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업무의 기술 45
구와바라 데루야 지음
시그마북스 / 2011년 12월
1장 ‘한 단계 위’를 지향하며 일하고 싶다
열심히 노력은 하는데 왠지 결과를 내지 못한다 - 성과가 오르지 않는 원인은 대부분 기술이나 운의 문제가 아니라 집념의 차이다. 1976년에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애플을 창업했다. 이 애플의 출발을 견인한 것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컴퓨터 가게를 경영하던 폴 테렐의 대량 주문이었다. 테렐은 ‘홈컴퓨터’, ‘마이크로컴퓨터’가 갓 나오기 시작한 시대에 컴퓨터의 개인 수요를 꿰뚫어보고 점포 세 곳을 경영했다. 문제는 팔 제품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직접 부품을 사고 다른 사람에게 납땜을 맡기는 식으로 만들어서 팔았기 때문에 판매할 수 있는 대수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테렐은 ‘마법사 워즈’라고 찬사를 받는 천재 기술자 워즈니악이 만든 개인용 컴퓨터를 보았다. 바로 ‘애플Ⅰ’이었다. 그 순간 테렐은 ‘바로 이거야!’ 하고 무릎을 쳤다. 하지만 그는 잡스를 ‘빈틈이 없고 상대방을 골탕 먹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경계했기 때문에 “다음에 또 보세”라는 형식적인 말만 하고 헤어졌다.
한편 잡스는 그가 자신을 경계하는지 아닌지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튿날, 잡스가 테렐의 가게를 찾아와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어제 ‘다음에 또 보자’라고 하셔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잡스는 테렐에게 애플Ⅰ을 홍보해 50대를 주문받았다. 금액은 약 3만 달러였고, 대금은 제품을 인도할 때 현금으로 받기로 했다. 잡스는 그때 아직 휴렛팩커드에 다니던 워즈니악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계약 결과를 알렸고 워즈니악은 놀라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주문은 사실 애플로서는 상당히 벅찬 규모였다. 애플을 창업할 때 이들이 마련한 자금은 고작 1천 달러였는데 이 돈으로는 부품을 사기에도 모자랐다. 잡스는 부품업자에게 대금을 후불로 지급하고, 제품을 납품할 때 받는 돈으로 그때그때 부품 대금을 결제하면서 제품을 조립해 나간다는 아이디어로 문제를 해결했다. 결국 테렐은 애플Ⅰ을 총 150대 납품받아 10만 달러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당시 두 사람 모두 큰돈을 벌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만든 개인용 컴퓨터를 마니아에게 수십 대 정도 팔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대량 주문은 다분히 ‘우연’의 산물이었다. 테렐이 처음 잡스에게 경계심을 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행운을 놓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잡스는 우연을 놓치지 않았다. 기회를 직감한 그는 그때까지 계속 다니던 게임 회사 아타리를 그만두고 애플에 전념했다. 더불어 미래의 비전도 명확히 그리게 되었다. ‘컴퓨터를 자신의 손으로 조립하고 싶어 하는 마니아가 한 명 있으면, 조립까지는 못해도 컴퓨터를 사용해볼 생각이 있는 사람은 1천 명이 있다’라고 생각했다.
이듬해에 내놓은 ‘애플Ⅱ’는 상자에서 꺼내자마자 소비자가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완성품 컴퓨터로 만들었다. 이 결단이 전기가 되어 애플Ⅱ는 폭발적으로 팔려나갔고 이로써 회사는 크게 도약할 수 있었다. 애플Ⅰ의 수주라는 행운을 얻은 가운데 확실히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하고 그것을 애플Ⅱ라는 형태로 구체화한 것이다. ‘운’이 ‘실력’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기회는 모두에게 찾아온다. 노력은 누구나 하고 있다. 그리고 과학 기술의 세계에는 천재도 많다. 결국, 성공을 결정하는 요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루어낸다’라는 집념이다. 단순한 의욕이나 열정이 아니다. 집념은 이후에도 잡스의 커다란 성공 요인이 된다.
