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 중국은 왜 중요한가?
여러 종류의 통계자료에서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순위만 고려해보아도 중국은 중요한 나라이다. 1978년에 개혁개방을 표방한 이래 약 3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국이 되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수출, 수입량을 자랑한다. 또 2012년 자료에 의하면, 중국은 3.5조 달러 규모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것은 세계 최대 규모의 외환보유고로 중국은 이것을 방대한 수출을 통해 축적했다. 하지만 중국 내부에는 계층 간 극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중국에는 10억 달러 이상의 자산가가 95명이나 있고, 동시에 하루 1.25달러 미만의 생활비로 살아가는 1억 5,000명의 빈곤층이 존재한다. 이 외에도 중국 내 2,400만의 인구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
한편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중국은 상이한 정치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현대 중국은 중국공산당에 의해서 건국되었으며, 현재에도 공산당에 의해서 통치되고 있다. 그 결과 중국에 대한 논의는 종종 정치적 색채를 띤다. 그래서 만약 한 사람이 중국에 대해 호불호 등 자신의 견해를 제시했다면, 그 견해는 보통 그가 중국공산당을 지지하느냐, 또는 반대하느냐로 양분되어 해석된다.
중국을 알고자 한다면 중국이 가지고 있는 두 개의 상반된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첫째, 현대 중국의 초기역사는 혁명적인 투쟁운동과 연관되어 있는데, 이 투쟁운동은 식민주의적 압제와 서구의 지배에 대항한 것이었고, 그 투쟁운동이 전개되고 있던 당시 중국은 각기 다른 계층세력 간 벌어진 엄청난 내부 충돌에 시달리고 있었다. 둘째, 1978년 이래 중국은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그 현대화는 서구화도 일정부분 포함되는 것으로 이것들은 중국이 한때 외면했던 것들이었다.
이 책의 핵심적인 목표 중 하나는 흥미롭고 정교한 프레임에 맞춰 중국을 이해하는 것인데, 그 프레임은 중국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측면을 포괄한 것이다. 중국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측면이란 다음과 같다. 중국은 정의로운 사회주의 사회 구현을 목표로 삼으면서, 30년 만에 경제규모를 약 6배나 키웠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국제적 역할을 변화시켰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개발도상국에서 강대국으로 개조했다. 현대 세계에서 중국은 중요한 국가이다. 이것은 다음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중국은 현대 세계경제에서 핵심적인 공급체인의 역할을 하고 있다. 2008년 올림픽을 베이징에서 개최하는 등 중국은 전 세계적인 지도국으로서 스스로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또 중국 정치 지도자들이 내리는 결정은 외부 세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는 이제 세계에서 중국이 얼마나 중요한 국가이냐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의 입장에서 중국이 느끼는 세계의 중요도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다.
중국은 어떻게 통치되는가?
국무원과 국무총리
1982년 헌법에서는 다섯 가지 수준의 행정단위를 명시해놓았다. 그것은 중앙정부, 성(省)급정부, 지(地)급정부, 현(縣)급정부, 향(鄕)급정부이다. 하지만 약 80만 개의 향(鄕)단위 마을들은 공식적인 국가행정 체계에 속하지 않는다. 이들 마을에서는 마을 단위의 선거가 치러지기 때문에, ‘자치적’ 상태에 있다고 여겨진다. 여러 층위에 걸쳐서 존재하는 중국 정부를 비교적 쉽게 이해하려면, 중국정부 자체를 중국공산당의 편에서 일하는 하나의 거대한 행정조직이라고 보면 된다. 중국공산당이 국가정책의 전체적인 방향을 결정하면, 정부는 이것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전환하고, 집행한다. 정부는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여러 정책적 수단을 활용한다. 그 예로써,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하고, 비국가행위자들을 정책집행 과정에 참여시키고, 적합한 사회복지 체제를 창안하는 것 등을 들 수가 있다. 하지만 어떠한 조치도 중국공산당의 정통성을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1980년대 초 이후로 공산당과 정부 사이 상호업무 조정 및 소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당과 정부의 역할이 각각 무엇인지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정확한 구분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중앙정부와 성급정부의 구조는 비교적 단순하다. 총리 산하에는 국무원(國務院)이 있는데, 총리는 국무원 상무회의(常務會議)를 통해 국가를 운영한다. 국무원은 내각과도 같은 기능을 한다. 국무원은 27개의 상이한 부처의 장관격인 부장(部長)들로 구성되는데, 총리는 이들을 총지휘한다. 국무원은 또한 다양한 범위의 다른 성격의 직무 수행자들로 구성되는데, 이들 중에는 각 성(省)의 성장(省長)들과 여러 자치구들의 성장들이 있다.
