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마윈의 알리바바다!
둥즈쉬안 지음
이레미디어 / 2014년 12월
1부 알리바바의 시작
알리바바, 세계 시장에 화려하게 데뷔하다
알리바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다: 2014년 9월 19일, 알리바바가 뉴욕증권거래소에 정식 상장했다. 처음 상장하는 기업은 상장 당일 해당 기업의 법인 대표가 거래소 안에 있는 큰 종을 울리는 관례가 있다. 그런데 다른 상장 기업의 타종의식과는 달리 이번 상장 타종은 알리바바그룹 이사회 의장인 마윈이 아니라 알리바바의 고객 대표 8명이 했다. 마윈은 “알리바바는 운이 좋은 회사다. 그 운은 고객에게서 나오고, 인터넷에서 나오며, 중국에서 비롯된 것이고, 전 직원이 노력한 결과이다. 과거 15년, 향후 87년, 우리는 계속 이 시대에 감사하고 인터넷에 감사하며 중국에 감사하고 중소기업에 감사할 것이다. 이러한 감사를 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업을 더 잘해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윈은 또한 “타종의식 때 종을 치는 고객 8명에 주목하길 바란다. 우리가 15년 동안 노력한 목적은 그들을 이 무대에 세우기 위한 것이었고, 그들의 성공을 바라서였다. 우리는 그들이 성공해야 우리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타종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역사상 최초로 기업 대표가 아닌 고객이 종을 친 것이었다. 종소리와 함께 알리바바의 정식 거래가 시작됐다. 베이징 시간으로 2014년 9월 19일 새벽에서야 알리바바그룹은 IPO(기업공개) 발행가를 68달러로 공식 확정했다. 이것은 예상 발행 가격 구간의 상한선이었다. 미국 동부 시각으로 10시가 막 지났을 때, 마켓메이커인 바클레이의 스크린에 80달러와 83달러라는 숫자가 두 행으로 떴다. 20분 뒤 거래소 직원이 “개장 가격 구간이 82~85달러로 상향 조정됐습니다!” 하고 외쳤다. 그러나 곧 알리바바의 개장 가격 구간이 84~87달러로 올라갔다. 5분 뒤에는 다시 88달러로 뛰었다. 88은 중국인이 좋아하는 숫자이고, 88달러로 계산하면 알리바바의 시가 총액은 아마존과 이베이를 합친 것보다 더 컸다. 11시 정각이 되자 개장 가격 구간이 91달러로 다시 올랐고 계속 상승하여 마침내 93.89달러로 첫 거래일을 마감했다. 발행 가격 대비 38.07퍼센트 상승한 것이다. 종가로 계산하면 알리바바의 시가는 2,314억 4,000만 달러에 달했다. 이로써 알리바바는 뉴욕증권거래소 역사상 첫날 시가가 최고인 회사가 되었다. 현재 알리바바그룹은 세계 4대 과학기술 기업이 되었으며, 시가 총액은 구글, 애플, MS의 뒤를 잇고, 페이스북을 넘어 제2대 컴퓨터 기업이 됐다. 이에 따라 마윈도 IPO로 전 세계 과학기술계의 10대 부호 반열에 올랐다.
잘나가는 영어교사: 1988년, 스물네 살의 마윈은 우수한 성적으로 항저우사범학원 영어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마윈은 진로 문제에 부딪혔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1988년은 개혁개방 10년이 되는 해였다. 그러나 구체제에서 신체제로 전환되는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그 시대에는 대학을 졸업하면 나라에서 직장을 할당해주었다. 자신이 어느 학교로 발령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마윈에게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마윈을 항저우전자공업학원(현재 항저우전자과학기술대학)으로 발령하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이것은 마윈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행운이었다. 항저우사범학원 원장은 마윈을 불러놓고 엄숙한 표정으로 “자네를 항저우전자공업학원으로 발령하기 위해 우리가 애를 많이 썼네. 요즘 많은 청년들이 나라에서 정해준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데 자네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네. 자네에게 우리 항저우사범학원의 명예가 걸려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적어도 5년 안에는 그만두지 말게.”라고 당부했다.
이렇게 마윈은 항저우전자공업학원에서 영어와 국제무역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이후 마윈은 항저우의 한 야간대학에서 겸직 강사를 하면서 무역업을 하는 사장들과 알게 되었고, 사업에 필요한 인맥의 기반을 쌓았다. 항저우전자공업학원에서 6년 반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마윈은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해 강사 혼자 떠드는 틀에 박힌 수업을 벗어나 학생들과 교감하면서 학생들이 즐겁고 재미있는 분위기 속에서 지식을 배우고 견문을 넓히도록 했다. 이후 마윈의 파트너이자 알리바바 창업 ‘18나한’ 중 한 명인 한민은 “당시 마 선생님은 책에 있는 대로 수업을 한 적이 없다.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외국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라고 회상했다.
