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신용불량 국가가 되었을까?
찰스 R. 모리스 지음
예지 / 2008년 8월
CHAPTER 01: 자유주의의 종말
1980년이 되자 독일과 일본이 공작기계산업을 석권했고, 미국의 철강과 섬유는 파국을 맞았는데, 외국 기업의 침공에 대해 보여준 대응은 미국 기업들이 얼마나 무능해져 있었는가를 단적으로 알려준다. 예로 디트로이트가 ‘계획적 진부화’(소비자들이 심리적으로 기존 제품을 진부하게 느끼도록 유도하여 대체 수요를 유발한다는 마케팅 이론) 이론에 도취되어 있을 때, 도요타와 폴크스바겐은 작고 튼튼하며 연비가 우수한 자동차를 미국인들에게 광고했는데, 1973년에 석유파동이 절정에 달하면서 소형차 판매가 급증했고, 결국 미국 차들은 완전 실패작으로 드러났다. 미국 기업들의 안주와 무능만으로도 사태가 충분히 악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인구변화 추세까지 가세해서 이중고를 안겼다.
경제학자에게 1970년대 미국의 생산성 추락에 대해 물어보면, 투자 감소가 원인이라고 지적할 것이다. 그런데 인구학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 청년노동자 계층의 급증을 원인으로 지적할 것이다. 왜냐하면 베이비붐 세대가 1970년대에 20대에 진입하면서 미숙련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노동시장에 유입되었고, 그 결과 생산성이 하락하고 임금은 하향 고착화되었는데, 노동력이 싸고 자본이 비쌀 때에 투자를 줄이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한편 1970년대 연방정부 적자는 존슨 때만큼이나 규모가 컸다. 더군다나 달러까지 문제였다. 당시 미국은 달러 가치를 금 1온스당 35달러로 고정시켜 놓았는데, 이 제도는 전 세계의 통화 안정성을 유지하는 근간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금 보유고는 점점 감소하고 있었기 때문에, 통화 트레이더들은 달러를 투매하기 시작했고, 미국 정부의 해결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결국 1971년 8월에 닉슨은 감세 정책, 경제 전반에 걸친 임금과 물가통제 그리고 모든 수입품에 대한 증세와 함께 달러 금본위제의 무효화를 발표했다. 정치적으로는 엄청나게 획기적인 조치였다. 하지만 닉슨은 노동조합의 압력과 공급가 인상과 외국 기업의 경쟁으로부터 대기업들을 구해냈고, 소비자들은 안정된 물가에 흡족해했다.
1970년대 ‘대인플레이션’을 촉발한 OPEC의 급격한 유가 인상은 달러 가치 변동이 낳은 결과였다. 1973년이 되면서 OPEC 국가들이 유가를 세 배나 인상했을 때, 달러 가치는 금 1온스당 100달러 수준, 즉 종전 가치의 3분의 1로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1979년에 OPEC가 다시 유가를 세 배 올리자, 달러는 온스당 233달러에서 578달러 사이에서 변동했다. 또 달러가 1980년에 온스당 850달러로 급락했을 때 금으로 환산한 유가는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는데, 문제는 바로 미국이 자국 통화의 가치를 형편없이 절하했다는 데 있었다.
아무튼 케인즈식 자유주의의 시절은 가고,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시대가 왔다. 바로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주의’다. 케인즈주의가 거의 전지전능한 기술 관료를 맹신한 것이라면, 프리드먼주의는 아무런 제약 없이 작동하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숭배한 것인데, 1980년 레이건의 당선은 케인즈식 자유주의가 종말을 고했다는 신호였다.
CHAPTER 02: 월스트리트의 새로운 종교
카터가 1979년에 폴 볼커를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으로 임명했던 시기는 월스트리트와 국제 금융당국이 비상 경고음을 내고 있던 때였는데, 볼커는 중요한 직무 -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일과 금융 질서를 회복하는 일 - 를 수행해야 했다. 참고로 볼커는 프리드먼의 통화주의(인플레이션은 오직 통화량을 조절함으로써만 통제 가능하다는 주의)가 워싱턴에서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던 시점에 의장으로 취임했는데, 의장직을 몇 개월 수행한 뒤에는 통화주의 전략을 공식적으로 채택해서 인플레이션을 종식시키고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했다.
