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자 스티브 잡스를 말하다
팬덤북스 / 2011년 9월
CREATIVE_ 무無와 전복의 가치가 만드는 진정한 차이
결별과 배반, 혹은 가치관 전체를 전복한다는 것에 대해
창의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가치관 자체가 창의적이어야 한다. 특정한 사고의 패턴을 훈련하거나 스킬, 습관을 바꾸는 것이 한 가지 방법 정도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치관 자체가 변하는 것에 비하면 미미함에 틀림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창의적이길 원하면서도 여전히 고루하고 진부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이러한 창의성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우리에게 ‘이제까지 당신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무엇을 중심으로 사고를 해왔는지를 되돌아보고, 그것에 대한 전복을 통해서 새로운 가치관을 갖춰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예술가처럼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고 싶다면 지나치게 과거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PLAYBOY》(1985)
가치관의 전복은 곧 ‘과거와의 결별’, ‘나 자신에 대한 배반’이라는 의미와 동일하다. 이제까지 나를 지탱해 왔던 것이 결국 내가 창의적으로 변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방해물이다. 나를 보호해 왔지만 나의 발전을 방해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제까지 당신이 가졌던 가치관들이다. 당신이 창의적인 삶을 살고 싶다면, 이제까지 당신을 보호해 왔던 당신의 가치관으로부터 ‘반드시’ 떠나가야 하는 시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결별하고 배반하는 데 있어 한 가지의 두려움이 생겨난다. 그것은 단순히 ‘손실에 대한 걱정’의 차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두려움은 나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나의 새로운 가치관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 사회의 시선들이며, 나의 변화를 의아하고 낯설게 생각할 타인들의 시선이다.
“성장하고 변화해 가는 동안에 외부 세계가 당신의 이미지, 즉 ‘외부 세계가 당신이라고 여기는 이미지’를 공고히 다지려고 애를 쓸수록 당신은 예술가로 살아가기가 점점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많은 경우 예술가들이 ‘잘 있어. 나는 가야 해. 나는 미칠 것 같아. 이곳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라고 말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PLAYBOY》(1985)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무언가를 책임져야 하는 성인이 되어 갈수록, 점점 더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변화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결별과 배반 없이 결코 창조는 시작되지 않는다. 그 고통스러운 항해가 없는 이상 결코 당신은 새로운 창의성의 바다로 진입하기 힘들 것이다. 결국 방법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 그래서 이제까지의 가치관을 뒤집고 결별하고 배반하는 것이다. 창조적인 예술가는 자신이 가진 창조의 정신을 지켜 가기 위해서라도 평범한 사람들 속에 있기를 거부한다. ‘평균적인’ 사람들 속에서 ‘평균적인’ 행동과 결정을 끝없이 반복하는 ‘평균적인’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역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수밖에 없다.
무無가 만들어 내는 ‘없다’와 ‘있다’의 역설
잡스에게 ‘무언가가 없다’는 말은 곧 ‘엄청난 가능성이 있다’는 말로 뒤집어진다. 좌절과 무기력함이 아니라 흥분과 환희의 감정이다. 규정된 것이 없고 제한된 것이 없으니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새로운 자유의 세계이자, 무엇이든 시작하면 창의적이게 되는 아주 ‘멋진 환경’인 것이다. 이런 ‘멋진 환경’은 잡스의 삶 자체에도 고스란히 적용되었다. 남들이 봤을 때 그가 경험한 최악의 시기, 즉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나는 민망하고 허무한 시기에 ‘멋진 환경’이 시작된다.
