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그외

김하중의 중국 이야기 1 - 김하중 지음

삼생지연 2021. 2. 12. 10:00
728x90

김하중의 중국 이야기 1 김하중 지음 비전과리더십 / 2013년 1월

1. 중국 바로 알아가기

 

한중 수교가 이루어진 1992 8월은 그동안 공식적인 관계가 없어 중국과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한국인에게는 역사적인 시간이었다. 한중 수교 이전 한국인들이 중국에 대해 알고 있던 지식 대부분이 서방 언론이나 자료, 또는 타이완이나 홍콩에서 발간된 자료에 의존한 것이었다. 이처럼 제한된 자료에 근거한 한국인의 중국관이 부정확하고 잘못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지만, 과거 한국과 중국의 역사만 돌아보아도 인식에 오류가 생길 개연성은 충분하다. 즉 과거 병자호란이나 청일전쟁 같은 역사적 사건들이 한국인의 중국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결국 중국과 중국인들의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한국인들이 고정된 선입견과 편견의 눈으로 중국을 보고 있다. 가령 한국인들은 중국인들이 만만디(천천히)이고, 비위생적이고, 대국 근성 때문에 오만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 못지않게 성격이 급한 베이징 시민들, 한국의 강남에 온 듯 상업적이고 세련된 상하이 사람들, 그리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경제 발전을 이룬 이웃 나라 한국에 찬사를 보내는 중국 시민들을 접하게 되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가를 알게 된다.

 

그렇다면 서양인의 눈에 비친 중국은 어떠할까? 19세기 아편전쟁을 치른 이후 서양 열강의 눈에 비친 중국은 정치적으로 부패하고, 사회적으로 무질서하고, 경제가 피폐한 국가였다. 서양인들은 중국인을 비하하는 인식을 가지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이상 중국을 신비하거나 선진한 나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중국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 이후에 더 악화되었다. 중국이 사회주의 노선을 견지함에 따라 서방 세계와의 간격은 더욱 벌어졌으며, 설상가상으로 문화대혁명은 서양의 중국에 대한 인식을 결정적으로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더구나 서양과는 완전히 다른 중국의 정치제도, 언어와 문화적인 배경, 유례없는 중국식 경제 모델 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서양인들로 하여금 중국을 이해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서양이 이해하는 중국은 항상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는 식으로 모호했으며, 이런 모호성으로 인해 서양에서는 왜곡된 중국관이 심화되었다.

 

우리가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한자와 중국어를 이해하는 것이다. 중국의 한자는 표의문자로서 수천 년의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만일 한자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중국 민족의 독특한 문화와 중국의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힘들 것이다. 반면, 한자를 이해할 수 있다면 중국 문화에 대한 접근이 가능할 것이고, 노력 여하에 따라 중국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도 더욱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중국인들의 성격이나 기질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중국인의 기질을 올바로 이해함으로써 중국인들을 존중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것을 통해 중국인들과 좋은 관계를 정립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중국 문화를 이해하고 중국인들의 기질을 이해하는 것이 중국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2. 중국인의 기질

 

역사적으로 중국인들의 기질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상은 유가사상과 노장사상이다. 유가사상을 주창한 공자는 중국 역사상 가장 규칙과 체면을 중시한 사람이다. 그는 모든 개인이 고상한 생활을 영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모두가 군자인 사회를 지향했다. 반면 노자의 노장사상은 세상을 멀리하는 처세법을 강조한다. 유가사상의 중심이 자기를 수양하고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라면 노장사상의 핵심은 억지로 무엇을 하지 말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사는 것이다. 유가사상이 주로 정치, 경제, 윤리 등 실질적인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면 노장사상은 예술과 문학 등의 분야에 큰 영향을 끼쳤다.

 

중국인의 기질 중 가장 큰 특성은 보수적이라는 것이다. 중국인은 말을 조심하고 지나친 경쟁을 하지 않으려 한다. 이것은 엄격한 가장제 아래에서 극도로 자신을 억제하는 데 따른 특성이다. 때문에 유가에서 말하는 군, , , 자 간의 사회 질서에 의하면 중국인들은 항상 사회의 등급을 유지해야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표현도 지나친 경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중국인의 또 다른 기질은 호양호혜이다. 중국인은 흔히 사해 내에 있는 자는 다 형제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는 중국인의 포용성을 표현한 말이다. 중국인은 비교적 선량하고 도량이 크며, 특히 서로 양보하고 서로 혜택을 주는 것을 중시한다.