인플레이션은 다행히 1982년 중반에 잡혔고, 소비자 물가지수는 그해 후반기 내내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연말에는 연방기금금리가 8.7%라는 합리적인 수준으로 떨어졌다. 성장률은 4분기에 양의 수치를 기록했고, 1983년에는 4.5%를, 1984년에는 7.2%를 기록했다. 달러 가치도 상승했다. 월스트리트는 결국 납득했다. 이때부터 미국에서 물가안정 우선주의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런데 자유 시장 통화주의자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 하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기존의 통화 공급량을 줄이는 조치를 취하면, 이윤을 추구하는 은행들은 그러한 계약을 회피할 수 있는 새로운 금융기법의 개발을 시도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은행들은 그렇게 했다.
한편 레이건은 경제학적으로 시카고학파의 핵심 원리(낮은 세금, 자유 시장, 최소한의 규제 등)를 신봉했는데, 현실을 보면 그 성과들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예로 1980년대의 두 가지 중요한 경제적 사건, 차입매수 붐과 저축대부조합 위기를 보면 시장의 힘과 한계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먼저 차입매수 붐은 대략 1982년부터 1989년까지 지속됐는데, 처음 4년간은 자유시장의 구조 조정 능력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였다. 하지만 1986에 이르러 PER은 비정상적으로 평균 3배나 상승했고, 시장은 점점 미쳐만 갔다. 그런데 일단 이 과열 상태가 폭발하자, 시장은 단 몇 달 만에 붕괴했다. 두 번째 사례인 저축대부조합 위기는 순전히 경제적 낭비였다. 아무튼 차입매수 붐과 저축대부조합 위기의 상황을 보면 금융시장에 대한 느슨한 규제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참고로 클린턴이 취임했을 무렵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전 세계적 경기침체를 예견하고 있었다. 당연히 클린턴은 선거운동 당시, 경제 활성화 계획의 세부안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그는 로버트 루빈으로 대표되는 민주당의 아주 이상한 노선의 저항(재정적자야말로 모든 경제적 해악의 근원이며 그것을 해소해야만 경제 회복이 가능하다는 주장)에 직면하게 되었다. 결국 클린턴은 자신의 주장대로 끌고 가는 데 실패했고, 루빈이 이겼다. 그리고 루빈이 기약한 것처럼, 클린턴은 기적과도 같이 자신의 임기 동안 호황을 이끌어냈다. 소위 닷컴버블로 알려진 호황이었다. 그런데 반규제주의자인 그린스펀은 자산버블이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관여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기술주 버블의 폭발은 클린턴이 백악관 열쇠를 후임자에게 건넨 뒤에야 일어났다.
아무튼 1980년대와 90년대의 경제적 경험은 각각 성격이 너무 다르긴 하지만, 두 가지 핵심 원리에 대한 보수주의적 신념을 공고히 했다는 데에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1980년대 초와 90년대의 경제회복기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자유시장이 지니는 위력이다. 둘째는 사실상 탈규제 상태의 금융시장이 지니는 중요성인데, 이는 여러 버블 사태가 강력한 반례가 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CHAPTER 03: 신용버블의 3가지 전조
1980년대부터 9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세 가지 서로 다른 희비의 주기를 경험했다. 1987년의 주식시장 붕괴와 1994년 모기지대출 사고 그리고 1998년의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 위기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사태는 모두 컴퓨터 성능의 획기적 향상, 수학박사들의 월스트리트 진출과 더불어 등장한 새로운 투자기법에서 연원한다. 새로 등장한 이 ‘퀀트’(quant. 금융상품을 계량적, 수학적 기법으로 분석하는 전문가)들은 전통적인 투자 자산들을 보기 좋게 다듬어서 투자자의 요구대로 설계했고, 복잡해지고 구조화된 투자기구들이 광범위하게 등장하면서 법인 도매금융 관행도 혁신적으로 변했다.
한편 앞서 거론한 세 가지 사태들은 1980년대와 90년대의 금융시장 지각변동의 사례이자, 새로운 대륙의 취약한 지진 단층선 몇 군데를 노출시켰는데, 가장 먼저 거론할 단층선은 이 세 가지 위기가 금융 감동당국의 시야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싹이 텄다는 사실이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부터 시작된 무조건적인 규제완화정책 때문에 금융기관의 대출 활동은 규제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대상으로 꾸준히 확대되어 갔고, 독단론에 빠진 시장자본주의자들은 규제완화 추세를 쌍수를 들고 환영했는데, 그린스펀이야말로 가장 열정적인 옹호자였다.