“나는 서른 살에 애플에서 쫓겨났다. 그것도 아주 공개적으로 말이다. …… 나는 당시 공공연한 실패자였고, 결국 실리콘밸리로부터 떠나 버릴까 하는 생각도 하곤 했다. 하지만 무언가가 천천히 나를 일깨워 주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여전히 나의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애플에서 벌어진 여러 사건들은 일에 대한 나의 사랑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못했다. 나는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그때는 몰랐지만 애플로부터의 해고는 나에게 일어날 수 있었던 사건들 가운데 최고의 사건이었다. 성공한 사람이라는 중압감을 벗어나서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라는 홀가분함을 느낄 수 있었고, 모든 것을 아주 가볍게 생각할 수 있었다. 또한 이를 통해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창조적인 시간의 한 시기로 접어들 수 있었다. 나에게 일종의 ‘해방’과 같은 것이었다.- 《Stanford Commencement Address》 (2005)
다시 잡스의 시선에서 보자면 ‘애플에서 해고된 사건’은 ‘애플에서 해방된 사건’이었다. 또한 자신을 짓누르는 ‘중압감’이 ‘홀가분’으로 순식간에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나는 바로 그 순간에 홀가분하게 해방된 사람이 되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할 수 있는 창의적인 사람이 된 것이다. 이제껏 내가 사용해 왔던 모든 도구와 방법을 완전히 없앤 후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생각해 보는 것, 내가 일궈 왔던 모든 성과와 결과물을 완벽하게 배제한 후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해 보는 것. 이 시기야말로 가장 ‘창조적인 시기’이다.
인문학이 잡스에게 가르쳤던 것 1: 아이튠즈가 만든 ‘선한 사람들’
도대체 인문학의 ‘무엇’이 창의성을 기르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기일까. 보다 명쾌하게 알기 위해서는 ‘지금의 잡스’가 아니라 ‘지금의 모습이 아닌 잡스’를 생각해 보는 것이 쉬운 방법이다. 예를 들어, ‘인문학을 잘 아는 지금의 잡스’가 아닌, ‘인문학적 지식이 전혀 없는 평범한 IT 엔지니어 스티브 잡스’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기의 원리를 연구하고 새로운 작동 방법에 골몰하는 스티브 잡스. 과연 이러한 스티브 잡스에게 ‘없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람’이다.
‘엔지니어 스티브 잡스’는 기계와 씨름하고 그 안에서 거대한 우주를 발견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오로지 사물의 세계, 물리적 법칙일 뿐이다. 과학의 모든 것들이 들어 있다 하더라도 사람의 생각, 마음, 행동의 원리는 없다. 그런 점에서 사람에 관한 학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문학은 IT 엔지니어로서의 결핍된 존재였던 스티브 잡스를 채워 줄 최고의 학문이었다. 그 덕에 그는 오른손에 기술을, 왼손에 인문학을 들고 서로를 번갈아 보며 ‘인문학이 결합된 기술’을 만들어 내고, ‘기술이 반영된 인문학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잡스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아주 멋진 통찰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아이튠즈였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뮤직 플레이어’ 안에 ‘뮤직 라이브러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생각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가방 안에 책이 있고 컴퓨터 안에 파일이 있듯이 뮤직 플레이어 안에 뮤직 라이브러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잡스는 이걸 분리해 버렸다. 그의 말대로 기기들이 너무 복잡하고 쓸모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욱 중요한 이유가 있다. 당시 횡행했던 불법 복제에 대처하는 그의 자세 때문이다. 아마도 인문학이라는 또 다른 무기가 없었다면 그 역시 평범한 IT 엔지니어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는 회로판과 물리의 세계를 벗어나 사람들의 속성과 마음을 읽었고, 그것이 아이튠즈의 탄생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불법 복제’는 인터넷 시대의 사생아다. 가장 선봉에 섰던 것은 음악 파일 공유 프로그램이었던 냅스터Napster였다. 냅스터를 통해 네티즌들은 MP3 음악 파일을 불법 복제해 무료로 나눌 수 있게 됐고, 이용자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네티즌들에게 냅스터는 무료 음악의 세계로 인도하는 천사였을지 모르지만, 음반사와 아티스트들에게는 경제적 지옥을 가져다주는 악마였다. 더 나아가 숱한 예술적 고민과 노력이 마구잡이로 불법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절망을 안겨다 주기에 충분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음반 시장은 죽었다’고 말했다.