현재 중국 인터넷업계에서 마윈은 언변이 좋기로 유명하다. 그는 해외 고객 앞에서도 유창한 영어로 강연한다. 마윈은 “이 재주는 강사 시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연습된 것이다. 지금도 정해진 원고를 갖고 연단에 오르지 않는다. 한번 입을 열면 그냥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 기간 동안 마윈의 최대 수확은 앞으로 동고동락할 친구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현 알리바바의 최고인사책임자인 펑레이를 비롯하여 저우웨홍, 한민, 다이산, 장팡 등 ‘18나한’이라고 불리는 알리바바의 핵심 멤버 가운데 대부분은 마윈의 학생이었다.
인터넷이라고 들어봤나?: 마윈은 어느 날 퇴근길에 영어학과 학과장이 자전거 핸들에 채소 봉지를 걸고 집으로 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자신이 학교에 계속 남아 있으면 결국 학과장과 같은 모습으로 늙어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퍼뜩 깨달았다. 그러고는 마침내 결단을 내리고 여동생에게 1만 위안을 빌려 총 2만 위안으로 1995년 4월, 중국 최초의 인터넷 비즈니스 회사인 항저우 하이보컴퓨터서비스유한공사를 설립했다. 직원이라고는 마윈 자신과 부인 장잉을 포함해 단 3명뿐이었다. 이때가 차이나텔레콤이 인터넷을 개통하기 4개월 전이었다. 1995년 5월 마윈은 중궈황예(chinapage.com)를 오픈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중궈황예는 인터넷 홈페이지 제작업체였다.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중궈황예의 사업은 점점 활기를 띠었고, 1997년 말 웹사이트의 매출액이 무려 700만 위안에 달했다. 알리바바 사이트의 초기 형태는 중궈황예 사이트에서 비롯된 것이다.
첫 번째 사업 실패 / 팀을 이끌고 다시 항저우로: 1996년 인터넷은 각 언론매체의 핫 이슈로 떠올랐고 신경제에서 가장 유망한 업종이 되었다. 그러자 곧 중궈황예에 도전하는 수많은 적들이 나타났다. 가장 큰 적은 항저우텔레콤이었다. 마윈의 자본금이 2만 위안인 데 비해 항저우텔레콤은 자본금이 3억 위안이었고 강력한 정부 자원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마윈은 생존을 위해 항저우텔레콤의 투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후 회사 운영을 놓고 항저우텔레콤 측과 갈등이 커지자 1997년 마윈은 마침내 중궈황예를 포기하고 자신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이것은 마윈의 첫 번째 사업 실패였다.
마윈이 중궈황예를 떠나자 베이징에 있는 대외무역경제합작부로부터 함께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연락이 왔다. 당시 대외무역경제합작부는 전국적으로 광섬유 케이블을 깔아 각 지사를 연결하는 내부 네트워크인 다네이왕(大內網)을 구축하고자 하여 산하 중국국제전자상거래센터에 이 프로젝트를 맡겼는데,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해줄 사람으로 마윈을 낙점한 것이다. 1997년 12월 마윈은 부인 장잉과 함께 총 13명으로 팀을 구성하여 베이징으로 갔다. 대외무역경제합작부는 마윈의 팀에 중국국제전자상거래센터 지분의 30%를 주었고 마윈의 팀은 주로 대외무역경제합작부의 홈페이지(다네이왕) 개발을 맡았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난 뒤 마윈은 전반적인 틀을 보다 개방적인 인터넷 형태로 바꿔야 한다고 대외무역경제합작부를 설득하여 마침내 승인을 얻어 합자회사인 궈푸퉁IT유한공사를 설립하고 사장으로 취임했다. 궈푸퉁을 설립한 마윈은 ‘온라인 중국 상품거래 시장’이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온라인 중국 상품거래 시장’은 전국 각지에 있는 대외무역경제합작부 지사들이 현지 중소기업의 정보를 인터넷에 올리도록 한 것이었다. 장관의 강력한 지원과 지방 부처의 적극적인 홍보 덕분에 ‘온라인 중국 상품거래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며 막대한 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최초로 기획한 인터넷 대형 전자상거래 사이트였다.
