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경제경영

애플, 성공 신화의 비밀 - 김정남

삼생지연 2020. 12. 6. 10:00
728x90

애플, 성공 신화의 비밀

김정남 지음   

황금부엉이 / 2010 12



1장 스티브 잡스 1.0 애플을 시작하다


잡스를 잡스답게 만든 부모님의 사랑 : 애플과 스티브 잡스는 결코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존재다. 우선 그의 가정환경 이야기를 해보자. 스티브 잡스는 1955년 2월 24일 대학원생으로 동거를 하던 압둘파타 잔달리와 조앤 시블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혼모였던 그의 어머니는 스티브 잡스를 양육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대학 교육을 시켜 준다는 조건으로 폴과 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시켰는데, 그들은 사랑을 담아 성심성의껏 스티브 잡스를 양육했다. 말썽꾸러기였던 스티브 잡스는 이런 저런 사고를 일으켰지만, 부모님은 뭔가를 강요하기보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들을 하도록 믿고 따라주었다.

또 한 명의 스티브, 워즈니악과의 만남 : 스티브 잡스는 학교에서 외톨이였지만, 전자기기에 대한 열정 덕분에 중학교에서 빌 페르난데스라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 후 어느 날 잡스는 빌의 집에 방문했고, 그곳에서 마침 워즈니악이 만들고 있는 컴퓨터를 목격하게 된다. 잡스는 워즈니악의 컴퓨터와 전문 지식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워즈니악 역시 자신의 말을 바로 이해하는 잡스가 마음에 들었다. 한편 1975년 1월 파퓰러 일렉트로닉스는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컴퓨터 알테어 8800(ALTAIR 8800)의 탄생을 대서특필하였는데, 당시 HP에서 공학용 계산기를 개발하고 있던 워즈니악은 그 기사를 꼼꼼히 읽으면서 자신도 알테어 8800 같은 컴퓨터를 직접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고, HP를 다니면서 틈틈이 개발에 몰두한 워즈니악은 단 3개월 만에 컴퓨터를 완성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 만든 컴퓨터를 워즈니악은 홈브루 컴퓨터 클럽(마이크로컴퓨터를 연구하고 기술을 교류하기 위해서 실리콘 밸리에서 결성된 모임)에 공개했다. 하지만 워즈니악의 기대와는 달리 그의 컴퓨터는 별 반응을 일으키지 못했다. 사실 워즈니악 자신보다도 그의 컴퓨터를 더 높이 평가한 사람이 바로 스티브 잡스였다.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의 컴퓨터가 충분히 상업적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직접 컴퓨터를 판매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잡스는 평생에 한 번 정도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이라면서, 아예 회사를 창업해서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판매하자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마침내 워즈니악은 자신이 가장 아끼던 물건이었던 HP의 공학용 계산기를 500 달러에 팔아서 회사 창업자금을 마련하게 된다. 잡스 역시 폭스바겐 자동차를 팔아서 창업 자금을 더한다. 둘의 역할분담은 명확했다. 워즈니악이 엔지니어로서 제품개발 전반을 책임졌고, 잡스는 그 밖의 모든 일들을 했다. 우선 그는 컴퓨터를 판매하기 위해 상점에 접근했는데, 그중 하나가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서 활동하던 폴 테럴이 운영하는 바이트 숍이었다. 결국 잡스는 폴 테럴에게서 100대의 컴퓨터를 주문받는다. 

