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위협하는 중국의 황금물결
BRICS에서 G2로, 경제 대국의 새 지평을 열다
AIIB-패권을 꿈꾸다: 3~4년 전만 하더라도 중국은 BRICS 즉 브라질, 러시아, 인도 등과 함께 협력기구를 만들어 경제 블록화를 통해 세계화 추세에 영향을 주었다. 결국 이 임의기구는 중국과 러시아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흐지부지되었지만, 중국이 G2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은 여기서 그 위세를 멈추지 않고 최근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 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을 공식 출범하여 지금까지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던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 등에 대응 가능한 체제를 갖추었다. 이는 미국 중심의 국제 금융 질서에 맞서 새로운 국제 금융통화 질서를 구축하겠다는 의도이다. 최근 미국을 제외한 57개국이 AIIB 창립 회원국으로 가입함으로써 중국의 세계경제 새판 짜기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여기에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과 연관 지어 경제 대국의 야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다름 아닌 일대일로이다. 이를테면 육상에서 실크로드 경제지대와 해상에서 21세기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대륙을 도로와 바닷길로 연결, 주변 지역을 종합적으로 개발하자는 것이다. 세계 60여 개국, 30억 명의 인구가 영향권 안에 드는 어마어마한 프로젝트이다. 중국 정부가 밝힌 계획에 따르면 2049년까지 30년 동안 정책, 인프라, 무역, 자금, 민심 등 5가지 분야에서 관련 국가 간 교류나 연결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미래사적인 측면으로 보면 중국의 세계적 패권 경쟁 위력이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황금색 물결, 중국은 무엇인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고속 성장을 거듭해 온 중국경제는 2001년 12월 세계무역기구 가입 이후 세계 최대의 잠재시장으로 떠오르면서 새로운 발전 단계로 접어들었다. 무역 규모나 외화보유고, 외국인 직접투자 등을 따져 보아도 중국은 세계 강국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중국은 2010년 10.3%라는 두 자릿수 GDP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2대 경제 대국 자리를 차지하였다. 이것을 두고 일시적인 현상 정도로 간주하기에는 중국시장이 매우 견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중국시장을 크게 둘로 나누면, 하나는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는 시장과 다른 하나는 낮은 인건비로 고급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세계의 연구개발기지 역할을 하는 시장으로 양분할 수 있다. 중국은 1993년 해외 자본을 가장 많이 유치한 개발도상국으로 등장한 이래 2002년에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국 자리에 올랐고, 2006년에는 마침내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대 외화보유국이 되었다. 중국은 세계인구의 20%, 미국의 4배나 되는 인구를 가진 나라로 저렴한 고급 인력이 풍부하다. 중국은 매년 이공계 대학 졸업생을 100만 명, 석ㆍ박사를 19만 명씩 배출하고 있으며, 외국 유학에서 돌아오는 인재가 해마다 1만 명을 넘는다. 그 밖에도 인수합병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중국의 힘은 가공할 만하다.
그렇다면 왜 중국은 인수합병에 그토록 몰두할까? 먼저 중국 기업들은 상품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입하기보다 처음부터 경쟁력 있는 기업을 사들여 단숨에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레노버나 모토로라 등 기술과 브랜드가 입증된 세계적 기업을 인수한 것도 다 그런 이유이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도 한몫했다. 국내시장에서 독점 영역의 대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대기업의 성장이 다소 지체되고 있음을 간파한 중국 정부는 인수합병 규제를 대폭 완화하여 외국에서 10억 달러 미만의 인수합병을 보다 자유롭게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관련 외환 규정도 완화시켰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풍부한 자금력을 가진 중국이 광대한 시장, 기술력과 브랜드 그리고 숙련된 인력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미국을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 입장에서 보면 중국의 미국 진출이 달가운 것만은 아니다. 안보 관련 기술 유출을 이유로 화웨이가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막는 사례 등을 보면 미국은 중국의 진출을 호혜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대한 인구와 그에 따른 내수시장, 그리고 세계적 기업의 인수합병……. 황금색 물결, 그들이 누구인지, 그들의 진정한 경쟁력은 무엇인지 묻고 또 물을 수밖에 없다.
글로벌 차이나, 이 기업을 주목하라!