회사는 승승장구했지만 마윈은 이곳이 자신들의 회사가 아니라 정부의 한 부처일 뿐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더욱이 대외무역경제합작부가 처음 약속했던 대로 지분의 30퍼센트를 줄 수 없다고 하자, 1999년 마윈은 마침내 팀원들과 함께 ‘다시 항저우로 돌아가 제로에서 시작해 평생 후회하지 않을 회사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알리바바의 윤곽이 드러나다: 이로써 마윈은 인생에서 두 번째로 창업에 실패했지만, 베이징에 머문 14개월이 완전히 실패한 시간은 아니었다. 궈푸퉁 사이트는 개설 첫해에 수익을 냈다. 이것은 중국 인터넷 초기에는 극히 드문 기적이었다. 또한 마윈과 그의 팀은 당시 중국 대외무역경제합작부의 최전선에서 세계와 대화하고 인터넷 거물과 교류했다. 마윈은 그곳에서 국가 거시경제의 흐름을 몸소 체험했고, 세계 인터넷 산업의 추세를 느꼈다. 인터넷에 구축한 ‘온라인 중국 상품거래 시장’이 개통되자 각지에 있는 중소기업이 뜨거운 반응을 보인 것에 대해서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의 수요를 파악할 수 있었고, 인터넷을 이용해 세계와 중국의 중소기업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베이징을 떠날 때 마윈은 동료들에게 돌아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 아직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사실 생각해둔 사업 모델이 있었다. 알리바바 모델은 마윈의 영감과 직감에서 온 것이고, 5년간의 인터넷업계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1999년 3월, 마침내 마윈은 자신을 포함해 총 18명으로 ‘알리바바닷컴’을 창업했다. 알리바바는 대기업 홈페이지를 제작했고 온라인 상점을 개설했으며 호텔 예약을 하기도 했다. 마윈은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인터넷이 아주 효과적인 도구이며 무역 비용을 절감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윈이 그때 머릿속에 그린 알리바바는 10년이 지난 2009년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틀을 갖추게 되었다.
당시 중국은 닷컴 열풍으로 들썩거렸다. 사람들은 앞다퉈 야후와 아마존, 이베이를 모방했고, 온라인 포털, 온라인 서점, 온라인 경매를 복제했으며, 인터넷상의 생존법, 전자상거래 역시 핫이슈였다. 그러나 마윈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는 중국에서 전자상거래는 3년 뒤에나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은행과 배송이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윈은 미국의 3가지 모델이 중국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새로운 B2B(기업 대 기업 간의 전자상거래) 모델을 출시하려고 했다. 당시 중국의 사이트는 대부분 포털사이트였고, B2C(기업 대 최종 소비자 간의 전자상거래)를 하는 사람은 간혹 있었다. 마윈은 인터넷에 있는 상업기관 사이의 거래량이 상업기관과 소비자 사이의 거래량보다 훨씬 많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상업기관 중 전자상거래 지원이 가장 필요한 곳은 수많은 중소기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윈이 생각했던 것은 일종의 독특한 아시아식, 중국식 B2B 사이트였다. 알리바바 B2B 모델의 특징은 중소기업이 대상이라는 점인데, 마윈의 말을 빌리자면 ‘고래는 안 잡고 작은 새우만 잡는’ 것이다. 유럽과 미국의 B2B가 모두 대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삼던 시절에, 마윈은 알리바바를 중소기업의 해방자라고 선언했다. 또한 알리바바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출시한 서비스는 전부 무료였다. 단, 전자상거래 전 과정(거래 전, 거래 중, 거래 후)을 지원하지 않고 오로지 거래 전 단계와 정보 이동만 취급했다. 아직 미성숙한 단계인 온라인 거래, 결제, 오프라인 배송은 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정보만 이동시켜 고객이 온라인으로 정보를 교류하고 오프라인에서 거래하도록 한 것이다. 알리바바는 사실상 개방된 정보 플랫폼이었고 가상 전자 시장과 글로벌 상인의 커뮤니티였다. 마윈은 “전자상거래 하면 꼭 온라인에서 거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관념이다. 전자상거래라고 반드시 거래가 이뤄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거래 전인 이 단계를 서양에 비해 더 잘할 수 있다. 정보와 교류, 통신을 제공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터넷이 앞으로 30년 동안 인간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줄 3,000미터 장거리 경주라고 한다면, 미국은 지금 겨우 100미터, 아시아는 30미터 뛰어갔고 중국은 고작 5미터 달려나갔다. 야후나 아마존이 현재 1위로 달리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모델이 가장 좋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200미터, 300미터 이후에는 그들이 탈락할 수도 있다. 예전에 넷스케이프가 정말 잘나갔지만 한 바퀴 돌고 나니 그들은 사라졌다. 미래의 인터넷, 전자상거래는 지금 우리가 토론하고 있는 형태가 절대 아닐 것이다. 앞으로 3~5년 뒤 전자상거래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현재 중국이 전자상거래의 제1단계 업무에 적합하다면 우리는 제1단계 업무를 잘하면 된다.”
