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칼세이건 코스모스

칼세이건의 - 코스모스 톺아보기<35~47까지 필사 1회차>

삼생지연 2020. 10. 30. 15:23
728x90



코스모스 3회차 미션.pdf



코스모스 톺아보기 <35~47>필사1회자


1.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맨 처음에 창조된 사람들은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 “밤의 마법사”, “야만인”, “어둠의 마법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들은 지혜를 부여받았기에, 세상의 모든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이들이 눈을 떠 세상을 둘러보자, 그 즉시 모든 것을 인지하였으며 거대한 천구와 땅의 둥그런 얼굴도 모두 알아보았다. (그러자 창조주께서 입을 여셨다.) “저들은 전지하구나, 이제 저들을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저들의 눈길이 가까운 곳에만 이르게끔 하고, 땅의 얼굴도 조금씩밖에 보지 못하게 하리라! 저들은 우리 손에서 나온 한갓 피조물이 아니던가? 저들마저 신이 된대서야 어디 말이 되겠는가?”- 퀴체 마야의 선전[포폴 부호]


네가 넓은 땅 위를 구석구석 살펴 알아 보지 못한 것이 없거든, 어서 말해 보아라. 빛의 전당으로 가는 길이 어니냐? 어둠이 도사리고 있는 곳은 어디냐? - [욥기]


나의 위엄을 찾을 곳은 우주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 사고의 제어 기제에서 찾아져야 합니다. 내가 세상들을 차지했다면 더 가질 것이 없습니다. 우주는 공간을 온통 둘러싸서, 나를 원자 알갱이 하나 삼키듯이 먹어 버립니다. 나는 생각함으로써 세상을 이해합니다. - 블레즈 파스칼, [팡세]


앎은 한정되어 있지만 무지에는 끝이 없다. 지성에 관한 한 우리는 설명이 불가능한, 끝없는 무지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에 불과하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그 섬을 조금씩이라도 넓혀 나가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다 - 토머스 헉슬리, 1887년


코스모스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코스모스를 정관(靜觀)하노라면 깊은 울림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며 아득히 높은 데서 어렴풋한 기억의 심연으로 떨어지는 듯한, 아주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고는 한다. 코스모스를 정관한다는 것이 미지 중 미지의 세계와 마주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울림, 그 느낌, 그 감정이야말로 인간이라면 그 누구나 하게 되는 당연한 반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류는 영원 무한의 시공간에 파묻힌 하나의 점, 지구를 보금자리 삼아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주제에 코스모스의 크기와 나이을 헤아리고자 한다는 것은 인류의 이해 수준을 훌쩍 뛰어 넘는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사는, 우주적 입장과 관점에서 바라볼 때 중요키는 커녕 지극히 하찮고 자질구레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인류는 아직 젊고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으로 충만하며 용기 또한 대단해서 '될 성 싶은 떡잎'임에 틀림이 없는 특별한 생물 종이다. 인류가 최근 수천 년 동안 코스모스에서의 자신의 위상과, 코스모스에 관하여 이룩한 발견의 폭과 인식의 깊이는 예상 밖의 놀라움을 인류 자신에게 가져다주었다. 우주 탐험,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가슴은 설렌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는다. 진화는 인류로 하여금 삼라만상에 대하여 의문을 품도록 유전자 속에 프로그램을 잘 짜놓았다. 그러므로 안다는 것은 사람에게 기쁨이자 생존의 도구이다. 인류라는 존재는 코스모스라는 찬란한 아침 하늘에 떠다니는 한 점 티끌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인류의 미래는 우리가 오늘 코스모스를 얼마나 잘 이해하는가에 크게 좌우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가 이제 떠나려는 탐험에는 회의의 정신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에만 의존한다면 존재하지도 않는 세계로 빠져 버리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앞에 놓인 탐험은 상상력이 없이는 단 한 발짝도 뗄 수 없는 여정의 연속일 것이다. 회의의 정신은 공상과 실제를 분간할 줄 알게 하여 억측의 실현성 여부를 검증해 준다. 코스모스는 그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보물 창고로서 그 우아한 실제, 절묘한 상관관계 그리고 기묘한 작동 원리를 그 안에 모두 품고 있다,

  코스모스를 거대한 바다라고 생각한다면 지구의 표면은 곧 바닷가에 해당한다. '우주라는 바다'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거의 대부분 우리가 이 바닷가에 서서 스스로 보고 배워서 알아낸 것이다. 직접 바닷물 속으로 들어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것은 겨우 발가락을 적시는 수준이었다. 아니, 기껏해야 발목을 물에 적셨다고나 할까. 그 물은 시원해서 좋다, 그리고 저 바다는 우리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우리가 바로 이 바다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가슴 저 깊숙한 곳으로부터 알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근원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간절하게 품는 것이다. 비록 우리의 이러한 갈망이 미지의 신들의 심기를 불편케 할지언정 그것을 불경스럽다고만 탓하지 말자.

  코스모스는 너무 거대하여 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길이 단위인 미터나 마일로는 도무지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미터나 마일은 지상에서 쓰기에 편리하도록 고안된 단위일 뿐이다. 천문학에서는 그 대신 빛의 빠른 속도를 이용하여 거리를 잰다. 빛은 1초에 약 18만 6000마일 또는 거의 30만 킬로미터, 즉 지구 7바퀴를 돈다. 빛은 태양에서 지구까지 8분이면 온다. 그러므로 태양은 지구에서 약 8광분만큼 떨어져 있다. 빛은 1년이면 10조 킬로미터, 약 6조 마일을 간다. 천문학자들은 빛이 1년 동안 지나간 거리를 하나의 단위로 삼아 1광년이라고 부른다. 광년은 시간을 재는 단위가 아니라 거리를, 그것도 엄청나게 먼 거리를 재는 단위이다.

  지구는 우주에서 결코 유일무이한 장소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아주 전형적인 곳은 더더욱 아니다. 행성이나 별이나 은하를 전형적인 곳이라 할 수 없는 까닭은 코스모스의 대부분이 텅 빈 공간이기 때문이다. 코스모스에서 일반적인 곳이라 할 만한 곳은 저 광대하고 냉랭하고 어디로 가나 텅 비어 있으며 끝없는 밤으로 채워진 은하 사이의 공간이다. 그 공간은 참으로 괴이하고 외로운 곳이라서 그곳에 있는 행성과 별과 은하 들이 가슴 시리도록 귀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코스모스의 어느 한구석을 무작위로 찍는다고 했을 때 그곳이 운 좋게 행성 바로 위나 근처일 확률은 10-33 이다. 우리가 살면서 일어날 확률이 그렇게 낮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본다면 우리는 그 일에 매혹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참으로 고귀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