그들이 내놓은 대안은 ‘적발’과 ‘처벌’이었다. 양심에 호소하는 이들도 있었다. ‘양심에 의거해 더 이상 복제를 하지 말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일반인들이 당시의 불법 복제에 대응하는 태도는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일견 매우 정상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인다. 불법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적발을 해서 처벌하거나, 아니면 교육과 양심을 통해 계도하는 방법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전혀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그의 생각은 ‘그 누구도 불법 복제를 막을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밥 딜런의 해적판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은 나도 들었다. 하지만 누구도 인터넷을 폐쇄할 수 없다. 또한 누구나 디지털 음악 파일의 복사본 하나만 있다면 인터넷에 업로드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는 누군가가 CD 플레이어로 재생한 아날로그 음원을 다시 디지털 방식으로 녹음해 인터넷에 업로드하는 경우다. 여러분은 결코 그것을 막을 수 없다.”
- 《Newsweek》 (2006)
잡스는 알았다. 사람들은 절대로 불법 복제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인간의 심성을 꿰뚫어 봤던 것이다. 조건이 바뀌지 않는 이상 사람의 심성도 바뀔 수 없음을 알았다. 그는 사람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했다. 그 결론이 아이튠즈였다. 아이튠즈라는 시스템을 통해서 사람들이 처한 환경을 바꿨다. 새로운 도구를 준다면 사람들 역시 반드시 바뀌리라는 확신이었다. 잡스는 불법적인 행위 자체와 싸우려 하지 않았다. 불법을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 심리, 그 행동의 원리와 경쟁하고자 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새롭고 진보된 환경을 제시해 주었다. 바로 ‘공정한 가격, 더 나은 제품’이라는 최적의 환경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소비’인 것이다. 적발과 처벌, 계도와 같은 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법이었다. 잡스는 아이튠즈와 인간에 대한 관찰을 다음과 같은 말로 축약하고 있다.
“훔치는 것은 남의 인격을 해치는 일이다. 우리는 합법적인 대안의 제공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우리는 모든 인터넷 이용자들, 즉 진정으로 정직해지고 싶고 도둑질하기 싫어서 온라인으로 음악을 구매하려고 했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던 모든 사람들이 이제는 떳떳하게 음악을 구매할 수 있기를 바란다. 시간이 지나서 공정하고 합리적인 대안이 그들에게 주어진다면 지금 음악을 도둑질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이상 그런 행동들을 하지 않을 것이다.”- 《Rolling Stone》 (2003)
그의 생각은 그대로 적중했다.
“아이튠즈 스토어에서 2003년 4월부터 뮤직 비디오, 영화 등을 판매한 결과 20일이 안 되어 1백만 개의 비디오 파일들이 팔렸다. 이는 합법적인 다운로드 시장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Rolling Stone》 (2003)
아이튠즈를 그저 폐쇄적으로 상품을 판매하고 싶은 애플의 욕망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것은 곧 불법 다운로더들과의 심리전이었고, 그들을 ‘거칠고 악한 환경’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새로운 탈출 시스템이었다. ‘IT 엔지니어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을 만나서 사람을 알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가기 시작하자 사안을 바라보는 틀이 달라졌다. 처벌과 양심이라는 단선적인 틀에서 벗어나 더 나은 환경의 제공이라는 새로운 인식의 틀을 만들어 냈다.
BUSINESS_ 객체 지향, 타자가 중심에 놓이기 시작할 때
객체 지향: 타자가 기술로 비집고 들어올 때
주체와 객체, 자아와 타자의 관계는 인문학의 대표적인 학문인 철학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어 온 주제이기도 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더 나아가 ‘세상의 본질’에 대한 문제로도 연관되는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객체 지향은 객체가 아무것도 몰라도 모든 정보를 통해 객체가 원하는 바를 단숨에 해결해 준다는 강점이 있다. 아이팟이나 아이폰이 ‘직관적인 디자인’이라고 말해지는 이유도 잡스의 ‘객체지향 시스템’이 정점에 오른 형태로 구현되었기 때문이다.
