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경제경영

돈의 함정 - 김영기 지음

삼생지연 2020. 12. 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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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함정

김영기 지음

홍익출판사 / 20107


 

제1부 금융회사의 두 얼굴


당신은 돈에 속고 있다 - 플러스 1%의 덫: 돈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 중에는 일반인에게 낯선 용어가 하나 있다. 바로 ‘쏠림 현상’이라는 것이다. 영어로는 ‘herd behavior’라고 하는데, 더 쉬운 순 우리말로 하면 ‘떼거리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면 남보다 먼저 손에 쥐려고 하는 게 인간의 당연한 본성인데, 하물며 그 대상이 돈이라면 섶을 지고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 것처럼 달려들 것이다. 개개인의 이러한 욕망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게 마련이다. 유사 이래 수많은 경제학자가 천재적인 두뇌로 그러한 욕망을 풀이하는 무수히 많은 등식을 만들어냈지만, 그 이론들은 이런 쏠림 현상 앞에서는 한낱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금융회사들은 바로 여기에 깔린 함정을 파고든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투자의 최첨병인 증권사는 물론이고, 그나마 ‘선(善)’이라는 가면을 가장 많이 쓰고 있는 은행들마저도 ‘이자(수익)’라는 유혹을 통해 돈을 쥔 사람들을 꼬드긴다. 금융회사들은 복잡 미묘한 수학 방정식을 동원해 온갖 기기묘묘한 상품을 만들어내어 단 0.01%의 이자라도 더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유인한다. 일반인들은 물론 경제에 비교적 해박하다는 지식인들조차 단어만 보고는 도무지 개념조차 이해할 수 없는 ‘파생상품’이라는 것들도 실상, 기계(컴퓨터)가 계산해낸 등식을 이용해서 남보다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을 얻으려는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요즘 머리 좋은 사람들이 공부한다는 ‘금융공학’이라는 학문도 결국 기계와 수학의 결합을 통해 돈의 흐름을 알아내고, 이 결과물로 돈이 있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에 돌아다니는 돈도 부동산 등 온갖 자연의 사물을 응용해서 무형의 돈을 창출해내고, 여기에 또 다시 돈을 끌어낸다. 돈이 돈을 만들어내는 형국이다.

2008년 9월, 전 지구인을 비명의 굴레에 빠져들게 했던 미국 금융회사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과 기업들의 줄도산, 이를 기회로 이어진 글로벌 금융위기는 바로 수학과 기계가 합작으로 토해낸 구토의 산물이었다. 그것은 똑똑한 인간들이, 자기가 만든 금융공학이라는 자기 꾀에 제 발등을 찍힌 것과 다름없었다. 하기야 그들을 욕할 것도 없다. 금융회사들은 ‘악의 가면을 쓴 선의 얼굴’로 포장하게 한 것은 바로 한 푼의 이자라도 더 받겠다고 그 속에 일그러진 얼굴로 웅크려 있는 ‘위험’을 간과한 투자자들이니 말이다. 세상에 공짜돈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어버리고 돈의 노예로 전락한 현대인들이 스스로 파놓은 함정, 그것이 바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야박하거나 혹독하거나 - 금융회사들의 야박한 단골 관리 : 단골고객에 대한 우대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장사하는 사람도 충성을 다하는 단골에게는 그만큼 보답을 주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의 자연스러운 이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회사들이 벌이는 머니게임의 규칙은, 단골 과일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 무조건 더 깎아주고 사과 하나라도 더 얹어주는 미덕과는 차원이 아주 다르다. 금융회사들은 그렇게 단순하게 고객을 상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첨단공학으로 무장한 돈의 박사들이기 때문이다. 은행이 단골 고객인 나에게 마냥 잘해 주리라고 믿는다면 당신은 참으로 순박한 고객이요, 은행들이 너무나 반가워할 사람이다.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절대로 선한 존재가 아니고, 천사는 더욱 아니다. 기업이라는 존재가 기본적으로 영리를 추구하듯이 금융회사 역시 돈의 흐름에서 이익을 창출해내는 곳이다. 그게 아니라면 은행들이 어떻게 1년 동안 수조 원의 이익을 만들어내겠는가.

