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칼세이건 코스모스

칼세이건의 - 코스모스 톺아보기<7~17까지 필사 2회차>

삼생지연 2020. 10. 2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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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톺아보기<7~17까지 필사 2회차>



칼은 2001년 9월 11일의 사건이 일어나기 5년전에 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 전부터 그는, 중동의 메카에서건 아메리카 대륙의 바이블 벨트에서건, 점차 세를 얻어 가는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활동을 우리의 가치 체계에 대한 중차대한 위협 요소로 간주하고 있었다. 이러한 위협은 우리와 가치관을 달리하는 외부, 또는 우리와 가치관을 공유하는 내부로부터 쉽게 올 수 있다. 근본주의자들을 지배하는 사고의 뿌리가 무엇인지 간파한 칼은, 수면 위로 은근슬쩍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이 해악을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경합하고 있는 가정들의 경중을 가늠하고 그들의 진위를 판단할 수 있는 과학의 힘이었다. 그래서 그는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과학, 암흑의 시대를 비추는 촛불]을 썼다. 골수 이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중세적 고문”의 고통과 싸우면서도 그는 이 책을 집필할 힘을 짜냈던 것이다. 이 책은 병마와 싸우는 삶의 마지막 기간 중에 그가 쓰고자 했던 두 책 중의 하나였다. 의사는, 골수 이식이 진행되는 몇 개월 사이에 책을 두 권이라도 읽는 환자를 본 적이 없다는 말을 했다. 하물며 집필은 이야기해서 더 무엇하겠는가?


  칼은 평소에, 첨단 과학 기술에 뿌리를 둔 민주주의 사회에서 한 사람이 건전한 시민으로 성숙하는 데에는 효율적인 과학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곤 했다. 그러므로 나는, 칼 세이건 재단이 칼 세이건 아카데미를 운영하기로 한 결정에 칼이 매우 흡족해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CSA는 플로리다 주 힐스보로 카운티의 탬파 지역 중등학생들이 현대 과학이 찾아낸 자연의 경이로움을 직접 경험할 수 있게 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계획은 우리가 플로리다 주의 휴머니스트 연맹과 이 지방 침례교회들과 함께 이루어낸 놀라운 협력의 결과이다. 이 세 기구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상을 가진 사람들의 조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의 목적을 위하여 함께 일했다. 이 협력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바람직한 세상의 실현 가능성을 예시한다고 할 수 있다. 두번째 해인 금년에는 모두78명의 학생들이 참여하가 되는데, 이들은 미국에서 가장 혜택 받지 못한 낙후 지역의 어린이들이다. 나는 행성 학회 회원들 중에서 과학적 사고의 가치를 높이 여기고, 사회 문제에 대해 건전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며, 칼의 이상에 동조하는 이라면 누구든지 칼 세이건 재단의 문을 두드려 주기 바란다.