포기하지 않는 열정 : 애플Ⅰ 컴퓨터는 최종적으로 175대가 판매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첫 번째 상품인 애플Ⅰ 컴퓨터는 엄밀한 의미에서 완제품이 아니었다. 애플Ⅰ 컴퓨터는 케이스도 없는 기판의 형태로 팔았기 때문에 구입한 사람이 따로 모니터, 케이스, 키보드 등을 추가해야 비로소 전원을 넣고 컴퓨터를 작동시킬 수 있었다. 때문에 판매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스승 마이크 마쿨라 : 창업 초기 동아리 수준에 불과했던 애플은 마이크 마쿨라의 합류 이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1942년생인 마이크 마쿨라는 페어차일드와 인텔에서 근무했던 마케팅 전문가였는데, 잡스가 제시하는 비전과 열정에 반한 그는 회사 지분 3분의 1을 갖는다는 조건으로 9만 1,000달러를 투자했고, 은행에서 25만 달러를 융자받을 때 보증까지 섰다. 마이크 마쿨라가 합류함으로써 애플은 이제 정식으로 주식회사가 되었다. 꿈꾸는 두 몽상가에게 마이크 마쿨라는 멘토가 되어서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고, 잡스와 워즈니악이 프로가 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그 후 애플Ⅱ 컴퓨터의 판매량은 1978년에 7,600대, 1979년에 35,000대, 1980년에는 78,000대나 판매된다. 이러한 판매량 증가 덕분에 애플의 매출은 매년 100%씩 성장했고, 창업한 지 단 4년 만에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1980년 12월 12일 애플의 주식이 공개되자 한 시간 만에 460만 주나 되는 모든 주식이 팔렸고, 그날 하루 동안 주식가격은 32%나 상승한다. 덕분에 스티브 잡스는 하루아침에 2억 1,750만 달러를 보유한 억만장자가 되었으며, 스티브 워즈니악의 자산 역시 1억 1,600만 달러를 넘어섰다. 마이크 마쿨라의 주식 역시 2억 300만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았는데, 이것은 그가 투자한 자금의 20,000%를 넘는 금액이었다.


2장 애플 몰락의 길을 걷다


존 스컬리의 시대 : 애플 컴퓨터의 창업자로,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창조한 영웅으로 칭송받던 스티브 잡스였지만, 그가 온 전력을 쏟아 부은 매킨토시의 실적이 부진하자 함께 추락하기 시작한다. 매킨토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회사 사람들에게 스티브 잡스는 독선적인 행동들을 빈번하게 벌였고, 이 때문에 사내에 많은 반대파들을 만들었다. 급기야 스티브 잡스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세력들이 결집하여 1985년 5월 31일 이사회에서 그의 모든 실권을 빼앗았다. 그러자 그는 1985년 9월 17일에 애플에 정식 사직서를 직접 제출하고, 애플 직원 중 여섯 명을 데리고 넥스트(NeXT)를 창업한 후 애플의 주식을 단 한 주만 남겨두고 모두 처분한다.

스티브 잡스가 떠난 후 존 스컬리가 애플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당면과제는 창업 후 처음 발생한 적자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였는데, 그의 골칫거리는 스티브 잡스의 뛰어난 선견지명 덕분에 해결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있을 때 고품질 인쇄가 가능한 프린터와 소프트웨어 개발에 몰두하였는데, 이런 노력은 1985년 앨더스사에서 제작한 페이지메이커로 빛을 보게 되었다. 페이지메이커는 전자출판 혁명을 불러일으키며 추락하던 매킨토시의 컬러 소프트웨어가 되는데, 사람들은 페이지메이커라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하기 위해서 매킨토시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그 후 어도비에서 포토샵이라는 이미지 처리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면서 매킨토시는 그래픽 디자이너들에게도 사랑받는다. 존 스컬리는 이때 마진율 55% 정책을 고수하면서 회사의 수익을 극대화한다. 