객체 지향 시스템에 관한 단적인 사례가 있다. 바로 리모컨의 형태이다. 잡스는 2005년 10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40개의 버튼이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리모컨과 단 6개의 버튼이 있는 애플 리모컨을 사진을 통해 비교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리모컨은 40개의 버튼이 울퉁불퉁하게 달려 있어 거북이 등껍질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애플의 리모컨은 심플하고 손에 착 감기는 수려한 디자인을 자랑했다. 우리는 애플의 리모컨에 ‘객체 지향 시스템’이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당신을 위해 40개의 버튼을 만들어 놓았다. 당신은 여기에서 ‘자유롭게’ 40개의 버튼을 조작하면 된다. 그런데 정말 이게 ‘자유로운’ 일일까. 리모컨을 아주 잘 아는 전문가에게는 무한한 자유를 선사할지 모르지만,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결코 객체 지향적이지 못하다. 정작 40개의 버튼이 달린 리모컨을 받아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까. 당신은 짜증부터 날 것이다. 반면에 6개의 버튼만 있는 애플의 리모컨에는 ‘당신은 몰라도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는 객체 지향적 사고방식이 배어 있다.
“아이튠즈는 여러분의 모든 미디어를 아이폰에 동기화시켜 줄 것이다. 여러분들의 음악, 오디오북, 팟캐스트, 영화, TV쇼, 뮤직 비디오 등의 모든 미디어들을 말이다. …… 이뿐만이 아니다. 사진들, 노트들, 웹브라우저에서 가져온 북마크들, 이메일 계정들, 전체 이메일 구성 모든 데이터들이 완전히 자동으로 여러분의 아이폰으로 옮겨지게 된다. 정말 멋진 일이다. …… 충전하고 동기화하라.”- 〈Mac World Expo 기조연설〉(2007)
동기화에 관한 한 우리는 아무것도 몰라도 된다. 잡스의 말처럼 충전하고, 동기화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최근 잡스가 발표한 ‘아이클라우드’에 관한 내용이다. 심지어 여기에서는 ‘동기화’라는 개념 자체도 사라져 버린다. 이제는 ‘객체 지향’이 아니라 ‘객체 그 자체’가 되어 버리는 모양새다.
통제와 자율성에 대한 모순의 해결
회사는 완벽하게 통제되는 것이 좋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관리되고 체계화되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문제는 통제에 대한 직원들의 반응이다. 자신들이 누군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기계적으로 일을 할 뿐이고, 날짜가 되면 월급을 받을 뿐이다. 다음 날에도 시키는 일만 하니 창조에 대한 열망도 없고, 새로움에 대한 갈망도 없어진다. 통제와 자율, 창의성은 묘한 삼각관계를 이루며 기업에게 ‘난제’를 부여한다. 이 어려운 난제를 해결한 사람이 스티브 잡스이다. 그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완벽하게 통제를 한다. 그러면서도 직원들에게 최대한의 창의성을 이끌어 낸다. 어려운 문제지만 잡스는 해냈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통제와 창의성의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 1 → 모든 구성원은 모든 구성원을 만날 수 있다.
앞장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잡스는 최하위와 수시로 접촉한다. 중간층을 체크하고 조직을 단순화하는 목적 이외에도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국 기업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가 자신의 상관을 건너뛰어 더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애플은 다르다. 잡스는 작업 현장에 가서 직접 직원들에게 피드백을 준다. 애플은 기업의 권위적인 구조 자체를 완벽하게 무너뜨렸다. 이렇게 만났을 때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대개 직접적이고 업무 자체에 집중되어 있다. 잡스는 직원을 만나 간단하게 이야기를 들은 후 다음의 둘 중 하나로 피드백을 준다. “음, 괜찮군. 계속해 봐.” “됐어. 그런 멍청한 짓은 그만둬.”
한국 기업이라면 어떨까. CEO는 어쩌다 부하에게 ‘어때, 할 만해?’라고 웃으며 말해 주고, 부하는 ‘예, 괜찮습니다’라며 머리를 긁적인다. 비록 최상부와 최하위가 접촉을 한다고 하더라도 업무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는 거의 힘들다. 중간층의 두꺼운 벽이 무너진 곳에서 자율과 창의성이 꽃핀다. 답답한 상사 때문에 일을 질척거릴 필요도 없고, 눈치를 볼 일도 없다. 최상위에서 단호하고 명쾌하게 방향을 잡아 주는 것이 ‘통제와 창의성의 모순’을 해결하는 첫 번째 방법이다.