잡스의 한마디_ 집념은 성공의 최우선 요인이다.
남들과 다르고 싶다면 어디에 차별점을 둬야 할까? - “이건 전례가 없어. 그러니까 포기하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저 특색 없는 일반적인 사람이다. 그런 부류에서 빠져나오려면 “이건 전례가 없어, 그러니까 하자”라고 말하면 된다. 그 뒤에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음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잡스는 항상 이 길을 선택했다. 1985년 잡스는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추방당했다. 그 후 1996년에 애플에 복귀하기까지 그는 1985년에 창업한 ‘넥스트’와 〈스타워즈〉 시리즈로 유명한 영화감독 조지 루커스에게 사들인 픽사를 경영하는 데 전념했다. 두 회사 모두 오랫동안 이익이 나지 않아 잡스는 개인 재산을 축내야만 했다. 하지만 결국 넥스트사는 잡스의 애플 복귀를 이끌어냈고, 픽사는 세계적인 히트작을 연달아 탄생시켜 잡스가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특히 픽사는 그때까지 없었던 컴퓨터 그래픽CG을 사용한 장편 애니메이션이라는 분야를 정착시키는 등 영상 세계에 커다란 공적을 남겼다.
또 픽사는 1995년의 〈토이 스토리〉와 1998년의 〈벅스 라이프〉, 1999년의 〈토이 스토리2〉 등 만드는 작품마다 대히트를 기록해 기적 또는 신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리콘 밸리에서 자라 영화와는 인연이 없는 잡스가 그런 기적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픽사의 공동 창업자인 에드윈 캣멀과 알비 레이 스미스, 그리고 그들이 발굴한 존 래스터라는 3인의 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에드윈 캣멀은 CG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컴퓨터 과학자이고, 알비 레이 스미스는 수학과 컴퓨터 이론에 정통한 예술가로 ‘CG의 마술사’로 불렸다. 또 존 래스터는 디즈니를 거쳐 픽사에 입사한 천재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잡스는 이 3명과 손을 잡음으로써 영화계에서 성공을 거머쥐었다.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놀라운 제안을 했다. 기적을 일으킨 원동력인 존 래스터를 대신해 CG 애니메이션에는 초보자였던 브래드 버드를 차기작의 감독으로 기용한다는 것이었다.
디즈니 출신인 브래드 버드는 CG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경험이 없었다. 그런 인물을 기용한 것이니, 잡스가 얼마나 업무 진행 방식의 고착화를 싫어하고 전례의 답습을 피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런 브래드 버드가 만든 작품이 2004년에 발표한 〈인크레더블〉이다. 당시 히어로의 이야기를 CG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캣멀과 래스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던 브래드의 제안을 채용했다. 이유는 이랬다. “우리는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와 똑같은 말만 하는 사람은 필요 없습니다.” 불가능하기에 도전하고, 전례를 뒤엎는 제안이니까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당연히 실현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랐다. 버드의 주문은 픽사의 전례를 깨고 상식을 뒤엎는 것들뿐이었다. 기술자들은 괴로웠다. 게다가 상영 시간은 2시간에 가까웠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아이들이 좋아할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미국 국내에서 2억 6천만 달러, 전 세계에서 6억 3천만 달러라는 흥행 수입을 올렸다. 이는 〈니모를 찾아서〉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초기의 세 작품을 크게 웃도는 기록이었다. 훗날 브래드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 스튜디오(픽사)가 성공을 거둬온 까닭은 성공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매번 한계까지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히트작을 연달아 내놓으며 기적을 일으킨 회사가 초보자를 기용한다.’ 그런 있을 수 없는 도전을 한 데는 물론 잡스의 존재가 크다. 잡스는 정기적으로 제작 진척 상황을 살피고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스태프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게 정말 자네들이 하고 싶은 건가?” 타협하지 말고 정말로 만족하는 수준이 될 때까지 철저하게 만들라고 강하게 채찍질한 것이다. 전례를 따르며 무난하게 일하는 것도 역시 인생의 한 가지 길이다. 그러나 언제 “자네를 대신할 사람이 왔으니 이제 자네는 필요없네”라는 말을 들을지 모른다. 그러기 전에 ‘이건 전례가 없어. 그러니까 하자’라는 발상이 필요하지 않을까?