마윈이 창조한 알리바바 모델은 모호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매우 단순하다. 기업 전용 무료 전자게시판이라고 보면 된다. 알리바바의 이러한 초기 모델은 중국의 상황과 인터넷 시장 발전 단계가 낳은 산물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알리바바는 예전의 그 알리바바가 아니다. 알리바바는 청신퉁이라고 하는 전자상거래 서비스를 도입했고 알리페이라고 하는 결제 시스템도 도입했다. 앞으로 알리바바가 또 어떤 형태로 진화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알리바바는 즐거운 청년이다: 마윈은 해외 유학파도 아니고 명문대학이라는 화려한 간판도 없으며 심지어 인터넷 기술에 대한 기초 지식도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입시 삼수 경험을 통해 고난을 극복하는 강인한 정신력을 키웠고 또한 외국어 실력과 6년 동안 대학에서 강의한 경험을 잘 활용하여 자신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마윈은 한마디로 목표를 이룰 때까지 쉬지 않는 정신을 가진 사람이다. 개성이 뚜렷하고 생각한 것을 바로 행동으로 옮길 줄 알며 변화와 새로움을 추구한다. 그의 성공에는 우연적인 부분도 있지만 필연적인 부분도 있다. 마윈이 인터넷을 접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지만 이 새로운 기술의 미래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고집스럽게 추구한 것이 바로 알리바바가 성공한 필연적인 이유이다. 1995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터넷에 대해 전혀 몰랐을 때 마윈은 교육자의 길을 포기하고 사업에 뛰어들어 인터넷 회사를 설립했다. 마윈이 친구들에게 이런 구상을 말했을 때 24명 중에 23명이 반대했고 겨우 1명만 찬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선택을 한 덕분에 마윈은 양호한 출발을 할 수 있었다.
마윈이 오늘날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비법’은 사람과 일에 대해 일정한 규칙을 고수한 것이다. 마윈의 인간적 매력 덕분에 동고동락하는 ‘팀’이 형성되었고 최초의 성공도 인재 덕분이었다. 마윈은 인터넷 회사를 경영하면서 인재를 붙잡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실패라고 생각한다. 마윈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알리바바는 즐거운 청년이다.” 이 말에는 즐거운 마음가짐과 필승의 신념을 늘 간직하며 일하고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알리바바의 열정에 감염되다
손정의 회장이 알리바바에 투자한 이유: 알리바바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열정이다. 알리바바 창립자 마윈은 열정의 중요성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 1999년 인베스터 AB의 수석투자매니저였던 차이충신이 투자 건으로 알리바바를 찾았다. 몇 번 접촉하는 과정에서 차이충신은 마윈의 생각과 열정에 탄복했다. 그래서 그는 연봉 75만 달러의 직장을 버리고 월급 500위안의 알리바바에 합류했다. 마윈은 열정으로 여러 어려움을 이겨냈을 뿐 아니라 자신과 만나는 사람들도 매료시켰다. 이후 마윈은 더욱 열정적으로 “우리는 102년 동안 지속될 회사를 만들 것이고 세계 3대 사이트가 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미친 것처럼 보이는 이 생각은 모두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로 이런 그의 열정을 높이 사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도 단 6분 만에 알리바바를 투자 대상으로 선택하고 2,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손정의 회장은 마윈의 사업에 대한 열정과 리더십이 자신을 매료시켰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윈과 만날 때면 “마윈, 당신의 독특한 기질을 유지하십시오.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투자한 제일 중요한 이유입니다.”라고 말한다. 마윈은 확실히 열정적인 사람이다. 마윈을 만났거나 텔레비전에서 본 사람은 모두 그의 열정에 감염된다.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여전히 낙관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으며, 최선을 다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영광을 거머쥘 수 있었다.
미친 듯한 집념이 있어야 성공한다: 마윈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당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만 있을 뿐 마윈이 하지 못할 것은 없다.” 이 말은 마윈의 열정과 집념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이런 면을 반영하듯 친구들도 마윈에게 ‘미친놈’, ‘광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마윈은 ‘미친놈’이라는 별명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도리어 그는 “나는 미쳤지만 절대 멍청하지 않다.”고 말했다. 마윈의 성공 노선에는 늘 ‘미친 듯한’ 집념이 함께했다. 1995년, 마윈은 우연히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접했고 바로 이것에 매료되어 미쳐버렸다. 1999년, 전 세계 인터넷 기업이 미국의 모델을 모방하여 포털사이트를 만들고 20퍼센트의 대기업에 서비스를 제공할 때, 마윈은 남들이 생각하지 않은 80퍼센트의 중소기업에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바닷가재를 잡아 부자가 됐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고래를 잡아 부자가 됐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의 우려 속에서 알리바바를 창립했다.