당신은 주거래 고객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거래 은행에 충성을 다하지만, 은행은 당신이 기대하는 것처럼 쉽게 당신을 단골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애인에게 줄기차게 선물을 갖다 바쳐도 조그만 실수 하나에 토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처럼, 은행은 충성스러운 고객에게 다양한 기교를 부려 수시로 배신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오래된 고객이라고 무조건 대우해 주지 않는 것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고 하소연해도 어쩔 수 없다. 금융회사는 자기들에게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지를 보는 것이지 오랜 기간 단골이었다고 해서 마냥 반가워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B은행의 경우, 거래 기간 1년당 주는 점수는 고작 10점이다. 30년 동안 은행에 충성을 바쳐도 고객이 받을 수 있는 점수는 300점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최근 석 달 동안 평균 잔고 기준으로 300만 원의 예금을 넣어둔 고객이 똑같이 300점을 받는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야속하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평생 충성을 다 바쳐 예금한 고객이 더 억울한 일은 대출받은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점수가 유리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예외 없이 대출 규모가 클수록 높은 점수를 준다. 은행의 입장에서 가장 착한 고객은 대출을 받아간 후 꼬박꼬박 이자를 내는 사람들이다. 가령 집을 살 때 1억 원의 주택 담보대출을 받았다면, 이 고객은 주거래 고객 중에서도 중상위 등급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물론 대출을 갚는 순간 재평가 과정에서 그의 등급은 홀랑 날아간다. 고객이야 대출금을 몽땅 갚았으니 그날 밤 벅찬 해방감에 삼겹살 파티라도 하고 싶겠지만, 은행입장에서는 이제 소용 가치가 없는 고객이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은행이 주거래 고객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또 하나는, 주거래 고객의 등급 간에 주는 혜택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S은행의 경우, 프리미엄 고객에게 무려 23가지의 혜택을 주는 반면에 주거래 고객 중에서도 가장 낮은 클래식 고객에게는 외환 관련 부분을 제외하면 이체 수수료와 인터넷뱅킹, 자기앞수표 발행 등 불과 3가지 혜택밖에 없다. 바로 위 등급의 베스트 고객에게조차 추가로 주는 혜택은 2~3가지에 머문다.

이런 사실을 과연 일반인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마도 은행을 찾는 대다수의 사람은 자신이 주거래 고객이 등급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마냥 뿌듯해할 것이다. 이름부터가 클래식이니 베스트니 참으로 휘황찬란하다. 혜택은 그만두고라도 자신이 은행으로부터 그런 이름을 부여받는 것 자체에서 커다란 행복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나마 자신이 가진 등급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 사람조차도 매우 드물다는 사실이다. 화려한 수식어를 붙인 등급 속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다는 만족감에 젖어 있을 뿐이다. 은행은 바로 고객들의 이런 점을 역이용한다.