잡스의 한마디_ 아무도 걸은 적이 없는 길을 가라.
2장 ‘부족한’ 가운데서 최고의 성과를 내고 싶다
발주처의 무리한 요구에 충실히 응해야 할까? - 선택과 집중은 비즈니스의 성공 원칙 중 하나이다. 그것을 무시하고 자기중심적인 요구를 하는 오만한 발주처에는 “노”라고 거절해도 된다. 잡스의 “노”는 강렬하고 비타협적이다. 1996년, 길 아멜리오가 애플의 CEO로 취임했다. 아멜리오는 위기에 빠졌던 반도체 제조회사 내셔널 세미컨덕터를 재건한 ‘업계의 재건왕’으로, 애플을 재건하려면 잡스가 필요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애플이 잡스의 회사인 넥스트의 매수를 정식 결정하고 세부 조건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아멜리오는 잡스와 경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잡스는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뉴턴’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뉴턴은 세계 최초의 개인용 휴대 정보 단말기PDA다. 아멜리오는 뉴턴이 적자 사업이기는 하지만 언젠가 이익이 날 것으로 생각해 계속 유지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사업부를 폐쇄하는 데 얼마나 들 거라고 생각하시오?”라고 잡스에게 되물었다. 그러자 잡스는 이렇게 단언했다. “얼마가 들어가든 상관없습니다. 뉴턴을 버리면 세상은 애플에 박수를 보낼 겁니다.” 결국 잡스는 애플로 본격 복귀하자마자 뉴턴을 포기했다. 뉴턴에는 열광적인 팬도 많았기 때문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컸다. 잡스 본인도 “PDA 사업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력은 엄청났다”라고 술회했을 정도다.
PDA뿐만이 아니다. 잡스는 버린 프로젝트가 완성한 프로젝트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버린 것이 많기에 결실이 풍요롭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집중해야 할 것에 ‘예스’라고 말하는 것이 집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 집중이란 다른 수많은 훌륭한 아이디어에 ‘노’라고 말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독하게 “노”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잡스는 무엇에 “예스”라고 말할지 결정하기 전에 “노”라고 말해야 할 것을 차례차례 정한다. 그런 후 더 이상은 “노”라고 말할 것이 남아 있지 않을 만큼 황량해진 장소에 남은 광맥만을 판다. 추리고 또 추린 끝에 남은 극소수에 집중하며, 하지 않은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실행해 나간다’라는 것은 상식이며 올바른 방법이다. 하지만 상식 밖의 성과를 올리려면, 끊임없이 “노”라고 말한 끝에 남은 한두 개만을 한다가 되어야 한다. 후자는 종종 결렬이나 증오를 부른다. 그렇지만 후자야말로 잡스가 선택한 길이다.
잡스의 한마디_ “노”라고 말함으로써 최선의 “예스”를 발견한다.
3장 능력과 성격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뒤늦은 깨달음이 아닌 선견지명의 힘을 키우고 싶다 - 선견지명의 힘은 누구에게나 있다. 자신의 선견지명을 믿는 사람이 적을 뿐이다. 잡스가 자신의 선견지명에 자신감에 품기 시작한 때는 애플Ⅱ가 대히트를 기록한 무렵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일이 어떻게 전개될 것이냐는 향기나 냄새를 맡고 여러 가지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잡스는 시장조사를 하지 않는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 그의 시장조사”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만든다. 그러면 그것이 바로 사용자가 원하는 것이라는 사고방식이다.