다음으로 언급할 단층선은 ‘대리인’ 문제의 심화다. 대리인 문제란 피고용인이냐, 하도급업자 또는 용역을 수행하는 회사가 의뢰인의 이익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 CMO(모기지담모부증권)의 성공 이후 등장한 모기지산업의 세분화가 대리인 문제를 더욱 키웠다. 참고로 그전에는 지역 저축대부조합들이 새로운 모기지 예약을 받을 때, 창구 직원은 고객에게 가장 유리한 모기지대출상품을 소개할 유인이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형태의 모기지 은행들이 출현하면서 모기지를 불과 몇 주 또는 몇 달만 보유한 뒤 팔아버림으로써, 모기지 중개인들은 그들이 받는 중개 수수료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고, 또 주로 이메일이나 전화로 고객과 접촉하는 시스템이 이를 키웠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단층선은 투자의사결정이 점점 수학적 도구에 의존하는 경향인데, 대규모의 증권 포트폴리오는 어느 정도 수학이 설명하는 바에 따라 움직일 수 있으나, 그런 유사성도 스트레스 상황이 발생하면 깨진다. 즉 금융상품의 수학적 재구성은 시장효율성 제고에 기여했고 자금 조달 비용을 감소시킨 면이 있지만, 상품에 내재하는 리스크를 잘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금융거래의 규제완화, 대리인 문제의 약화, 모든 금융 활동이 수학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착각은 함께 작용해서 2000년대의 엄청난 신용버블 사태를 초래하기에 이르렀다.
CHAPTER 04: 돈으로 쌓은 둑
1980년대에는 대형 은행의 자기자본 부족에 대한 우려가 팽배해지자 규제당국은 은행의 자기자본 규정을 강화했다. 그러나 은행은 주택모기지은행들이 소량의 자기자본만으로도 앞 다투어 대출을 집행(유동화 때문에 가능)하는 것을 보았고, 새로운 자기자본규제 조항이 발효되기 시작했을 때 은행들도 적극적으로 유동화에 나섰다. 즉 상업용 모기지, 기업 대출, 고수익 기업인수 대출, 신흥 개도국 대출 등을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자기계정에 보유하지 않고, CLO(대출담보부증권)나 CDO(부채담보부증권)의 패키지로 만들어서 외부 투자자들에게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은행은 자기자본 확충 부담을 피하면서도 높은 수수료를 수취할 수 있었다. 그러자 금융이라는 화려한 건물에 입주한, 온갖 하찮아 보이는 금융 사업자들조차 하루가 멀다 하고 황금알을 쏟아냈다.
자금 조달에 비용이 전혀 들지 않고 대출에 아무런 비용과 위험이 수반되지 않을 때, 정상적인 대출자라면 더 이상 돈을 빌려줄 대상이 없을 때까지 대출을 계속 집행할 것이다. 차입매수사업은 사모투자의 형태로 단장한 뒤 기세등등하게 시장에 복귀했는데, 전형적인 거래 구조는 다음과 같다. 먼저 10억 달러를 지분으로 투자한다. 그리고 40억 달러를 차입해서 쓸 만한 기업 하나를 골라 50억 달러에 매입한다. 물론 그 회사의 임원들과는 좋은 조건의 거래 계약을 별도로 체결한다. 10억 달러의 특별 배당 지분을 확보한 다음 기업인수 재료로 주가가 상승하기 시작하면 지분을 일반 투자자에게 되팔면서 몇 십억 달러를 추가로 챙기는데, 이 모든 과정에서 리스크는 하나도 지지 않는다. 이를 두고 한 은행가는 “사람들은 돈으로 쌓은 둑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했다. 나아가 사모투자펀드는 굳이 돈을 모으러 다닐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돈이 그들을 쫓아다녔다.