알리바바와 텐센트, 핀테크의 혁신을 이룩하다
2015년 금융과 ICT업계의 화두는 단연 핀테크이다. 핀테크란 파이낸셜과 기술의 합성어로, 모바일 결제 및 송금부터 개인 자산관리와 크라우드 펀딩 등 정보기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금융기술을 말한다. 최근 전문가들은 핀테크의 혁신적인 주자로 중국의 알리바바와 텐센트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핀테크 전쟁’을 위해 자사의 화력을 집중하며 선두를 다투고 있다.
먼저 알리바바의 외형 성장은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기록될 만큼 매머드급이다. 종업원 2만 3,000명에 상품 구매 회원 수 2억 7,900만 명, 거기에 하루 사이트 방문자 수가 1억 명, 상품 판매 회원 수 850만 명, 연간 주문 145억 건으로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매출만 보더라도 2014년 3분기 168억 2,900만 위안으로 2013년 동기 대비 무려 53.7% 성장하였으며, 영업 이익률이 40%가 넘어 미국 아마존닷컴과 이베이를 앞서고 있다. 알리바바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2014년 미국 증권거래소에 상장함으로써 250억 달러라는 사상 최대 자금을 확보했다. 그렇다면 핀테크 혁신 기업인 알리바바의 성공 요인은 무엇인가?
첫째, 주력 서비스인 타오바오와 티메일에서 나오는 광고 수수료와 판매자의 웹페이지 구축과 관리 서비스에 의한 탄탄한 매출 기반을 들 수 있다. 알리바바는 거래에서 발생하는 판매 수수료는 무료로 하되, 포털 사이트 광고 서비스 모델로 사업의 승부를 걸었다. 이는 구글과 네이버와 유사한 검색광고 방식으로 고객이 상품을 검색할 때 판매자 정보를 노출시키는데, 이것을 광고비로 산정하고, 덧붙여 구매자들이 검색어를 클릭할 때는 클릭한 건수에 클릭 1회당 광고비용을 곱해 수익을 올린다.
둘째, 간편한 결제 방식과 소통 창구를 제공하여 신뢰감을 형성하였다. 알리바바는 고객과 판매자 모두에게 고루 이익이 돌아가는 건강한 유통 생태계 조성이 목적이었다. 따라서 신용카드, 알리페이은행계좌를 통해 현금을 충전하는 금융 서비스 등을 통해 스마트폰이나 각종 메신저를 이용하여 송금 결제를 가능하게 하였다. 또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의사소통을 위해 알리왕이라는 메신저 서비스를 제공하여 거래 과정에서의 불협화음을 줄여주었다. 마지막으로 알리바바는 중국 기업으로는 드물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창업자 마윈과 차이 충신 부회장은 공인 신탁 설립을 위해 알리바바 주식 2%를 내놓았는데, 금액으로는 중국 중서부 지역 도시 하나의 1년 재정수입과 맞먹는 규모이다. 그들은 이 재원을 통해 환경, 의료, 교육 문화 분야에 고루 투자하겠다고 천명하였다.
이제 알리바바의 맞수, 텐센트는 어떻게 핀테크의 주자로 남았는지 알아보자. 첫째, 텐센트는 중국 인구의 절반이 사용하고 최대 동시 접속자 수가 1억 4,000만 명에 이르는 중국 최대 인터넷 메신저와 중국 최대 모바일 메신저인 위쳇을 보유하고 있다. 텐센트는 이 막강한 플랫폼에 게임, 모바일 포털, 전자상거래 등 다양한 콘텐츠를 사용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둘째, 중국시장과 사용자에 적합한 서비스 기획 역량이었다. 텐센트는 중국 최대 모바일 메신저인 위젯과 통합하는 방식으로 효율적이고 기술적인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였다. 현재 중국 결제 시스템 3위권 내로 바짝 다가선 텐페이는 이베이와 비슷한 시스템으로 먼저 클라이언트가 고객의 계좌에서 직접 온라인 결제를 진행할 수 있게 도와줄 뿐 아니라 심지어 사용자들이 매장에서 코드를 스캔하여 상품을 구매할 수도 있도록 했다. 아울러 위젯의 장점, 즉 위치 기반 시스템을 탑재하여 거리별로 사용자를 추가하거나 유통업체, 레스토랑 등 각종 가맹점 광고를 보낼 수 있어 ‘알리바바는 판매자를 잡고 텐센트는 사용자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텐센트의 성공 요인은 해외 자본을 유치하고 관련 기술 보유 기업들을 적극 인수합병한 데 있다. 텐센트는 QQ 등의 서비스를 통해 얻은 자본력으로 시장에서 압도적 경쟁우위에 있는 수많은 IT회사를 인수합병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이라 할 수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개발한 라이엇 게임을 인수하였고, 카카오톡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여 대주주가 되었다.
