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경제경영

스티브 잡스처럼 생각하라 - 김영한

삼생지연 2020. 12. 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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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처럼 생각하라

김영한 지음

새빛에듀넷 / 2009 2



1부 문제아에서 문제해결사가 되기까지


Part 1.  벼락 성공과 실패가 함께 오다

1975년 잡스가 샌프란시스코 남부에 살고 있을 때, 휴렛팩커드(HP)에 근무하던 동네친구 스티브 위즈니악이 취미 삼아 인쇄회로기판(PCB)을 개발했는데, 잡스는 이것을 개인용 컴퓨터로 제작하면 상품화하여 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래서 위즈니악에게 자신과 함께 사업을 하자고 권유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6년에 자신이 몰고 다니던 폴크스바겐 자동차를 처분하여 1,300달러의 자금을 마련한 그들은 차고에서 ‘애플컴퓨터(Apple Computer)’라는 회사를 출범시킨다. 위즈니악은 기술 개발을 맡고, 잡스는 경영과 마케팅을 맡았다. 


새 제품을 개발하는 데는 새로운 인력이 필요하고 자금이 필요했다. 그래서 잡스는 사업계획서를 만들어서 투자자를 찾아 나섰다. 운 좋게 당시 반도체 회사인 인텔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던 마이클 마쿨라를 만나 1천 달러를 투자받았고, 은행에서도 추가로 25만 달러를 대출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1977년 1월에 잡스와 위즈니악, 마쿨라가 3분의 1씩 주식을 소유한 애플컴퓨터 주식회사가 탄생하였고, 1977년 ‘애플 Ⅱ’는 세계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로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애플 Ⅱ’가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직접 개발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자신이 개발한 퍼스널 컴퓨터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하여 1978년부터 새로운 퍼스널 컴퓨터인 ‘리사(Lisa)’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3년이라는 기간 동안 5천만 달러를 투자하여, 드디어 1981년에 ‘리사’가 발표되었다. 그런데 리사가 발표될 때에는 이미 IBM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MS-DOS를 이용한 PC를 내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잡스는 제품만 좋으면 잘 팔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리사를 9,995달러라는 높은 가격에 출시했다. 하지만 이렇게 높은 가격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능은 약했다. 그리고 리사가 출시되고 2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 가격이 싼 IBM PC의 호환성 PC가 출시되었다. 또 컴팩이라는 회사에서도 무게가 훨씬 가벼운 PC를 3,590달러라는 싼 가격에 출시했다. 결국 리사는 판매 개시 1년 반 만에 8만 대의 판매 기록을 남기고 생산이 중단되었다.


그 후 잡스는 리사의 실패를 만회할 만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찾았고, 여러 개의 개발 프로젝트를 검토하던 중, 강력한 PC를 개발했다는 매킨토시 팀의 설계 개념과 개발팀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제프레스킨과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팀이 개발하고 있던 프로젝트를 자신이 직접 지휘하기로 결정한다. 매킨토시는 기술적으로 뛰어난 점이 몇 가지(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채택, 한 화면에 두 개의 창이 뜨는 윈도우 기능 등)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하드웨어 상으로 뛰어난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고객 입장에서 이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려하지 않으면 결코 좋은 제품이라 할 수 없다. 예로 제작된 초기의 매킨토시는 화면 사이즈가 9인치였고 그나마 흑백 모니터였다. 게다가 확장 슬롯이 없었다. 또한 MS-DOS와 호환성을 갖추지도 못했다. 결국 자신의 기술력만을 과신한 채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생각하지 않았고, 경쟁사의 전략을 간과한 매킨토시는 세상에서 버림을 받았다.


1983년 말 매킨토시 개발이 끝나갈 무렵 잡스는 대규모의 광고 계획을 세우고, 11월에 〈에이리언〉의 영화감독 리들리 스콧에게 광고 제작을 의뢰했고, 드디어 매킨토시의 첫 TV광고가 나갔다.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광고는 단숨에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다음 날부터 사람들은 애플 매장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했던 것보다 초라했다. 매킨토시를 보러 매장에 온 사람들은 이내 IBM으로 눈길을 돌렸다. 아무리 광고가 잘 되었다고 하더라도,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품이 고객의 마음을 잡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개발자의 기술에 대한 만족이 아니라, 컴퓨터 사용자를 얼마나 만족시키느냐 하는 점이다. 바로 이 점에서 애플은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Part 2.  계속되는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는다

