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 동남지역
상업의식이 투철한 상하이(上海) 상인
모험가의 낙원이자 외지인의 도시: 대륙이 중심이 되었던 고대 중국에서 연해인 상하이는 낙후지역에 속했다. 그러다 서방 열강들이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자금과 인재가 몰렸고, 지명도 없던 작은 촌락은 갑자기 국제적인 대도시가 됐는데, 시민의 70% 가량이 남방인이다. 그들은 중국인들 가운데 상경영을 잘하고 실익을 추구하는데, 복잡한 상황에 봉착하면 북방인처럼 체면과 비경제적인 요소에 연연해하지 않고, 이익 여부를 신속하게 판단하여 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한다.
당장 눈앞의 이익이 중요하다: 이익을 좇아 자주 옮겨 다니는 상하이인은 북방인처럼 상대방에게 느끼는 친밀감의 정도가 깊지 않아서 연고나 이유 없는 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더불어 낯선 이가 인간적인 도움을 주었을 경우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 그들의 계산법이다.
파란 신호등이 들어와도 천천히 걸어간다: 상하이인의 계산적이고 신중한 태도를 광동인과 비교할 때 다음과 같은 비유를 자주 든다. ‘광동인은 녹색등과 마주하면 서둘러 건너가고, 빨간 불이면 건너지 않거나 기다리는 대신 돌아가며, 등이 없으면 더듬어간다. 그러나 상하이인은 녹색등을 보면 유유자적하게 걸어가고, 빨간 불을 보면 감히 건너지 못하면서 우회해서 가는 사람을 질책한다. 그래서 상하이인은 신중하다 못해 담력이 없다는 인상까지 준다.’
상도덕과 법규 준수를 잘 한다: 상하이는 중국에서 준법에 대한 개념이 강한 도시로, 혼란스럽던 문화혁명 시기에도 대다수는 위법적인 상거래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상하이 시민은 당국이 내놓는 새로운 조치에 기본적으로 순응한다. 예를 들어, 무게 단위를 근에서 그램과 킬로그램으로 바꾼다고 하면, 짧은 시간 안에 거의 모든 상점은 이를 철저하게 시행한다. 소비자 고발 의식도 강한 편이다.
부담이 되는 선물은 주지도 받지도 않는다: 상하이인은 선물을 주고받되, 이유 없는 호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상대에게 빚을 졌으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만큼 돌려주어야 하며, 그 가치는 서로 같아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행동한다. 따라서 상하이인들에게 선물을 주거나 식사 대접을 할 때는 너무 지나쳐 부담스럽게 하거나, 반대로 너무 약소해 그들이 상담에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선물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선물을 받고나서 그들이 원하는 만큼의 보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좋은 상거래 기회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알라(阿拉) 상하이인의 자부심은 강하다: 상하이인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른다. 그래서 다른 지역 사람들을 ‘촌놈’이라 비하시켜 부르는 습관이 생겼고 심지어 깔보기까지 한다. 이 같은 자부심이 드러나는 말이 바로 ‘알라(阿拉) 상하이인’이다. 알라는 상하이 방언으로 ‘나는’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알라 상하이인이라 함은 ‘나는 상하이인 이다’라는 뜻이다.
상하이상인과 상거래시 대응해야 할 전략을 세우자: 상하이인은 상담할 때 작은 문제로 논쟁을 벌여 시간을 끌고 상대를 피곤하게 한다. 따라서 그들을 상대하려면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또 계약이 성사된 후에는 세부내용까지 매우 철저하게 이행한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상하이인의 상거래는 모든 것이 타당할 때만 시작하지, 북방인처럼 일에 착수한 다음 당면한 상황에 대해서 갑론을박하지 않는다. 아울러 그들은 국제적 수준의 표준에 따라 행동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또한 지역이기주의가 깊게 뿌리를 내려 다른 지역 상인에 대한 배타심이 강하다. 예로 실무적으로 다른 지역 소재의 은행과 거래를 하려고 해도 상하이 소재 기관의 승인을 받기가 어렵다.