중국의 국무원과 다양한 중앙부처에 대해서 살펴보면 두 가지 사실에 놀라게 된다. 첫 번째, 생각보다 권력은 분산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 예를 들어보겠다. 1980년대부터 에너지 부처를 설립하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중국 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를 고려할 때,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에너지 부처의 존재는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에너지 분야에는 여러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기존의 관련 기구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중 가장 강력한 기구는 중국석유(PetroChina)와 같은 에너지 관련 국영기업들인데, 이러한 기득권을 가진 기존 기구들이 에너지 관련 정책 결정 권한이 집중되는 부처의 신설을 반대하였다. 물론 에너지 관련 부서는 국가에너지국이라는 이름으로 신설되었지만, 국가에너지국은 부급기구가 아니다. 다만 반쪽짜리 기구로서 기능할 뿐이다.
두 번째, 하나의 부처가 거시경제의 운용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부처가 거시경제를 운용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어떤 부처가 무슨 업무에 책임을 지는가, 그리고 이들 부처는 서로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가, 종국에는 이들 부처 간 공식 서열은 있는 것인가. 우선 거시경제 운용과 관련된 부처로는 재정부, 국외 상무부 그리고 국가발전ㆍ개혁위원회가 존재한다. 이들 간에는 역할의 구분이 있다. 그리고 그 역할에 따라 그에 걸맞은 책임을 지닌다.
한편 국가발전ㆍ개혁위원회라는 기구가 있는데 이 기구는 각 부처들의 예산을 집행하고, 중앙정부가 가진 재정자원을 각 성에 안배하는 권한을 보유한다. 자유 시장 경제화된 중국 경제에서 국가발전ㆍ개혁위원회의 주요 기능은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국가발전ㆍ개혁위원회는 비록 어떤 분야를 총괄하는 권한은 없지만,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기구이다.
그리고 여러 부처 산하에는 각 부처를 보조하는 여러 기구들이 존재하는데, 예를 들면 국가세무총국, 국가통계국, 해관총국 등이다. 한편 국무원 전체회의는 매 6개월마다 열리는데, 이때 국무원의 모든 구성원들이 모인다. 그리고 국무원의 핵심 구성원들이 모이는 회의도 존재하는데, 그 회의는 국무원 상무회의로, 총리, 1명의 총괄 부총리, 그리고 5명의 국무위원으로 구성된다. 이 회의는 6주마다 열리는데, 적어도 행정적 측면에서는 이 회의를 통해서 중국이 경영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국무원을 구성하는 장관 등 구성원의 특징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그들은 꼭 공산당원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이다. 예로 2007년 두 명의 장관(과학기술부, 교육부)은 공산당원이 아니었다. 이것은 성급 단위의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공공분야의 성비(性比)를 보자면 남성의 비율이 여성의 비율보다 훨씬 높다. 따라서 현대 중국의 당과 정부는 남성(男性) 한족(漢族)의 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중앙부처를 개혁하려는 시도
1978년 이래 개혁개방정책 이외에도, 중앙정부는 관료체제를 간소화하려 시도해왔다. 그 결과 여러 차례 구조조정이 시행되었다. 1990년에 50개에 이르는 부처가 1997년과 2003년 사이 40개로 줄었다. 후진타오와 원자바오 시대에도 추가적인 구조조정이 이루어져 현재 부처의 수는 27개이다. 또 현재 중국정부의 구조를 살펴보면 놀라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전국 단위의 교통 정책을 관할하는 부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의 교통 정책을 관할하는 책임은 현재 철도부와 교통운수부가 분담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특정 영역을 분할하여 통치하려 하는 중앙 지도자들의 의중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이런 구조는 성급정부와 지(地)급정부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중국의 통치체제는 경직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내부를 보면 변화와 혁신을 위한 넓은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 지방정부의 행동반경을 가장 많이 제약하는 것은 정부의 구조라기보다는 재정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어느 주체가 어느 정책에 자금을 제공하며, 어떻게 자원이 분배되는가의 문제 말이다.