하지만 모든 버블은 터진다. 버블이 클수록 폭발력은 크다. 2007년 늦은 가을, 버블에서 가스가 새어 나오던 소리가 마침내 거대한 폭음으로 변했다. 그런데 신용버블을 그토록 처참하게 폭발시킨 중요한 구조적 요인들로는 그린스펀 풋, 부동산 버블,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을 들 수 있다. 그린스펀 풋(Greenspan Put)은 2000년대 초에 월스트리트의 유행어였는데, ‘풋’은 상황이 아무리 악화되더라도 자산을 특정 가격에 제삼자에게 팔 수 있는 옵션이다. 즉 그린스펀 풋은 상황이 아무리 악화되더라도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값싼 돈을 충분히 만들어서 여러분을 곤경으로부터 구해줄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게는 실질적인 한계가 있다. 마이너스의 실질금리를 유지하면서 그린스펀보다 더 오랜 임기를 누린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단 한 사람(아더 번즈)밖에 없고, 그 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고통스러운 침체기를 겪어야 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한편 1990년대 후반기에 장기금리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을 때, 대형 은행들은 주택 구입자들에게 대출 교체를 홍보했다. 2000년대가 되자 소비자들은 자신이 이미 구입한 주택으로부터 돈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더 낮은 금리를 찾아 기존 대출을 포기하고 새로운 대출로 갈아탔고, 상당수가 이를 통해 이득을 보았다. 이 와중에 서브프라임대출, 즉 전통적인 기준으로는 대출심사를 통과하기 어려운 차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높은 이자와 수수료가 부과된 상품들도 등장했다. 대부분의 금융호황은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데, 이번 상황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 전역의 주택 소유자 비율은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대략 64%를 유지했던 것이, 2005년에는 곧바로 69%로 상승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호황이 그렇듯이, 이번의 금융호황도 끝물에 도달했다. 2003년경 모기지대출기관들은 더 이상 새로운 대출 대상자를 찾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대출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대출 상환 능력이 희박한 고객들까지 찾아 나섰다.
또 초고가의 주택을 갖고 싶어 하는 비교적 재산이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대출이 실행되었는데, 이 주택들은 경제가 하락기에 접어들면 그들도 도저히 감당할 여력이 없는 수준의 것들이었다. 아무튼 2007년 말 현재 이 산업은 파국 일보 직전에 있다. 연체는 급속히 증가했고, 담보 주택이 처분되면서 쫓겨나는 빈민의 삶은 더욱 비참해지고 있다. 아울러 대출금융기관의 파산을 그에 수반되는 법적인 분규와 함께 한때 영예를 누렸던 이 산업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CHAPTER 05: 달러의 대폭락
한 나라가 세계를 상대로 수행하는 활동을 알려면, 국제수지표상의 경상계정을 보면 되는데, 경상계정은 주로 무역계정(수출과 수입)에 의해 결정된다. 참고로 1890년대 중반 이후 약 75년 동안 미국의 경상계정은 항상 흑자였다. 그런데 무역계정은 1980년대와 90년대에 꾸준히 악화되다가, 1999년에 갑자기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아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누적적자는 약 4조 달러에 이르렀다. 이 돈들이 다 어디서 나왔을까? 소비자 저축으로부터 나온 것은 분명히 아니다. 공공 부문의 저축으로부터 나온 것도 결코 아니다. 또한 지금 미국의 기업들로부터 나온 것도 아니다. 결론은 미국의 적자를 외국인들이 보전해 주고 있다. 덧붙이면 그 대부분은 외국의 민간투자자들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 비록 러시아, 중국, 걸프 국가들의 ‘민간 투자자’ 배후에는 사실상 정부가 있지만 - 점점 더 많은 양이 외국의 공식 투자처, 주로 중앙은행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이것은 큰 변화다. 미국 재무부는 2007년에 각국 정부의 통제 하에 있는 총 잉여자금이 7조 6천억 달러에 달한다고 추정한 바 있는데, 애널리스트들은 석유수출국들이 약 2조 2천억 달러 정도를, 인도와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가 그와 유사한 수준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그런데 이런 자금 잉여와 관련해서 중요한 현실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그 국가들의 규모이고, 둘째는 그 국가들이 대개 정부의 강력한 통제 하에 있다는 사실이다. 수조 달러에 달하는 현금이 특정 국가의 정부 재량 하에 있다면, 그들이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는 예사로 넘길 사안이 아니다.