상하이상인과의 계약서 작성 및 상담 전략에 유의하자: 상하이인들은 법에 대한 개념이 대단히 강한 사람들로, 쌍방이 서명 합의한 계약서에 의거한 법률적 효력에 중점을 둔다. 따라서 쌍방 간의 책임과 의무에 있어서 발생 가능한 의외의 사건에 대해 문서화시켜 보관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계약합의서에는 반드시 국가, 지방(합작 쌍방 소재지)과 관련된 법률, 법규적 요구에 부합하도록 하여 주관 및 객관식 원인으로 인해 이행불능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상하이인들과의 거래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 결정적 요소는 정감어린 말이나 행동이 아니라, 지극히 이성적인 태도다.
영리하고 변통력 있는 저지앙(浙江) 상인
중국 최고 상인의 칭호를 받다: 상하이 남쪽 저지앙성 사람들은 예로부터 장사를 최고의 생업으로 생각했다. 특히 닝보, 원저우 상인의 탁월함은 중국에서 첫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다. 그래서 상하이 경제권이 저지앙상인 손아귀에 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중농의식이 강한 중국에서 저지앙상인이 크게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계몽사상이 큰 역할을 했다. 대표적 인물은 양명학의 창시자 왕양밍과 후왕종시이다. 왕양밍은 유가경전과 도학, 성리학의 사상적 굴레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했고, 실천을 중시함으로써 명말과 청초에 인문주의 계몽사조 부흥을 일으켰다. 후왕종시는 왕양밍의 사상을 받아들인 인물로, 민주사상을 제창하여 봉건제도 타파를 시도하였다. 그는 “상공업이 만물의 근원”이라는 주장을 통해 중농사상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사교술과 처세술에 뛰어나다: 저지앙인은 사교를 통해 목적을 달성하는 데 탁월한데, 그들과의 직접적인 이익의 충돌이 없는 한 매력적인 저지앙인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저지앙인은 상대방의 말과 눈치를 관찰하는 데도 뛰어나, 수시로 상대방의 신분, 지위, 경력, 목적, 태도에 따라 행동을 조정해 그들과 화합하려 한다. 또 저지앙인은 호감을 얻기 위해 상대방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며 말수를 최대한으로 줄여 상대가 먼저 말을 꺼내도록 유도한다. 즉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먼저 말하게 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고단수이며 권위가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닝보상인, 모험정신과 개척정신으로 무장하다: 저지앙상인 가운데 대표적인 그룹이 닝보상인이며, 모험과 개척정신이 그들의 정신을 이루는 뼈대이다. 닝보인은 고향을 떠나 외부세계에서 열심히 일하지, 좁고 답답한 집에서 삶을 영위하지 않는다. 예로 닝보상인들은 19세기 말부터 홍콩, 마카오, 유럽, 미국 등으로 진출하여 나름대로의 세력을 정착시켰는데, 해외 각지에 분포되어 있는 닝보인은 전통적인 경영방식을 이어오며 후손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등 독특한 ‘닝보풍’을 형성했다. 또 닝보인은 사람들이 두려워 시도하지 않는 것에 먼저 도전하면서 이익창출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따라서 닝보인과 상거래를 할 때에는 그들의 진취적인 정신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고 무모하게 뛰어들지는 않는다. 벤처성투자의 경우에도 주도면밀함과 뛰어난 임기응변으로 실패하는 확률이 적은 편이다.
닝보상인, 가족과 동향인에 대한 의존이 강하다: 닝보인은 동향인에게 형제의식을 보여 집단적인 역량을 확대하고, 상부상조 정신을 형성한다. 또 외지로 나갈 경우에도 대부분 동향이나 동향회 조직의 도움을 받는데, 닝보동향회는 철저하게 닝보상인의 합법적 권익을 보호하고, 외국상인의 침투를 허용하지 않는 단결력을 보인다. 그런데 가족과 동향을 중시하고 의지하지만 이익이 늘 최우선이다. 따라서 정감적 기업경영으로 인한 마이너스적 효과를 배제하며 자본주의적 상업정신을 실현한다. 예로 자녀보다 조카가 똑똑하다면, 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도 한다.