그의 선견지명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은 팔로알토 연구소를 견학했을 때였다. 그곳에 있는 놀라운 컴퓨터 기술을 본 순간, 잡스는 ‘언젠가 모든 컴퓨터가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직감했다. 기술을 개발한 팔로알토 연구소의 천재들에게는 막연하게 보였던 미래의 문을 잡스가 먼저 본 것이다. 스티브 워즈니악 역시 선진적인 기술을 눈앞에 본 순간 미래를 향해 열린 일방통행의 문을 통과한 기분이었다고 한다. 일단 지나가면 낡고 불편한 과거로는 두 번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문이다. 팔로알토 연구소의 기술은 그만큼 컴퓨터의 사용법 자체를 바꿔놓는 것이었다. 애플은 그것을 실현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잡스가 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실현하지 못했다.
미래의 문이 보이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직감을 믿지 않는다. 미래의 문을 열 수 있느냐 없느냐는 주위 사람들이 아무리 “노”라고 말해도 ‘내가 옳고 다른 생각은 전부 틀렸다’라고 믿을 수 있느냐에 달렸다. 다른 사람은 잊어버리고 혼자서 걸음을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최고다. 잡스는 워즈니악과 함께 다음의 다음, 또 그다음 등 영속적으로 혁명을 일으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
선견지명이라고는 해도 세부적인 기술까지는 물론 알지 못한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알아맞힐 수도 없다. 그럼에도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느낄 수는 있다. 그 느낌은 상당히 정확하다. 다음에는 한발 물러서서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으면 일은 알아서 진행된다.” 잡스의 선견지명은 종종 비상식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그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상식적인 견해라면 반대 의견은 나오지 않지만, 그래서는 혁명을 일으킬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하는 견해이기 때문에 한계를 뛰어넘어 비약할 수 있는 것이다. 선견지명의 힘을 키우고 싶다면 자신의 내부에 있는 작은 예감, 바보 같은 의견, 사소한 영감을 소중히 여기자, 그런 것들을 상식이라는 대패로 깎아버리면 선견지명의 힘은 평생이 가도 발전하지 않는다.
잡스의 한마디_ 자신을 부정하지 마라.
예전 같은 의욕이 나지 않고 기력이 부족하다 - 성장기의 과제가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었다면, 성숙기의 과제는 ‘꿈’을 발견하는 것이다. 꿈이 없는 인생은 허무하지만 꿈은 의외로 쉽게 식어버리기 때문이다. 잡스가 애플 재건의 히든카드로 내놓은 아이맥은 1년 사이에 200만 대나 팔렸다. 그러나 잡스는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아이맥’으로 불린 ‘아이북’을 발표하는 등 연달아 신제품을 내놓았다. 이러한 도전 끝에 탄생한 것이 2000년에 발매된 아이팟이다.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라는 잡스의 예상대로 아이팟은 2003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79만 대가 팔렸고, 이듬해 1~3월기에는 80만 대, 이어서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450만 대가 판매되었다. 수익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주가가 상승해 주주들도 만족했다. 이만큼 성공을 거두었으면 누구나 안도하기 마련이지만 잡스는 이렇게 일갈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미 최고의 성공을 거두지 않았는가? 여기에서 실패라도 한다면 잃는 것도 많으니 이제는 안전 운행을 하자’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함정이다. 우리는 더 대담하게 도전을 계속해야 한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세계 규모의 기업들이므로 현재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런 후 가장 성공한 제품인 아이팟 미니를 단종시키고 더 뛰어난 제품을 만든다는 경악할 만한 구상을 발표했다. 현재 잘 팔리는 제품을 단종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넣기 위해서였다. 잘 팔리는 제품을 단종시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더 우수한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성공이 계속되면서 마음이 느슨해지기 시작한 애플에 커다란 꿈을 주는 잡스만의 방식이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후계 기종인 아이팟 나노의 설계도를 본 사람들은 모두 “이건 도저히 무리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잡스는 그 벽을 뛰어넘게 했다. 생산 계획도 제시된 숫자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을 선택했다. 과거의 사분기 최고 판매 대수는 450만 대였는데, 잡스는 그 3배가 넘는 1천500만 대를 발주했다. 실제로 2005년 10월 사분기에 애플은 아이팟을 1천500만 대를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과거의 꿈은 잊어버리고 더 놀라운 성과를 거둔 것이다. 잡스는 월트 디즈니의 “우리의 진가는 다음 작품에서 결정된다”라는 말을 좋아했다.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다음 모퉁이를 돌면 그곳에는 놀라운 무엇인가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며 계속 걸어간 것이다.