보험의 유혹, 보험의 덫 - 보험은 산타클로스가 아니다 : 유명 대기업에 10년째 다니고 있는 H씨의 경우를 보자. 그는 최근 20년 납에 80세 보장이고 보험료가 6만 원인 100% 만기 환급형 보험에 가입했다. 평소 보험 상품을 싫어했지만, 그래도 하나쯤은 드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권고가 있던 데다가 만기에 자신이 낸 돈을 돌려준다고 하기에 선뜻 응했다. H씨는 보험에 가입하면서 나름대로 계산을 해보았다, 20년간 6만 원씩 보험료를 냈으니 1,444만 원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물가 오름세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 정도면 푼돈을 모은 것치고는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그의 셈법은 틀렸다. 만기 환급형은 기본적으로 가입자가 보험료를 내야 할 때 보험료의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를 따져봐야 한다. H씨가 내는 6만 원 가운데 보장성 보험료와 기본 보험료, 적립 보험료 등 보험료 구성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상품은 기본 보험료 16,000원에 적립 보험료가 4,000원, 특약 보험료를 포함한 보장성 보험료가 4만 원으로 되어 있었다. 불행하게도 그가 낸 보장성 보험료는 만기 환급 시에 돌려받을 수가 없다. 보장성 보험료는 말 그대로 보장을 위해 구성된 보험료여서 위험 보장 기간이 끝나면 소멸하기 때문이다. 결국 H씨는 기본 보험료와 적립 보험료에 대해서만 만기 환급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통합보험과 같은 실손 의료보험은 20년 동안 보험료를 납입한 후에도 5년 납 자동갱신(상해 입원, 통원·질병입원, 통원)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80세까지 더 내야 하는데, 이때 쌓이는 적립보험료는 보험료 상승이 없다면 80세 보장 만기 이후에 돌려받을 수 있다. 다만 갱신 때마다 보험료 상승이 불가피해 갱신 보험료는 적립 보험료에서 대체 납입되는 게 일반적이다. 결국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실제로 만기 환급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금액은 기본 보험료에 불과하다. 결국 H씨의 경우 만기 환급금으로 돌려받는 금액이 불과 384만 원에 그친다는 사실이다.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선물처럼 주는 돈에도 함정이 있다. 만기 환급금에서 발생하는 것인데, 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은 장수 축하금이나 생활보장금 등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납입 만기 이후 보장 기간 사이에 지급하는 돈이다. 웬 공돈을 주느냐고 보험사에 꾸벅 절이라도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되도록 안 받고 안 찾는 게 좋다. 보험사가 별도로 주는 돈이 아니라 만기 환급금에서 받을 돈을 선 지급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사망 보험금에서 생활비 등을 선 지급하거나 CI(치명적 질병) 보험 등에서 치명적인 질병에 걸렸다면 해당 질병 치료를 위해 보험금을 선 지급하는 상품들도 나오고 있다. 이 경우에도 나중에 사망 보험금 등을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이 줄어든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모든 금융 상품이 그렇지만, 만사에 공짜는 없다. 하물며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 할아버지가 몰래 선물을 가져다주듯이 금융회사가 자신도 모르게 공짜 돈을 안겨 줄 것으로 생각한다면 참으로 순진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다.


제2부 세금, 그것을 알고 싶다


세금은 실루엣을 생각나게 한다. 불빛에 비친 물체의 그림자처럼, 세금은 형체를 보여줄 듯 하면서도 교묘하게 자신의 실체를 숨기고 사람들의 삶 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 실루엣이란 단어 자체가 세금과 연관된 것이 흥미롭다. 

18세기 초중반의 프랑스 집권자는 루이 15세였다. 나라의 재정 상태가 악화되자 루이 15세는 재정난 해결을 위해 에티엔 드 실루엣이란 사람을 재무장관으로 기용했다. 실루엣은 취임하자마자 특권층에 화살을 겨누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세력의 저항은 완강하기만 했다. 결국 그는 세금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에 과세할 방안을 찾도록 지시했는데, 여기엔 사람이 숨 쉬는 것에까지 과세하는 방안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이른바 ‘공기세’라 불리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실루엣 장관은 극단적인 내핍 생활을 강조하고 몸소 실천했다. 한 예가 초상화를 그릴 때는 검은색으로만 그려 물감을 절약하도록 한 것이었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세금에 시달린 국민은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가렴주구의 뒤끝이 좋지 않기는 동서고금이 따로 없다. 나라의 경제를 살려줄 수호천사를 기대했던 국민은 그의 징세 정책을 지탄했고, 실루엣은 결국 재임 8개월 만에 물러났다. 훗날 사람들은 이내 국민의 기억에서 멀어져간 그의 이름에 ‘지나가는 그림자’라는 뜻을 덧보태 ‘실루엣’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세금은 이렇게 예나 지금이나 논쟁의 한복판에 있다. 논란이 거센 만큼 세금처럼 대단한 것도 없다. 인류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제도가 잉태하고 싹을 틔워왔지만, 세금만큼 엄청난 제도적 창조물도 없을 것이다. 세금을 통해 나라의 줄기가 점점 커진다. 줄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양분을 통해 나무 잎사귀가 자라고 또 다른 나무들이 호흡하듯이, 세금은 나라를 구성하는 일반 국민의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한다. 세금은 이처럼 고마운 존재이지만 국가에 귀속된 기업과 개인 중 세금이라는 존재에 대해 마음 깊이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감사는커녕 세금을 놓고 경제 주체의 삼각 축이라는 국가, 기업, 개인은 끊임없이 게임을 한다. 국가는 기업과 개인을 향해 매일같이 새로운 세금의 유형을 만들어내고 기업과 개인은 국가라는 거대한 괴물이 던지는 세금 폭탄을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공간을 찾아 헤맨다. 

