에 있어서 인간은 대뇌에 입력된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계산해서 반응을 내보내는 것이죠. 그래서 예측이 필요합니다. 인간에게 느낌이라는 고차원적 뇌 기능이 발전해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우리 주변의 동물들을 잘 관찰해보면 기본 반사가 어떤 식으로 진화해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무생물시스템을 생각해보죠. 무생물은 자극에 그냥 반작용을 나타냅니다. 탁구공을 탁 놓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이때의 반작용은 즉각적인 무조건 반사처럼 보이죠. 뉴턴의 법칙에 의해서 수학적으로 계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입력이 들어가면 지연 시간 없이 곧장 반응(출력)을 내보내는 것이죠. 동물 시스템에서는 어떻게 뇌느냐. 입력이 들어갔을 때 출력을 내보내는 반응이 좀 더 지연되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비둘기를 생각해봅시다. 10미터 바깥에서 비둘기가 우리를 보잖아요. 가까이 가도 우리를 한참 보고만 있다가 바로 근처에 이르러서야 날아가죠. 입력이 들어갔을 때 출력을 내보내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 계산을 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 인간에 이르면 어떻습니까? 입력이 들어갔을 때 출력을 그냥 내보냅니까? 그렇지 않죠. 들어간 입력을 곧장 내보내는 반사회로만 있다면, 인간의 문화나 사회 시스템은 존재할 수가 없죠. 화가 났다고 해서 화를 그냥 분출한다는지 하면 인간관계는 존재할 수가 없죠. 그러니 입력이 들어갔을 때 출력하기 위해, 즉 반응을 어느 정도 지연시킬 수 있는가가 중요한 관건이 됩니다. 당연히 의미 없이 지연만 하는 게 아니고, 뇌 특히 대뇌에서 많은 계산을 하는 거죠.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계산을 해서 반응을 내보내는 겁니다. 척추동물이 진화하면서 기본 반사는 다양한 형태로 정교해지고 복잡해진 것이죠.
인간에게는 사회를 이루고 문화를 만들며 살다 보니 예기치 않은 입력들이 계속 들어 옵니다. 정례화되어 있지 않은 입력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감정과 특히 느낌에 기반한 판단력이 필요하죠. 예기치 않은 입력에 대해 기존의 기억을 다양하게 조합하여 새롭고 독특한 출력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가 예측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기억 정보가 있어야 합니다.
생물학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 시스템에서도 중요한 게 미래에 대한 예측입니다. 예전에는 10년, 20년 단위로 미래를 예측했는데 지금은 10년 후는커녕 1년 후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죠. 그만큼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죠.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들은 예외 없이 신문 읽기를 하고 있습니다. 신문은 사회 전체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그대로 담고 있죠. 온갖 종류의 인간 활동들의 방향성이 신문지상에 다 나옵니다. 뇌 과학적으로 봐도 신문 읽기야말로 미래를 예측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거죠. 『메가트렌드 Megatrends: Ten New Directions Trans forming Our Lives』의 저자 나이트비트(John Naisbitt, 1929~)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10년, 20년 후를 내다본다는 예측이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 당신이 하는 방법이 뭔가? 그는 이렇게 대답했죠. “내가 하는 만큼 한다면 누구나 미래를 읽을 수 있다. 나는 하루에 6~7시간 신문을 읽는다.” 앨빈 토플러도 최근 인터뷰에서 신문을 “세계가 돌아가는 소식과 새로운 지식이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의 보고”라고 규정하고, 매일 6~7종의 신문을 샅샅이 읽어본다고 했죠. 신문 예닐곱 종을 보려면 아마 대여섯 시간은 걸릴겁니다. 이게 미래학자들의 일이죠.