당시만 해도 매킨토시를 대체할 컴퓨터는 없었고, 매킨토시 사용자층은 전문가들이었기 때문에 존 스컬리의 선택은 옳은 듯했다. 즉 매킨토시는 1989년에는 300만 대 이상이 판매되어 어느덧 애플은 세계 1위의 컴퓨터 제조업체로 우뚝 선다. 하지만 90년대로 들어서자 문제점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그 시작은 존 스컬리의 판단착오 때문이었다. 매킨토시의 힘은 바로 독창적인 제품이라는 것인데, 마이크로소프트가 매킨토시를 베껴서 윈도우를 내놓았다. 1985년 11월 20일 윈도우가 세상에 공개되자 법적 소송까지 고려했던 존 스컬리는 이틀 후 라스베이거스에서 빌 게이츠를 만나서는 애플 역사상 최악으로 기록되는 계약을 하고 만다. 당시 빌 게이츠는 윈도우 등장을 1년 정도 연기하는 조건으로 매킨토시에 사용된 애플의 고유 인터페이스를 마이크로소프트가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달라고 했다. 존 스컬리는 엑셀이 매킨토시 독점으로 1년간 묶여 있게 된다는 사실에 너무나 기쁜 나머지, 맥 OS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살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라이선스하는 계약을 했다. 그 뒤 윈도우 2.0이 나오자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를 고소하지만, 1985년 맺은 계약 때문에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판결을 받게 된다. 결국 윈도우 3.0은 1년 동안 무려 4백만 개가 판매되는 돌풍을 일으킨다. 이전만 해도 쓸 만한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는 맥 OS밖에 없었지만 윈도우 3.0 이후 비로소 경쟁자가 생긴 것이다. 존 스컬리는 서서히 회사에서의 통제력을 잃어갔다. 

길 아멜리오의 시대 : 잡스의 모든 실권을 빼앗아서 스컬리에게 전권을 주었던 애플의 이사회 멤버이자 벤처 투자가인 아서 록이 이번에는 스컬리의 해고를 통보했다. 그리고 후임자가 된 사람은 마이클 스핀들러였다. 스핀들러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진행한다. 또 한 자릿수로 떨어진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매킨토시의 운영체제인 맥 OS를 모토로라, 파워컴퓨팅, 유맥스 등 다른 하드웨어 업체에 라이선스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이제 애플은 자신의 제품을 복제한 회사와 서로 경쟁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여기에 윈도우 95가 가세하면서 마이클 스핀들러는 직격탄을 맞는다. 매킨토시의 1995년 마지막 분기는 6,800만 달러의 적자가 났는데, 이런 실적으로는 더 이상 스핀들러가 회사에 머무를 수 없었다.

스핀들러의 후임으로는 길 아멜리오가 임명되었다. 길 아멜리오는 회사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고민했고, 운영체제가 가장 문제라는 것을 발견했다. 윈도우 95가 발매된 이후 시장을 급속도로 확장하는 동안 애플은 이에 대응하는 어떤 제품도 내놓지 못했다. 회사 내에서는 도저히 운영체제를 만들 능력이 없으니 외부에서 사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소식들이 스티브 잡스의 회사인 넥스트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었다. 그래서 넥스트의 개발자들은 스티브 잡스 몰래 애플과 접촉한다. 애플 관계자들이 넥스트의 사무실을 방문해서 개발 중인 운영체제를 직접 테스트했고, 흡족한 결과를 얻었다. 충성스런 넥스트의 개발자들 덕분에 스티브 잡스의 인생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길 아멜리오는 3억 7,750달러의 막대한 현금과 150만 주에 이르는 주식으로 넥스트를 인수하고, 스티브 잡스를 애플의 고문으로 영입하게 된다. 잡스가 고문으로 애플에 돌아왔지만 회사는 아주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중이었다. 길 아멜리오가 CEO로 재직 중일 때 애플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6%에서 3%로 떨어졌고, 교육 시장점유율은 41%에서 27%로 하락하면서 실적은 계속 추락 중이었다. 또 주식은 10년 내 최저로 떨어져 있었다. 결국 이사회는 길 아멜리오의 후임을 선택하기 위해서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에게 SOS를 쳤다.