IBM이 PC 시장에 뛰어들자 그동안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던 애플의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애플의 공동 투자자인 마쿨라는 새로운 CEO로 친구인 마이크 스콧을 영입했다. 하지만 얼마 뒤 마쿨라는 스콧을 해임하고 스스로 임시 CEO가 된다. 그 뒤 스티브 잡스는 CEO 자리를 원했지만 이사회에서는 CEO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인물을 물색했고, 잡스는 자신이 CEO가 될 수 없다면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차선이라 생각하고 존 스컬리를 영입했다. 그러나 스컬리는 2년 뒤 잡스를 애플에서 쫓아내는 데에 앞장서게 된다. 잡스는 1986년 초에 달랑 한 주만을 남기고 애플의 모든 주식을 처분해 떠났다.


애플에서 축출된 후 잡스는 그가 말한 멋진 제품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컴퓨터 회사 넥스트(NeXT)를 창립했고, 1988년 10월, 넥스트큐브(NeXTCube)를 출시했는데, 이것은 혁신적인 디자인을 갖춘 강력한 컴퓨터였다. 그러나 상황은 잡스가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결국 1993년, 잡스는 넥스트의 하드웨어 생산을 중단하고 소프트웨어에 전념하기로 결정한다.


스티브 잡스는 우연한 아이디어 하나가 세상을 바꾸어 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것이 실패를 거듭하게 만든 오만과 편견을 낳게 된다. 즉 그는 퍼스널 컴퓨터에 관해서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최고라는 생각을 절대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이것을 입증하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그는 회사 내의 개별 프로젝트를 자신이 주도하고 모든 의사결정을 자신의 뜻대로 하려 했다. 반면 고객이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할 것인지, 경쟁자인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는 어떤 정책을 쓰고 있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또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잡스는 엄청난 광고비를 쏟아 부었다. 하지만 고객들은 광고만 보고 제품은 사가지 않았다. 


아울러 잡스는 모든 기술개발을 애플 내부에서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오픈 방식과는 반대되는 정책인데, 회사 입장에서는 기술을 보호하려고 했을지라도, 고객 입장에서는 유용한 소프트웨어에 한계를 느끼게 되고 협력자의 접근을 차단하는 역작용을 낳게 된다. 그리고 결국 이러한 잡스의 폐쇄적인 점과 기술신봉주의가 매킨토시의 실패를 몰고 왔고, 결국 그는 자신이 영입해 온 CEO에 의해 축출되는 최악의 수모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Part 3. 솔직하게 피드백하는 환경을 만들다(픽사의 문제해결)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떠나 넥스트컴퓨터를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스타워즈〉를 제작한 영화감독 조지 루카스가 재정난으로 루카스 필름을 매각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 소식에 잡스는 루카스 필름을 방문했고, 그때 그가 본 것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잡스에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선명한 디지털 사진과 3D 영상물을 보여준 그들은 그야말로 컴퓨터 그래픽의 천재들이었고, 그들의 컴퓨터 시스템과 소프트웨어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그래서 잡스는 사람과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사고 싶었다. 오랜 협상 끝에 결국 잡스는 1천만 달러에 루카스 필름을 인수할 수 있었고, 잡스는 이 회사의 이름을 픽셀(Pixel)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픽사(Pixar)로 정했다. 


잡스는 픽사에서도 처음에는 대용량의 이미지를 저장할 수 있는 그래픽 컴퓨터를 개발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개발된 픽사 이미지 컴퓨터는 일반 기업에서 쓰기에는 너무 대용량이었고 가격도 비쌌다. 그래서 이번에는 의료계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나 병원 역시 픽사 이미지 컴퓨터가 너무 비싸서 외면했다. 결국 개발비만 많이 들어간 픽사 컴퓨터의 판매가 부진하였고, 경영 상태는 날로 악화되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픽사를 먹여 살린 것은 소프트웨어였다. 루카스 필름 시절에 소프트웨어 기술자였던 애드 캐트멀이 개발한 ‘랜더맨(Randerman)’이 판매에 호조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랜더맨 소프트웨어의 판매만으로 픽사를 운영하기에는 힘이 들었다. 이때 나타난 구세주가 바로 3D 애니메이션 전문가인 존 래스터였다. 5분짜리 단편 3D 애니메이션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래스터는 전 직장인 디즈니 스튜디오를 찾아갔고, 크리스마스 특집물로 30분짜리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싶다며, 디즈니가 자금을 대서 공동 제작을 하자고 제안했는데, 이 제안이 디즈니의 아이스너 회장에게 보고되었고, 디즈니는 “90분짜리 3D 애니메이션 영화를 픽사가 만들면, 디즈니가 자금, 홍보, 배급을 맡겠다”라고 역제안을 했다. 이 소식에 잡스는 새로운 기회임을 직감했다. 