 

세금이 당신의 목을 죄고 있다 - 당신이 하루에 내는 세금: 대한민국 평범한 직장인이 하루에 내는 세금을 알게 되면 아마도 현기증이 나는 걸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올해로 마흔 줄에 들어선 G씨의 경우를 보자.

소규모 금융회사에 다니는 그의 연봉은 5,000만 원을 조금 넘는다. 같은 직종에 다니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적은 연봉이지만, 여우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자녀 둘을 두고 있어서 행복하다. 그의 아침은 여느 직장인과 같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전날 마신 폭탄주로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옆방에서 자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금세 얼굴에 화색이 돈다. 그리고 이내 출근 준비를 하기 위해 목욕탕에 들어간다. 우선 화장실에서 부스스한 눈으로 조간신문의 뉴스를 들여다본다. 잠시 후 칫솔에 치약을 올려 이를 닦고, 간단하게 샤워를 한 뒤 옷을 갈아입기까지 30분 정도 걸린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출근 준비를 하는 사이에 벌써 집안 구석구석에 세균처럼 붙어 있는 세금을 왕창 내고 말았다. 두루마리 화장지부터가 세금의 시작이다. 이날은 전날 밤의 숙취 탓에 다른 날에 비해 많이 썼다. 그리고 이를 닦으면서 쓴 칫솔과 치약, 샤워를 하면서 쓴 세숫비누와 샴푸까지…. 

G씨는 이렇게 일어난 지 30분도 안 되어 벌써 세금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한결같이 10%씩의 부가가치세가 붙어 있으니 말이다. 이어서 부인이 차려준 아침 밥상. 시골에서 부모님이 반찬을 보내주시지만, 포장된 김과 몇몇 반찬에는 역시 세금이 양념처럼 붙어 있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지하주차장에 들어선 순간에도 세금은 줄줄 샌다. 얼마 전 큰맘 먹고 산 은색 승용차에 올라탄 순간, 그는 ‘세금 먹는 하마’와 함께하게 된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차를 한 대 굴리는 것은 말 그대로 어린 아이 한 명을 키우는 것과 같다. 그는 당장 자동차세로 하루 평균 1,500원이 넘는 세금을 낸다. 하물며 차를 놓고 지하철을 타고 다닐 때조차 꼬박꼬박 세금은 내야 한다. 그뿐인가. 자동차를 살 때 낸 등록세(취득액의 5%), 취득세(2%), 심지어 취득액의 20%에 이르는 도시철도공채까지, 게다가 자동차에 여지없이 붙는 개별소비세(옛 특별소비세), 그리고 부가가치세와 교육세도 따라 붙는다. 

자동차를 타고 회사까지 가는 길에도 세금은 어김없이 따라붙는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15km 정도고, 왕복으로 따지면 30km이다. 그가 하루에 쓰는 휘발유는 2  가 훨씬 넘는다. 이렇게 해서 휘발유에만 하루에 2,500원 이상을 세금으로 바친다. 휘발유에 붙는 세금은 자동차 저리가라다! 우리나라에서 기름은 말 그대로 세금덩어리다. 기름에 대한 세금은 ‘유류세’라 불리는데, 여기에는 교통세, 주행세, 교육세, 부가가치세 등 네 가지의 세금이 붙는다. 정액제인 교통세와 주행세, 교육세(교통세의15%), 그리고 주행세(교통세의 26%)가 그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이들 세금과 정유사의 세전 평균 판매가를 모두 더한 금액의 10%가 부가세로 매겨진다. 유류세는 우리나라 세수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한다. 국세에서 차지하는 비중만 10%를 넘으니 말이다. 유가가 폭등할 때 그토록 유류세를 내리라고 해도 정부가 버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찌 되었든 어렵게 도착한 회사. G씨는 한숨 돌리기 위해 커피 한 잔에 담배를 한 대 물었다.  2,500원짜리 담배 한 갑에 붙는 담배소비세 641원, 지방교육세(담배 소비세의 50%) 320원, 그리고 부가가치세 227원, 국민건강증진부담금 345원 등 1,534원이 세금이다. 담뱃값의 61.4%를 세금으로 바치고 있는 것이다. 담배 한 모금 피울 때마다 피 같은 돈을 세금으로 공중에 뿜어대는 셈이다. 오전 일과 시간을 보낸 뒤 해장을 하기 위해 찾은 북엇국집. 한 그릇에 5,000원을 냈는데 여기서도 영락없이 455원의 부가세를 내고 말았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이메일을 열자 월급명세서가 보인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봉급쟁이의 월급봉투를 유리알이라고 했던가? 그의 명세표에는 온통 세금 덩어리이다. 국민연금이야 은퇴 후에 받는다고 치더라도 온갖 세금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평달에는 갑근세 158,200원에 주민세 15,820원, 의료보험 118,140원, 국민연금 162,000원, 고용보험료 14,090원, 노인장기요양보험 7,730원까지 붙어 있다. G씨가 이렇게 해서 지난해에 낸 세금은 국민연금, 의료보험, 고용보험 등을 제외하고도 소득세3,418000원, 주민세 341,900원(연말 환급 전) 등 3,759,800원이었다. 하루로 따지면 각종 연금과 의료보험 등을 제외하더라도 10,300원꼴을 세금으로 바친 셈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세금 먹는 하마가 또 다른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다. 하루 일과 후 그를 기다리는 술이다. 사실 술은 정말 세금덩어리이다. 담배가 세금을 피우는 것이라면, 술은 세금을 마시는 것이다.