최근 알리바바는 스마트폰을 통해 자기 얼굴만 인식하면 결제가 가능한 기술을 도입한다고 발표하였다. 일명 ‘스마일 투 페이’라 명명한 이 기술은 향후 온라인 모바일 지급 결제 시스템의 혁신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또 ‘쿵푸’라는 결제 방식은 신체 부위, 소지품 등을 미리 저장해두면 스마트폰 없이도 지정 이미지 인식을 통해 결제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다.
핀테크가 미래 신성장 산업으로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 분석이다. 핀테크 역시 앞서 거론한 대로 중국 정부의 절대적인 지원에 힘을 얻고 있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중국의 핀테크 혁명은 곧 우리 안방 문을 두드릴 것이며 결국 우리 산업구조를 바꿔 놓을지 모른다. 우리가 경계의 눈으로 알리바바와 텐센트를 바라보는 속내가 복잡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중국 세계적 기업 경쟁력의 근간, 온주상인
중국 기업의 경쟁력을 왜 온주상인에게서 찾는가?
1912년부터 1949년 이전의 중국경제는 개인 소유 중심의 민영경제가 주를 이루었으나 마오쩌둥 시대에 이르러 중국은 민간기업을 전부 소멸시키고 ‘사회주의 개조’를 완성하였다. 그 결과 단일 국유제를 기초로 하는 계획경제 체제가 확립되어 민영경제가 대부분 소멸하였으며 시장경제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이런 암흑시대를 지나 1978년 개혁개방을 추진한 덩샤오핑은 농촌 개혁을 시작으로 부를 얻기 위한 개인의 성취 의욕을 장려하였다. 이때부터 민영 부문에 개체기업과 사영기업이 활성화되었다. 특히 중국 저장성 등 남부에 위치한 온주(원저우) 지역에서는 ‘원저우모델’로 대표되는 민영경제, 즉 기업가와 민간주도 지역경제가 획기적으로 발전하였다. 여기에는 남다른 원저우만의 특성이 있었다.
원저우는 지역 자원의 한계, 즉 토지 등 생산요소가 절대 부족했다. 따라서 온주상인을 중심으로 비즈니스 네트워크와 원거리 무역을 통해 자생적으로 가족이 중심이 된 새로운 경영 모델로 발전하였다. 원저우 지역에서 민영경제 형성과 이를 대표하는 모델은 인문 지리적 요소와 함께 역사적 변천 과정에서 축적된 내재적 역량과 깊은 관련이 있다. 중국의 세계적인 기업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출발은 개체기업이나 사영기업 형태를 띠고 있으며, 시장 상황에 따른 변화와 전통을 조화롭게 지켜가고 있다. 결국 오늘날 중국의 세계적 기업들 생성과 발전에 온주상인이 직ㆍ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샤오미, 화웨이와 같이 중국을 배경으로 세계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기업은 그들의 심리 속에 온주상인의 전략과 사고가 굳게 자리 잡고 있음이 명백하다. 따라서 중국의 빠른 발전과 그 배경 그리고 그들만의 경쟁력을 투시하기 위해서는 온주상인을 깊이 관찰할 필요가 있다.
세상을 얻는 온주상인만의 스타일은?
온주상인은 14억 중국인의 경영 신화를 대표하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대상인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탁월한 상인으로 꼽힌다. 온주상인은 불우한 환경을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빠른 속도로 부를 축적하였다. 그들은 ‘최고, 최대가 아닌 시장 최적주의’를 지향하며 무서운 속도로 세계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온주상인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 이후 그 어떤 지역의 상인보다 적극적으로 상업 활동을 펼쳤으며, 이후 과감한 해외 진출로 세계 상권에서 위상을 떨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87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원저우 출신 화교는 200만 명에 이른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중국 기업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게 한 근간도 온주상인에게서 찾을 수 있다. 오늘날 온주상인은 ‘돈을 가장 잘 벌고, 돈 버는 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온주상인들을 이와 같은 부의 대명사로 만들었을까? 그들의 특징은 무엇이며, 어떠한 철학과 기질을 가지고 있을까? 온주인의 면모를 잘 드러내 주는 그들만의 스타일을 분석해보면 4가지로 정리된다.