스티브 잡스 2.0의 시대 : 애플로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그동안 아무도 건들지 못했던 이사회 멤버를 갈아엎었다. 그중에는 누구도 함부로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던 마이크 마큘라도 있었다. 그리고 애플에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과거보다 훨씬 더 강력해져 있었다. 그는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회사인 픽사를 경영하면서 창조적인 인재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제공하는 방법을 터득하였다. 즉 항상 주도권을 가지고서 모든 것에 참견하던 그가 픽사를 경영한 이후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권력을 나누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부하직원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나서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아는 사람이 되었다. 특히 좀 더 겸손해졌으며 무조건적인 기술과 하드웨어 지향주의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3장 애플 부활하다


돌아온 황제, 애플의 르네상스를 열다 : 돌아온 스티브 잡스 역시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었다. 결국 50여 개가 넘는 프로젝트 중 단 10개만이 살아남았다. 또 제품 라인업과 제품 개발 방식에도 칼을 대었다. 그가 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일은 애플의 미래를 불안하게 보는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는 것이었는데, 애플을 부정적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마이크로소프트였다. 1994년 이후로 마이크로소프트는 매킨토시용으로 MS 오피스를 내놓지 않았다. 결국 스티브 잡스는 라이벌 빌 게이츠에게 SOS를 칠 수밖에 없었다. 맥 OS를 참고해서 윈도우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원죄처럼 따라다닌데다가 마침 애플이 내놓은 동영상 처리 프로그램인 ‘퀵타임’의 소스를 무단으로 윈도우에 도용한 문제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소송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자질구레한 조건을 내걸지 않고 바로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협상안을 제시했다. 과감한 결단 덕분에 두 회사는 일사천리로 협상을 진행하여 몇 가지 합의를 이끌어냈다. 우선 MS 오피스가 매킨토시 버전으로도 계속해서 발매될 것을 약속받았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식구매를 통해 애플에 1억 5,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또 잡스는 델처럼 효율적인 생산과 관리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팀 쿡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영입했는데, 팀 쿡이 합류한 후 애플은 놀라운 변신을 이뤄낸다. 

애플에 돌아온 잡스를 가장 당황시켰던 것 중 하나는 애플의 브랜드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애플의 브랜드 파워를 되살리는 것이 시급했다. 잡스는 우선 매킨토시의 복제품 판매 계약을 취소시켰다. 또 대규모 캠페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잡스는 치아트 데이의 디렉터 리 클로와 접촉한다. 애플의 시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광고를 원한다는 말을 들은 리 클로는 고정관념을 깨뜨린 창의적인 생각으로 20세기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등장하는 광고를 생각해냈다. 

광고 캠페인의 주제는 ‘Think Different’였다. 광고는 토머스 에디슨, 아인슈타인, 존 레논, 무하마드 알리, 밥 딜런 등의 모습이 흑백영상으로 지나가면서 다르게 생각해서 결국 세상을 바꾸어 놓은 인물들을 찬미하는 자유시 ‘Here’s to the Crazy ones’가 음성으로 소개되었다. 구조조정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외주생산으로 제조의 효율성을 구축하였으며 다르게 생각하기로 브랜드 이미지를 재구축한 애플을 부활시키기 위한 마지막 단계는, 결국 다르게 생각하기를 통해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마침 애플 이사였던 래리 앨리슨이 네트워크 컴퓨터, 즉 NC를 들고 나왔다. NC는 부수적인 기능을 최대한 제거하고 오직 네트워크에 최적화시킨 저가형 컴퓨터였다. 이 제품을 개발하면서는 디자인팀에 좀 더 힘을 실어 그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도록 했는데, 이는 잡스가 애플의 디자인팀에서 조너선 아이브를 발견한 덕분이었다. 기대에 부응하듯 조너선 아이브는 컴퓨터 역사에 가장 획기적인 디자인을 내놓았는데, 바로 ‘아이맥(iMac)’이었다. 아이맥의 가격은 다른 제품에 비해서는 비쌌고, 특히 플로피 디스크가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아이맥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들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시장에 나온 후에는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팔려 애플이 부활했음을 확고히 알릴 수 있었다.