2006년경에 미국의 애널리스트들은 산유국들이 그 잉여자금을 미재무부단기채권에 주로 투자하는 것을 보고 다소 안도했다. 그러나 미국의 절친한 우방국인 쿠웨이트는 2007년 자국 통화의 달러 연계를 포기하고, 준비통화(각국이 대외지급을 위한 준비로서 보유하고 있는 통화) 바스켓 페그제로 복귀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공개적으로는 달러를 지지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조용히 달러로부터 이탈하고 있다. 사실상 석유수출국들은 달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전 세계 물량의 40%가 유럽 발주인 상황에서 달러의 가중치를 높여보았자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2006년에 미재무부증권과 단기채권 신규 발행 물량의 약 55%를 매입했는데, 2007년 여름에 미국 의회의 보호주의자들이 중국을 상대로 위안화 재평가를 요구하자, 어떤 학자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중국은 미국 달러를 대량으로 축적하고 있다. 그 정도로 큰 규모라면, 그중 상당 부분이 미재무부채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상태라면, 달러가 준비통화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중국 중앙은행은 위안화 가치가 극적으로 상승하는 순간 달러를 팔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런 상황이 오면 달러의 가치는 더욱 큰 폭으로 하락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참고로 1997~1998년 동아시아와 러시아는 통화 위기를 고통스럽게 극복하면서 다시는 서양인들의 자비를 구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는데, 이것이 바로 그들이 그토록 방대한 양의 준비통화를 확보하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모든 흑자국가들은 안정성 확보에 필요한 준비통화보다 두 배나 많은 양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넘쳐나는 잉여자금을 해결하는 수단이 바로 국부펀드, 즉 SWF다. 참고로 쿠웨이트의 SWF의 규모는 2천억 달러를 넘는데, 이 정도면 미국 최대의 투자자인 캘리포니아공적연금기금(CALPERS)에 못지않다. 그리고 러시아는 잉여자금을 석유안정화펀드와 저축펀드로 분산하고 있고, 중국은 오랫동안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지역에, 특히 미국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주요 국가 중의 하나인 나이지리아에 인프라 구축과 에너지 투자를 수행해 왔다. 중국은 또한 최근에 싱가포르 국부펀드와 파트너 관계를 맺고 바클레이스 은행을 인수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또 미국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가장 믿을 만한 달러 보유국인 일본은 그 엄청난 규모와 달러 비축분을 대부분 미재무부증권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도 잉여자금 투자 대상을 더욱 다변화하고, 다른 SWF들의 우수한 전략을 좀 모방해 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편 미국의 사모투자펀드와 헤지펀드들이 SWF 자금을 유치하려고 앞 다투어 달려드는 광경은 가관이라 할 수 있다. SWF 입장에서는 사모투자펀드와 헤지펀드를 잘 골라서 투자해 놓기만 하면, 정치적으로 여러 지역을 포괄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미국과 유럽의 자산들에 대한 소유권을 더욱 확대할 수 있게 된다. 아무튼 이제 미국인들은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지난 10년간 미국은 저축부족국가로 전락했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는 세계 다른 국가들을 상대로 금융적자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세계의 리더로 자처하는 미국이 도저히 인정하기 싫은 국가들을 상대로 채무국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이 20여 년 동안 자유시장의 신들을 맹신한 결과라 할 수 있다.