통제와 창의성의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 2 → 궁극의 책임자를 ‘방점’으로 찍어 놓는다
애플의 회사 구조에는 일반 회사에서는 찾을 수 없는 색다른 명칭이 있다. 그것은 바로 DRI라는 것이다. ‘Directly Responsible Individual’의 약자로, ‘직접적인 책임을 가진 자’라는 뜻이다. 애플에서 하는 모든 회의록에서 DRI가 있다. 누가 무엇을 맡고 무엇을 책임지고 있는지를 종이 몇 장으로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 흔히 애플 직원들은 협업이 필요할 때 이렇게 묻곤 한다. “거기 DRI가 누구죠?”
이 한마디면 모든 것이 끝난다. 책임 관계가 엮이거나 분산되고, 때로는 여러 가지 형태로 귀속되는 일은 전혀 없다. 딱 한 명이 책임을 지면 창의성이 떨어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일이 잘못되었다고 팀 단위로 혼이 난다든지, 팀장이 상사에게 혼쭐이 난 후 부하에게 화풀이하는 일도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이 개개인의 책임으로 발가벗겨진 상태에서는 일을 대강대강 한다거나, 창의적이지 못한 일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 힘들다. DRI는 뭉뚱그려져 있는 애매한 책임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방식이며, 정확하게 성과가 평가되고 배분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라면 통제와 함께 충분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앞에서 제시한 두 가지가 가능한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리더의 역할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자신을 통제하는 리더 안에서 창의성을 발휘하기’가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리더가 진정한 의미에서 ‘보스’가 되어야 한다는 또 하나의 필수적인 조건이 있다. 진정한 보스의 관리와 통제는 직원들을 옥죄는 것이 아니다. 직원들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알아서 세세하게 결정해 주거나, 그들의 모든 불편을 사소하게라도 해결해 주는 방식이 진정한 보스의 역할이다. 자신들이 최고임을 자부할 수 있도록 알아서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의미이다. 애플 직원들은 셔틀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할 수 있고, 굳이 회사에 건의하지 않아도 최고의 건강식을 회사에서 먹을 수 있다.진정한 보스는 직원들의 행복과 즐거움까지 통제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통제라면 그 누군들 원하지 않을 것인가.
SELF-DEVELOPMENT_ 성공을 넘어 사랑에 대한 통찰로
상반된 리더십의 모순을 풀어 주는 ‘중력’의 문제
“많은 회사들이 뛰어난 엔지니어들과 영리한 인재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모든 것들을 중심으로 끌어당겨 주는 중력 같은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기술의 조각들이 우주 속을 떠다니게 된다. 그런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애플에서 한동안 사라졌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끌어당겨 주는 중력이 없었기에 크고 작은, 하지만 재미있는 조각들이 주위를 떠돌아 다녔다.”-《Business Week》 (2004)
중력은 주위 조각들을 다루려고 하지 않는다.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주위 조각들은 중력의 힘에 이끌려 빨려 들어갈 뿐이다. 결국 리더십의 문제란 ‘직원들을 어떻게 다룰까?’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직원들이 빨려 들어오게 만들까’의 문제이다. 곧 리더 스스로 ‘내가 어떻게 중력의 힘을 가질 것인가’를 고민하는 문제의식과도 동일하다.
리더십이란 리더의 자기 반성, 자기 실력, 자기 검증에 관련되는 문제다. 이렇게 생각하면 리더십과 관련된 모든 복잡한 문제들이 일거에 해결된다. ‘저 사람을 어떻게 다뤄야 하지’, ‘저 직원의 심리는 뭘까?’, ‘저 사람은 성향이 좀 달라서 카리스마보다는 서번트 리더십이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스스로 독창적으로 되는 것, 스스로 뛰어난 인력이 되는 것 자체가 리더십이다.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중력의 리더십’을 갖추게 된다.