제대로 된 사회, 발전하는 사회는 어디론가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사회도 당연히 정확한 미래 예측을 통해 내부적으로는 다양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고 외부적으로는 하나의 목적, 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나아가야 하는 것이죠. 그런 방향성의 모색, 즉 비전 제시가 바로 척추동물에 와서야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창조적으로 생각하다, 뇌와 창의성 - 창의성 또는 창의력, 우리 시대의 주요 관심사죠. 교육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창의성에 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도대체 창의성이라는 게 뭘까요. 우리는 이 창의성을 넓은 시야로, 그리고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생물학적 적응 반응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창의성을 뇌 과학적으로 살피기 위해서는 뇌 과학과의 연결 지점을 찾아야 합니다.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에 따르면 창의적인 사람들은 이런 특징이 있다고 하죠. 일반인들의 상태와는 달리 창의적인 사람들은 매우 예민하게 감정을 느낀다. ‘감정을 느낀다.’ 이것이 뇌 과학과 창의성의 접촉, 만남의 지점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창의성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해보겠습니다.
다마지오의 『스피노자의 뇌』에서는 인체에서 세포 수준의 반응들이 바탕이 되어 느낌으로 발현되는 여러 단계를 만나게 됩니다. 다마지오에 따르면, 느낌의 출발점은 세포 수준의 세 가지 생명 반응이죠. 그 세 가지가 뭐냐. 면역 반응(외래에서 침입하는 이물질을 막아내는 시스템으로 자기self와 비자기non-self를 구별한다)과 기본 반사(외부 자극에 대한 생물학적인 반응), 대사 조절(물질을 섭취해서 에너지를 흡수한 후 배출하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기본 활동 세 가지가 통합되어 표출되는 것이 통증과 쾌락입니다. 우리 몸에 어떤 항상성이 있는데 조절할 수 없는 입력이 들어오면 통증으로 느끼는 겁니다. 통증은 즉각적 반응이라는 점에서 대뇌피질에서 오랫동안 지속되는 고통과는 다르죠. 쾌락, 즉 좋은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을 보면 주기적입니다. 주기적으로 율동을 하죠. 느낌으로 가는 중간 단계로 쾌락과 통증이 각각 모여서 동기와 충동이 생기죠. 통증인 경우에는 회피하려는 욕구가 생기고, 쾌락인 경우에는 계속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인데 그래서 통증과 쾌락에 이어 동기가 유발되고 충동적인 행동력이 나오는 거죠. 이러한 것들이 좁은 의미의 정서를 만들어내고 최종적으로 느낌을 만들어냅니다.
여기서 우리가 유심히 봐야 할 점은 느낌은 여러 대뇌피질이 관여하는 의식적인 과정이며, 감정과 충동-동기, 통증-쾌락은 반사회로와 관계된 무의식적 과정이라는 것이죠. 이러한 결과는 느낌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사실 뇌의 활동에서 의식의 영역은 5%에 불과합니다. 의식의 지평으로 올라오지 않는 무의식이 나머지 95%를 차지하죠. 어떤 느낌이 들 때 우리는 이런 말을 합니다. “왠지?” 또는 “왠지!” 누군가를 만났을 때의 느낌. “아, 그 사람 왠지 그래.” 현안이 된 사건을 듣고 난 느낌. “왠지 어떤 느낌이 들어”. 왠지 뭐뭐 하다는 우리말이 느낌의 속성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죠.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압니다. 내 몸 전체가 알고 있죠. 즉 느낌의 세계는 5%의 의식을 쓰기 때문에 ‘왠지 뭐뭐 한, 뭔가 하는 느낌’이 온다는 거죠. 이것이 바로 다가올 상황에 대해 미리 낌새를 알아채는 전조가 됩니다. 예측할 수 있는 거죠. 예측이 뭡니까? 그렇죠. 불확실성에 대처할 수 있는 것! 그러므로 느낌을 통해 구현되는 예측이야말로 우리가 불확실성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됩니다.
그렇다면 창의성은 어떻게 발현되는 것일까요? 느낌은 창의성의 발현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느낌의 차원, 의식의 차원에서는 뇌 전체에 있는 기억 정보들을 사용합니다. 뇌 전체 기능의 5%밖에 안 되는 의식 상태라는 뇌의 상태가 불확실한 입력이 초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다양하고 새롭게 연결하여 상상과 추론을 한 결과 새롭고 독특한 출력을 만들어냅니다. 그런 뇌의 능력을 바로 창의성이라 하는 겁니다. 새롭고 독특한 출력이 바로 창의성과 동의어인 거죠.