어떻게 이 모든 자금이 충당되는가?
중국정부 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2퍼센트에 불과하다. 이것은 영국의 40퍼센트, 그리고 일본의 33퍼센트에 비하면 훨씬 낮은 수치이다. 중앙정부의 2011년도 전체 예산은 8조 위안이 넘는데, 이들 중 70퍼센트 이상이 성급정부로 다시 보내져 보건, 교육, 복지, 고정투자, 연금, 기타 용도로 사용되었다. 중앙정부는 세금을 거두는 역할을 하고, 지방정부는 세금을 사용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에는 재정 불균형이 존재하며, 이를 통해서 중국은 어떤 측면에서는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행정 체제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치안과 경찰업무에 관한 예산은 종종 지방정부 차원에서 결정된다.
중국의 세수에 대해서는 여러 논쟁들이 존재한다. 고소득자의 경우 40퍼센트가 넘는 소득세가 적용되지만, 개인으로부터 거두어들이는 세금은 전체 세수의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데, 이것은 다른 개발도상국들의 상황과 유사하다. 외국인 자본이 투자된 기업체들이 납부하는 세금은 중앙정부 세입의 1/5을 차지하고, 중앙정부 세입의 상당량은 국영기업체로부터 거두어들여지고 있다. 중국정부의 지출은 세수보다 조금 더 많다. 성급정부에서는 토지매매를 통해 혹은 기타 다른 작은 세수원들을 통해 재정을 충당한다. 중국의 지방정부는 은행들에게 지방정부 차원의 사업에 자금을 댈 것을 요구할 수 있는데, 은행들은 대부분 국영은행의 형태로 운영된다. 이렇듯 은행들은 때때로 지방 재정부와도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구조적인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이런 구조는 수백 조 위안 상당의 악성 대출액을 축적(정부와 은행 관계의 불투명성으로 인해서, 그 어느 누구도 실제 어느 정도의 악성 대출이 이루어졌는지는 모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정부는 이를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전국인민대표대회
후진타오는 2007년 개최된 제17기 당 대회에서 한 기조연설에서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공공 참여’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한 바 있다. 이것은 상당부분 정부의 무능과 비효율성에 대한 인민들의 폭발하는 분노를 다루기 위한 것이었다. 매년 봄, 베이징에서는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소집된다. 전국인민대표대회에는 약 3,000명 이상의 인대대표(人大代表)가 참여한다. 이들은 전국의 각 성, 자치구, 그리고 직할시, 홍콩, 마카오 특별행정구역을 대표한다. 심지어 타이완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사절단을 참석시킨다.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소집되는 이유는 정부의 의사결정에 공공의 참여를 도입하기 위한 시도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는 국무원의 정책과 5년마다 정부의 예산과 인사에 관한 5개년 계획안들을 공식적으로 승인한다.
1982년 중국 헌법에 의하면 인민대표대회는 최고의 권력 기구이다. 인민대표대회는 중국의 국회에 해당하지만, 양원제는 아니다. 비록 헌법에 의해 권력을 부여받은 기구이지만, 일 년에 한 번 정도 만나는 수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진정으로 효과적인 권력기구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인민대표대회는 중국의 법을 해석하고, 정부 예산을 승인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을 수는 있으나, 이 모든 것은 철저히 통제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한편 1990년대 초 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 서남부에 위치한 양쯔강 샨샤댐의 건설을 승인하는 데 논쟁이 진행된 바 있다. 그 이후 인민대표대회가 특정한 문제들에 대한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반대의 목소리를 보다 자유롭게 낼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인민대표대회는 전체적으로 정부의 정책 방향을 찬성하는 순종적인 성격의 기구이다. 그러한 배경 중 가장 큰 이유는 인민대표대회에 참석하는 모든 대표단의 구성원들 하나하나가 중앙정부와 중국공산당에 의해서 선출된 인사들이기 때문이다.