성공은 기분 좋은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빨리 잊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똑같은 방식으로 두 번, 세 번 성공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이 성장할 때 성공 체험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아무리 작은 것이더라도 성공은 자신감을 낳아 다음 도전을 향한 의욕을 북돋운다. 이런 성공 체험이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성장을 계속하면 어떤 옷이라도 결국은 작아서 못 입게 된다. 황금 의자도 결국은 작아서 앉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기나긴 정체가 시작되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성공 체험은 잘못 다루면 정체를 초래하는 ‘양날의 검’이다. 잡스가 떠난 뒤의 애플은 과거의 성공 체험에 안주해 ‘세상을 바꾸는 컴퓨터를 만든다’라는 비전을 잊어버린 패잔병이 되고 말았다.
잡스의 한마디_ 성공 체험에 안주하지 마라.
4장 리더로서의 힘을 키우고 싶다
움직일 생각이 전혀 없는 상대를 움직이고 싶다 - 잡스는 ‘설득’의 달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실현하기 위해 타인을 설득하는 문구에도 집념을 담는다. 상대도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집념 앞에 서서히 마음이 기울기 시작한다. 그럴 때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한마디를 들려준다. 잡스가 설득의 달인인 이유는 단순히 집념만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천재를 좋아하는 잡스가 제일 처음 주목한 천재는 ‘전자공학의 천재’ 스티브 워즈니악이었다. 그 둘은 묘하게 마음이 맞아서, 학창시절에는 전화를 공짜로 걸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 파는 못된 것도 함께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그런 사이였어도 함께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처음 애플을 창업할 때, 잡스는 이런 말로 워즈니악을 설득했다. “물론 금전적으로는 손해를 볼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회사를 만들 수 있어. 자신의 회사를 가질 수 있는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기회라고.” 이 매력적인 말에 워즈니악은 항복하고 즉시 창업 준비에 들어갔다.
워즈니악이 천재 엔지니어였다면 펩시콜라의 사장이었던 존 스컬리는 세일즈와 매니지먼트의 천재였다. 잡스가 스컬리에게 애플의 CEO로 와주길 설득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애플과 잡스에게 큰 흥미가 있었지만 일단은 제안을 거절했다. 안정된 대기업에서 약속되어 있던 미래를 버리고 신흥 기업인 애플로 옮기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도 잡스는 끈기를 발휘했다. 그러던 어느 날, 뉴욕에서 스컬리를 만난 잡스는 조건 문제로 주저하는 스컬리를 이렇게 설득했다. “제 지갑을 열어서 돈을 내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을 애플로 영입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애플에 완벽한 분이라고 생각하며, 애플도 최고의 인물에게 어울리는 회사입니다.” 그래도 스컬리가 즉답을 망설이자 잡스는 그 유명한 한마디를 던졌다. “당신은 남은 인생을 그저 설탕물이나 팔면서 보낼 생각입니까? 세상을 바꿀 기회에 인생을 걸어볼 마음은 없습니까?” ‘세상을 바꿀 기회’라는 말은 스컬리의 마음을 크게 뒤흔들었다. 결국 그는 고심 끝에 애플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잡스의 한마디_ ‘포기하지 말라’는 남을 설득할 때 반드시 명심해야 할 말이다.
5장 불운이나 실패를 긍정적인 기회로 만들려면?