 

중국인은 가정을 중시한다. 중국에서 모든 사회적 관계의 중심은 부자 관계이다. 부자 관계는 감정적으로는 충효를, 법률적으로는 복종을 의미한다. 중국인에게 가정의 주인은 아버지이고, 나라의 아버지는 임금이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연장자를 공경하는 것을 국가 윤리의 강요로 삼았다. 중국인은 혈연 이외의 지역이나 종족과의 관계는 우정이라 표현한다. 일단 우정이 맺어지면 반드시 서로가 공경을 하며, 서로 돕고 양보한다. 일반적으로 중국인은 단결력이 약하다고 한다. 그 원인으로는 절대군주제의 영향, 과도한 자기보호 의식, 지방주의 등을 꼽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역사적으로 강력한 응집력을 보여 왔다. 이것은 수천 년 동안 유지해 온 한자와 유가사상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평소에는 서로 다투다가도 외세 침략이 있거나, 국가에 위기가 닥치면 일제히 단결하는 특징이 있다.

 

중국인은 다음과 같이 다양한 기질을 갖고 있다. 첫째, 소농 기질. 중국 농민은 계산이 밝고 성질이 급하다.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사회 환경, 재해가 잦은 대자연 앞에서 계산을 잘못하면 여러 재앙이 찾아올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매사 계산을 철저히 한다. 하지만 오랜 가난과 폐쇄된 생활, 압박 받지 않은 생활로 인해 급한 성질이 형성되었다. 둘째, 소시민 기질. 이것은 수천 년에 걸친 봉건 전제주의의 어려움 속에서 형성된 기질로 인색하고, 이해타산에 밝으며, 자기 주관이 뚜렷하지 않은 특성을 갖고 있다. 역사적으로 중국인은 황제 앞에서는 민초, 관료들 앞에서는 양민, 사대부들 앞에서는 천민이었다. 이러한 위치는 그들로 하여금 부득불 매사에 원만하고 이익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셋째, 관리 기질. 중국 관료 사회는 규율이 엄격해서 생존을 위해 상사에게 잘 보이려 하거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관리들은 백성들에게 권력 남용 이상의 횡포를 부렸다. 관리 기질이 중국 사회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의 대부분은 관리의 횡포에서 기인한다. 넷째, 황제 기질. 황제는 중국인에게 있어 모든 권력, 존엄, 행복을 대표하는 존재였기 때문에 중국인은 황제의 모든 것을 닮고자 했다. 중국인의 기질 속에 원만하면서도 고집스럽고, 거친 성격의 대부분은 황제의 기질이다.

 

3.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

 

그간 중국에는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겼다. 2001 WTO에 가입했고, 2003년 유인 우주선 발사에 성공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개최했고, 2010년 상하이 세계 박람회를 개최했다. 이 모두가 중국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인들은 과거에 비해 훨씬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며, 외국인들과의 대화도 과거에 비해 더욱 자유스러워졌다. 무엇보다 중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유는 중국 경제의 눈부신 성장이다. 외국인이 베이징에 도착하면, 우선 베이징 수도공항의 규모와 청결함에 놀라게 된다. 상하이 푸동 지역 빌딩 숲에 들어가면 뉴욕의 맨해튼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중국은 개혁개방을 실시한 이후 20년 동안 연평균 9.5%의 성장을 달성했다. 2004년 중국은 세계 3대 무역대국이 되었으며, 2020년에는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

 

1949년 이후 폐쇄 경제를 지향하던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의 주도로 개혁개방의 기치를 내걸었다. 덩샤오핑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라고 말하면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수립을 목표로 내세웠다. 그가 주장한 독자적인 사회주의는 이론적으로 중국 공산당의 주도하에 중국이 하나의 새로운 사회주의 노선을 건설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과거의 계획경제체제를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고, 기업도 국영기업 위주에서 민간기업, 합자기업 등 다양한 형태의 기업을 허용하는 동시에 개방특구를 추진하고, 새로운 형태의 경제 모델을 만들어 세계 경제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는 것이다. 이후 중국인들은 계급투쟁보다 경제 발전을 우선시하는 시대를 살게 되었다.