중국경제
중국 경제의 성장은 전 세계적으로 경이로운 현상 중 하나이다. 1978년 개혁개방을 시작할 당시만 하더라도 중국은 개발도상국으로서 전 세계 GDP에서 작은 부분만 차지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2011년 중국은 세계적으로 경제규모 2위를 자랑하는 국가가 되었다. 또한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외환보유고를 축적한 국가가 되었으며, 수출 및 수입 규모, 석유를 제외한 에너지 소비량에서도 전 세계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언제 미국을 따라잡고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 대국이 될 것인가에 대한 예측 시기는 2015년에서 2035년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고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 대국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제기되고 있지 않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시기가 ‘언제’가 될 것인가이다. 그리고 그 예상 시기는 점차 빨라지고 있다.
중국 경제의 복잡함
자유주의 시장 경제로의 이행이 가속화되자, 중국은 매우 분절된 이해집단들이 공존하는 복잡한 사회가 되었다. 따라서 중국의 정치ㆍ경제도 복잡해졌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몇몇 학자들은 중국은 더 이상 하나의 단일한 사회가 아닌, 다층적인 정치ㆍ경제 구조를 지닌 국가가 되었다고 말한다. 중국의 국토는 크게 세 개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해안지역을 들 수 있다. 이들 지역은 1978년 이후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국제 생산 라인에 즉각적으로 접근하였으며, 이로부터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 결과 2010년 저장성과 같은 곳의 1인당 GDP는 약 만 달러에 달하였다. 2010년 중국 전체의 평균 1인당 GDP가 4,500달러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매우 높은 수치이다.
하지만 중국의 북서부와 중부는 사뭇 다른 복잡한 형태를 보여준다. 북서부와 중부에서도 비즈니스는 약간의 활력이 일어났다. 경제특구의 대략적인 모습을 본뜬 구역이 설치되는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고, 해안지역보다는 그 정도가 덜했지만 중부지방에서도 사회 기반 시설의 증축이 이루어졌다. 뿐만 아니라 부가 창출되었으며, 때때로 그 속도는 매우 빠르기도 했다. 왜냐하면 중부지역에는 엄청난 양의 석탄과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의 서부지역은 가장 발달되지 못한 곳이다. 서부지역의 인구밀도는 낮으며, 소수민족 문제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이다. 하지만 서부지역은 중국 전체 국토 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또한 티베트, 신장, 내몽고 지역은 다른 성들에 비해서 이웃의 여러 국가와 가장 긴 국경을 접하고 있는 곳이며, 티베트와 신장 지역의 사회 기반 시설은 매우 취약하다. 더불어 이 지역에 존재하는 기업의 대부분은 국영기업이다.
신장지역의 경우 중국 전체국토면적의 18퍼센트를 차지하고, 대량의 가스와 석탄이 매장되어 있고, 광활한 대지 중 일부는 핵실험 장소로 쓰이기도 한다. 또 중국 서부에 위치한 소수민족 자치구는 신장병단이나 군 관련 기업 등과 같은 해당 지역 내 핵심 조직을 통해서 이익을 창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해당 이익의 상당부분은 중앙정부로 흘러간다. 이 구조는 해당 지역 내 분노를 야기하고 있으며, 특히 위구르 무슬림 지역이 그러하다. 이러한 분노는 2009년 7월 자치구 내 폭동이 일어난 이유의 중요한 요인이었다. 폭동은 무력으로 진압되었고, 2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금까지 중국 본토는 크게 세 개의 경제로 나뉠 수 있다는 것과 해당 경제구역 간 차이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각 성, 자치구 간에도 경제발전의 정도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의 성이나 지역구 내에서도 지역 간 격차는 발생한다. 또 각 성이나 자치구마다 고유의 세금, 교통세, 사업의 설립을 위한 각기 다른 제도나 법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중국 경제는 분절되어 있다. 때문에 중국이 2001년 WTO에 가입했을 때 가장 큰 도전 과제는 상이한 수많은 지방 법률들을 어떻게 국가가 요구하는 바대로 통일하는가의 문제였다.
1999년 중앙정부는 보다 적극적인 조치로서 ‘서부개발’ 사업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조치를 취하게 된 배경에는 중앙정부가 보기에도 해안지역과 서부지역 간 격차가 점차 벌어지고 있었고, 이것은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부지역을 보다 발전시킴으로써 지역 간 격차를 줄이고자 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정부는 외자를 유치하여 서부지역에 공항, 도로, 항구, 기타 사회 기반 시설을 건설하였다. 또 정부 관료들에게는 이 지역에서 일정기간 이상 근무할 경우 승진 및 평가에서 혜택을 주었다. 이런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부지역과 해안지역의 1인당 GDP는 여전히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서부 지역 주민들의 평균 수명은 해안지역 주민들보다 낮다.