중국의 유대인, 원저우상인: 저지앙의 원저우인은 총명한 두뇌로 능수능란한 상경영을 보여주어 “중국의 유대인”이라 불리는데, 베이징은 원저우상인이 활동하는 북방의 주요 무대이고, 티벳에서 장사하는 이들의 반이 원저우인이라 한다. 또 원저우인은 해외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프랑스, 이탈라이, 스페인, 네덜란드 등 유럽 전역에 원저우인들이 살고 있으며, 파리에는 원저우거리도 있다.
원저우상인, 귀천을 가리지 않는 철면피로 무장하다: 원저우인은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다. 재산을 증식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개의치 않는다. 또 원저우인은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상대의 나쁜 기색도 개의치 않는다. 상대가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이 돈만 벌 수 있다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원저우상인들과 상거래를 할 때는 그들의 철면피적 상거래를 이해해야 한다. 또 그들이 식사 대접을 하고 선물을 할 때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여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베푸는 호의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다가는 나중에 큰 후회를 할지도 모른다.
항저우상인, 자존심이 강하다: 항저우상인은 외지로 나가 삶을 꾸리는 데 관심이 없고, 세계가 아무리 넓어도 항저우가 최고라는 말을 한다. 항저우의 자존심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에서 출발한다. “하늘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라는 말이 있듯이, 항저우에는 아름답고 유명한 서호(西湖)가 있다. 그래서 항저우인은 개척정신이 있는 닝보상인과 원저우상인과 비교할 때, 같은 저지앙 사람이면서도 동향인이 아닌 듯한 느낌마저 준다. 이런 기질 덕분에 항저우인 중에는 크게 성공한 상인이 드물고 오히려 상술에서는 뛰어나지 못하다. 어쩌면 그들의 체면치레 덕분에 외지인들은 항저우에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지도 모른다.
상업적이고 진취적인 저지앙상인의 특성을 이해하자: 앞에 살펴본 것처럼 저지앙상인은 항저우인들을 제외하고는 상업에 능하고, 사교적인 동시에 개척정신이 뛰어나 외국인과의 교류에도 거리낌이 없다. 이런 저지앙상인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접근한다면, 서로에게 유익한 전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항저우 출신과 다른 지역 출신의 성격이 상이하다는 점도 반드시 기억하자.
용감한 푸지엔(福建)상인
푸지엔상인은 민난 출신이다: 푸지엔성은 동서남북 방향에 따라 민동(閩東), 민시(閩西), 민난(閩南), 민베이(閩北)로 나뉘며, 지역마다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는데, 민동 사람은 일없이 편하게 사는 것을 원하고, 민서 주민은 조상숭배라면 열을 제치고 나서며, 민베이 사람은 가난하더라도 인생을 즐기면서 산다. 하지만 민난인은 진취적인 기질 덕분에 해외로 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결국 푸지엔상인이라 할 때는 동쪽, 서쪽, 북쪽에 사는 사람보다는, 남쪽에 사는 민난인을 가리킨다. 민난인은 토지가 부족한 환경 때문에 생존을 위해 바다에 나가야만 했다. 거친 바다생활은 강한 인내심과 독립심을 갖게 했고, 강력한 해상상업조직을 형성하게 만들었다.
동남아 지역은 푸지엔인에게 제2의 고향: 동남아 지역에 살고 있는 화교의 대부분은 푸지엔상인의 후예들이다. 필리핀에 거주하는 화교 중 무려 90%는 푸지엔상인의 후예들이고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화교 사이에는 푸지엔 사투리가 주요 공통언어로 되어 있다.