CHAPTER 06: 붕괴의 시작
CDO(부채담보부증권)시장의 성장을 제약하는 요소는 하위 트랜치(tranche)에 대한 투자자를 찾는 일인데, 하위 트랜치는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최초로 발생하는 손실을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그들은 월등히 높은 수익을 위해 엄청난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며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투자 대상을 선택할 수 있는 투자자들인데, 그들은 누구일까? 바로 헤지펀드다. 아무튼 지금 금융 산업은 헤지펀드의 곡조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중이라 할 수 있다. 피치는 헤지펀드가 높은 비율의 대출, 그것도 단기대출에 주로 의존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투자자의 한 유형으로서 헤지펀드가 지니는 불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심각하고, 또 헤지펀드는 CDO 포트폴리오의 실제 차주(借主)들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기 때문에 차주들의 부도 시에 대출상환 자구 노력을 도출하기 위해 협조해야 할 유인도 전혀 없다는 점이 또 다른 우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또 다른 형태의 대리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우려의 배후에 있는 공통의 요소는 신용상품에 투자하는 헤지펀드들의 고(高)레버리지 행태인데, 거래 과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헤지펀드(이하 HF)는 파트너십 지분 형태로 자금을 조달한다. ② HF는 파트너십 지분으로 들어온 자금 1달러당 은행으로부터 차입한 4달러를 추가해서, 레버리지 비율을 5 대 1로 맞춘다. ③ HF는 총 20억 달러 규모로 발행된 CDO 트랜치 중, 최초 손실을 흡수하는 하위 트랜치 채권 1억 달러를 매입한다. 그러므로 최초 손실을 흡수하는 채권의 레버리지 비율은 20대 1이 된다. 그러나 이 1억 달러어치의 매입은 실제로 2천만 달러의 자기자본과 8천만 달러의 은행 대출을 통해 이루어진 것인데, 이 채권은 은행의 증거금계좌에 담보로 예치된다. ④ 결과적으로 HF 파트너들은 5 곱하기 20, 즉 100 대 1의 레버리지로 투자한 셈이 된다. 즉 CDO 기초자산인 모기지대출 포트폴리오 1%에서 손실이 발생하면, HF 파트너의 자기자본은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린다. 한편 신문 기사를 읽다보면 신용 위기는 항상 서브프라임 위기와 동일시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신용 위기는 서브프라임 이상의 것이다. 서브프라임은 CDO라는 한 가지 범주의 불량자산에 도사리고 있는 데 불과하지만, 서브프라임만큼이나 크고 심각한 신용 문제는 다른 부문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다가올 2년 동안 3천 5백억 달러에 달하는 서브프라임모기지와 다른 위험도가 높은 주거용 모기지 금리가 재조정될 것이며, 그들 중 상당수가 미납가산이자율로 재조정될 것이다. 따라서 부도가 급증할 것이고, 아마도 2백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집을 잃을 것이며, 주택가격은 계속 하락할 것이다. 또 소비지출이 감소할 것이며, 향후 신용제공 가능성이 축소되면서 경기침체의 모멘텀은 빨라질 것이다. 아울러 2008년은 자산상각이라는 공포와 충격의 도가니에서 들끓는 한 해가 될 것이다. 부도 처리된 담보자산들은 특히 신용 헤지펀드의 경우에, 증거금계정에서 강매 처분되는 사태가 도래할 것이고, 신용등급이 잇달아 강등되면, 연금기금과 보험사들은 투자등급 채권에만 투자해야 한다는 내부규정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 채권들로부터 떼를 지어 이탈할 것이다. 그리고 CDO 선순위 트랜치 보유자들은 하위의 신용 보호 장치가 와해되는 순간 앞 다투어 보유 자산들을 현금화할 것이며, 신용보험시장이 조금만 타격을 입어도, 글로벌 금융시스템은 큰 재앙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데 지금과 상당히 유사했던 1970년대의 정황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즉 폴 볼커는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면서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했고, 달러의 국제적 위상을 회복했으며, 다가오는 1980년대와 90년대의 경제호황의 기반을 마련했다. 반면 1980년대에 자산버블이 폭발할 때 일본은 문제를 정직하게 인정하지 않고, 기성 정치인과 은행가들이 합작해서 문제를 은폐했고, 결국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은 아직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의 금융 부문은 1970년대에 비하면 훨씬 심각한 상태다. 그런데도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위기에 대한 미국 금융시장의 대응은 지금까지 소극적인 은폐뿐이었다.
CHAPTER 07: 승자와 패자
경제학자이자 《파이낸셜타임스》의 논평가인 마틴 울프는 최근에 아주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전 세계 금융 산업의 이익은 나머지 산업의 이익보다 약 2배나 많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이는 기업 간 이익은 장기적으로 균등해진다는 자유시장경제학의 근본 명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데, 금융 산업이 이렇게 유리한 입지를 차지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산업이 자유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경쟁의 권역 밖에 있기 때문이다.