시장의 역할을 인정하면서 2006년부터 중국정부는 5개년 계획을 ‘프로그램: 규획’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5개년 계획의 실행에서, 구체적인 할당을 부여하고 각 경제 주체에 대한 강력한 통제권을 행사하려 했다면, 이제는 보다 거시경제적인 측면에서 각 경제주체에게 보다 많은 자율권을 부여하려 했다. 하지만 여전히 에너지 소비량과 에너지 효율성과 같은 분야에서는 목표치가 주어졌다.
2008년 미국경제가 심하게 타격을 입자, 중국 역시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지나친 우려였다. 2009년 경제위기는 세계적으로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았다. 이때 중국의 수출액은 7퍼센트 감소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해 중국의 경제는 8퍼센트 성장했다. 2010년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국가가 1-2퍼센트의 경제 성장률을 보이고 있었을 때에도, 중국의 경제는 10퍼센트라는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세계경제위기로부터 중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중국정부는 제12차 5개년 프로그램 중 두 부분에 집중했다. 첫 번째, 2009년과 2012년 사이 6,000억 달러 이상을 사회 기반 시설에 투자함으로써 경제를 활성화시키고자 하였다. 이것은 미국과 유럽에서 행해진 조치를 어느 정도 모방한 것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기존 계획에도 수준의 투자가 예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중국정부가 엄청난 액수를 투여하고자 했다는 것은 다소 과장된 이야기였다. 둘째, 중국정부는 경제의 해외 기술과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자 했다. 그 일환으로 내수 소비를 장려하고 중국 기업을 지원하고자 하였다. 이로써 중국 경제 내 여러 요소 간 건강한 균형을 유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중국정부의 정책에 가장 큰 걸림돌은 중국 소비자의 성향이었다. 인민들은 소비에 매우 보수적이었으며 빚을 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참고로 중국 전체의 개인당좌예금에는 약 2조 달러 이상이 저축되어 있었다. 비록 이자는 낮았지만 말이다. 기업예금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 엄청난 자본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어려웠다. 왜냐하면 점증하고 있는 중국의 중산층들은 항상 미래에 대해 불안해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기에 국가에서 제공하는 사회복지보험제도는 취약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교육, 보건, 그 밖의 비용을 스스로 충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중국정부가 두 번째로 집중했던, 중국 경제의 질을 향상시킴으로써 경제 해외 의존도를 줄이려고 했던 시도는 어땠을까? 이것은 더 어려운 과제였다. 2009년 민족주의적 견해를 가진 중국 블로커들은 2009년 정부의 WTO가입을 통렬히 비판하였다. 그들이 보기에 WTO가입은 정부가 중국 노동자들의 땀과 피를 대가로 값싼 노동력을 팔아 안락한 서구국가들의 생활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중국 전역에서 자행되고 있는 노동착취의 현실을 열거하였다.