  바로 지난 여름이었다. 전 부통령 앨고어가 만든 지구 온난화에 관한 영화[불편한 진실]을 보면서 나는, 칼이 지금 살아 있다면 하버드에서 한때 가르친 적이 있고, 또 오랫동안 친구였던 앨고어를 무척 자랑스럽게 여겼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영화에서 앨은, 자신의 사고 체계에 남긴 칼의 영향을 수차례 피력했다. 칼의 저서 [창백한 푸른 점]의 화두를 자신의 기억에서 다시 떠올림으로써 그는 이 영화가 줄 수 있는 영성적 충격의 근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젠 꽤나 오랜 시간이 흘러 버린 먼 과거의 추억이다. 그때 우리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갖고, 과학적으로 엄밀하며 설득력 또한 출중한 논지들을 개발하여, 지상의 모든 민족들을 행성 지구의 관점에서 하나로 묶어야 하고. 그리하여 무감각 상태에 빠진 인류를 그 깊은 잠에서 깨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구인들의 통일과 무감각에서의 각성만이 생명의 원천인 이 행성 지구를 환경 재앙의 위험에서 건져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가던 날, 칼이 들고 갔던 서류 가방은, 자물쇠가 채원진 채 1996년 12월의 상태 그래로 남아 있었다. 그 가방은 하나의 타임캡슐이었다. 그즈음 그가 하던 일과 칼에게 허락된 마지막 며칠의 유예에 대한 그의 생각이 그 가방 안에 간직돼 있었다. 나는 그 가방을 집으로 가져왔지만, 어쩐지 내용물을 들쳐볼 용기가 나지를 않았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자, 바로 지금이 가방을 열고 안의 내용물을 들여다볼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듯한 숫자 조합을 몇가지 시도해 보았으나 모두 허사였다. 그런데 내 생일을 숫자로 조합해 넣자, 황금빛의 빗장이 찰각 소리를 내며 경쾌하게 열렸다. 우리 가족의 사진이 몇 장 들어 있었다. 당시 열네 살이던 딸 사샤가 보낸 토성 모양의 생일 축하 카드가 보였다. 미국 항공우주국의 보안 배지들의 묶음도 나왔다. 갈릴레오 탐사선이 찍은 유로파의 사진이 책의 뒷면을 장식한<사이언스> 잡지 한 권, 각종 행성들의 표면을 담은 여러 장의 슬라이드, 크리스 치바가 결코 실현될 수 없었던 자신의 방문 계획을 알리는 메모 쪽지 등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닐 타이슨에게 보내는 칼의 답장 편지도 나왔다. 브롱크스 소재 한 고등학교의 학생이던 닐이 과학자로서의 자신의 커리어를 칼에게 문의한 이후, 둘은 서로 존경하고 격려하는 관계였었다. 또 눈에 띄는 편지가 있었다. 내용인즉, <행성 보고서>의 한 독자가 물어온 질문에 칼이 답을 해 줬으면 좋겠다는 칼린 앤더슨의 부탁이었다. 간단한 분자 구조의 기체들에 자외선을 쪼이면 어떻게 복잡한 유기물 찌꺼기로 변하게 되는지, 그것이 궁금하다는 질문이었다. 칼린의 요구에 칼은 물론 “그렇게 하겠다.”라고 선뜻 답했다. 미술가인 돈 데이비스에게 보내는 메모는 영화[콘택트]에 필요한 천체들의 영상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번에는 과학자이면서 미술가인 빌 하르트만이 칼에게 화성의 운석 구덩이에 관해 묻는 내용이었다. NASA에서 1997년에 열릴 '원시 화성에 관한 워크숌'과 또 백악관에서 그해 12월에 열릴 '우주 개발의 미래에 관한 백악관 회의'에 칼이 기조 연설을 수락한 데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편지들이 있었다.


  삶의 마지막 1주일을 맞으면서 칼은, 어떻게 해서든지 백악관 회의에 자신의 생각이 전달되도록 하고 싶어 했다. 당시 칼은 자신이 곧 죽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40년의 우주 개발 역사가 성취해 놓은 것들 위에 우리가 또 무엇을 더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남기고 싶어 했던 것이다. 칼은 별을 향한 긴 여정에서 우리가 방향을 읽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다. 이 위대한 과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인류의 의지가 혹시 사그라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크게 우려했다. 침대에 누어서 죽어 가는 와주에도 그는 자신이 하려던 기조 연설의 내용을 있는 힘을 다해 구술해 갔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나는 심장을 쥐어짜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부통령 고어는 칼의 구술 내용을 대독하는 것으로 예정됐던 백악관 회의를 시작했다. 칼의 마지막 순간에 내가 그에게 들려줄 수 있었던 몇 가지 이야기들 중 하나가 바로, 칼의 메시지가 백악관 사람들에게 전달됐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 이야기에 미소로 답했다. 이미 담갈색으로 변해 가돈 그의 두 눈망울에서 나는 여러 가지를 읽어 낼 수 있었다. 앨 고어에 대한 고마움, 우주 과학 정책을 결정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비전을 전했다는 안도감, 우주 과학의 미래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 등이 그의 눈빛에 섞여 있었당. 우주 과학의 미래에 대한 그의 우려는, 적어도 짧은 시간 척도로 보았을 때, 아주 타당한 것이었음이 그 후에 곧 판명됐다.


  앞으로 두 걸음 나갔다가 뒤로 한걸음 물러서는 식의 변화로 인류는 역사의 먼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별을 향한 여정에서도 우리는 우회로들을 종종 만나곤 했다.


  우회로야말로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편이 아닌가. 이러한 과정들을 거쳐서 결국, 지구인들은 칼이 물려준 위대한 유산을 중심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해 갈 것이다. 칼이 앉아 있던 그 의자는 주인을 잃은 지 오래됐지만, 그가 우리에게 전한 이상과 가치관은 여기 그대로 있다. 그가 가꿔 오던 꿈들마저 인류 전체의 꿈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지 않은가.


2006년 가을

앤 드루얀 



서문을 이렇게 세세히 읽은 적이 없었다.

본문을 읽고 싶어 그의 여정의 끝이 담긴 서문을 등한시했다.

앤 드루얀의 가슴 저미는 고통을 필사를 하면서

알게 되었으면 죽음을 맞이한 위대한 인류의 발자취에 경외감 마저 들었다.

그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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