① 사람을 사로잡는 화려한 옷차림과 현란한 말솜씨: 중국인 가운데 일단 화려한 옷차림에 현란한 말솜씨를 뽐낸다면 원저우 출신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 중국에서 ‘원저우 스타일’이란 밝은 성격과 매끄러운 화술, 말과 행동의 신중함, 뛰어난 현실감각을 의미한다. 이런 기질을 가진 온주상인은 최전방 거래 현장에서 활동하며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매개하고 지역 장벽을 무너뜨려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천하제일의 세일즈맨’이라는 평가를 받는 온주상인은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돈을 주울 수 없다’, ‘노력한 만큼 번다’는 중국의 전통상인 정신에 충실하다.
② 인적 자원에 충실한 개미군단의 저력: ‘중국의 유대인’이라 불리는 온주상인은 유대인처럼 집단의식과 민족성이 강하며, 독립성과 자주의식, 창업에 대한 열망 또한 남다르다. 무엇보다 온주상인은 무자본으로 고수익을 얻는 ‘무점포 사업’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런 전략은 용기와 배짱, 끈기가 없으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온주인이 믿는 것은 ‘물적 자본’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 즉 ‘인적 자본’이다. 1980년대 중국을 풍미했던 ‘원저우식 장사’는 한마디로 개미군단, 인해전술이었다.
③ 과감한 도전정신과 근성: 개혁개방 이후 온주인은 무리를 지어 중국 전역을 휩쓸고 다녔다. 척박한 고향 땅을 떠나며 그들이 다짐한 마음속 결심은 딱 한 가지였다. ‘부자가 되기 전에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자본금이 턱없이 부족했던 온주상인은 주로 소량 다품종, 박리다매 전략을 써서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해 나갔다. 그야말로 상업계의 게릴라들이었다. 그들은 안전을 지향하기보다 과감한 도전정신으로 중국 모든 지역과 세계시장에서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다. 또 이들은 어느 한 회사에 소속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적어도 2개 이상의 회사에 몸을 담고 철저히 실력에 따라 수당을 받는다. 마치 개개인이 하나의 기업처럼 움직인다. 무자본, 무설비, 무자산의 중간상인인 그들은 돈을 벌 수 있다면, 수천 봉우리의 산과 수만 갈래의 물줄기를 건너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④ 위기를 헤쳐나가는 불굴의 의지: 온주상인은 영리하고 재치가 넘치며, 말과 행동이 소탈하다. 모험심이 강한 그들은 감나무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있기보다 직접 감을 따기 위해 나무를 오르는 사람들이다. 일을 벌여놓기도 잘하지만, 수습 또한 잘한다. 그리고 한번 일을 시작하면 좀처럼 중도에서 포기하지 않는다. 비록 현재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뚜렷한 신념과 목적을 가지고 당면한 위기를 하나하나 극복해 나간다.
어디서든 시장을 만드는 탁월한 현지 적응력
흔히 중국 사람들은 온주인을 ‘원저우 나그네’라고 부른다.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든 개의치 않고 장사를 하러 떠나는 그들의 습성 때문이다. 세계 각국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차이나타운에서 주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들이 바로 온주상인이다. 명분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온주상인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되면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기 영역을 확보한다. ‘동양의 유대인’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니는 것도 모두 이러한 기질로 인한 것이다. 프랑스에 정착한 한 온주상인은 ‘우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을 타고 어디로 흘러가든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현지 적응에 탁월한 감각을 자랑한다. 타이저우 절강공상회 장다쑹 회장 역시 이것을 온주인의 특징으로 거론하며 ‘온주인은 전 세계를 집으로 삼고, 돈을 벌 수 있다면 어디든 간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온주상인에게 고향을 떠나 외지로 나가는 것은 지극히 일반적인 일이다. ‘천하의 돈을 천하가 쓴다’라는 사고방식을 지닌 이들은 돈 벌 기회를 찾아 전 세계로 뻗어 나가며 세계를 자신들의 생존 공간으로 만들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에 이어 1990년 자본주의 시장 개방에 이르기까지 ‘중국산’ 표기를 단 원저우의 소형상품이 세계로 팔려나간 것도 중국인의 해외 진출에 힘입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온주인은 서유럽과 미국으로 많이 이주했는데, 특히 미국과 프랑스, 이탈리아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그 밖에도 많은 나라에 정착하고 있다.