중국정부에게 주어진 어려운 도전과제는 더 있었다. 우선은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연구개발 활동을 상당부분 뒤늦게 재개해야 했다. 또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학교와 대학교 등이 폐쇄되는 등 중국의 교육 기반은 무너졌기 때문에, 교육 체제를 재건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따라서 중국은 약 100만 명 이상의 유학생을 해외로 보내 선진 기술을 배워오도록 하였다. 중국정부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 중국에서만 약 30만 명 이상의 엔지니어들이 배출되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중국 사영기업들의 R&D에 대한 투자액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수준은 서구보다 낮다. 물론 기업들의 낮은 기술 수준도 이를 저해하는 요소이기는 하지만, 중국 기업들은 국제 시장에서의 경험이 부족하다. 중국정부는 중국 기업들을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하려 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
결론
중국공산당은 2020년까지 중국을 중등 소득 국가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선언하였다. 이때까지 이 목표가 실제로 실현된다면, 중국의 1인당 GDP는 약 8,000-9,000달러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이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가고 있다. 2011년 중국의 1인당 GDP는 4,700달러가 되었다. 그리고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2015년까지 한 해에 8퍼센트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계속 이러한 추세라면 10년 내에 1인당 GDP를 현재보다 2배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만약 상황이 중국에 계속해서 유리하게 흘러간다면, 중국은 자신이 설정했던 시간적 제한보다 더욱 일찍 그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세계는 예측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중국이 그 목표에 근접할수록 점증하는 문제들을 간과할 수 없다. 이 문제들 중 두 가지는 널리 알려져 있다. 10년 내에 중국의 인구는 급격한 노령화를 겪게 될 것이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중국의 전체 인구수는 정점을 찍고 점차 축소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점은 10년 전후에 도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10년 내로 남녀 간 성비율의 차이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것은 정부에게도 골칫거리가 될 정도이다. 이 외에 더 복잡한 문제는 “어떻게 공산당이 중국의 정치를 이끌 것인가”이다. 중국공산당은 이제 단지 GDP 성장률에만 우선순위를 둘 수 없다. 이제 보다 양질의 경제 성장을 하고, 또 불평등 문제와 사회적 기반 시설의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중등 소득 수준의 국가로 변모하면서 중국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순수한 경제적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문제들이다. 그리고 이 문제들에 대해서 문제해결을 위한 적절한 시간 내에 여러 집단, 특히 보수주의자와 개혁주의자 사이에 합의점을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중국이 단기간에 채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것은 점진주의, 위기 그리고 대전환이다. 먼저 점진주의는 많은 중국공산당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시나리오이다. 이것은 적어도 중국공산당의 공식 발언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중국공산당의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30년에서 40년 내에 중국은 각 단계마다 직면하게 될 문제들을 잘 해결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단계에서 경제 발전과 1인당 GDP의 적합한 수준을 통해 중국 사회가 불안정이나 위기를 겪지 않고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2050년이 되면 중국은 중국적 특색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중국은 적합한 사회적 배경을 구축해야 한다. 그것은 국가의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사회 내 불균형 및 불평등의 문제가 적절히 다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 시나리오로서 위기를 들 수 있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중국이 변화한다면 그것은 위기에 의한 변화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태는 최악의 사태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옛날 중국의 고대 왕조 역사에서 반복되었던 것이다. 지난 2,000년 동안 중국에는 여러 왕조들이 존재하였는데, 이들은 번성과 붕괴를 반복했다. 특히 한 왕조가 붕괴하던 시기 엄청난 인명 피해와 파괴적 행위가 동반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이들 왕조와 같은 전철을 밟아 붕괴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중국의 몇몇 지도자들은 국내에 존재하는 위협과 도전에 대해 염려를 표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붕괴하는 것은 세계 여러 국가에게도 재앙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의 붕괴는 각국에 경제적인 타격을 줄 것이며, 연쇄적으로 여러 국가에 불안정 사태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하게는 세계의 공산품을 주로 공급하던 중국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로써 중화인민공화국의 붕괴는 중국에게도 악몽이지만, 세계 여러 국가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아마도 ‘대전환’이 될 것이다. 이것은 중국 지도부에 의한 갑작스러우면서도 예상치 못한 변화를 의미한다. 이것은 급진적이기는 하지만 중국이 현재 유지하고 있는 정치 지형을 통제할 만한 수준에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비슷한 예로 1980년대 타이완이 행한 조치를 들 수 있다. 타이완은 1949년부터 존재했던 계엄령을 해지했다. 이를 중국국민당(KMT)은 용인하였고, 이후에 야당의 존재가 합법적으로 인정되었다. 중국의 몇몇 싱크탱크와 학술기관에서 이 모델을 검토하였다.
이것은 급진적인 변화를 통제할 만한 방법으로 촉발시키는 것이다. 중국에서 이러한 급진적인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근거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중국 지도부가 1978년 급진적인 변화를 행한 선례가 있다는 것이다. 그때는 중국 내외에서 그러한 변화는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물론 뒤늦게야 깨달은 것이지만, 1978년 개혁개방 조치는 현명하고도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만약 현재 중국 지도부가 급진적인 변화를 선택한다고 가정했을 때, 1978년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1978년 경제를 개방하기로 결정했던 지도부와 지금 중국을 통치하는 지도부는 다른 종류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1978년 당시 중국 지도자들은 혁명 투쟁의 베테랑들이었으며, 공산당원으로서 공산당이 집권할 때까지 수많은 전투에 참여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공산당 내에서 엄청난 지지를 받았으며, 많은 정치적 비호 세력이 있었고, 그들의 정치적 자원은 풍부했다. 하지만 현재 중국 지도자들은 다소 다른 영역에서 국가를 경영하고 있다.