술은 공장 출고가에 세율을 곱해 세금을 매기는데 맥주와 소주, 위스키는 모두 세율이 72%이다. 출고 원가에 주류세, 교육세(21,6%), 부가세를 합치면 출고 원가의 약 1.13배에 이르는 세금이 붙는다. 소주에 맥주, 그리고 섞어서 폭탄주까지, 그는 이날 세금으로 줄잡아 10,000원 이상을 바쳤다. 

자정이 다 되어 집에 돌아온 그는 자신이 몇 년 전 어렵게 장만한 아파트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행복을 가져다주는 그의 집도 세금을 잡아먹기는 마찬가지이다. 그가 집을 사면서 낸 세금은 취득세와 등록세, 그리고 여기에 따라붙는 다양한 세금들을 포함해 8,700,000원에 이른다. 그가 낸 등록세에는 지방교육세와 농어촌특별세가 ‘부가세’라는 이름으로 꼭 따라 붙는다. 농촌 출신이지만, 서울에 집을 사면서 농어촌 특별세를 왜 추가로 내야 하는지는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뿐인가. 1년에 두 번씩 꼬박꼬박 재산세가 나온다. 공시지가라는 괴물이 해마다 오르는 통에 정확한 통계가 가능하지는 않지만, 그가 이 집을 5년 동안 갖고 있다고 가정할 때 그가 집 때문에 내는 세금은 줄잡아 매일 10,000원 안팎에 이른다.

여기까지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수많은 세금들에 포위되어 있다. 당장 그가 쓰는 휴대전화기 요금에도 여지없이 세금은 따라 붙는다. 지난달 46,000원의 이용료를 낸 휴대전화 요금에 따라붙은 부가세는 4,600원이었다. 또한 집 전화에도 세금이 따라 붙는다. 아내의 휴대전화기에도, 아들의 휴대전화기에도, 좌우지간 전화라는 이름이 들어 있는 것에는 모조리 부가가치세가 붙어 있다. 여기에 집안을 가득 채운 각종 전자제품을 살 때 따라 붙었던 어마어마한 개별소비세까지 포함한다면 가히 ‘세금이 당신의 목을 죄고 있다’라고 표현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우리네 서민들이 하루를 살아가는 일은 세금과 함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3부 소비 천국의 악마들


사람이 무엇인가를 소비하는 것은 뇌에서 나오는 소유 욕구와 돈이라는 현실적인 재정 문제가 씨줄과 날줄로 교직된 개념이다. 욕구만 있되 돈이 없다면 그것은 강탈이요, 욕구는 없는데 돈이 있다고 취득하는 것은 무의미한 낭비일 뿐이다. 그런데 인간은 여기서 기묘한 행동의 퍼즐을 다시 한 번 만들어낸다. 상대방의 뇌에서 소비의 탐욕을 이끌어내고자 끊임없이 유혹하고, 상대방의 지갑을 열 수 있는 온갖 방법을 고안해내는 것이다.