2003년, 당시 전 세계 전자상거래 분야의 선두기업인 이베이가 중국 C2C계의 맏형 격인 이치넷을 인수합병하여 중국의 인터넷 시장을 제패할 준비를 했다. 이베이 같은 세계적인 전자상거래 거물의 공세에도 마윈은 후퇴하지 않고 오히려 2003년 5월, C2C 분야에 진출해 이베이에 도전장을 내밀기로 했다! 이 결정은 마윈의 미친 본성이 여실히 드러난 것으로 사람들은 제 분수도 모르고 날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윈은 끄떡하지 않았다. 2003년 7월, 알리바바는 상하이, 항저우, 베이징에서 타오바오닷컴에 투자해 C2C 분야에 진출한다고 선언했다! 마윈의 이 결정은 확실히 미친 짓이었다. 그러나 타오바오닷컴은 2년도 채 안 되어 중국 C2C 시장의 70퍼센트를 차지했고, 세계적인 거물인 이베이는 손실을 줄이기 위해 퇴각을 선택했다. 마윈의 말처럼 그는 미쳤지만 절대 멍청하지 않았다. 마윈의 미치광이 같은 면모는 작은 성공에 우쭐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열정과 시장에 대한 예리한 통찰에서 나온 것이다. 안목이 있었기 때문에 급변하는 정보에 빠르게 반응할 수 있었고 실제 상황에 따라 대담하게 결정할 수 있었으며 치밀한 계획과 민첩한 처리 방식으로 결국 구상을 실제 행동으로 전환시켰다.
2부 가치를 창조하라
지금의 알리바바를 있게 한 것들
전자상거래도 품질이 중요하다: 제품의 품질은 기업 생존의 기본 요소이자 판매전에서 승리하는 기본 요건이다. 마윈 역시 전자상거래라는 무형의 제품을 운영하고 있지만 품질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마윈은 말뿐 아니라 실제 행동도 그렇게 하고 있다. 2004년 링크톤(모바일 콘텐츠 서비스업체), 쿵중왕(온라인 게임업체) 등이 잇달아 나스닥에 상장했고, 10월에는 이룽(온라인 여행사)이 나스닥에 상장해 6,210만 달러를 조달했다. 그러나 B2B의 선두주자였던 ‘알리바바’는 상장을 계속 늦췄다. 마윈은 알리바바가 크고 강해지는 것이 나스닥 상장보다 더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돈이 부족하지 않고 주주들도 현금이 급하게 필요하지 않으니 당분간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윈은 직원들과 언론에 “지금의 알리바바는 내가 생각한 성공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고 자주 말했다. 마윈이 생각하는 알리바바는 유토피아에 가깝다. 알리바바라는 플랫폼에 중소기업의 판매센터, 인사센터, 기술센터, 결제센터, 재무센터를 집중시키고, 그 사이에 B2B, B2C, C2C의 모든 단계를 연결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이뤄지면 알리바바는 자신의 화폐, 자신의 게임 법칙, 자신의 운영 체계를 갖춘 가상의 비즈니스 왕국이 될 것이다.
훌륭한 리더가 이끄는 기업은 다르다
알리바바가 원하는 ‘사냥개형’ 인재: 알리바바에서는 리더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일이 질서정연하고 완벽하게 처리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알리바바는 인재 활용이 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한다. 마윈은 어떤 사람이 기업에 필요한 인재인지 적절하게 비유했다. 팀에서 성과는 있지만 협동 정신이 없는 사람은 들개이다. 사람은 좋지만 성과가 없는 사람은 토끼이다. 성과도 있고 협동 정신도 있는 사람은 사냥개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기업이 인재를 선발할 때 성과를 최우선에 둔다. 그러나 마윈은 성과가 아무리 좋아도 들개는 원하지 않는다. 토끼는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다. 사냥개가 알리바바가 정말 필요로 하는 인재이다. 그렇다면 알리바바가 요구하는 사냥개형 인재의 조건은 무엇일까? 첫째, 성실과 열정은 직원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자질이다. 둘째, 낙관적이고 진취적이며, 적극적이고 패기가 있어야 하며, 인터넷업계에 흥미와 열정이 있고 성공을 갈망해야 한다. 이 밖에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과 전문적인 소양이 있고 소통과 협력을 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학습 능력이 있어야 하며 배우는 것을 좋아해야 한다.
물론 마윈은 알리바바에 ‘준사냥개형’ 인재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사냥개’가 될 잠재력을 지닌 인재도 거절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인재들이 일정한 훈련을 거치면 알리바바의 요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마윈은 직원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인재 교육에 힘과 돈을 아끼지 않는다. 2004년 9월 10일, 알리바바는 ‘알리학원’을 설립했다. 알리학원을 설립한 목적은 모든 인재가 알리바바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이것을 통해 알리바바의 가치도 덩달아 높아질 것이다.
알리바바가 경쟁을 대하는 방식
알리바바가 이베이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 오늘날, 비즈니스 전쟁에서 상대를 격파하려면 경쟁 상대의 제품과 판매 시장, 소비자, 원료나 부품 공급업체 등 경쟁자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 마윈이 타오바오닷컴을 내세워 업계 선두 이베이를 격파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 또한 알리바바는 상대를 매우 잘 알았지만 상대는 알리바바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우리와 경쟁 상대의 가장 큰 차이는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았지만, 그들은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지 몰랐다는 점이다.” 이 전쟁을 시작하기 전, 마윈은 오랫동안 이베이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며 이베이를 세밀하게 분석하고 이베이가 세계 각지에서 사용한 방법, 그들이 잘하는 관리 방법과 처리 특징을 낱낱이 연구했다.