현재의 중국 지도자들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한 세계에서 그들의 능력을 펼쳐야 한다. 그들에게 핵심적인 전투는 외세의 침략으로부터의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하며 균형 잡힌 경제 성장을 하는 것이며, 중국 인민들을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21세기 중국 지도자들은 서구의 정치가들과 마찬가지의 정치적 임무를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인민들과 소통해야 한다. 또 때로는 다른 분야의 발전을 희생시키거나 미루면서까지 몇몇 분야를 집중적으로 개혁하고 발전시키는 데 집중해야 할 필요성을 설득시켜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현재 번영하고 있는 역동적인 중국을 보고 있다. 하지만 현재 중국 내부에는 여러 상반되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것은 중국이 어디로 가고 싶은가를 알아내는 데 약간의 혼란을 야기한다. 한편 중국에서는 지식인들과 엘리트들 사이에 열띤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그 토론은 중국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며, 중국이 어떠한 성격의 강대국이 되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것들이다.
때로 중국은 널리 퍼져 있는 서구의 문화적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것은 민족주의적 성향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2008년 여러 개발도상국들이 경제 위기를 경험하면서, 중국인들은 이제 중국은 통치, 조직 그리고 지적 활동에서 보다 독자적인 모델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더욱 강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굳이 서구의 것을 모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한편으로는 서구의 국가와 같이 되기를 열망하면서, 동시에 보다 ‘중국적 색채’를 원하는 등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이제껏 살펴본 논쟁들을 통해서 우리는 마침내 다시, 결국에 “‘중국적인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중국을 짧은 기간이나마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현대 중국에는 무언가 가시적이면서 강력한 에너지가 역동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세기 동안 어떠한 국가도 이토록 빠른 속도로 발전한 적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이에 전 세계는 영향을 받는다. 중국인들은 중국이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그것이 성공하든 성공하지 못하든 말이다.
1949년 중국공산당은 국가를 재건하여 통일된, 그리고 강력한 중국을 건설하기를 원했다. 2012년이 된 이 시점에 이러한 중국공산당의 꿈은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하지만 1949년 당시 중국 지도자들이 실패ㆍ붕괴라는 문제와 씨름했다면, 21세기 중국 지도부는 빠른 속도의 발전, 그리고 경제가 야기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중국이 불과 반세기에 걸쳐 경험한 변화는 놀라운 여행과도 같았다. 그러므로 반세기 후 중국 사회가 어떠한 종류의 변화를 겪을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중국이 어떠한 모습이건 간에 그것이 세계에 의미하는 바는 이전보다 더욱 커질 것이며, 미래 중국의 모습은 중국의 안전성, 성공 그리고 통합성에 달려 있다.
중국을 짧은 기간이나마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현대 중국에는 무언가 가시적이면서
강력한 에너지가 역동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78년에 개혁개방을 표방한 이래 약 3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국이 되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수출,
수입량을 자랑한다.
또 2012년 자료에 의하면,
중국은 3.5조 달러 규모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것은 세계 최대 규모의 외환보유고로
중국은 이것을 방대한 수출을 통해 축적했다.
하지만 중국 내부에는 계층 간 극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중국에는 10억 달러 이상의 자산가가 95명이나 있고,
동시에 하루 1.25달러 미만의 생활비로 살아가는
1억 5,000명의 빈곤층이 존재한다.
이 외에도 중국 내 2,400만의 인구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중국은 상이한 정치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중국공산당에 의해서 건국되었으며,
현재에도 공산당에 의해서 통치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하나의 틀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구조의 중국을 다양한 사례로
분석해 중국의 다양한 면모를 제시하고,
실제 발생한 사례를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어왔는지
소개하며 중국의 과거와 현재,
변화하는 사회에 대하여 고찰하고,
각종 도표, 사진, 다양한 주제의 글상자 설명을 통해
중국에 대하여 현장감 있게 소개한다.
특히 저자는 거대한 규모만큼이나 변화의 속도가 큰
중국이 오늘날 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이를 전제로 중국의 역사,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서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이라는
다양한 변인들을 쫓아가며 중국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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