결국 존 래스터가 감독 겸 수석작가가 되어 〈토이 스토리(Toy Story)〉제작에 착수했다. 참고로 3D 애니메이션 영화는 대략 2백 명 이상의 인원이 투입되어 4~5년 이상을 매달려야 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2백 명 정도의 기술자와 스텝들이 마치 한 사람의 작가가 스토리를 쓰고 그림을 그리듯이 되려면,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어야 하고 기본 기술을 공유해야 한다. 이에 잡스는 픽사 내의 모든 직원들이 항시 공부할 수 있도록 사무실과 붙어 있는 곳에 픽사 대학(Pixar University)을 설립했다. 이런 노력이 이어지면서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디즈니 경영진이 〈토이 스토리〉의 중간 리뷰를 해본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1993년 11월 17일, 월트 디즈니사는 픽사에 〈토이 스토리〉의 제작 중단을 공식적으로 통보하게 된다. 


과거의 잡스라면 디즈니에 쳐들어가서 따지고 법정 소송을 하였겠지만, 이번에는 차분히 대응했다. 그는 헐리우드에서 제작 중단이 종종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디즈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에 맞게 수정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픽사팀은 수정된 해결안을 가지고 디즈니의 경영진을 찾아갔다. 새로운 안을 본 디즈니의 경영진들은 제작 중단을 취소하고 〈토이 스토리〉의 재작업을 허용했다. 그 후 〈토이 스토리〉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잡스는 디즈니와 함께 〈토이 스토리〉를 공동 제작하는 4년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우선 히트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누구를 목표 고객으로 하여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라는 컨셉 기획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또한, 어린이와 여성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기술보다 감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잡스에게는 4년 동안 디자인과 그래픽의 세계 속에 살면서 디자인이 기술을 표현하는 또 다른 언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성과였다. 〈토이 스토리〉가 개봉된 지 일주일 만인 1995년 11월에 픽사의 주식이 공개되었는데, 주가는 한 주당 39달러에 마감되었고, 잡스는 다시 억만장자가 되었다.


Part 4. 다르게 생각하면 길이 보인다 (애플의 문제해결)

1995년, 애플의 상황은 실로 절망적이었다. 비즈니스 세계는 성능이 훨씬 향상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를 운영체계로 채택한 최신형 IBM PC가 장악했고, 애플은 추락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 애플의 새로운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물은 마이클 스핀들러였는데, 이것 역시 잘못된 결정이었다. 애플 이사회는 다시 새로운 CEO를 물색하여 길 아멜리오를 영입했다. 하지만 아멜리오 역시 직원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고, 고위 간부진은 누구랄 것도 없이 새로운 CEO에 대한 충성심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길 아멜리오는 새로운 소프트웨어의 개발 없이는 애플의 회생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외부에서 새로운 운영체제를 찾아보기로 하고, 선마이크로시스템스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접촉했다. 그런데 새로운 운영체제(OS)를 외부에서 도입하는 것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스티브 잡스에게도 전해졌고, 잡스는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 길 아멜리오를 만나서 넥스트가 훌륭한 운영체제임을 제안했다. 아멜리오는 사내 전문가를 불러 토론을 했고, 기술팀이 고안한 점수 계산법에 따라 넥스트가 최고 점수를 얻었다. 곧이어 넥스트 인수를 위한 협상이 벌어졌다. 1주일 안에 이사회는 현금 3억7,750만 달러와 애플 주식 150만 주로 넥스트 인수를 승인했다. 현금은 넥스트의 투자자들에게 배분되었고, 주식은 모두 잡스가 가져갔다. 이로써 잡스는 자신을 내쳤던 애플로 당당히 복귀하게 된다. 