미국 내 온주인 인구는 23만 명을 넘어섰으며 이들이 운영하는 사업들이 각 도시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데 특히 뉴욕에 반 이상이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같은 고향 사람은 같은 업종끼리 경쟁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에 따라 서로 협력하며 아메리칸드림을 이루어 냈다. 특히 9ㆍ11 사건 때 대량의 성조기를 신속하게 생산 판매하여 ‘돈 버는 곳에는 반드시 온주인이 있다’라는 통설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위기에 더욱 빛나는 온주상인의 생존전략
불모지를 기회의 땅으로 만드는 신념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서는 한동안 대규모 인력 이동이 이루어졌다. 이동의 흐름은 대체로 내륙에서 연해로, 북방에서 남방으로 이어졌다. 대부분의 중국인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도회지나 공업지대로 떠났지만 온주인은 오히려 반대로 행동했다. 내륙이든 북방이든 새로운 개척지이든 오지이든 돈을 벌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옥석을 가리지 않았다. 그 가운데 가장 외진 라싸에서도 몇백 명의 온주상인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라싸는 해발 3,600m의 고원지대로 다른 지역 사람들은 호흡곤란과 두통, 구토 등을 겪어야 해서 좀처럼 살기 힘든 곳이다. 그러나 온주인에게 살지 못할 땅은 없고, 장사하지 못할 시장도 없다. 온주상인은 1970년대 말부터 라싸에 정착하여 활발하게 상업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밖에도 티베트를 비롯한 세계의 모든 오지에서 온주인의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모두가 고개를 젓는 불모지가 그들에게 기회의 땅이다. 그러나 온주상인에게 ‘통찰력’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진흙 속에서 진주를 캐듯 어떤 환경에서도 돈 벌 만한 일을 찾아낸다. 그만큼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이 탁월한 것이다. 또 시장을 예측하고 파악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재빨리 실행에 옮기는 행동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온주상인이 있다.
끊임없이 준비하고 혁신하라
온주인은 기회를 포착하고 시장을 개척하는 힘이 탁월하다. 온주인은 늘 남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는데, 여기에는 그들의 위기의식이 한몫했다. 땅이 척박하여 농사짓기에도 마땅치 않았고, 북ㆍ서ㆍ남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데다 교통은 오직 상하이로 가는 해로밖에 없어 무역을 할 수도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뼛속 깊숙한 곳에 ‘적자생존 법칙’이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온주인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며, 살고 싶으면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항상 마음속에 넣어 두고 준비했다. 동시에 살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킬 줄 아는 카멜레온 같은 지혜를 키웠다.
안정보다는 도전과 혁신을 추구해 오던 원저우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지금까지의 경제전략으로는 새 시대에 맞춰 살아남기 힘들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까지 고수해 오던 가족기업 형태에서부터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원저우는 지금까지 소자본으로 고수익을 창출하고 위험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업구조나 관리방식 등에서 가족 중심주의를 지켜 왔다. 그러나 가족기업이 태생적으로 짊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불완전성과 임원의 자질, 관리 방법의 문제점 등은 계속해서 성장의 걸림돌이 되었다. 마침내 그들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했다.
원저우의 창청그룹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전형적인 가족경영 형태를 지니고 있던 창청그룹은 개혁을 통해 새 시대에 걸맞은 혁신기업으로 거듭났다. 2001년 새해 벽두에 열린 이사회에서 투자 방향을 논의하였으나 그룹과 구성원, 판매회사와의 이견 등으로 다섯 차례나 결렬되었다. 서로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판단한 이들은 임원진과 회사의 경영 방식을 대대적으로 수술하기로 했다. 기존 6명으로 이뤄진 이사진 가운데 2명을 해임하고 7명의 새로운 이사를 선임했다. 동시에 학계 전문가들을 영입하여 기업의 정책 관리 수준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가 하면, 법인체제로 전환하여 소유와 경영을 철저히 분리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창청그룹은 세계적인 전기ㆍ전자업체인 지멘스와 손을 잡을 수 있었고, 가족기업의 불리한 조건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이처럼 성공을 향한 온주상인의 변화와 혁신은 참으로 파격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고 만다. 낡은 사고방식을 고집하다가는 모든 것을 잃는다. 사실 경영을 하다 보면 자기 신념과 구태의연함을 구분하지 못한 채 자기 안에 묻히기 쉽다. 이런 때 유연한 사고는 필수적이다. 개인과 기업 모두에게 비약적인 생각은 기술과 자본을 앞선다는 점을 결코 간과하면 안 된다.