그렇다면 창의성의 발현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최근에 나온 뇌 과학자 모기 겐이치로(茂木健一郞)의 『창조성의 비밀: 번뜩이는 생각들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충분한 학습량이 있어야 번뜩임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창의성도 정보의 양이 먼저 충분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느 분야든 창의적인 결과물을 내려면 10년 이상 학습에 몰입하여 집대성해야 합니다. 이 점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창조성의 비밀』을 보면 ‘기억의 편집’이라는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창의성이 뛰어난 사람이 되려면 임계치에 해당하는 10년 이상 정보를 모으고, 모은 정보를 편집해야 한다는 것이죠. 정보와 정보를 변형시키고 새로운 정보와 정보를 연결시키는 정보의 편집이 바로 창의성을 키우는 과정이라는 겁니다. 창의성은 어디서 갑자기 툭 떨어져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쌓인 정보에서 편집이 일어나고 새로운 정보가 더해지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는 것, 이것이 바로 창의성입니다.
과학칼럼니스트 이인식 씨가 어느 실험 데이터를 설명하면서 “천재는 머리보다 땀”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흔히 천재라는 사람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사고하고 추론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거죠. 천재들이야말로 특별한 방식이 아니라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먼저 확보하고 있었던 겁니다. 우라늄을 농축해서 임계질량을 넘어서야 핵분열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인간 지능도 똑같아요. 양이 임계치를 넘는 순간 질로 바뀌는 것이죠. 그전까지는 어떻게 해도 질로 바뀌기가 어렵습니다.
4부 창조하는 뇌, 대칭이 깨어지고 생각이 확장되다
자발적 대칭 파괴로 생각이 진화하다 - 지금까지 물리 근원의 대칭의 세계에서 시작하여 대칭 붕괴로 초래로 의식의 출현이 이르게 된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인간의 생각이라는 것도 대칭과 대칭의 붕괴를 끊임없이 일으키며 계속 움직여 갑니다. 생각의 대칭과 대칭 붕괴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학습입니다.
우리 인간의 기억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한번 배우면 평생 잊지 않는 생존을 위한 절차 기억(대뇌기저핵의 선조체에서 일어남), 한번 형성되면 결코 바뀌지 않는 신념 기억(편도체와 자율신경 호르몬의 반응이 관여함), 학습 기억(해마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남. 학습 기억의 루트를 보면 해마와 피질이 쌍방향으로 연결되어 있어 끊임없이 에러를 수정하는 특징을 가짐). 이 중에서 학습 기억은 10세 전후에 급격히 증가합니다. 25세쯤 되면 절정에 이르고, 35세쯤 되면 안정적이다가 60세 이후에는 급격히 줄어듭니다. 그러나 학습을 하면 시스템이 바뀝니다.
그리고 학습 형태를 중심으로 학습 부재형(신념 주도형), 학습 최소형(현실 주도형), 학습 주도형(학습 증가형)으로 학습의 관점에서 사람들을 살펴볼 수 있죠. 오픈 시스템, 즉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기억을 보면 학습 기억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 세 가지 기억의 비율이 생각의 유연성에 관한 인간형을 결정합니다. 예를 들면 20대 대학생의 경우 절차 기억이 10%, 신념 기억이 20%, 학습 기억이 70% 정도라 보면, 집중적으로 학습하는 대학 시절 이후에는 학습 기억이 30%로 줄어들면서 신념 기억이 60% 정도로 올라갑니다. 즉 나이 들어가면서 학습 부재형의 완고한 인간이 되는 거죠. 자기가 알고 있는 몇 가지 고정된 신념 체계가 생각의 유연성을 가로막는 겁니다. 종교나 정치적 도그마에 빠진 사람들이 그렇죠. 신념 기억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는 데 강력한 추진력을 주지만, 방향을 잘못 설정하면 다른 사람들과 충돌을 일으킵니다. 서로 다른 신념 시스템끼리 충돌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보는 일이죠.