이베이와의 전쟁에서 마윈은 상대는 물론 자신도 잘 알았다. 그는 이베이가 강력하다는 것을 직시했고 타오바오의 우세와 열세를 분명하게 알았다. 마윈은 “이베이는 바다의 상어이고 타오바오는 창강의 악어이다. 악어가 바다에서 상어와 싸우면 결과는 뻔하다. 그러나 상어를 창강으로 불러 들여와 겨루면 절대로 패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상대에 대한 이해와 자신이 처한 위치를 분명하게 파악한 것을 바탕으로 마윈은 타오바오와 이베이의 경쟁을 여유 있게 컨트롤했고,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상대를 격파했다. 요컨대 ‘지피지기(知彼知己)’는 승리의 기본 전제이고 효과적인 경쟁 전략을 세우는 기본 근거이다.
3부 알리바바의 미래
알리바바는 위기를 어떻게 활용하는가
인터넷업계의 겨울을 이겨내다: 마윈은 “알리바바인은 미래의 장밋빛 비전을 보면서도 동시에 미래의 재난을 예측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윈이 인터넷업계의 겨울을 버텨내 강력한 경쟁 상대를 물리치고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민감한 통찰력으로 위기가 오기 전에 경영에 잠재된 리스크를 최대한 제거했기 때문이다. 2007년 초, 사람들은 시장에 곧 겨울이 닥쳐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마윈은 많은 시간을 들여 앞으로 닥칠 재난의 형태와 대응 방안을 연구했고, 알리바바 전 직원에게 “전 세계 경제에 문제가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는 모든 기업이 도전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서 마윈은 또한 알리바바의 주요 고객인 중소기업이 심각한 생존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전 직원이 중소기업이 겨울을 잘 나도록 도와야 한다고 했다. 마윈은 “우리의 고객이 무너지면 우리도 다음 해 봄의 태양을 볼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하며, 겨울은 무섭지 않지만 준비 없는 겨울은 매우 무섭다고 덧붙였다.
알리바바 B2B 부문이 홍콩에 상장될 때 마윈은 “알리바바 B2B 부문을 조기 상장하는 것은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이다.”라고 말했다. 상장 후 알리바바그룹의 현금 보유액은 20억 달러가 넘었다. 2007년 2월, 알리바바그룹 연차총회에서 마윈은 다시 “2008년 알리바바는 굴을 파고 식량을 비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는 말처럼, 알리바바인은 현재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영원히 1등’을 하겠다는 진취적인 생각, 동시에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기업의 실력을 계속 키워나가고 있다.
아시아 최대의 인터넷 소매사이트가 되다: 옛사람들은 큰일을 하려면 반드시 먼저 ‘사(捨)’를 배워야 그다음에 비로소 ‘득(得)’을 논할 수 있고, ‘크게 버리는 것’의 필연적인 결과는 반드시 ‘크게 얻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윈의 타오바오닷컴도 이와 비슷했다. 초기 5년 동안 마윈은 사이트를 무료로 운영했고 어떻게 하면 유료화로 전환할까 생각하지 않았다. 2008년 마윈은 향후 5년 동안 타오바오닷컴에 20억 위안을 추가로 투자해 타오바오닷컴을 세계 최대의 인터넷 소매사이트로 만들겠다고 선포했다. “추가된 20억 위안은 5년 안에 반드시 다 사용해야 한다. 또한 반드시 기술 혁신, 인재 도입, 생태 사슬 구축에 사용해야 한다.”
알리바바그룹은 2003년 5월 10일 4억 5,000만 위안을 투자해 타오바오닷컴을 설립했고, 2005년 10월 10억 위안을 투자한 데 이어 또다시 20억 위안을 투자했다. 마윈은 어떤 이유로 타오바오닷컴에 기꺼이 투자했을까? 마윈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영향을 주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장차 중국에 이런 전자상거래 시장이 나타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우리가 착실하게 준비하면 반드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게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뉴스를 매일 본다고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로부터 5년 뒤, 타오바오닷컴은 6,20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아시아 최대 인터넷 소매사이트로 성장했다. 하루 900만 명의 소비자가 방문하고, 1일 거래액은 2억 5,000만 위안에 달하며, 2008년 총 거래액이 1,000억 위안을 돌파했다. “최근 몇 년 타오바오닷컴의 고속 성장과 타오바오가 각 업계에 일으킨 충격, 많은 업계를 개선시킨 것을 보는 즐거움이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보다 훨씬 크다. 그리고 2008년 1분기까지 타오바오닷컴이 직간접적으로 창출한 일자리가 100만 개를 넘었다.” 선택은 고통스러운 과정으로 밤잠을 설치고 뒤척이게 한다. 그러나 생선과 곰 발바닥을 모두 얻을 수는 없다. 버려야 얻고, 크게 버려야 크게 얻는다.