가족 중심의 경영방식 중시 : 푸지엔 화교 상인들의 상경영에는 푸지엔 지역의 문화와 중국 전통문화의 특징과 풍경이 녹아 있다. 우선 대다수의 기업들은 가족중심의 경영방식을 채택하여 가족의 자본과 가족 구성원의 노동력에 의거하여 회사를 창립하는데, 기업의 주식은 일반적으로 유통시키지 않고 가족과 친지, 친구들에게 분배하고, 기업 경영자들 또한 가족으로부터 가장 신임을 받는 이가 임용된다. 아울러 부자세습을 중시하여 대부분 아들이 사업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중국의 전통문화인 신의정신을 계승하여 신용을 밑바탕으로 기업경영의 상도덕을 지켜나간다. 그들은 ‘사회에서 얻은 것은 사회로 환원시킨다’는 좌우명을 실천하며, 현지의 복리사업과 교육 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그리고 조국을 떠나 외국에서 삶의 기반을 잡고 살아가고 있지만, 조국과 고향을 사랑하는 그들의 마음은 유별난데, 시간이 지난 후에 고향으로 돌아와 공장 운영에 투자를 하는 것 외에도 조국과 고향이 공익사업에 열성적으로 임한다.
푸지엔상인의 개척정신을 이해하자: 유럽 속담에 “바이킹을 만든 것은 북해의 거센 바람이었다”는 말이 있다. 푸지엔상인도 마찬가지다. 바다를 헤쳐 나가는 개척정신이 그들의 상인 기질을 키워냈다. 푸지엔상인은 중국 본토에서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의 어떤 나라에서건 그들과 마주쳤을 때, 푸지엔인의 개척정신을 칭찬하고, 민난 출신인지 아닌지 물어보는 지혜를 발휘한다면 비즈니스에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상술이 뛰어난 광동(廣東) 상인
상업을 중시하는 지역문화를 형성하다: 지리적인 영향 때문에 광동은 중국의 전통문화나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북방의 여인들이 삼강오륜에 속박돼 가부장적 삶을 살았던 것에 비해, 남방의 여자들은 능력 있고 영리한 신식여성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래서 남녀차별 현상은 광동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산이 중원문화의 침투를 막는 대신, 바다는 광동인에게 생존을 위한 모험정신을 발휘하게 하였다. 아울러 외모도 북방인과 비교했을 때 많이 다르다. 키는 매우 작고, 체구는 말랐으며, 얼굴은 갸름하고, 입술은 얇으며, 정신없이 굴리는 작은 눈은 사람들로 하여금 수호지의 시천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못생기고 작지만 천성적인 상인기질을 지닌 광동인들에게 좋은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상업을 중시하던 그들은 지금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위상을 떨치고 있는데, 2003년 기준 중국 100대 부자들의 출신 지역을 살펴보면, 광동성 출신이 22%로 가장 많고, 이어 상하이 출신이 14%, 베이징 11%, 저장성 8% 순이다.
바삐 움직여라! 그러면 돈이 굴러 들어온다: 광동인들은 처음부터 재벌이 아니었다. 절대다수의 광동인들은 피나는 노력으로 부자의 대열에 올라설 수 있었는데, 광동인이 성장한 배경에는 부지런함이 존재한다. 예로 북방에 있는 큰 상점들은 일찍 문을 닫는다. 하지만 광동인이 운영하는 상점은 다르다. 상점문을 여닫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판매원은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고객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최선을 다한다.
돈이 최고다: 광동인은 돈 되는 일이 아니라면, 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침고로 광동인들은 사람들과의 만남도 돈 이외의 다른 목적이라면 시간을 낭비한다고 여긴다.
실용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을 형성하다: 광동인은 매우 명랑하고 낙관적이며 진취적이어서 자신과 인생에 대한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다. 또한 그들은 현실적이어서 비현실적인 환상이나 과장을 좋아하지 않고 실용적인 가치에 집중한다. 한편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이는 것에도 차이가 있다. 북방인은 생각을 많이 하고 경험을 중시하면서도 의리와 원칙에 근거를 두고 신중히 선택해서 받아들인다. 하지만 광동인은 실질적인 것을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켜 버릴 뿐, 이론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먹고 노는 걸 즐긴다: 광동의 음식문화는 상당한 평가를 받고 있는데, 발전된 음식문화 덕분에 광동인은 남녀노소 누구나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가졌고, 이런 힘과 정서는 그들의 삶을 열정적으로 만들었다. 사실 먹고 마시고 노는 데에 있어서 광동인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밤의 생활리듬이 더 강열하다: 광동인들은 실용적인 동시에 감각적인 흥분을 즐긴다. 광동의 쥬하이 삼각주는 낮과 밤의 구분 없이 휘황찬란하며, 오히려 밤의 생활리듬이 더 강렬하기까지 하다.