현대사회에 들어오면서 인간과 인간, 생산자와 소비자, 유통업자와 소비자 등 직접적인 연관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소비의 퍼즐을 새로운 각도에서 풀어주고, 소비의 범주를 무한한 영역까지 늘려주는 물건이 탄생했다. 금융이라는 자본주의의 결정체가 소비와 결합한 물건, 바로 ‘신용카드’이다. 인간의 지갑을 열 방법을 찾기 위해 부심하던 생산자는 새로운 부가가치의 창출을 위해 고민하던 금융이라는 객체와 의기투합해서 신용카드라는 전대미문의 물건을 만들어낸 것이다.


지갑 속의 카드 마술사 - 카드 마케팅의 은밀한 유혹 : 국어사전에 등장하는 신용카드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대금 지급을 은행이 보증해 일정 기간 뒤에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즉 신용판매제도에 이용되는 카드를 말한다. 그 기본바탕에는 이름처럼 ‘신용’이라는 말이 뼈대를 이룬다. 그렇다면 신용카드는 많은 사람에게 정직함과 신뢰를 갖게 하는 도구일까. 불행하게도 현실에 등장하는 모습은 그렇지 못하다. 카드회사들의 장삿속을 들여다보면 그들을 마냥 정직하다고 하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카드회사들이 내보내는 각종 광고를 보면 돈을 쓸수록 많은 선물을 받은 것 같은 착각을 하기 십상이다. 카드를 많이 사용할수록 ‘착한 소비자’로 대접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카드회사가 주는 온갖 부가서비스와 포인트 혜택을 보면 카드란 많이 쓸수록 득이 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여기에 정부까지 나서서 카드를 쓴 만큼 연말정산에서 소득공제를 해주고 있으니 ‘카드사용을 권하는 사회’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하지만 금융 상품들이 정교한 기술을 통해 이윤을 창출해내듯이, 신용카드 또한 카드회사가 고안해내는 기묘한 방정식으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도록 유도한다. 그들의 영업 전략을 찬찬히 뜯어보면 쓴웃음이 나오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의 말을 통해 대형 A카드회사의 영업 행태를 보자.

이 카드회사가 내놓을 이른바 ‘데이 마케팅’은 한때 상당한 고객몰이를 했다. 이 카드회사가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택한 방법은 요일에 따라 기름값과 레스토랑, 책값 할인까지 다양한 할인 혜택을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소비자들은 쉽게 알 수 없는 덫이 깔려 있다. 당장 카드회사는 요일별 할인 혜택을 신기할 정도로 잘 짜맞춰서 구성했다. 카드회사가 지정한 요일별 혜택을 이용하려면 자신의 생활패턴을 그들이 짜놓은 마케팅 퍼즐 속에 정확히 집어넣어야 한다. 책은 월요일에 사야 하고, 영화는 목요일에 봐야 하며, 패밀리 레스토랑은 가서 외식을 하려면 화요일에 맞춰야 하는 식이다. 이렇게 생활패턴을 맞추기도 힘들지만, 더욱 흥미로운 점은 요일과 그에 맞춘 혜택이 이상하게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카드회사가 내놓은 요일별 혜택을 대다수 사람의 삶의 패턴과 비교하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먼저 책을 살펴보자. 대다수 사람은 금요일이나 주말을 이용해서 서점에 간다. 월요병이란 말이 있듯이 많은 사람들은 휴일을 쉬고 나서는 피로증후군을 느낀다. 따라서 월요일 근무를 하고 나면 일찍 들어가서 쉬든지, 직장 동료끼리 술 한 잔을 곁들이고 싶어 한다. 머리도 아픈데 월요일부터 서점을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술 마시는 날은 목요일로 맞추는 사람은 많아도 할인 혜택을 받으려고 목요일에 영화를 보러 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결국 이를 뒤집어 보면, 이는 모두 카드회사들이 만들어낸 기묘한 방정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들은 사람들의 요일별 구매 패턴을 꼼꼼히 조사하고 이러한 퍼즐을 구성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종류를 해당 요일에 맞추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 궁금할 정도이다. 자신들이 내미는 요일별 혜택을 사람들이 해당 활동을 가장 많이 하는 요일에 제대로 맞춘다면 득이 될 게 없다는 걸 아는 것이다. 교묘하게 소비의 혜택을 최소화해서 소비자들의 혜택 이용도를 줄이는 전략을 구사하는 셈이다.