보충 설명하면 금융 산업은 높은 위험을 수용하기 때문에 높은 이익을 창출한다. 자유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는 곳에서는 고수익과 고위험으로 인한 대규모 손실이 주기적으로 발생됨으로써 상쇄가 되나, 금융 산업에서는 경영자와 주주에게 고수익이 발생하고 있지만, 손실의 상당부분이 대개는 사회화(손실의 상당 부분이 타인들에게 전가된다는 의미임)된다. 예로 2007년 여름에 주택모기지 위기가 발생했을 때, 컨트리와이드는 은행 간 오버나잇 대출의 표준적인 형태인 레포(repo. 환매조건부채권)의 발행이 불가능해졌고, 컨트리와이드가 그 차입을 다른 수단으로 대체하지 못했다면, 아마 지급불능 상태에 빠졌거나 남아 있는 우량자산마저 헐값에 매각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애틀랜타연방주택대출은행이 220억 달러의 대출을 제공해서 컨트리와이드의 신용한도가 510억 달러까지 확대됐다.
연방은행의 행동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모기지 시장은 이미 붕괴하는 중이었고, 컨트리와이드에 도움을 줌으로써 더 큰 손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울프가 말하는 요점은 컨트리와이드의 CEO인 모질로는 2006년에 총 보수로 4천 8백만 달러를 받았을 뿐 아니라, 시장이 붕괴되기 직전에 컨트리와이드 주식을 팔아서 1억 달러를 추가로 챙겼다는데 있다. 아무튼 모든 징후들을 보건대, 우리는 1980년대 당시처럼 사이클의 대전환 국면에 놓여 있다. 우리가 1979~1982년에 그랬던 것처럼, 현재의 문제들을 정정당당하게 인정하고 다가오는 몇 년 동안 노력한다면, 사이클의 전환기에 우리에게 남겨진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들을 비로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CHAPTER 08: 시장의 한계
지난 20여 년 동안 정부의 역할을 지나치게 폄하한 결과, 지금 미국의 국내 공공 부문은 취약하고 부패한 상태에 이르렀고, 우리는 그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다. 몇 년 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금융시장의 파국을 간신히 딛고 일어설 무렵에는, 뭔가 균형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그 가장 우선순위는 금융 산업에 대한 효과적인 감독체계를 복구하는 일이다. 미국의 금융시장이 외국 투자자들에게 그토록 매력적인 장소로 부각된 이유는 그 투명성과 신뢰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20여 년 동안 반(反)규제 사상을 열성적으로 따른 결과, 저축대부조합의 파산으로부터 시작해서 엔론과 월드컴 사태를 거쳐 최근의 CDO 위기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사고를 겪었고, 이제 미국 시스템의 신뢰성과 미국시장의 매력은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 미국 시장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프로그램은 은행을 대상으로 시작해야 한다. 높은 레버리지를 구사하는 투자회사에 대한 대출에는 추가적인(벌칙) 자본을 부과해야 하고, 프라임브로커가 대차대조표를 공개하지 않는 헤지펀드에 대출을 해주는 것과 같은 터무니없는 관행도 무조건 중단되어야 한다. 그리고 모기지 은행 같은 중개금융기관을 포함한 모든 대출금융기관에는 은행 수준의 최소요구자본 규모를 동일하게 적용해야 하고, 대출자산의 보유자로 하여금 지분 트랜치의 매입 등을 통해 최초의 손실을 부담하게 해야 하며, 풋백 조항도 지금보다 더 많은 자본 투입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 또 파생신용상품과 같이 발행 규모가 큰 금융상품은 장외거래가 아니라, 거래소에서 거래하게 하여야 하고, 증거금을 관리할 필요도 있다. 아울러 의회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겸업을 금지했던 과거 글래스-스티걸법의 재도입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상의 것들은 미국 금융시장의 규제정책을 올바른 방향으로 정립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수많은 과제들 가운데 첫머리에 불과할 뿐이다.