사기와 가짜가 판을 치다: 광동인은 돈을 목숨과 같이 여기며 오로지 돈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 그들에게 상하이인처럼 상업윤리를 중시하는 전통 따위는 없다. 또 일부는 암흑세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활동하면서 이익을 챙기고 있다. 이런 광동인들의 성향에 따라 광동에는 암시장과 정상시장이라는 두 개의 시장이 존재하는데,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은 합법적인 시장가격보다 싸다. 한편 이러한 암시장은 국가와 개인의 이익을 저해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심각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편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광동에서 정상적인 상품은 정상적인 시장에서 이익을 창출해내면서 법을 준수하고, 불법적인 상품들은 암시장에서 그들 나름의 규율을 가지고 자생하고 있다.
미신(풍수)의 의존하여 평안을 찾다: 현재 광동은 부자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가리지 않고 맹신하는 미신 덕분에 몸살을 앓고 있다. 예로 광동인들은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혼인, 장례, 취직, 돈벌이에 이르기까지 모두 점괘에 의존한다. 상경영 또한 미신의 매력에 빠져 집을 나서기 전에 점술가 선생에게 몇 시에 집을 나서야 좋은지, 어느 방향이 좋은지 등 일일이 상담하여 결정하고, 상거래 담판을 짓기 전에도 상거래의 결과를 점쳐보기도 한다. 미신을 맹신하는 광동인은 ‘파(發: 부자의 의미)’란 음과 같은 8을 행운의 숫자로 여긴다. 그래서 8이 겹친 날짜를 최고의 길일로 여기며 집 전화번호나 핸드폰 번호에도 8이란 숫자를 유독 많이 사용한다. 한편 광동 화교들은 성공한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면 제일 먼저 조상의 묘를 단장한다. 조상의 묘를 좋은 곳에 써야 잘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관행은 광동 전역에 퍼져서 조상의 묘를 치장하는 데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고 있다.
광동인의 상업적 특색을 정확히 이해하자: 구미 서양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상하이인은 ‘반서구화된 동양인’으로 불린다. 광동 또한 예외는 아니지만, 그들이 전수받은 서양의 문화는 일반적으로 홍콩을 통해 건너온 것이다.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사람들의 성격이나 문화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광동인을 홍콩인과 연계하여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광동상인과 거래할 땐 이런 상업적 특성과 함께, 먹고 노는 것을 즐긴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고, 그들의 감성적인 성격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 인구가 1억이 넘는 광동 지역은 지역마다 다른 특색이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Chapter 2 : 중부지역
두뇌회전이 빠른 후난(湖南)ㆍ후베이(湖北)상인
머리 아홉 달린 새(구두조)는 후베이인의 상징: ‘하늘에는 머리가 아홉 달린 구두조(九頭鳥)가 있고 땅에는 후베이인이 있다.’ 영리하고 사나운 전설 속의 새와 후베이인이 같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후베이인은 이처럼 총명한 두뇌를 적극 활용해 변화하는 시장을 장악했는데, 상거래에서 후베이인이 발휘하는 지략과 방법은 무궁무진하여 광동인보다 수준이 높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이 가진 교활함 때문에,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지는 못했다. 즉 치고 빠지는 일부 후베이인의 줄행랑식 거래방법이 타인에게 해를 가하며 모든 후베인상인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것이다. 한편 후베이인은 체면을 매우 중요시한다. 따라서 후베이인과의 거래 시 체면만 잘 살려주면, 오히려 순조로울 수 있다. 반면 체면에 금이 가는 언행은 상거래를 망칠 수 있으니 피하는 것이 좋다.