잡스는 복귀 후 매킨토시를 다시 살려내어 회사가 흑자로 돌아서자 새로운 사업을 찾기 위해, 음악 시장 전반을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당시 디지털 음악 시장은 이미 형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잡스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기존의 MP3 업체들은 어째서 MP3를 음악기기로만 생각할까?” 순간 그의 머릿속에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MP3는 음악기기이기도 하지만, 디지털 IT기기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MP3와는 다른 디지털 뮤직 시스템을 만들자.” 그리고 잡스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음반가게에 직접 찾아가서 CD를 사지 않고도 인터넷을 이용하여 고음질의 음악을 구입할 수 있고 그것을 직접 저장하여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렇게 하여 아이팟(iPod)이 탄생하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2001년 봄에 토니 파델이 이끄는 개발팀은 아이팟의 컨셉과 디자인은 내부에서 하되, 기술 개발은 외주를 맡기는 방법을 택했는데, 이를 통해 애플은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애플은 음질을 높이고 인터넷과의 연결을 쉽게 하는 기능은 강화했지만, 작고 얇은 디자인을 위해 제거한 것도 많았다. 우선 선택된 것이 건전지였다. 음악을 다운 받는 동안 충전을 하게 해서 건전지를 없애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제거한 것은 FM 라디오 기능인데,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은 FM 라디오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많이 저장하기를 원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또 하나 제거한 기능은 녹음인데, 실제로 MP3를 이용해서 녹음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에 착안한 것이었다.


잡스가 픽사를 거쳐서 다시 애플에 복귀했을 때는 생각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모든 혁신의 중심을 디자인에 둔 그는 “디자인은 디자이너에게 맡기고, 엔지니어는 그 디자인에 맞게 제품을 만든다.”는 처방을 제시했다. 즉 고질적인 기술 집착에서 벗어나 시장 대응 관점에서 디자인이 애플 혁신의 중심점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었다. 


Part 5. 고객을 먼저 생각하다(마케팅 문제해결)

제일 처음 MP3 플레이어를 만든 회사가 애플은 아니다. 그러나 애플은 순식간에 MP3 플레이어와 음반 시장에서 리더가 되었다. 이는 컴퓨터와 MP3, 그리고 음반이 서로 연결되는 새로운 가치 사슬(Value chain)의 파이프라인을 연결시켰기 때문이다. 즉 음반회사와 온라인 판매계약을 맺어서 음원을 확보하고 뮤직스토어를 만들었으며, 음악 애호가의 PC에는 MP3 파일을 다운받고 편집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인 아이튠즈(iTunes)를 깔았다. 또 하나의 파이프라인은 팟캐스팅(Podcasting)인데, 이는 아이팟을 이용하여 개인방송국을 만들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를 지원한 것이다. 


애플은 광고보다 홍보의 효과에 더 신경을 쓰는 기업이다. 소비자들은 광고보다는 뉴스나 기사를 더 신뢰하기 때문에, 잡스는 이 점을 노리고 자신이 직접 소비자에게 말하는 프레젠테이션 방법을 주요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곤 한다. 물론 그는 뉴스감이 되어야만 언론기관에서 관심을 가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신제품 개발을 철저히 베일 속에 감추었다가 갑작스레 깜짝 공개하는 것을 즐긴다. 또 잡스는 프레젠테이션의 첫 부분을 중요시한다. 왜냐하면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인상이듯이, 프레젠테이션 때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Part 6. 감성 기술자가 만드는 상상력 공작소(디즈니의 문제해결)

픽사와 월트 디즈니가 공동으로 제작한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 스토리가 대성공을 거두자, 픽사는 10여 편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디즈니와 공동으로 제작하게 된다. 그리고 잡스가 애플로 복귀하자 디즈니는 아예 픽사를 인수하고자 했고, 2007년에 잡스는 자신의 주식을 디즈니에 매각한다. 디즈니는 픽사를 인수한 이후에 3D 애니메이션 기술을 통째로 도입할 수 있었으나, 픽사의 문화와 디즈니의 문화가 상당히 다른 탓에 초기에는 문화적 갈등을 빚게 된다. 


디즈니는 80년 된 회사로 조직 문화가 보수적인 반면, 픽사는 20년 된 젊고 진취적인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픽사를 인수한 디즈니의 아이스너 회장은 처음부터 픽사를 디즈니식으로 길들이려 했고, 픽사의 직원들은 디즈니의 통제를 잘 따르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2006년에 디즈니 회장이 아이스너에서 아이거로 교체되었는데, 아이거 회장은 픽사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살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픽사 특유의 재기 발랄한 점을 살려서 작품 활동에 매진하도록 했다. 또 픽사가 계속해서 히트 작품을 내놓자 아이거 회장은 디즈니의 조직 문화를 아예 픽사식으로 바꾸었다. 