프로젝트가 위기에 빠졌다! 갈아탈까, 끝까지 남을까? - 진퇴는 한 일의 결과보다 얼마나 열정을 품고 그 일을 했느냐를 기준으로 결정하면 된다. 적어도 잡스는 그랬다. 열정이 약했던 경우는 1980년의 애플Ⅲ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대성공을 거둔 애플Ⅱ의 후계 기종으로 당연히 사람들의 기대는 컸다. 애플은 대대적인 발표회를 연 뒤 발표회 참가자들을 버스에 태워 미리 전세를 낸 디즈니랜드로 데려가는 화려한 연출까지 했다. 그런데 결과는 참담했다. 애플Ⅰ과 애플Ⅱ는 거의 스티브 워즈니악 한 사람의 작품이었던 반면에 애플Ⅲ의 개발은 많은 사람이 관여하는 위원회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회사는 그것이 ‘일반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애플의 방식’이 아니라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잡스의 수완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었다. 게다가 기업 공개를 위해 서둘러야만 했기 때문에 일정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잡았다. 기술자들은 “아직 출고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케팅부 사람들은 “빨리 출고해야 한다”고 재촉했다. 결국 애플Ⅲ는 문제투성이인 채로 시장에 나왔다. 실패작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사실 잡스는 애플Ⅲ로부터 일찌감치 발을 빼고 리사 프로젝트에 몰두하고 있었다. 리사는 팔로알토 연구소의 성과를 투입한 선진적인 제품으로, 많이 팔리지는 않았지만 매킨토시로 가는 길을 연 선구자가 되었다. 실패로 끝날 것 같은 프로젝트에서는 미련 없이 떠나 좀 더 매력적인 프로젝트를 주도한다. 이것이 잡스가 일하는 법이었다. 잡스는 정열을 쏟은 일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1991년, 픽사는 디즈니와 영화 세 편을 제작한다는 계약을 맺었다. 당시 픽사는 아직 적자 회사였기 때문에 최종 결정권은 제작 배급 비용을 부담하는 디즈니에 있었다. 이윽고 영화감독이자 픽사의 창립 멤버인 존 래스터가 〈토이 스토리〉의 콘셉트를 만들었고, 이를 디즈니가 승인해 제작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도중에 디즈니가 제작 중단을 표명했다. 아이들도 즐길 수 있는 내용이 아니게 되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디즈니와 픽사가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가운데 내용이 변질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일반적으로는 비용을 대는 대기업이 제작 중단을 발표하면 허둥지둥 다음 기획을 제출할 것이다. 하지만 잡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토이 스토리〉에 완전히 매료되었던 것이다. 잡스는 “그러면 각본을 다시 쓰면 되잖아? 될 때까지 다시 합시다”라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게 했고, 디즈니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만족해 제작이 재개되었다. 잡스의 열정에는 분기점이 있는 듯하다. 어떤 기준보다 낮으면 위기가 찾아왔을 때 금방 열정이 식어버린다. 그런데 기준보다 높으면 위기가 올수록 더욱 열정이 강해져 역동적으로 행동한다.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버티며 성과를 내는 것이다. 다행히도 〈토이 스토리〉는 후자에 속했고, 이것은 픽사는 물론 잡스에게도 커다란 행운을 불러왔다.
잡스의 한마디_ 대부분 일은 다시 도전하면 된다.
6장 라이벌에게 압도적으로 승리하기 위해
경쟁 상대를 압도적으로 제압하고 싶다 - 시장을 압도하려면 나눠 갖는 것이 아니라 독점하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몰아내야 한다.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이듯이, 분명히 이웃의 시장은 달콤해 보인다. 자신들도 뛰어들어 이익을 나눠 갖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심리다. 잡스가 없는 사이의 애플 경영진에게는 비즈니스 시장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사무용 컴퓨터 분야에서는 그렇게 강하지 못했던 애플은 이 시장에 진출을 꽤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애플로 복귀한 잡스는 가격밖에 차별화할 요소가 없는 비즈니스 시장 같은 곳에서 승부할 생각이 없었다. 그 대신 독차지할 수 있는 시장을 개척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음악 시장에 눈을 돌렸다. 애플은 아이튠스를 통해 음악을 컴퓨터에 손쉽게 정리할 수 있게 했다. 다음에는 ‘그 음악을 들을 수단을 제공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곳에는 충분한 시장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라이벌은 있었다. 이미 시중에 나와 있는 MP3 플레이어다. 하지만 그런 제품들은 하나같이 그다지 팔리지 않았다. 제품에 매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호기심에 사보지만 사용하지 않아 사장되고 있었다. 이유는 무엇일까? MP3 플레이어를 만드는 회사가 소프트웨어을 이해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아이튠스라는 소프트웨어를 갖추고 있는 애플이 하드웨어를 만든다면 선행주자들을 금방 추월해 시장을 제압할 수 있을 터였다. 이렇게 해서 아이팟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프로젝트팀은 시장에 나와 있는 MP3 플레이어들을 철저히 연구해 크게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어내려 했고, 그 결과 만들어진 아이팟은 순식간에 시장을 독차지했다.