독특한 발상, 사고의 전환
온주상인의 대부분은 자수성가한 사람들이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던 가난한 유년시절을 극복하여 모두가 우러러보는 사업가로 변모한 예가 수두룩하다. 가난해서 스스로 창업할 수 없었지만, 그 대신 타인 자본을 활용할 줄 아는 지혜가 있었다. 흔히 남의 역량을 빌려 자기 이익을 챙기는 것을 두고 ‘남의 닭을 챙겨 알을 건진다’라고 하는데 온주상인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돈 들이지 않고 문제 해결하기, 적은 돈으로 최대한의 노동력과 이윤을 확보하기, 다른 사람의 돈으로 자기 일을 해결하기 등은 온주상인의 특기이다. 이러한 온주상인의 상술을 배우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고의 전환으로 부를 쌓은 대표적인 인물로는 원저우의 왕웨이지안을 들 수 있다. 그는 많은 온주상인들이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장사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눈여겨보던 중 베이징의 시장 관리체계가 허술하고 자기 가게를 소유한 상인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간파하였다. 왕웨이지안은 재빨리 친구들과 협력하여 도매 쇼핑몰을 짓기로 하였다. 베이징시장을 개척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저우의 전체적인 이미지가 좋아질 거라는 나름의 계산도 깔려 있었다.
그는 건축비와 운영비를 조달하기 위해 은행과 지인들로부터 돈을 빌렸다. 그런 다음 1,800개의 점포가 입점할 수 있는 베이징 쌍우피발센터 건설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상가가 완성되기까지 1년의 기간 동안 온갖 수단을 동원해 입점 희망자를 모았지만 여전히 800여 개의 점포가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온주상인의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온주상인은 어차피 빈 점포가 상당수 남아 있으니 위험 부담을 안고 굳이 먼저 입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상황을 지켜보다가 쇼핑몰이 잘되면 그때 입점해도 늦지 않았다.
그렇지만 왕웨이지안에게는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고심한 끝에 ‘상인들이 찾아오지 않을 수 없게끔 먼저 상황을 이끌어가자’라고 결론을 내렸다. 개장을 이틀 앞둔 날, 왕웨이지안은 자전거 체인 800개를 산 뒤 다음과 같은 공고를 냈다. “개장 날 무료로 체인을 드립니다. 그 체인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점포의 문을 잠근 뒤 절차를 마치면 그 점포는 당신의 것입니다.” 공고를 본 상인들 마음이 갑자기 급해졌다. 이미 계약한 상인은 목이 더 좋은 상점을 차지하고 싶어 했고, 아직 계약하지 않은 사람들은 입점하지 못할까 봐 조바심이 났다. 애초에 입점 계획이 없던 사람들까지 욕심을 냈다. 마침내 개업 당일, 쇼핑몰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미 계약을 한 사람이든 하지 않은 사람이든, 심지어는 계획이 없던 사람들조차 체인을 차지하려고 애써다. 순식간에 체인 800개가 동났다. 상인들은 체인으로 점포를 잠갔고, 결과적으로 왕웨이지안은 체인으로 상인의 마음을 잠근 것이다. 이후에도 그는 독특한 이벤트성 홍보 방식을 통해 쌍우피발센터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왕웨이지안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각종 정보를 능숙히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한발 앞서서 그 정보를 사업으로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아무리 좋은 정보를 남들보다 먼저 낚아챘다 하더라도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일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사업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역발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생각을 바꿔서 독특한 발상으로 흐름을 바꾸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세상을 지배하는 원저우 DNA
신용 원저우 - 신용은 곧 생명이다
원저우시는 2002년 초부터 ‘신용 원저우 만들기’ 운동을 벌였다. 시 전체적인 이미지 향상과 더불어 경쟁력을 키우고, 투자환경을 개선하고 시장경제 질서를 바로잡아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특히 원저우 경제를 세계경제 흐름에 발맞추어 ‘품질 원저우’와 ‘브랜드 원저우’에서 한층 앞서 나간 ‘신용 원저우’로의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신용에 관해 원저우만큼 뼈저린 경험을 한 도시도 드물 것이다. 1987년 8월 8일, 항저우에서 일어난 대화재는 단순히 저질 신발 수천 켤레의 상실이 아닌, 원저우의 이미지, 나아가 신용에 커다란 손실을 끼쳤다. 이어서 1990년대 국가기관의 조사로 밝혀진 저질 전자제품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원저우 상품은 저질 상품이라는 낙인이 찍혀 중국 내 많은 도시에서 원저우 상품 판매를 회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한 번의 화재가 원저우의 신용까지 송두리째 불태웠다. 그 후 원저우시 정부는 참혹한 실패를 거울삼아 명품 브랜드 만들기에 앞장섰다. 이러한 노력이 성과를 거둬 7개의 상표가 ‘중국 유명 브랜드’에 선정되었으며, 1,000여 개의 기업이 ISO9000 품질 시스템 인증을 획득하였다. 또 수년 후 ‘중국 신발의 도시’, ‘중국 가전제품의 도시’ 등 19개의 ‘중국’이라는 명칭이 붙는 제품 생산기지로 발돋움했다.