카드회사들이 내놓는 혜택의 할인율에도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카드회사가 내건 할인율이 15%라고 가정해보자. 일단 할인받을 수 있는 이용횟수엔 제한이 없지만, 카드회사들은 다음 단계에서 함정을 파놓았다. 최대 할인 금액에 상한선을 설정해놓은 것이다. 회당 몇 천 원, 또는 최대 몇 만 원 등은 최고 할인액을 정해놓는다. 결국 소비자들이 할인받을 수 있는 한도는 건당 15%가 아니라 평균 몇 천 원 정도에 그친다는 결론이 나온다. 결국 카드회사들이 만드는 마케팅 기술을 제대로 이용하는 것은 웬만한 머리를 갖지 않고서는 힘들다는 결론이 나온다. 소비자들에게 치밀한 소비행동이 요구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카드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과연 그럴까? 카드라는 물건은 기본적으로 소비행동에서 사용이 최대한 쉽도록 고안된 것이다. ‘긁는 데’ 익숙한 소비자들에게 정교한 소비행동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다. 카드회사들 말로는 자기네가 선의로 고객을 위해 다양한 유인과 혜택을 부여한다고 하지만 그 대부분은 어쩌면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칠 수 있다. 그들이 깔아놓은 덫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소비자 스스로가 똑똑해지는 수밖에 없다.


제4부 정부라는 이름의 거대한 금융회사


정부는 한 나라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세 바퀴 수레의 한 축이다. 기업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면 가계는 이를 소비한다. 이른바 ‘생산물 시장’이다. 소비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가계와 개인은 기업에 노동과 토지, 자본을 제공한다. 기업은 생산을 위해 그 요소들을 이용하는 대가로 개인에게 임금과 지대, 그리고 이자를 지급한다. 정부는 개인과 기업에 공공의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고 직접 나서서 사업을 유치하는 등 공적인 생산활동을 하게 된다. 시장에서 발생하는 독과점을 막는 한편, 하나의 경제 주체가 다른 주체에게 가하는 폐해를 차단하기도 한다. 정부는 대신 그 대가로 세금을 거둬들인다.

2008년 전 세계를 공황 상태로 몰고 갔던 글로벌 금융위기를 보면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드러난다. 오랫동안 이어진 시장경제 속에서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해 왔지만, 금융위기는 시장을 마냥 자율 구조에만 놓아서는 안 되며, 때에 따라서는 정부의 개입이 필요함을 보여줬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이다. 국가의 개입은 시장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그 자체를 목적으로 생성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대 국가는 시장의 자율적 작동에 관계없이 어느 사이엔가 개입에 익숙해져 있다. 시장은 너무나 취약해서 정부가 나서 비틀린 구조를 적절하게 통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할 만큼 탐욕으로 물들어있고, 실업과 빈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손이 필요하다는 것이 개입 찬성론자의 주장이다.

그것만이 진정한 이유일까? 한편으론 정부 스스로 끊임없이 개입의 근거를 찾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물 같은 규제 장치를 만들고, 그 속에서 관료들은 자기들의 존립 근거를 만들어낸다. 관료들은 규제와 개입 속에서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이를 통해 시장을 통제하는 힘을 갖게 된다. 정부와  관료들은 개입의 유혹에 항상 빠져들고, 그 개입 속에는 국민의 복리를 추구한다는 대의명분을 내걸지만 때로는 국민이 인식하지 못하는 절묘한 함정을 숨겨놓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은 기본적으로 차입, 즉 빚이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 돌아가기 마련이다. 인플레가 일어날수록 빚은 줄어들고 자산가치도 줄어드는 게 경제의 기본 원리이다. 이것이 바로 인플레의 마법이다. 빚은 그대로인데 물가가 올라가면 당연히 빚의 가치는 줄어든다. 정부는 바로 인플레이션의 이런 구조를 시기 적절하게 이용한다. 현대사회에서 국가의 역할이 커지고, 이를 위한 도구(재정)가 어느 때보다 많이 필요한 상황에서 정부는 빚을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플레라는 이름의 독배 - 참을 수 없는 인플레의 유혹 : 아프리카 남부의 최빈국 짐바브웨. 2006년 이곳의 수도 하라레에서 휴지 한 통을 사려면 145,750 짐바브웨달러(미화 약 69센트)가 필요했다. 살인적인 인플레가 이어지면서 돈을 주고 휴지를 사느니 500달러 지폐로 용변을 처리하는 게 더 싸게 먹힌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살인적인 물가 상승률에 공립학교의 학비와 공공서비스 요금은 도시 근로자의 1년 수입을 훌쩍 넘었다. 돈을 가진 사람들은 연리 4~10%의 은행에 돈을 맡기는 대신 옥수수나 설탕 등 현물을 확보하느라고 아귀다툼을 벌였다. 