아이팟의 탄생 : 2001년 2월 애플 내부에 비밀팀이 하나 결성됐다. 비밀팀의 임무는 MP3 플레이어 시장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새로운 MP3에 대한 아이디어를 애플의 경영진에게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 후 시제품을 보고 MP3 플레이어 시장에 진출할 결심을 한 스티브 잡스는 개발자들에게 크리스마스 시즌 안에 제품을 완성하라고 엄명을 내리고, ‘아이팟’이라는 이름을 최종 결정했다. 그 후 촉박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2001년 10월 23일 처음으로 아이팟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아이팟이 처음부터 큰 히트를 친 것은 아니었다. 2001년에는 12만5,000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열혈 애플 마니아들이 아이팟을 구입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내면서 판매량은 서서히 달아올라, 발매된 지 2년 만에 130만 대가 넘게 판매되면서 인기 제품의 반열에 올랐다. 한편 애플이 아이팟으로 음악 산업 전체를 바꿀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애플에서 만드는 제품은 오직 매킨토시에서만 돌아간다는 정책을 폐기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 이유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인터넷 서비스를 하나로 결합하는 삼위일체를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아이팟의 성공으로 애플은 PC가 아닌 소비자 가전업체로 변신할 수 있었다.

아이폰이라는 이름의 혁명 : 애플의 휴대폰 개발은 내부의 기술과 아이디어로 시작했지만, 외부 시장의 변화 역시 한몫했다. 아이팟 덕분에 엄청난 순이익을 기록할 수 있었지만 휴대용 MP3 플레이어 시장에는 한 가지 위험요소가 있었다. 바로 휴대폰에 MP3 재생 기능을 탑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휴대폰에서 MP3 음악 파일을 마음껏 들을 수 있다면 아이팟을 구입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변화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애플은 휴대폰 시장에 진출해야만 했다. 한편 아이폰은 필연적으로 이동통신사와 함께 일해야 한다. 그런데 애플의 중요한 사업원칙은 스스로 통제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휴대폰 업계는 이동통신사의 통제를 받는 것이 관행이었다. 다행히 미국의 이동통신업체인 AT&T는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 아이폰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애플이 제시하는 까다로운 조건들을 수용하였다. 대신 애플은 AT&T에게 5년 동안 독점판매권을 넘겨주었다.

그 뒤 맥월드에서 스티브 잡스가 처음으로 아이폰을 공개하자 아이폰은 전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곧장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그런데 실패를 예상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발매 당일 깨져버렸다. 그리고 단 74일 만에 100만 대가 판매되면서 애플의 새로운 무기가 되었다. 1세대 아이폰은 최신의 3G 이동통신이 아닌 한 세대 뒤처진 통신규격을 지원해서 무선 인터넷 속도가 느렸다. 또한 애플이 처음으로 만든 휴대폰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불안정했다. 애플이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연 것은 3세대 이동통신 규격을 지원한 아이폰 3G가 나오면서부터인데, 일주일 만에 백만 대가 판매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아이폰 3GS가 등장하면서 아이폰은 전 세계적인 히트상품이 되었고, 2010년 6월까지 6천여 만 대가 판매되었다.


4장 애플의 창조성은 무엇이 다른가


위대한 제품을 만들기 위한 Think Different :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뭘까? 마이크로소프트는 승리라는 목표를 세우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경쟁한다. 이에 비해서 애플은 다른 회사는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위대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열정을 쏟는다. 그렇다면 애플은 어떻게 남들이 생각 못한 위대한 제품들을 만들 수 있을까? 이는 기존의 틀에 사로잡히지 않고 다르게 생각하기(Think Different) 때문이다. 애플이 제품을 만드는 방법을 보면 ‘안티 비즈니스’로 요약될 수 있다. 즉 안티 비즈니스의 길을 택했기에 창조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제품을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대부분의 회사는 우선 시장조사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마케팅 계획을 세운다. 마케팅의 첫 번째 단계는 소비자들의 성별, 나이, 직업, 소득, 인종 등의 요소를 고려해서 시장을 세분화하는데 이를 세그먼테이션(segmentation)이라고 한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회사는 자신들이 누구를 대상으로 제품을 팔게 될지를 심사숙고하게 되는데, 이를 표적시장, 즉 타깃을 결정한다(targeting)고 말한다. 이와 함께 타깃 내에서 다른 회사의 제품과 자사 제품의 차이를 연구해서 자사 제품이 시장에서 차지하게 될 위치를 결정하는데, 이를 포지셔닝(positioning)이라고 한다. 애플은 이런 전통적인 프로세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애플은 상품개발단계에서 아예 시장조사를 하지 않는 회사로 유명하다. 사실 시장조사를 해서 나오는 상품은 결국 기존 상품에 무엇인가를 개선하는 정도의 제품일 수밖에 없다. 애플이 오직 하나의 제품에 전력을 쏟는 것 역시 안티 비즈니스적인 자세와 연결된다. 휴대폰을 예로 들면 많은 회사들은 고객집단에 따라서 다양한 모델들을 만든다. 그래서 한 개의 휴대폰 회사에서 나이, 성별, 직업, 취향을 고려한 모델들이 매달 몇 개씩 쏟아진다. 위험을 피하고 최대한 많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애플은 위험을 감수하고 오직 하나의 제품에 전력을 쏟는다. 한 번 실패하면 위험이 크지만 대신 애플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