15년 전에는 잡스가 디즈니에서 스토리 능력을 배워〈토이 스토리〉를 제작했다면, 오히려 지금은 디즈니가 픽사 문화를 수혈 받아 창의적인 조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창의력은 근육과 같아서 노력과 훈련을 통해서 조금씩 커지게 되는데, 이 훈련에 회사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바로 직원교육이다. 한편 디즈니는 이런 교육을 통해 ‘이매지니어(Imagineer)’를 적극적으로 양성한다. 즉 풍부한 상상력(Imagination)과 빼어난 기술(Engineering)을 갖춘 감성 기술자인 이매지니어가 노쇠한 디즈니를 ‘상상력 공작소’로 바꾸어 놓고 있다고 하겠다.


2부 스티브 잡스처럼 생각하라


Part 7. 킬러 아이디어맨, 스티브 잡스


탁월하고 멋진 아이디어를 내는 킬러 아이디어맨

잡스의 창의성은 단순히 새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탁월한 아이디어이고, 시장에서 호응을 얻는 멋진 아이디어이다. 이런 탁월하고 멋진 아이디어를 킬러 아이디어(Killer Idea)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기존의 것과 차별화(Different)되면서, 탁월하고 이상적인 아이디어(Ideal Idea)여야 하고, 고객의 니즈(Customer Needs)에 부합되는 것이어야 한다. 잡스의 경우, 애플 내에서의 나홀로 창의성과 넥스트에서의 기술적인 창의성이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픽사에서 고객을 움직이는 창의성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고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차별화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킬러 아이디어맨으로 변신하였다.


고정관념을 뛰어넘어라

잡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항상 다르게 생각(Think Different)하여 새로운 기회를 찾아내고 문제를 해결하였는데, 그가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은 수평형 사고방식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MP3 플레이어도 오디오 기기의 일종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상식적인 사고를 하는데, 이것은 수직형 사고(Vertical Think)이다. 그러나 잡스는 디지털 기술의 집약체인 MP3 플레이어가 분명한 디지털 IT기기라는 다른 인식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 고정관념을 뛰어넘어서 발상 전환을 하는 사고가 바로 수평적 사고(Lateral Think)이다. 나아가 그는 발상을 전환하여 MP3를 디지털 IT기기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는 창의적 사고를 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그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풍부한 콘텐츠를 확보함으로써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만들게 된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생각하라

실패를 거듭하던 잡스가 성공의 자락을 다시 잡게 된 것은 픽사 시절에 월트 디즈니와 협력하게 되면서부터이다. 하지만 어렵게 시작한 최초의 장편 3D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 스토리〉의 초안이 나오자, 월트 디즈니는 계약을 파기하자고 한다. 쇼크를 받은 잡스는 디즈니가 계약을 파기하자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토이 스토리〉의 초안이 3D 애니메이션기술만 사용하였지, 고객을 감동시킬 만한 스토리도 부족하고 재미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잡스는 디즈니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완전히 재작업을 하여 다시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결국 다시 작성한 스토리와 샘플이 월트 디즈니의 마음을 되돌려서 〈토이 스토리〉는 재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흔히 천재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는 자신의 천재성에 도취되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자신보다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의 지식과 아이디어를 최대한 수렴한다면 더 뛰어난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참고로 아이작 뉴턴은 “내가 세상을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거인의 지식과 경험을 배워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곧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는 행동이다. 


최고의 아이디어를 찾아라

아이디어에는 세 가지 수준이 있다. 제1수준 아이디어는 개인적인 아이디어로 개인이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 안에서 구조화한 것인데, 이런 아이디어는 내부에서는 쉽게 통할지 모르나 시장에 나가면 평범한 제품이 되고 만다. 제2수준 아이디어는 그룹 아이디어로 개인이 알고 있는 지식과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결합해서 만든 것인데, 이것 역시 참가자들의 고정관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제3수준 아이디어는 이상적 아이디어로 개인적인 고정관념과 조직의 타성에서 벗어나 문제의 본질을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인데, 이는 풀지 못한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서 모순을 해결하는 최고의 가치를 창출한다. 아이팟(iPod)을 개발하고 마케팅시 남들이 풀지 못한 모순을 해결하고 실행했음을 볼 때, 잡스는 제3수준의 이상적 아이디어를 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100명이 모이면 천금의 아이디어가 생긴다