알리바바의 행복한 고객들
고객이 일어서는 것을 도와라: 마윈은 “기업의 목적이 돈을 벌기 위한 것뿐이라면 멀리 가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모든 기업이 돈을 벌지 못하고 있는데 야후 재팬이 돈을 벌고 타오바오닷컴이 돈을 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판매자들이 모두 돈을 벌고 있어야 나도 돈을 벌 수 있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법칙이다.” 마윈에게는 고객을 확보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 많은 사람이 포털사이트를 만들어 큰 회사와 대기업을 상대로 돈을 벌려고 할 때 마윈은 중국 기업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B2B 전자상거래 모델을 내놓았고 알리바바를 설립했다. 마윈의 이런 행동은 단순히 돈이 목적이 아니라 대다수 중소기업이 겪고 있는 정보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이렇게 하니 자연스럽게 수익이 따라왔다.
마윈은 자신이 기업을 하는 이유는 중국에 일자리를 창출하고 가치를 창조하며 구매자와 판매자에게 더 편리한 거래 플랫폼을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것은 알리바바가 고수하는 가치관이기도 하다. 마윈은 알리바바바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일어서는 것을 돕는 것이고, 이것이 알리바바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 때문에 마윈은 더 큰 사업 기회를 얻었고 수익이라는 최종 결과를 얻었다.
알리바바의 새로운 여정
알리바바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알리바바의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은 전 세계의 헤비급 뉴스였다. 그래서 유럽과 미국의 언론매체는 “알리바바가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중국인에게 알리바바는 전자상거래이고 타오바오이며 알리페이이다. 하지만 알리바바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것은 알리바바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알리바바의 확장과 폭발적인 상장을 목격하고 알리바바에 익숙한 사람들도 유럽과 미국의 언론매체와 같은 질문을 한다. 알리바바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전 세계 언론매체의 답은 제각각이다. 이렇게 다른 대답이 아마도 알리바바의 현재이자 미래일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알리바바가 아마존, 이베이, 페이팔에 구글을 더한 ‘종합체’로, 인터넷 상점, 검색 엔진, 은행 등 여러 분야를 망라한 중국, 더 나아가 세계 최대의 인터넷 비즈니스 회사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는 알리바바를 인터넷 거인이라고 칭했고, 《이코노미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시장이라고 했다. 주류 언론 매체가 알리바바를 왜 이렇게 높게 평가했을까? 앞으로 알리바바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줄까? 새로운 미래는 다음의 몇 가지 분야로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된다.
1. 모바일 단말기 업무
알리바바 사업설명서에 따르면, 2014년 6월 말 스마트폰을 통한 알리바바의 월 이용자 수는 2억 명에 가까웠다. 또한 지난 12개월 동안 알리바바는 스마트폰 거래액이 4,360억 위안에 달해 중국 스마트폰 전자상거래 거래량의 거의 전체를 차지했다. 이 밖에 모바일 타오바오, 알리페이 월릿, 중국판 트위터인 신랑웨이보, UC웹, 유쿠동영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중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10대 모바일 앱 중 알리바바그룹의 앱이 반을 차지하고 있다.
2. 국제화
알리바바는 국제화 과정에서 수많은 도전에 부딪혔지만 해외 수익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지난 1년 동안 알리바바 산하 알리익스프레스의 러시아 사이트는 월 방문량이 1,590만 건에 달했다. 알리익스프레스는 브라질 출시 4년 만에 글로벌 시장 점유율 20퍼센트를 기록해 이베이와 아마존의 뒤를 이었다. 또한 여러 국가와 MOU를 체결하고 이들 국가를 방문한 중국 관광객이 알리페이로 쇼핑 대금을 결제할 수 있도록 했다. 알리바바는 물류 중심 네트워크 및 금융 결제 네트워크 구축과 전자상거래 글로벌화를 위해 인프라 배치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3. 클라우드 컴퓨팅
알리바바의 클라우드 컴퓨팅 플랫폼은 또 하나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 중 하나이다.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에서 알리바바의 능력은 전 세계적으로도 선두라고 할 수 있다. 2014년 6월 말 140만 명이 넘는 사용자가 알리바바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서비스는 앞으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할 것이다. 마윈은 알리바바의 클라우드 컴퓨팅이 앞으로 타오바오, 톈마오, 알리페이를 더한 것보다도 많은 수익을 가져올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알리바바의 미래에 무한한 상상을 가져올 것이다.