5장 애플은 왜 개발에 강한가


철저히 추구되는 소수정예 :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세계 최고의 인재를 모아서 이들이 개발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애플은 소수정예일 수밖에 없고, 항상 인재 관리에 엄격하다. 아울러 스티브 잡스는 회사 조직도 극도로 단순함을 추구해서 이해하기 분명하고 책임이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애플의 인원은 쓸모없는 일을 할 정도로 여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애플은 베스트가 되는 곳에 정확하게 공은 던지려 하지, 차선이라고 생각되는 곳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애플 제품은 쓸모없는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 극도의 단순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개발자 중심의 기업 문화 : 제품 개발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스티브 잡스는 아무리 훌륭한 엔지니어와 똑똑한 사람이 있어도 회사에 제품 개발 지향적인 문화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회사를 운영하고 이끄는 사람 역시 제품 개발자가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잡스는 위대한 회사가 서서히 과거의 마법을 잃어버리는 것도 결국 개발자 중심의 회사가 영업맨 중심의 회사가 되는 데 있다고 보았다.


6장 애플의 디자인은 어떻게 다른가 


디테일이 살아있는 단순함에 대한 철학 :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스티브 잡스는 감성 지향적이고, 빌 게이츠는 이성 지향적이다. 이러한 차이는 디자인을 바라보는 견해에도 큰 차이를 만들었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만들 때부터 디자인이 제품의 중요한 차별점이 될 수 있으리라고 봤다. 그리고 애플에 다시 돌아온 후에도 디자인이 애플을 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아이맥을 탄생시켰다. 디자인에 대한 그러한 그의 신념은 아이팟 시대가 도래하면서 확실한 보상을 받게 된다. 사실 아이팟은 기능이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가격도 비쌌지만, MP3 플레이어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애플이 아이팟에 ‘디자인과 패션’이라는 요소를 접목시킨 덕분이었다. 아이폰은 아이팟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한편 애플 디자인의 철학은 ‘단순함과 디테일’ 두 가지로 요약된다. 만약 애플이 오직 단순함만을 추구한다면, 애플의 디자인이 지금처럼 특별할 수 없다. 단순하지만 그 내부에 극도의 디테일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단순함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애플 특유의 디테일이 가능한 것은 애플이 단순함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만약 애플이 화려함과 다양함을 쫓는 회사라면, 애초에 디테일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7장 애플은 어떻게 시장을 만드는가


1단계, 게임의 법칙을 바꿔라 : 애플은 이른바 우리가 정석 혹은 상식이라고까지 생각하던 게임의 법칙들을 바꾼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다. 게임 체인저인 애플은 단순한 혁신이 아니라, 혁명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애플이 무엇인가를 시도할 때마다 항상 부정적인 의견이 뒤따랐다. 현재를 지배하는 게임의 법칙이 미래에도 계속 적용될 것이라는 착각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까지는 승리한 게임의 법칙이라도 다음날에는 게임 체인저에 의해 일거에 뒤집어질 수 있다. 그래서 애플의 일거수일투족은 주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이 하나의 성공을 만들어내면 세상을 지배하는 게임의 법칙이 또 그만큼 변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아이폰이 좋은 본보기가 된다. 