잡스는 픽사에서 일하며 100명의 인재들이 모여서 더 큰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집단 창의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픽사가 집단 창의성을 강조하는 것은 3D 애니메이션 영화는 수만 개의 아이디어가 합쳐져서 만들어지는 ‘종합예술’이기 때문이다. 한편 집단 창의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부서 간의 장벽을 허물고, 내부는 물론 외부와의 소통까지 원활하게 하는 독특한 운영 원칙을 만들어야 하는데, 픽사가 활용한 운영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누구와도 자유롭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다. 둘째,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비난하거나 문제 삼지 않는다. 셋째, 학계에서 일어나는 혁신에 대해서 주의 깊게 지켜보고 가까이 한다. 


Part 8. 탁월하고 멋진 아이디어를 만드는 과정 - 워키 씽킹

지식 서비스 산업에서는 개인의 창의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집단 창의’가 더 중요하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은 전통적인 제조업 방식의 획일화된 경영방식을 채택해왔다. 그러나 획일화된 제조업 방식으로는 개인의 창의성과 집단 창의성을 살려내지 못한다. 따라서 이 부분을 보강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의 필요하며, 이를 통해 혁신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창의성 측면에서 리더십 스타일과 조직문화의 형태를 나누어 보면 다음의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① 리더십 스타일이 관리적이고 조직문화도 관리적인 ‘관리적 조직 유형’ ② 리더십 스타일은 창의적이지만 조직문화가 관리적인 ‘창의적 리더 유형’ ③ 리더십 스타일은 관리적이지만 조직문화는 창의적인 ‘창의적 조직 유형’ ④ 리더십 스타일과 조직문화 모두 창의적인 ‘집단 창의(Wiki Thinking) 유형’


이 네 가지 유형 중 ‘창의적 리더’는 일시적으로는 존재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관리적 조직’의 형태로 바뀌어 버리고, 유형상 분류로는 ‘창의적 조직’이 존재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유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관리적 조직’과 ‘집단 창의 조직’만이 존재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는 대부분의 조직이 ‘관리적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관리적 조직에서 집단 창의 조직으로 변화할 수 있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관리적 조직에 창의적 리더가 나타나 ②번을 거쳐 ④번으로 가는 방법이며, 두 번째는 관리적 조직에서 창의적 조직문화를 만들어서 ④번으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관리적 조직에서 바로 ④번으로 가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위키 씽킹(Wiki Thinking)이 필요하다. 잘 알다시피 ‘위키(Wiki)’란 하와이말로 ‘빠르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이 단어는 다시 여러 단어를 파생시켰는데, 대표적인 것이 ‘위키피디아(Wikipedia)’이다. 


한편 ‘위키 씽킹’은 ‘탁월하고 멋진 아이디어’라는 뜻과 ‘지식의 공유, 직원의 참여에 의한 새로운 아이디어의 창조’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위키 씽킹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관리에 치우친 리더십을 넘어, 직원과 소통하고 시장과 대화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위키 씽킹’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핵심업무에 집중하라(Working Issue). 둘째, 본질을 분석하라(Investigate). 셋째, 탁월하고 멋진 아이디어를 만들어라(Killer Idea). 넷째, 거인의 어깨 위에서 생각하라. 다섯째,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실행하라(Idea Share). 한편 잡스가 픽사와 애플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과 아이디어를 위키 문제 해결(Wiki Problem Solving)의 방법론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픽사는 1991년에 월트 디즈니의 장편 3D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한다는 협약을 체결한다. 디즈니는 스토리에 자신이 있었지만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없었고, 픽사는 3D 그래픽 기술은 있었지만 스토리 능력이 없었기에 공동 제작이 이루어졌다. 3D 애니메이션 영화는 제작기간이 4~5년 이상 걸리는 작업이어서, 디즈니는 2년 정도 지난 후에 중간 점검을 하였는데, 픽사가 2년 동안 작업한 내용을 검토한 디즈니는 매우 실망했다. 왜냐하면 지나치게 기술에 치우쳐 있어서 재미가 없고, 어린이 만화영화 같은 유치한 수준의 애니메이션이었기 때문이었다. 실망한 디즈니는 픽사에 제작 중단 통보를 하기에 이른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잡스와 픽사의 경영진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였는지는 다음과 같이 추정해 볼 수 있다. 