제품 생산에 문제가 없어지기 시작하면 모든 권력은 과거의 ‘만드는 자’의 중력을 벗어나 ‘파는 자’들에게 돌아간다. 마치 그들이 회사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듯한 이야기가 오가며, 원래의 중력이었던 ‘만드는 자’는 상황을 관망할 뿐이다. 잡스가 어떤 흔들림에도 변함없이 제품의 제작 과정과 홍보, 유통 등 모든 부분에 관여하는 이유도 이러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다. 잡스는 스스로 가장 강한 중력이 되길 원했다. 중력의 획득은 누수를 방지하고, 애초의 오리지널한 창의성을 보호한다. 그는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중력의 획득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앞의 리더십이 ‘상사와 부하 직원 간의 중력의 문제’라면, 후자는 ‘회사의 핵심과 주변부 간의 중력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리더십의 문제를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외부의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차원이 아니라, ‘어떻게 그들이 빨려 들어오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이다.
가치, 모든 것을 결정짓는 궁금의 위대함
“해군에 입대하기보다는 해적이 되는 편이 낫다.”-《Odyssey : Pepsi to Apple》 (1987)
이익과 손해라는 틀에서만 본다면 단연 해군에 입대하는 것이 낫다. 안정된 보수, 사회적인 지위와 신뢰성, 은퇴 후의 생활까지 고려한다면 해적보다는 당연히 해군을 선택해야 한다. ‘정상적으로’, ‘상식적으로’ 봤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잡스가 해적이 더 낫다고 말한 이유는 정확하게 ‘해군일 때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자신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잡스가 해온 대부분의 선택은 ‘가치 위주의 선택’이고, 그가 하는 대부분의 판단은 ‘가치 위주의 판단’이다. 그는 애플과 존 스컬리의 관계, 애플의 몰락에 관해 모든 것을 가치라는 기준으로 판단한다.
“애플을 망쳐 놓은 것은 성장과 발전이 아니었다. 애플을 망쳐 놓은 건 가치 기준이었다. 존 스컬리가 애플을 망쳤다. 그는 고위 간부들에게 일련의 부패한 가치들을 주었으며, 그것으로 그들을 타락시켰다. …… 애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고객들이 사용할 위대한 컴퓨터를 만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더 이상 그에 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위대한 컴퓨터를 만드는 방법을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오로지 많은 돈을 버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Computer World〉 (1995)
가치와 동기, 규칙에 대한 잡스의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선택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하나의 중요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수준의 삶, 어떤 수준의 가치를 선택하느냐에 대한 메시지이다. 오로지 ‘먹고 사는 것’에만 초점을 두고 더 이상 확장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서도 그 이상의 수준에 대한 욕구가 없는 경우도 있다.
잡스는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는 단계, 자신의 자아가 완벽하게 만족되는 상태, 최고의 정점을 향한 인생을 목표하고 있다. 그가 돈에 가치를 두지 않는 것은 부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돈을 넘어서 있는 가치’를 추구하겠다는 의미이다. 그는 충분히 넉넉하지 못했던 애플의 초창기 시절부터 최고의 욕구 단계를 꿈꿨다. ‘해군에 입대하는 것보다 해적이 되는 편이 낫다’는 말은 그가 지향하고 있는 삶의 목표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 주고 있다.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아갈 것이냐의 문제는 자신의 전 인생을 결정짓는 나침반과도 같다. 북쪽으로 나침반을 맞추면 그의 삶은 모두 북으로 향할 것이고, 남쪽으로 맞추면 모두 남으로 향한다. 당신의 삶의 가치는 어디로 향해 있는가.
두려울 때마다 생각해야 하는 삶과 죽음의 변증법
“17살 때 나는 이런 글을 읽었다. ‘만약 당신이 매일을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이 말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때부터 33년 동안 나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나 자신에게 묻는다. ‘만약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하려고 하는 일을 하고 싶을까?’ 만약 ‘노’라는 대답이 나온다면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나에게는 인생에 있어 큰 고비마다 가장 중요한 극복 도구가 된다.”- 《Stanford Commencement Address》 (2005)
우리는 잡스의 사생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지만, 아주 특별하게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아냈다. 그가 매일 아침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죽음에 대한 그의 생각은 궁극적으로 ‘삶과 죽음의 변증법’에까지 미친다.