모험을 즐기지만 상업성은 결여된 후난인: 후난인은 정치적 성향이 강해 정치와 군사 전략에 보통 이상의 수완을 발휘하였다. 그래서 현대 중국의 정치가와 군사전략가 중 상당수가 후난에서 배출되었는데, 모택동, 주룽지 등이 이곳 출신이다. 상대적으로 후난인의 상업은 뒤처져 거상이라고 할 만한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또 후난 출신 중에는 해외로 나간 화교도 드물다. 왜냐하면 동팅호 남쪽의 비옥한 땅에서 좋은 쌀이 많이 생산되므로 굳이 고생하며 해외로 나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품경제의 달콤함을 알고 난 후부터 그들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상경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욕심이 생긴 후난상인은 상경영의 도를 지키며 성실하게 장사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온갖 고초를 겪고 난 지금에야 비로소 사기로 부를 이루는 것은 순간이고, 결국 자신들의 발등을 찍는 일이라는 이치를 깨닫고 있다.
Chapter 3 : 동북지역
말솜씨가 좋은 베이징(北京)상인
현란한 말재주는 베이징상인의 밑천: 베이징인들의 언어적 수완은 타 지역 사람들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인데, 그들은 말로 자금성과 만리장성을 세울 만큼 허풍이 심하며, 정치적 부패와 사회적 혼란을 자신의 일인 양 떠벌린다. 따라서 말하기 좋아하는 베이징상인과 상거래를 하려면, 끝없는 수다를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어야 한다. 동시에 수다는 베이징인의 능력이자 자본이 되는데, 베이징인은 언변이 뛰어난 사람을 ‘달변가’라고 존칭하고, 상인들은 이들을 고용하여 상거래 상담의 우위를 장악하려 하기도 한다. 더불어 많은 기업인들은 그들의 언어를 빌려 자신들의 상품을 ‘세계 최고’, ‘절대절명의 작품’ 등으로 화려하게 포장해 대중을 현혹시키기도 한다.
유머감각도 뛰어나다: 북방인의 호쾌함과 오랜 세월 수도에서 살았다는 우월한 지위, 특이하면서도 매력 있는 베이징말이 어느 지역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유의 유머스러움을 배양해냈다. 말하자면 중국인의 유머는 완곡하면서 풍자적인 느낌을 가졌다. 그래서 중국의 유머는 언어 속에 유희가 있으며, 흥취를 중시한다. 그래서 가끔씩은 상대방에게 이야기를 전달할 때 자신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다: 베이징인은 길거리에서 행상을 하는 사람들도 즉흥적으로 토론을 벌일 수 있을 만큼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그리고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사람이 신분이 높은 관료일수록 도움이 된다고 확신하는 베이징인들은 언제나 끈을 잡으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꽈시(關係)가 형성되어야 하는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권력형 관료상인이 독점하다: 한마디로 베이징상인은 관료상인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실제로도 관료 출신의 상인과 직업상인의 비율이 절반씩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전통은 지금도 이어져 새롭게 등장한 베이징상인의 경영방식 역시 권력을 지향한다. 상경영권을 움켜쥔 행정 관료들은 자금, 세율, 토지 등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펼치기 때문에 다른 기업들과의 경쟁이 무의미하다. 그리고 권력을 이용해 폭리를 챙기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되어버렸다. 최근 중국 정부는 꽈시와 그에 따른 부패척결에 나서고 있지만, 당장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이징인과 상거래를 하려면 정치적인 감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정치적 입김에 익숙한 베이징상인과 거래를 할 때에는 명예직이나 공적 직함을 표시한 명함을 준비하는 것도 요령이다.
체면 때문에 허드렛일로 돈을 벌 수 없다: 베이징인은 자기우월감이 높아 거만해 보이기도 한다. 직업을 고를 때도 본인의 수준을 생각하지도 않고 높은 수준의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에게 굶어죽는 일은 작은 일이지만, 체면이 깎이는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따라서 베이징인이 꺼려하는 일들은 자연스럽게 외지인들의 차지가 된다.