이제 원저우 상품은 더는 ‘싼 게 비지떡’이라는 조악한 싸구려 제품이 아니다. 믿을 수 있는 지역 브랜드로 탈바꿈하였으며, 원저우 지역경제는 고속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온주상인은 지역 발전 방식에서 신용은 절대 불가분의 요소라는 것을 몸소 체험했으므로 품질 좋은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남다르다. 이러한 온주상인의 확고부동한 자세는 신용 원저우를 현실화하는 데 큰 힘이 되었으며, 특히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신용 원저우가 되기까지 시간과 비용,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다.
최근 원저우시에서는 ‘정부가 주도하고 기업이 행동한다’라는 이념 아래 신용센터와 네트워크를 구축하였다. 이곳에서 각 기업의 신용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또 중국 최초로 기업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기구를 세워 수백 개 기업을 대상으로 신용을 평가하였다. 이것은 곧 신용 원저우를 건설하는 기반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협상 원저우 - 냉철한 상황 인식으로 협상 주도
원저우를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교과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맨손으로 기업을 일으키는 법, 해외로 진출하는 법, 정부의 지원 없이 경영하는 법 등 다양한 전략을 배울 수 있다. 2013년 기준 원저우에는 종업원 7명 이하인 개체호가 24만 개, 민간기업이 13만 개 등 총 37만여 개의 기업이 존재한다. 이 수치도 어마어마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인구 19명당 1명꼴로 사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원저우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이곳 온주인 10명 가운데 9명은 사장이고, 나머지 1명은 사장이 되려고 준비하는 사람이다.”
온주인들은 왜 이토록 사업을 하고 싶어 할까? 정답은 원저우 부모들에게 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자녀들에게 상인 기질이 몸에 배도록 철저히 교육한다. 어린이날 행사로 ‘돈벌이 체험학교’를 운영할 정도이다. 심지어 문화혁명 때도 밤에 몰래 물건을 만들어 내다 팔았을 만큼 장사꾼 기질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런 만큼 이들은 장사꾼이 지녀야 할 협상 능력이 탁월하며 정부의 개입이나 지원 없이도 난관을 이겨나갈 힘을 갖추었다. 우리는 협상의 달인인 온주상인에게서 진취성과 대담성, 신중함, 실리주의를 배워야 한다. 원저우는 대만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공산 혁명 후 30년 동안 중앙정부로부터 외면받았다. 원저우 사람들은 가내수공업을 하거나 외지로 나가 날품을 팔았다. 신사복 브랜드 바오시냐오의 우즈쩌 회장은 척박한 환경이 오히려 상업적 역량을 강화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온주인이 천부적인 장사수완을 발휘한 데는 그들이 지닌 탁월한 협상기술 또한 한몫했다. 과거 오랜 시간 동안 온주상인은 열세에 놓인 약자였는데 이것이 협상에서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더 잃을 게 없는, 밑져야 본전인 상황이 그들에게 과감성과 결단력을 키워주었던 까닭이다. 온주인들은 협상에 불리할수록 정보를 최대한 많이 수집하여 협상 테이블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든다. 서로 탐색을 하면서 서서히 협상을 진행하다가 상대가 눈치를 채기 전에 속전속결로 결론을 도출한다. 그러므로 온주상인과 협상할 때는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온주상인과 협상할 때 주의해야 할 3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온주상인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자랑해서는 안 된다. 특히 자기 재정에 대해서는 일체 입을 다물어야 한다. 자신이 영리하고, 재치 있으며, 돈이 많다고 자랑하는 순간 그들의 표적이 된다. 둘째, 의표를 찌르는 그들의 말과 행동에 당황해서는 안 된다. 온주상인이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대처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여 설령 그들이 우세해 보이더라도 주도권을 잃지 말아야 한다. 셋째, 그들의 두꺼운 얼굴과 배짱에 흔들리면 안 된다. 끝까지 자기 태도를 고수해야 한다. 온주상인은 까다롭고 전문성을 요구하는 대목에 이르면 자신은 단지 판매 대리인일 뿐이라고 오리발을 내미는 경우가 많다. 자기 이익은 철저하게 따지면서도 상대방의 요구에 대해서는 한 발짝 물러선다.