2009년 11월 아이폰이 정식으로 출시되자 아이폰 판매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았다. 실패의 근거는 스마트폰 시장이 1%밖에 안 되고, 국산 휴대폰 점유율이 90%가 넘는다는 것이었다. 한국은 외국산 휴대폰의 무덤이며 스마트폰 시장은 너무 작으니 아이폰 역시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이는 게임 체인저로서의 애플의 역량을 무시한 것이었다. 아이폰은 한국에서 출시된 후 6개월 만에 70만 대를 돌파했고, 아이폰의 성공과 함께 한국의 휴대폰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1%밖에 안 되는 시장점유율로 찬밥신세였던 스마트폰 시장에 이동통신업체와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회사의 사운을 걸고 전력을 쏟고 있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무선랜은 이동통신업체로서는 반갑지 않은 기능이다. 무선랜으로 인터넷을 하면 이동통신업체의 망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통신요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래 있던 무선랜 기능을 정작 휴대폰 모델이 발매될 때는 제거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아이폰 이후 이제는 일반 폰에도 와이파이가 달릴 정도로 무선랜에 대한 태도 자체가 돌변했다. 그런데 아이폰은 단순히 이동통신 산업만 바꾸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네이버나 다음 같은 인터넷 업체들도 모바일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으며, 기업들은 스마트폰을 업무에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언론, 출판, 금융, 유통업체들도 아이폰이 변화시킨 환경에 적응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현재 아이폰은 단순히 휴대폰 하나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사회와 문화, 그리고 라이프스타일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이런 변화가 외국에서도 신기했는지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는 ‘The iPhoning of Korea’라는 이름으로 아이폰이 어떻게 한국 사회를 변화시켰는지를 보도할 정도였다.

2단계, 생태계를 창조하라 : 세상은 생태계를 창조하는 기업과 이미 창조된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기업, 두 개로 나눌 수 있는데, 생태계를 창조하는 기업은 마치 창조주처럼 생태계를 통치하며 세금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기업이라는 먹이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를 차지할 수 있다. 애플이 생태계를 창조하여 성장시키는 모습은 아이폰의 앱스토어에서 극대화된다. 즉 애플이 공개한 개발도구를 이용하면 누구나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으며, 유통비용에 대한 부담 없이 전 세계인을 상대로 프로그램을 팔 수 있다는 성공 모델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앱스토어는 개발자들에게 꿈의 엘도라도가 되어 서부개척 시대처럼 개발자 열풍이 일어났다. 그리고 실제로 수많은 부자들이 탄생했다.

생태계를 만들기는 정말 어렵지만, 생태계를 구축해서 규모의 경제를 이끌 수 있다면 그 생태계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생태계 안에서라면 신처럼 권력을 부리면서 각종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예로 앱스토어에 올려진 프로그램이 판매될 때마다 애플은 세금처럼 30%씩 수익을 가져가져 간다. 이처럼 애플은 하드웨어를 판매하면서 돈을 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태계 안에서 벌어진 경제행위에 대해서 수수료를 부과해 수익을 얻을 수도 있으니, 그 어떤 기업보다도 탄탄한 자금흐름을 이어갈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윈도우라는 생태계를 창조했고, 그 세금으로 돈을 버는 회사다. 그리고 구글은 마이크로소프트와 다르게 무료로 소프트웨어를 제공하지만, 광고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소니가 구글 TV로 협력하고 있고, 수많은 휴대폰 제조사들이 구글의 안드로이드 밑으로 들어가고 있다.