“아무도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 천국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그곳에 가기 위해 죽으려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죽음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하고, 도망칠 수도 없다.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삶의 변혁을 주도한다.”- 《Stanford Commencement Address》 (2005)
죽음이 훌륭한 이유는 한 개인의 모든 것을 다시 완벽한 ‘무無’의 상태로 되돌려 놓기 때문이다. 그가 무슨 일을 했든, 어떤 성과를 쌓아 왔든, 얼마나 명성이 높든 결국 모두를 ‘태어나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이때부터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 생겨난다. 모든 것을 무로 만드는 죽음이 반대로 삶에 새로운 의욕과 활기를 불어넣는다. 인생에 있어서 죽음은 가장 열정적이고, 가장 순수하고, 가장 중요한 것만을 걸러 내는 일종의 필터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외부에서 나에게 거는 모든 기대들, 모든 자존심, 곤경이나 실패에 대한 모든 두려움 등이 죽음 앞에서는 다 떨어져 나가고 진실로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이다.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뭔가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덫에서 탈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여러분은 이미 잃을 것이 없다. 따라서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Stanford Commencement Address》 (2005)
죽음은 삶을 정화한다. 잡다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은 모두 없애버린다.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가장 온전하고 단순하며 의미가 깊은 것들만을 추려 낸다. 이를 통해 죽음은 삶의 변화를 주도하기 시작한다. 삶의 종착지인 죽음이 그 종착지로 가는 과정인 삶을 바꾸는 것이다.
“인생은 짧고, 어느 시기가 되면 우리는 죽는다. 그렇지 않은가.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바쳐서 해보려고 선택한 일이다. 우리는 일본 어느 시골의 수도원에서 좌선하며 앉아 있을 수도 있고, 항해를 떠날 수도 있다. 어떤 이는 골프를 칠 수도 있고, 비즈니스를 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모두 인생을 바쳐 이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따라서 아주 멋지게 일하는 편이 낫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도록 일하는 편이 훨씬 낫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Fortune》 (2008)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이다. 그 죽음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어두워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죽음이 있기에 우리는 우리의 삶을 가장 멋지게, 화려하게, 신나게 살아야 한다. 잡스는 제안한다. ‘따라서 아주 멋지게 일하는 편이 낫다’고 말이다. 어차피 죽을 인생이라면 지금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스티브 잡스의 상상력과 철학은 일반인들의 예상을 넘어선다.
놀랍도록 과감하고 직접적이면서도 심오한 통찰이 함께하고 있다.
그에 대한 평가도 매우 극단적이다.
때로는 폭군으로 불리며,
심지어 ‘현실을 왜곡하는 자’로 규정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표독스러운 CEO의 모습도 가지고 있다.
정반대 편에서는 ‘창의성의 아이콘’,
‘새로운 시대를 만든 사람’으로도 바라본다.
이 책은 이러한 스티브 잡스의 겉모습을 탐구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스티브 잡스의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일이다.
왜 그가 그런 말을 하는지,
왜 그가 창의적일 수 있는지,
왜 그가 그렇게 가혹하게 직원들을 대하는지,
왜 그가 그토록 일에 열정을 발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원’을 탐구해야 한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스티브 잡스의
겉모습만 보고 흉내 내는 것에 그칠 것이다.
잡스의 세계로 들어가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키워드는 바로 인문학이다.
그는 늘 자신이 기술과 인문학의 중간에 있으며,
기술만 가지고는 많이 부족하다고 말해 왔다.
심지어 그는 ‘소크라테스와 한나절을 보낼 수 있다면
애플이 가진 모든 기술을 내놓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문학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겠다는 의미다.
따라서 인문학적 배경 지식 없이 스티브 잡스의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것은
단호하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설사 그것이 자기계발적인 메시지라도,
기업 비즈니스에 대한 지침이라도,
그 무엇이든 인문학의 입구에서 시작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를 인문학적 방향에서 접근한다고 해서
골치 아픈 추상적 개념이 나열될 것이라고 오해할 필요는 없다.
그는 현실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켜야 하는 직업이고,
그들이 지갑에서 돈을 꺼낼 수 있도록 유혹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어렵고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틀에만 갇혀 있을 리가 없다.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이란 곧 ‘사람에 대한 이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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