먼저 이 시점에서 잡스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재미있는 3D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하는 것인데, 과제가 실행되지 못하고 있는 문제를 분석해 보니 여러 문제가 열거되었으나, 이중 핵심문제로 거론된 것은 ‘기술적인 것에 고객이 만족하지 못한다’였다. 그리고 여기서 고객은 1차적으로 디즈니이고, 2차적으로는 영화를 보는 관람객이 될 수 있다. 


이어서 ‘기술적인 것에 고객이 만족하지 못한다’는 핵심문제의 발생 원인을 분석해 보면, 많은 원인이 나열될 수 있겠지만, 그중 포착된 핵심원인은 ‘스토리에 기술 적응력이 떨어진다’였다. 한편 핵심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문제와 원인을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키 매트릭스에 이 두 요인을 파라미터로 전환하여 대입해야 하는데, 핵심문제인 ‘기술적인 곳에 고객이 만족하지 못한다’는 ‘고객만족’이라는 파라미터로, ‘스토리에 기술 적응력이 떨어진다’는 ‘유연성’이라는 파라미터로 변환시켜 위키 매트릭스에 대입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몇 가지의 해결원리가 제시된다. 이때 위키 매트릭스의 ‘고객만족’과 ‘유연성’이 만나는 셀(Cell)에는 다섯 가지의 해결원리(러시아의 알츠슐러 박사는 특허 20만 건을 분석하여 성공원리를 40가지로 정리한 뒤 이것을 ‘40가지 해결원리’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에는 나누어라, 뽑아내라, 국부적으로 최적화하라, 차별화하라, 한 번에 동시에 하라, 개방ㆍ활성화하라, 곧은 개념을 구부려라, 부분적으로 자유도를 부여하라, 피드백을 도입하라, 중간매개체를 이용하라, 벤치마킹하라, 안정시켜라, 융합하라 등 40가지가 있다)가 들어있는데, 선정된 다섯 가지 해결원리를 응용하면 픽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아이디어를 끌어낼 수 있다. 


첫째, 차별화하라 - 3D 기술에 스토리의 재미성을 부가하여 차별적인 영화를 만든다. 둘째, 개방ㆍ활성화하라 - 창의적 인재가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한다. 셋째, 부분적으로 자유도를 부여하라 - 제작팀별로 제작 자율권을 부여한다. 넷째, 피드백을 도입하라 - 두뇌위원회에서 스토리에 대한 의견을 피드백 한다. 다섯째, 벤치마킹 하라 - 픽사 유니버시티를 설립하여 기술과 스토리 교육을 실시한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반영하여 잡스는 디즈니의 스토리 능력을 도입하여 재미있는 3D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도록 업무계획을 수정했고, 창의적인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인재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였으며, 또 각각의 제작팀에 자율권을 최대한 부여하고 이들이 아이디어의 도움을 얻고자 할 때 조언을 줄 수 있는 두뇌위원회(Brain Trust)를 운영했다. 그리고 직원의 능력향상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른 부분의 기능을 배울 수 있도록 픽사 유니버시티(Pixar University)를 설립하여 사내에서 운영했다.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초기의 〈토이 스토리〉는 다각도로 수정되어서 디즈니의 승인을 받아 제작이 재개되었고, 구성원들의 집단 창의성으로 제작이 완료되어 개봉과 동시에 대히트를 치게 되었다.

애플(Apple)은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기업이다
그런 애플과 함께 떠오르는 주인공은 바로 스티브 잡스이다
그는 한때 경영 능력을 의심받아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쫓겨나는 굴욕을 겪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 후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면서 가장 유능한 CEO로 대접받고 있다
과연 무엇이 스티브 잡스를 달라지게 한 것일까
그 변화의 원리와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면 
보통 사람도 스티브 잡스처럼 
뛰어난 문제 해결력을 가진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 이 책은 스티브 잡스의 스토리와 

함께 그가 무슨 생각을 하였고

그 생각들이 보통 사람들과 어떻게 달랐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의 생각과 문제해결법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살피고

그의 문제해결과 비즈니스 천재들의 문제해결법 간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밝혀내어 방법론으로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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