최근 중국은 ‘중화천하’라는
질서 아래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실용주의 노선을 펼쳤던
덩샤오핑과 온주(溫州, 원저우)
상인이라는 두 축이 있다.
온주상인은 삶을 향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실리를 추구하는 탁월한 사업 수단으로
세계 어디에서든 큰 수익을 내고 있다.
‘동양의 유대인’이라 불릴 만큼 해외 진출에 열성적이며,
세심한 농업경영, 뛰어난 손재주를 이용한 수공업과
산업 분야에서 특유의 장사수완을
발휘하여 모든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원저우는 저장성 남부에 있는 작은 항구도시이다.
대만과 인접해 있다는 지리적 이유만으로
중앙정부와 성정부로부터
전혀 지원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해안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이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와 단절된 채 고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인구 750만 명의 원저우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였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만의 독특한 발전 방식에 있었는데,
다름 아닌 소수의 경공업 제품 생산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이는 마을 하나가 곧 생산단위가 되는 독특한 생산방식이다.
현재 원저우에서 만들어지는
신발, 의류, 피혁, 안경, 라이터 등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시장으로 팔려가고 있다.
보잘것없었던 작은 항구도시 원저우는
세계 최대의 경공업품 생산기지가 되었다.
원저우의 고도성장에 고무된 중국의 모든 지역에서
“원저우 정신을 배우자!”라는
구호가 널리 울려 퍼지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뿐만 아니라 온 세계를
놀라게 한 온주상인의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① 우리 발길이 닿는 곳이 원저우 땅이다:
온주인은 ‘하늘 아래 시장 아닌 곳이 없다.’는
투철한 상인 정신으로 세계 곳곳에서 사업을 벌인다.
온주인 750만 명 가운데 200만 명이 고향을
떠나 중국 전역 또는 해외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온주인은 발길이 닿는 곳마다
또 하나의 ‘작은 원저우’를 만든다.
② 시장 흐름을 읽는 예리한 안목과 민첩한 실행력:
온주인의 안목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남들이 좀처럼 발견하지 못한 것,
쉽게 무시하는 것에서 이익 창출 기회를 낚아챈다.
③ 남보다 앞서 시장을 선점:
온주상인은 선점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 계획까지
세워서 철저하게 실천한다.
철저한 준비와 과감성으로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어 스스로 블루오션을 만들고 독점한다.
④ 소비자 욕구에 따라 변화하는 시장 기회 포착:
온주인은 모든 현상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깊이 사고한다.
온주인은 시장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스스로를 변화시켜 기회를 포착한다.
⑤ 공동의 이익 추구와 장사수완으로 영역 확장:
온주상인은 일찍이 자본과 권리를
연계시킨 주식 지분제를 시행하였다.
정책 결정을 민주화하고,
경영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기업 발전을 이루었다.
또 이윤을 균등하게 나눠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역할 분담이 잘 이루어지도록 했다.
⑥ 자신에게 엄격하며, 신용을 철저히 지킨다:
온주상인의 성공 비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신용이다.
온주상인은 신용을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긴다.
어떤 상황에서도 약속한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최우선으로 삼는다.
그 밖에도 온주상인은 고난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다.
고난이 닥칠 때 이들은 좌절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성공의 원동력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현실적이고 실리적이라는 점,
공상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실천하는 의지력,
목표를 달성하기 전에는 결코 만족하지 않는
철저한 장인정신 등이 오늘날 온주상인을 탄생시켰다.
이 책은 온주상인들만의 독특한 비즈니스전략과
개척정신, 그리고 모험심을 소개함으로써
중국을 바로 알고 그들과 긴밀하게 협력하며
대등하게 경쟁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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