잡스는 라이벌과 경쟁하며 시장을 나눠 가질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매킨토시를 개발하던 때도 이미 시장을 석권하고 있던 IBM과 경쟁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IBM을 시장에서 몰아내기 위해 싸웠던 것이다. 라이벌과 파이를 나눈다는 생각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오히려 라이벌을 몰아낸다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최하위에 있어도 정상을 노리는 기업은 크게 성장해 나간다. 반대로 ‘어떻게든 4위 그룹에 들어가면…’이라고 생각하는 기업은 점차 몰락할 수밖에 없다. 승부의 세계는 그런 곳이다.
잡스의 한마디_ 나눠 가지려 하지 마라. 독점을 노려라.
7장 결실이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
어떤 사람은 떠나고, 어떤 사람은 변하는 가운데 나는 ‘어디’에 머물러야 할까? - 사람에게는 가족이나 육친과는 별개로 인생의 은인이라든가 둘도 없이 소중한 사람이 몇 명은 있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을 가르쳐 줬거나 전기轉機를 가져다준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과도 결국은 심경이나 환경의 변화 등에 따라 이별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럴 때 어떻게 상대를 떠나보내며 어떻게 자신은 그 자리에 계속 남아 있도록 해야 할까?
젊은 날의 잡스는 천재 엔지니어도 아니고, 자산가도 아니며, 경영의 프로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세기를 대표하는 경영자 중 한 명이 된 까닭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을 한 명 한 명 설득해 나감으로써 비전을 실현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극적인 만남과 이별이 탄생했다. 스티브 워즈니악과 잡스는 학창시절부터 친구였다. 나이는 잡스가 다섯 살 정도 아래였지만 묘하게 마음이 잘 맞아서 함께 짓궂은 장난을 치거나 거의 범죄나 다름없는 장치를 만들어 놀고는 했다.
애플의 성공은 워즈니악의 천부적인 재능과 뛰어난 행동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워즈니악은 1981년에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는 큰 사고를 당했다. 운전하던 비행기가 추락해 머리에 중상을 입은 것이다. 이 사고가 워즈니악의 인생을 바꿨다. 하루하루가 허리케인 같았던 애플에서 벗어나 조용한 환경에서 요양하는 동안 인생에 대해 생각한 것이다. 그 결과 워즈니악은 곧바로 애플로 돌아가지 않고 대학을 졸업하는 길을 선택했다.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에 복학한 워즈니악은 졸업식에서 대표로 이런 연설을 했다. “행복은 인생의 유일한 목적입니다. 하루에 몇 번 웃느냐가 인생을 재는 유일한 척도입니다.” 잡스처럼 세상을 바꾸려 하기보다 ‘자신을 위해 컴퓨터를 만들며 인생을 즐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후 워즈니악은 애플로 복귀하지만 별도의 회사를 창업했다. 다만, 퇴사는 하지 않고 그 후에도 애플의 사원으로 남았다.