 

중국이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사회 각 부문에서 자본주의적인 색채가 짙어지고 있다. 많은 중국인들이 개인용 자동차나 아파트를 구입하고 있고, 해외여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요즘 중국에서는 앞을 향해 보라는 말이 돈에 빗대어 돈을 향해 보라로 바뀌었으며, 10억 인민 중 9억이 상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실감 날 정도이다. 젊은이들은 공직보다 외국계 회사에 취업하기를 원하며, 서구식 생활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베이징 거리를 걷다 보면 곳곳에 스타벅스를 볼 수 있다. 커피라는 기호 식품이 중국의 전통 차를 단숨에 제압한 것이다. 중국 젊은이들의 미각에도 자본주의의 맛과 향기가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현재 중국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론적인 논쟁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일부 중국인들은 중국 경제가 계속 발전하면 결국 자본주의의 방향으로 나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지도자들은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진하고 있고, 궁극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주의 국가에 도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일반 중국인들은 그런 문제보다 국민들 생활이 부유해지고, 국력이 강력하면 그만이지 사상이나 이념은 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중국 지도자들이 국민들의 욕구를 계속 만족시켜 줄 수만 있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성공할 것이며, 그러지 못한다면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4. 경제 발전과 중국의 고뇌

 

중국 인구는 13억 명으로 세계 인구의 1/5을 차지한다. 13억 명의 인구는 커다란 부담이다. 인구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중국은 1975년부터 한족의 경우 한 가정 한 자녀 출산만을 허용하는 산아제한 정책을 펴고 있다. 대다수 도시 거주 중국인은 이 같은 정책을 받아들였지만 농민들은 노후를 의지할 곳이라곤 아이들밖에 없고 이들이 바로 노동력이므로 고액의 벌금에도 불구하고 몰래 아이들을 출산하고 있다. 현재 중국은 도시와 경제가 발전하는 지역은 산아제한 정책의 성공으로 인구증가율이 아주 낮으나, 농촌 지역은 인구증가율이 높기 때문에 빈궁할수록 많이 낳고, 많이 낳을수록 빈궁해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구 증가에 따른 빈곤 악순환의 폐해가 심각하다. 중국 전체 인구의 노령화 현상도 심각하다. 현재 60세 이상 노인이 1 3400만 명으로 전 인구의 10% 이상을 차지하는데 금세기 중반까지 중국의 고령인구는 전체의 20.4%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가족 한 자녀 정책으로 중국 인구의 연령 구조가 기형적으로 변화해 한 쌍의 젊은 부부가 4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하면서 노인문제가 사회문제화될 소지가 점점 커지고 있다.

 