이제 알리바바를 단순한 전자상거래 기업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미국 포레스터 리서치는 ‘세계 최대 디지털 생태 시스템’이라는 말로 알리바바의 방대한 사업 체계를 표현했다. 아마도 이 말이 알리바바에게 더 적합할 것이다. 미래의 알리바바는 새로운 생태계를 구성할 것이고 이런 생태계는 알리바바에만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마윈의 어록
* 당신이 성공하면 당신이 한 모든 말은 진리가 된다.
*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고 굳게 믿는다. 꿈을 갖고 그 꿈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배워나가면, 생김새와 조건에 상관없이 성공할 수 있다.
* 손정의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졌다. 일류 아이디어에 삼류 실행력과 삼류 아이디어에 일류 실행력이 있다면 어떤 것이 더 나을까? 우리는 동시에 일류 실행력에 삼류 아이디어를 선택했다.
* 살면서 가장 기뻤던 것은 다른 사람의 일을 도와주기로 대답했고 그것을 해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요구했던 것보다 더 잘했을 때이다. 그 일을 끝냈을 때 흥분된 감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 서비스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제품이다. 최적의 서비스는 서비스를 하지 않는 것이고, 최고의 서비스는 서비스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 다른 사람과 행운을 비교하지 말라. 나는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운이 좋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저 다른 사람보다 의지가 조금 강할 뿐이다. 그래서 힘들 때 나는 다른 사람보다 1~2초 더 견딜 수 있다.
* 토끼 10마리가 있다. 당신은 어느 것을 잡을 것인가? 이리저리 쫓아다니다가는 결국 1마리도 잡지 못한다. CEO의 주요 임무는 기회를 찾는 것이 아니라 기회에 ‘노’라고 말하는 것이다. 기회가 많아도 한 번에 단 하나만 잡을 수 있다. 한꺼번에 많이 잡으면 모두 놓칠 수 있다.
* 알리바바는 금광을 발견하면 절대 우리가 가서 파지 않고 다른 사람이 가서 캐도록 한다. 그리고 금광에서 많은 수익을 내면 우리에게 한 덩어리만 주면 된다.
*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아먹지 못한다면 다른 새에게 잡아먹힐 것이다.
* 바닷가재를 잡아 부자가 됐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고래를 잡아 부자가 됐다는 말은 못 들었다.
천일야화 속의 ‘알리바바’ 이야기처럼
마윈의 알리바바 역시 신비한 색채로 가득하다.
알리바바의 창업주 마윈은 성장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잦은 싸움으로 처벌을 밥 먹듯이 받았고
대학시험에서도 여러 번 낙방해 삼수 끝에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 후 대학 강사에서 재계의 협객이 되기까지,
마윈은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딛고 마침내 존경받는 기업가가 되었다.
장차오양(중국 검색 포털사이트 소후닷컴[sohu.com] 창립자이자 CEO로 칭화대학과 미국 MIT 출신),
딩레이(중국 검색 포털사이트 왕이닷컴[163.com] 창립자이자 CEO로 중국 전자과학기술대학 출신) 등
이 명문학교 출신인 것과 달리 마윈은 초중고등학생이었을 때는 말썽꾸러기에 가까웠고,
어렵게 들어간 대학도 명문대는 아니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사람이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만들었다.
그는 알리바바라는 전자상거래 사업을
‘시멘트+마우스’ 모델로 성공시킨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알리바바의 시작은 어렵고 힘들었지만
마윈은 믿음이 있었고, 열정이 있었으며,
처음 가졌던 신념을 끝까지 고수했다.
알리바바에는 그의 정신이 그대로 깃들어 있었다.
마윈은 “어떤 사람이나 회사가 우수한지 여부는
그가 하버드나 스탠포드 출신이냐가 아니고
그 사람이 미친 것처럼 일을 하느냐 아니냐와
그 회사 직원들이 퇴근할 때 미소를 짓느냐 여부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윈의 말대로 처음의 꿈을 견지하고 믿음을 잃지 않았던
알리바바는 그들이 믿었던 대로 이루었다.
알리바바는 뉴욕증권거래소 상장과 동시에 세계 2위의 인터넷 기업으로 떠올랐다.
전 세계의 눈은 알리바바를 향했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알리바바는 무엇인가?
이 책은 그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전 세계 언론들은 ‘인터넷 거인’,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마켓’ 등
수많은 단어들로 알리바바를 표현하려 하지만,
이제 그 어떤 단어로도 알리바바를 간단하게 정의할 수 없게 되었다.
현재 알리바바는 무한히 발전해나가고 있으며,
미래의 알리바바가 전혀 새로운 형태의 생태계를 구성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마윈의 성공 과정과 특유의 리더십
그리고 알리바바의 탄생부터 가장 최근의 사업 현황,
알리바바가 앞으로 우리에게 가져다줄 미래를 살펴보고 나아가
시시각각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중국 경제의 일면 또한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부록에 소개하고 있는 마윈의 어록을 통해
우리 모두가 일상의 삶과 비즈니스에 임할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소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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