잡스는 한때 매료되었거나 자신이 영입한 인재의 진퇴에 신랄하게 평론하는 경향이 있다. 워즈니악에 대해서는 이렇게 평가했다. “워즈는 최근 수년간 변변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세기의 영입 드라마를 연출했던 존 스킬러에 대해서는 이렇게 단정 지었다. “첫해에는 함께 회사를 성장시켰는지도 모르지만, 두 번째 해에는 이미 회사에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최대의 은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마이크 마쿨라와의 이별도 강렬했다. 애플로 복귀해 임시 CEO가 된 잡스는 애플을 추락시킨 이사회를 교체하면서 마이크 마쿨라까지 인정사정없이 사임시켰다.
둘도 없이 소중했던 사람도 시대와 함께 역할이 변화한다. 개인적인 우정이나 존경의 마음과 비즈니스상의 입장은 당연히 다를 것이다. 잡스는 떠나는 사람을 붙잡지 않는다. 여기에는 잡스 나름의 계산과 미학이 있다. 물론 잡스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내는 아니다. 훗날에는 워즈니악이나 창업 당시 10퍼센트를 출자했던 론 웨인 등과 모든 불편한 감정을 뛰어넘어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또 크게 싸운 끝에 픽사를 떠난 알비 레이 스미스에게는 “그곳(전직한 회사)에서의 휴가가 끝나면 픽사로 돌아와도 되네”라는 따뜻한 말을 건네기도 했다.
둘도 없이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은 슬픈 일이다. 하지만 인생이나 업무의 새로운 전개를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쓸데없이 감상적이 되지 말고 이별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앞날에 희망이 있으면 이별도 아름다워진다”라는 말이 있다. 잡스가 “당신과는 안녕이오”라고 말할 때는 저편에 있는 희망을 향해 달리기 시작할 때인 것이다.
잡스의 한마디_ 이별할 때는 새로운 전개를 준비한다.
우리가 스티브 잡스에게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처럼 젊은 나이에 성공한 사람이라면 수없이 많다.
그처럼 독창적인 제품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
우리는 그런 성공자 혹은 천재를 부러워하고 존경한다.
다만, 그들은 어딘가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유독 잡스만큼은 신기하게도 친근하게 느껴진다.
왜 그럴까?
그것은 잡스가 해결해온 크고 작은 ‘문제’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문제’ 사이에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다.
세상을 크게 바꾼 카리스마 있는 인물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조직 속에서 다양한 인간관계에 직면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발버둥 쳐온 것이다.
표면만 보면 잡스의 문제해결 방법은 도저히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상식을 벗어난 강경한 행동과 고정관념을 깨는 발상이 많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그 안에 “이봐, 자네는 뭘 위해 일하나?”라는
잡스의 질문과 대답이 항상 울려 퍼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잡스는 왜 그렇게 많은 문제와 부딪쳤고(혹은 스스로 문제를 일으켰고),
더 힘든 ‘가시밭길’을 걷는 해결책을 선택했을까?
그 이유는 진심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 있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을 완성해서 세상을 더 살기 좋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일하면 문제는 억압적인 벽이 아니라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한 계단이 된다.
극복함으로써 사람을 성장시키고 업무의 규모를 확대하며 성과를 배로 늘리는 것,
그것이 바로 ‘문제’이다.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상사나 조직의 탓이라든가,
문제는 사람을 망치는 고통일 뿐이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수동적인 자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래서 보통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고 문제의 싹을 미리 솎아낸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문제는 계속해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문제를 피하거나, 누군가에게 떠넘기거나,
숨기거나, 보고도 못 본 척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를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하고
그 상황에 긍정적으로 대처하면,
수동적으로 대응에 쫓기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새로운 것들이 보일 것이다.
이 책은 잡스가 만난 수많은 문제와 해결의 드라마를 정리한 것이지만,
그의 인생을 요약한 책으로 읽을 수도 있다. ‘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창업해 젊은 나이에 백만장자가 되었지만,
자신이 만든 애플에서 추방당해 ‘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실패자’로 전락했다.
그 후 고난 끝에 픽사의 성공으로 다시 막대한 부를 손에 넣었으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애플로 복귀해…’라고
이어지는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스토리는 우리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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