학습 최소형은 생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아주 최소한의 학습만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죠. 책을 읽어도 현실적인 책만 읽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인 독서는 현실적으로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죠. 10년 전과 지금의 변화 속도는 너무나 다릅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라졌죠. 그래서 현실적인 학습만 할 경우 현실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근시안적인 독서로는 현실의 변화에 대응할 수 없죠.
100명에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한 특이한 형태가 바로 학습 주도형(학습 증가형)입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적극적으로 학습하는 사람들입니다. 대부분 독서를 통해서 배우죠. 오픈 시스템을 향해 살고 있는 이 사람들의 학습 기억은 가파르게 올라갑니다. 융통성과 판단력, 비전이 탁월해지죠. 학습 주도형의 사람에게는 신념 기억이 균형 잡힌 지식의 힘으로 제어되어 맹목성이 올바른 방향의 추진력이 되는 순기능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융통성, 판단력, 비전이 탁월한 인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지식의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집요한 학습으로 지식의 총량이 많아지면, 즉 판단력의 기준 바탕이 높아지면 삶의 예측은 더 정확해집니다. 둘째, 질문을 품어서 성장시켜야 합니다. 질문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죠. 예부터 선사들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도를 깨치기 위해서는 의심 덩어리가 커야 하고, 강렬한 내적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의심 덩어리를 함부로 노출한다든지 간단히 해결했을 때는 공부, 학습의 동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런 질문은 만들기도 어려우며 한번 얻은 질문은 적어도 5년, 10년 이상 내적으로 질문의 강도를 높여서 학습의 추진력으로 삼아야 합니다. 질문의 힘으로 대상을 보기 시작하면 결국 그 질문이 스스로 답을 찾죠. 셋째, 학문에 미쳐야 합니다. 어느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는 미친듯이 몰아붙여야 하는 겁니다. 보통은 5년, 좀 어려운 분야는 10년 단위로 계획하여 스스로 각 분야를 조망할 만큼 학습을 해야 합니다.
네 번째가 중요합니다. 학습의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자연과학 대 인문과학의 비율을 7대 3 정도로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자연과학은 철학 · 문학 분야와 달리 40대가 되기 전에 공부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 목표량이 중요합니다. 50대가 될 때까지 3천 권 정도 집요하게 읽다 보면 정보가 서로 링크 되면서 정보들 사이에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양이 질로 바뀌는 거죠. 이에 덧붙여서 양질의 정보, 양질의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 교육의 최종 목표는 좋은 책인지 책을 선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젠가 하버드 대학 총장이 졸업생들에게 강연한 것을 글로 읽은 적이 그저 그런 책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좋은 정보, 좋은 책을 구별할 수 있을 때부터 학습에 가속이 붙습니다.
결국 생각의 출현으로 가는 길에는 융통성, 판단력, 비전이 탁월한 학습 주도형의 인간이 서 있습니다. 스스로 대칭을 깨뜨리고 다시 대칭으로 향하는 것이죠. 우주 초기의 대칭이 깨어져서 나타난 것이 뇌, 의식의 출현 아니었습니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선을 같이 하는 내용들이다
뇌에 관한 이야기의 시작을 천문학을 출발점으로 삼아
생명의 기원으로 부터 기인하였다
우주 시공간에서 부터 우주 구성 물질들이 분화하는 힘의 작용, 지구의 탄생,
생명체의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사건인 세포의 등장, 생명체의 진화와 척추동물의 출현,
뇌의 중추신경 시스템의 형성과 구조,기능에 이르기까지의 설명을 하였다
생각의 출현을 거시적 관점에서 미시적 관점으로 조명한 것이다
저자는 상상과 다양성이 융합된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설계해야 하는
앞으로의 시대에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통합된 사고가 중요하며
발전적 융합 학습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자연과학을 아는 리더가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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