3단계, 울타리를 쳐라 : 애플이 만들어낸 생태계는 다른 기업보다 훨씬 폐쇄적이다. 통제 지향적인 스티브 잡스의 성격이 그들의 생태계에도 그대로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애플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애플의 폐쇄성이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는 점을 많이 지적한다. 왜냐하면 매킨토시가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윈도우에 의해서 몰락했던 과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폰의 폐쇄적인 모델이 안드로이드처럼 개방적인 모델에 밀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안드로이드 연합군에 의해서 언젠가는 아이폰의 점유율이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수익 측면에서 보면 단지 폐쇄적이라는 이유로 과거처럼 몰락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과거 애플이 몰락한 상황은 지금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즉 과거 애플은 단순히 폐쇄성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라, 위대한 제품을 전혀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망한 것이다.

스마트폰의 운영체제가 어떻게 업그레이드되는지 그 과정을 한 번 살펴보자. 아이폰의 경우 애플에서 운영체제 업그레이드를 직접 담당한다. 그래서 아이폰은 전 세계 모든 유저가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바로 운영체제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는 다르다. 구글이 운영체제를 업그레이드해 발표한다고 해서, 소비자 모두가 바로 혜택을 보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업그레이드는 구글이 아니라 중간에 있는 이동통신사와 제조사가 해야 하고, 애플과 달리 사후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조차 불투명하며, 또 업그레이드 날짜 역시 모델마다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버전이 다르면 같은 안드로이드폰이라고 해도 프로그램 실행이 안 된다. 즉 애플은 통제를 해서 폐쇄적이지만 대신 질서가 있고, 구글은 자유를 줘서 개방적이지만 대신 다양한 만큼 혼란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애플의 통제에는 자유가 부족하지만 그 대신 질서가 있다. 그래서 애플의 질서에 익숙해지면 어느덧 이 울타리를 넘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데, 아이튠스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애플이 만든 아이팟이나 아이폰 같은 휴대용 기기에서 MP3 파일을 옮기기 위해서는 오직 아이튠스만을 이용해야 한다. 이는 여간 짜증나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아이튠스를 설치한 다음 아이튠스의 고유 기능을 익혀야 할 때는 속으로 욕이 절로 나온다. 특히 다른 MP3 플레이어에 익숙한 사람이 처음 아이튠스를 사용하게 되면 그 불편함은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막상 아이튠스에 익숙해지고 나면, 결국에는 아이튠스 때문에 애플 제품을 떠나기가 힘들어진다. 즉 아이튠스의 편리함에 매료되고 나면, 어느덧 애플이 왜 그렇게 인기를 끌고 있는지 이해하게 되고, 아이튠스를 찬양하게 되며, 아이튠스에 가지런히 정리해 놓은 파일들을 버릴 수가 없게 된다. 특히 정품 콘텐츠를 다운로드받은 사람이라면 아이튠스가 있는 애플을 더욱 떠날 수가 없게 된다.


애플은 애플II 컴퓨터로 개인용 컴퓨터의 혁명을 이루었고, 

아이팟으로 음악 산업을 뿌리부터 바꾸었으며, 

또 아이폰을 통해서 휴대폰의 산업구조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고, 

아이패드로 다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하지만 한 때는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낙인찍힐 정도로 위기를 맞기도 했고,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고, 

또 새로 세운 회사의 참혹한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다. 

이렇게 거듭되는 추락 속에서 그들은 어떻게 헤쳐 나왔고, 

어떻게 더 성장할 수 있었을까? 


이 책에는 스티브 잡스에 의해 가려졌던 애플, 

애플에 의해 가려졌던 스티브 잡스의 진짜 이야기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저자는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창조와 혁신은 ‘와해성 기술(disruptive technology)과 

그에 따른 일하는 방식’에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애플은 제품을 개발할 때 시장조사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소비자에게 물어보고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결국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상품을 개량하는 정도에 그칠 뿐이기 때문이다. 


시장조사를 하지 않는 애플은 항상 실패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애플은 실패의 위험을 최소화하기보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창조를 통해 더 큰 성공을 이뤄낸다는 경영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개인이든 회사든 직선으로 성장하는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그

래서 더욱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사례가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하면서, 

애플을 통해 우리나라 기업들이 창조와 혁신의 실천적인 의미를 깨닫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