흥정꾼과 야바위꾼이 판을 치고 있다: 베이징의 상인들은 남을 곧잘 따라하는 베이징인들의 심리를 이용해 ‘흥정꾼’이라고 불리는 이들을 고용한다. 여기서 말하는 흥정꾼과 야바위꾼이란 손님과 상인이 물건의 가격을 흥정할 때 암암리에 판매자를 도와주는 사람을 말한다. 예를 들어 보자. 쥬바오 시가의 그리 크지 않은 한 상점 밖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앞 다투어 싼 여행용 신발을 사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한 쪽에서는 사라고 외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사겠다고 외치는 통에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속에 몇 명의 청년들은 한꺼번에 수십 켤레의 신발을 들고서 “진짜 싸다”를 연발하면서 물건을 사갔고, 이 모습에 현혹된 많은 사람들은 너도 나도 돈을 꺼내서 적게는 한 켤레 많게는 두세 켤레까지 구입을 하였다. 그런데 상점이 끝나자 분위기를 잡았던 그 청년들은 상점으로 돌아와 그들이 사갔던 신발을 돌려주고 상점의 주인으로부터 돈을 받아 떠났다. 이러게 흥정꾼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쥬바오 시가에서 오전에 활동하는 사람만 최소 100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주로 티엔진인, 저지앙인, 동베이인들이 흥정꾼으로 활동하고 있다.
올림픽으로 제2의 도약을 노린다: 베이징은 수도라는 장점을 활용하여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2008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움직임이 활발하다. 고급 인력이 풍부하다는 이점을 바탕으로 다국적 기업의 아시아 본부와 연고 기술센터를 유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품위를 중시하고 학력 수준이 높은 베이징인에게 적합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이 같은 전략이 가장 적합하다고 정부 당국은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에 본부가 있는 다국적 기업으로는 모토로라, 노텔네트워크, 노키아 등이 있다.
Chapter 4 : 서부지역
고난을 극복한 산시(山西)상인
산시상업의 역사적 배경: 흔히 현대 중국상인의 선두주자로 저지앙인, 광동인과 푸지엔인이 거론되고 있는데, 산시인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역사상 산시상인의 활동은 매우 활발하였다. 명ㆍ청시대 산시상인들은 진(晋)상이라고 불렸으며, 남방의 휘저우상인과 나란히 상업계의 쌍벽을 이루었는데, 산시상인은 외국상인들에 의해 ‘중국의 베니스상인’이라 칭송을 받을 만큼 상업적 수완을 발휘하였다. 한편 산시는 만리장성 동서에 위치해 남북 상업로의 요충지에 있었는데, 이것을 활용하여 변경 군대에 식량을 제공하는 대신 소금 판매권을 받아 이익을 챙기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토지가 협소하고 날씨가 추운 대신 석탄, 철 등의 지하자원이 풍부해 석탄채광, 강철제련 등의 공업도 발달했다. 열악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산시인들은 지하자원의 풍부함에 힘입어 수공업을 발전시켜 상품경제의 큰 흐름 속에서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산시상인의 창업정신은 근검함과 인내심 : 춥고 토지가 적은 환경은 산시인에게 고향을 떠나 상업의 길을 걷도록 했고, 근검절약하며 고생을 인내하는 불굴의 정신을 갖게 하였다. 산시상인은 시커우(서구)에서 초원과 사막을 넘나드는 수천 리 장정에 올랐는데, 여름에는 양과 말을 교환했으며, 겨울에는 가죽과 교환했다. 그런데 여름에는 폭염으로, 겨울에는 추위와 역풍으로 죽어나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또 봄과 가을에 몰아닥치는 황사에 의해서도 사람들이 묻히곤 했다. 이렇게 험난한 여정에 섰던 산시상인들에 의해 중국의 찻잎은 끊임없이 몽고와 러시아에 수출되었다.
한편 산시상인의 신용은 매우 유명하다. 오직 신용으로만 거래한 후, 분기별 결산방식에 따라 결제가 이루어지는데, 모든 성의 상업센터는 매 분기말 이전 채무를 결산하고 새로운 채무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운영하여, 상인과 고객 간의 돈독한 신뢰를 쌓았다. 또 규정에 따라 이행하지 않는 상인은 질책을 받았고 추후 거래에서도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산시상인은 계산에 능하였으나 이익에 급급해하지 않고 사람들을 대했으며 신용과 의리를 지켰다. 즉 이익과 의리라는 대립된 관계로 상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의리와 이익을 균형 있게 추구하였던 것이다.