인플레는 통제할 수 없는 또 다른 인플레를 낳았다. 불과 2년 후, 짐바브웨 정부는 물가가 220만%까지 올라가자 1,000억(Z$)짜리 지폐를 발행하면서 경제를 돌아가게 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1,000억 짐바브웨달러 한 장으로도 빵 두 덩이, 계란 3개밖에 사지 못했고 술을 한 잔 마시거나 물건 좀 제대로 사려면 돈을 자루째 들고 다녀도 모자랐다. 전 국민이 갑자기 억만장자가 되었다고나 할까.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을까. 이유는 어찌 보면 단순했다. 25년 넘게 독재를 휘둘러온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측근들로 내각을 구성하고 지지자들과 잠재적인 정적을 매수하기 위해 마구 돈을 찍어냈던 것이다. 돈을 마구 찍어 내다 보니 돈의 가치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조장한 셈이다.

짐바브웨의 사례는 역설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부리는 마술이 어떤 것인지를 쉽게 보여준다. 당신이 짐바브웨달러를 갖고 있었다고 생각해보자. 아마 당신은 하룻밤 자고 일어날 때마다 돈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현상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하루 전에 배추 한 포기를 1,000원에 샀는데, 다음 날은 1,000원을 갖고 반 포기도 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당신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다음 날 같은 돈으로 절반밖에 물건을 살 수 없다면 무슨 악몽을 꾼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나마 물건을 사는 입장은 덜하다. 돈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이자를 받지 않고 돈을 빌려줬다고 치자. 아마 한 달 뒤 당신이 돌려받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을 보면 기겁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돈을 빌린 사람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통쾌함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돈을 빌린 사람은 원금을 하나도 갚지 않고도 빚이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경제’라는 행위를 하면서 살아간다. 

현실의 환경에 적응하면서 

나름대로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통해 

경제적으로 살아가려 노력한다. 

그런 인간을 ‘호모 이코노미쿠스’라고 한다. 

여기에는 인간이 돈에 대해서만큼은 

이성적이면서도 냉철한 판단을 

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가 사는 현실은 

그렇게 완벽한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을 

만큼 환상적이지 못하다. 

우리 스스로의 판단에 오류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변 환경이 끊임없이 우리를 시험하고 괴롭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생존 가치를 지키기 위해 

줄기차게 ‘이기적 유전자’를 뿌리고, 

이를 통해 돈의 흐름과 충돌한다. 

그 유전자는 때로는 소비에서 때로는 금융 거래에서, 

로를 속이고 드잡이하는 행태로 이어진다. 

비단 개인뿐만 아니라 

금융회사와 제조·유통업체, 

심지어 정부마저도 자신의 이익에 집착하면서 

합법적이고도 교묘한 형태로 

고객을 유혹하고 소비자의 마음을 흔든다. 

런 행위들이 구성하는 연쇄 퍼즐을 보고 있노라면, 

모 이코노미쿠스가 

아니라 

어느새 주술을 부리는 ‘호모 마지쿠스’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인간과 집단이 행하는 

이런 이기심을 무조건 욕할 수는 없다. 

그것조차도 결국에는 시장을 구성하고, 

우리의 삶을 교직하는 하나의 물줄기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작은 소망이 있다면, 

어느 학자의 표현대로 

우리네 삶이 ‘아름다운 이기심이 꽃피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것이다. 

은행 창구를 찾는 고객을 티끌 하나 없는 

소박한 마음으로 대하고, 

대형마트를 찾는 소비자들과 정부에 

아무런 저항 없이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우리네 평범한 국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사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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