두 번째는 의료정책에 관한 것이다. 미국의 의료산업은 아직도 낭비요소와 운영상의 혼란이 많다. 문제의 상당 부분은 의료산업을 다른 소비재 시장과 똑같은 방식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파생됐다. 그러나 의료산업의 성격을 그렇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둘째로, 컴퓨터를 의료경영에 적용하는 여러 국가들 중에서 미국이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로, 전통적으로 급여인명부에 기반을 두고 운영되어 온 미국 의료산업의 자금관리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가능한 해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내가 숙고하지는 않았지만, 정부 기능의 확대가 그 해법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의료 이외에 교육, 공공인프라, 에너지효율 같은 부분들도 비록 우선순위는 다를지 모르지만, 대부분 공적 성격이 보강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의 자원배분이 항상 생산성을 저하시킨다는 명제는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들의 교조와도 같은데, 이는 포괄적인 명제로서는 명백히 틀린 주장이다. 예를 들자면, 연방정부는 반도체 산업과 인터넷에 대규모의 자금을 지원했고, 그 덕분에 우리는 더욱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요약하자면, 정부지출은 어떤 대상에 사용되느냐에 따라 생산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공지출을 혐오하는 사상의 이면에도 일말의 진실도 있다. 특혜를 받은 산업 - 공기업은 특히 특혜를 받기 쉽다- 이 종국에는 지나치게 비대해져서 건강한 경제에 장애 또는 심지어 위협이 되기까지 하는 상황이 초래된다는 것이 그 이유다. 아무튼 본서에서 서술한 금융위기는 우리의 금융 산업을 값싼 돈으로 육성하고, 펀드의 파트너들을 비정상적인 세제혜택으로 지원하고, 이들이 넘어지거나 약간의 상처라도 입으려고 하면 이내 새로운 자금의 연고로 상처를 치유하면서, 이 산업을 너무 귀하게 대접해 준 데에서 온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면, 모든 것은 결국 선호와 균형과 판단의 문제라는 것이다.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1980년대에 정부 중심의 경제정책이 보다 시장 지향적인 형태로 변화한 것이야말로 미국이 1980년대와 90년대에 경제적으로 회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고 보인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광범위한 금융위기를 보면서 우리의 생각이 도달한 결론은 해법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독단론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다. 20여 년 정도 이런 상황을 겪고 난 지금은 바로 시계추가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려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2008년 작품임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2007년부터 시작된 미국 경제의 위기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미국 경제와 같이 결속되어 있는
세계 경제도 휘청거리고 있다.
세계 경제와 금융을 선도하던
미국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몇몇 개인의 잘못만으로는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지금 미국 경제의 위기는
뿌리가 훨씬 깊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닉슨부터 부시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규제 없이 작동한 자유 시장을 맹신한
미국의 경제와 시장 시스템 자체가
위기의 주범임을 통렬하게 보여준다.
아무런 규제가 없는 시장은
카지노 판에 불과하다.
이런 시장에서는 약삭빠르고 독하고
파렴치한 자들만이 돈을 벌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의 우위를 고착시킨다.
공정한 게임도, 투명한 정보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금융시장에서 ‘정보’가 투명하게
흐르지 않으면 신용은 썩을 수밖에 없다.
신용은 금융시장이 숨을 쉬는 대기인데,
그 대기에 독이 차면 숨을 곳은 아무 데도 없어진다.
이것이 한때 팍스 아메리카를 이끈
재력과 젊음을 모두 잃고 흉한 신용불량 국가로
전락한 미국의 현실이고,
바로 자본을 시장에만 맡겨놓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이 책에서 역설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 책에서 미국이 대전환을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규제완화로 인해 불투명해진 위험상품에 대한
‘정보’를 다시 투명하게 유통해 금융시장의
대기를 뒤덮고 있는 독기를 걷어내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정부가 가장 문제라는
시카고학파의 도그마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강조하면서,
시장이 자율적으로 자본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학자들의 희망사항이거나 흑심을 숨긴 자본의
달콤한 유혹일 뿐이라며,
1980년대 자산버블 붕괴를 경험했던 일본을
잊으면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참고로 일본의 사례는 규모나 시장 메커니즘 면에서
지금 미국이 직면한 위기와 상당히 닮아 있으나,
일본 정부와 금융계의 유착은 사태를 부정하고
은폐하는 쪽을 택했고,
그로부터 20년이 지났지만
일본은 여전히 회복과는 요원하다며,
이제부터라도 미국 정부는 사태를
낱낱이 밝혀내고 자본에 규제라는 고삐를
채우는 데 망설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무튼 저자의 통렬한 비판은 미국의 금융시장을
모범으로 좇아 온 우리가
과연 미국으로부터
무엇을 취해야 하는지 깨닫게 해준다.
덧붙이면 2009년 금융자본주의의 첫 단추가 될
‘자본시장통합법’의 시행을 앞둔 우리에게
금융 전문가이자 법률가인 저자의 미국 금융위기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은
귀중한 타산지석의 지혜를 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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