관운장을 받들어 내부의 응집력을 향상시키다: 산시상인은 관운장에 대한 특별한 정을 가지고 있다. 각지의 산시회관과 상인 집안에는 모두 관운장 신상을 걸어놓고, 어떤 지방은 관운장 사당을 건립하여 정해진 날마다 제사를 올린다. 그런데 산시상인은 왜 관운장을 숭배하게 되었을까? 아마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조직을 이룬 곳에 적합한 지도자를 찾는다면, 삼국시대의 관우를 따라올 자가 없었을 것이다. 보충 설명하면 관우는 산시 지에현의 인물로 ‘도원결의’의 일화로 유명하고, 충의와 의리의 화신이자 용맹한 대영웅인데, 이러한 관우를 공동의 숭배자로 모심으로써, 사람들은 관운장의 제사 때마다 심신의 위로를 받고, 또 관운장의 충의를 본받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산시상인의 상사는 편협하지 않게 관용을 베풀고, 부하들은 신중하면서 경솔하지 않게 처신했다. 그리고 상시상인은 법을 어기는 자들과 어울려 청탁을 하는 사람들은 바로 상조직에서 제명하였고, 상벌의 명확한 구분을 두었던 법으로 엄격하게 규제하면서 서로 보완하게 하여, 극단으로 치닫기 전에 중재를 했다.
예로부터 아라비아 상인, 유대 상인,
중국 상인을 세계의 3대 상인으로 꼽았다.
요즘에는 아라비아 상인 대신,
인도 상인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고도 한다.
한편 세계 3대 상인으로 불릴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그들의 거래규모도 대단했지만,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면 국적과
피부색을 불문하고 어디든 찾아가 물건을
팔아 이익을 남기는 장사수완 덕분이다.
그런 중국의 경제가 최근 10여 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는데,
중국이 현재와 같은 속도로 나아간다면
미국을 추월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경제학자들은 그 시기를
10년 이내로 전망하고 있는데,
이 책은 중국의 경제발전을
이끈 각 지역 상인들을 분석한 책이다.
중국 비즈니스는 아는 만큼
성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지역별로 상인들의 특성이나
현지 사정 등 편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즉 성공적인 중국 진출을 위해서는
각 지역별 상인들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해 공략하는 것이 중요한데,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각 지역별 상인들의 이야기 - 영리하고 변통력 있는 저지앙상인,
용감한 푸지엔상인, 상술이 뛰어난 광동상인,
두뇌회전이 빠른 후난ㆍ후베이 상인,
말솜씨가 좋은 베이징상인,
고난을 슬기롭게 극복한 산시상인 등 - 를 들려주면서,
상거래 시에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대비책도 제시하고 있다.
한편 중국인의 성격을
한마디로 정리하여 말하기는 어렵다.
그들의 전체적인 국민성을
특징적으로 요약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다만 저자가 이 책에서 제시한
두드러진 특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보수주의적인 색채와 가족주의의 뿌리가 깊다.
둘째, 체면을 목숨만큼 중요하게 여긴다.
셋째, 관료주의적 인간관계를 중시하며 이기주의가 팽배하다.
넷째, 숙명론적인 낙천주의에 물들어 있다.
다섯째, 돈에 대한 가치부여와 상인 정신의 우수함을 발휘한다.
여섯째, 중용을 따르는 평화주의가 살아 있다.
일곱째, 근검ㆍ절약 정신으로 경제생활을 꾸린다.
여덟째, 애매모호한 언어구조와 대화술에 익숙하다.
'책 > 그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13억의 중국 20억의 기회 - 이학진 지음 (4) | 2021.02.09 |
---|---|
중국인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 - 리니엔꾸 지음 (6) | 2021.02.08 |
중국 전문가 10인이 말하는 ‘대륙의 힘’中國通(중국통)-황의봉 지음 (0) | 2021.02.06 |
한권으로 읽는 중국 - 이익희 등저 (0) | 2021.02.05 |
현대 중국의 이해-Kerry Brown 지음 (0) | 2021.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