현재 중국은 전체 인구의 64%가 농촌에서 거주하고 있다. 농민들이 가난하면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기대할 수 없고, 이들이 정부에 불만을 가지게 되면 사회 안정도 기대할 수 없다. 중국은 1950년대 이후 농민들의 맹목적인 도시 유입을 막기 위해 도시와 농촌을 격리하는 호구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농업 인구와 비농업 인구는 한 나라에 살고 있지만, 전혀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 호구제도를 통한 도시와 농촌의 차별 정책은 농촌 인구의 자유로운 이동을 억제했고, 결국 농민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녀들을 출산하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인구는 증가하고 가난이 대를 이어 반복되고 있다. 여기에 농민들이 비공식적으로 도시로 이동하여 취업하는 이농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어 도시 문제는 물론, 국가 전체적으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중국이 21세기 경제 대국으로 진입하려면 농업 개혁과 함께 도시 취업 인구의 30%가 종사하고 있는 국유기업 개혁이 필수적이다. 국유기업은 경제 성장에 따른 비국유기업과의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경영 상태가 계속 악화되고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개혁개방에 따른 정부의 재정 지출이 대폭 증가하면서 이에 대한 부담을 국유기업이 고스란히 떠안았기 때문이다. 국유기업이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자 은행들도 대량의 불량 자산을 안게 되었으며, 국유기업들의 과중한 사회복지 부담으로 인해 기업의 이익과 경쟁력에 차질을 빚고 있다. 또한 감독 태만과 관리 소홀로 국유기업의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있다. 중국은 1978년부터 국유기업의 체질 개선을 도모해왔다.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기업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수익률이 낮은 기업은 파산 및 폐쇄했다. 이러한 중국의 국유기업 체질 개선은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국유기업들이 경영부실로 인해 개혁 대상이 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사회에 뿌리박혀 있는 관 위주의 사고방식으로 인해 부정부패를 일소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거기에 재정의 지방 분권은 부정부패를 불러왔다. 재정의 지방 분권은 지방 관리들을 경영인이나 기업가로 변신하게 만들었는데, 이들은 무늬만 관리이지 실제로는 기업 업무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은 부정한 방법으로 관리들에게 보상하므로 결국 재정의 지방 분권은 관리들이 부패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이들의 부패 행태는 두 가지다. 하나는 관리들이 직접 뇌물을 받거나 자신의 친척을 중용하는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관리들이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공공 재산이나 공공 자금을 유용하는 것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정부가 경제 발전을 위해 어느 정도의 부패에 대해서는 다소 관용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5. 사회적 모순과 변화의 소용돌이

 

역사적으로 중국에서는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어떻게 협조 관계를 유지하느냐가 중요한 과제였다. 전제 군주의 권력이 강할 때는 중앙 집권적인 힘이 강하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었으나, 중앙 집권이 약화되고 지방 분권이 심화되면 경우에 따라서는 폭동까지 일어나곤 했다. 신 중국 성립 이후 중국은 중앙 집권적인 체제를 선택했다. 그러다 보니 지방 정부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에 미흡했다. 때문에 중국 정부는 개혁개방을 시작하면서 점진적으로 지방 분권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지방 정부가 각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을 추진하다 보니 중앙 정부의 정책이 집행 과정에서 종종 변형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부유한 일부 지방과 재정이 어려운 중앙 정부, 부유한 개인과 어려운 집단이라는 양분화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지방은 서로 대립이 심화되고 있고 연해 지역인들과 내륙인들, 남방인들과 북방인들, 동부인들과 서부인들의 대립적인 경향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중앙의 영향력이 저하되면서 각 부문의 이기주의가 팽배해져 많은 사람들이 벼락부자를 꿈꾸고 있다. 돈이 제일 중요시되는 상황에서 지방 정부는 중앙 정부에, 기업은 지방 정부에, 개인은 사회에 대해 실리만을 추구하는 것은 중국의 전통적인 사상과 배치되며 이는 결과적으로 중국 사회의 도덕성을 저하시키고 있다.

 

신 중국 성립 이후 중국의 지식인들은 낮은 사회적 대우를 받았다.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지식인에 대한 경시풍조가 극에 달해 지식인들은 지주 계급, 부자, 반동 계급, 악질, 우파 등에 이어 아홉 번째로 냄새나는 놈으로 분류되었다. 개혁개방 초기에는 교육을 받은 것이 노동 보수에 적절하게 반영이 되지 않음으로써 교육을 받을수록 손해를 보았다. 당시 유행어가 수술 칼을 가진 자가 머리 깎는 칼을 가진 자보다 못하다.였다. 한때 모 대학의 교수가 부업으로 장사를 하다가 언론에 보도되어 중국 전역이 떠들썩한 적도 있다. 하지만 최근 중국에서 이러한 현상은 감소되고 있다. 과학자와 기술자는 고액 연봉을 받는 반면 전통적인 육체노동자의 수입은 감소하고 있다. 개혁개방과 현대화 추진 과정에서 지식인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지식인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지식인들은 중산층에 진입했다. 급속한 경제 발전에 따라 지식인들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고, 이에 따라 그들의 수입이 급속도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남존여비 사상이 사회를 지배해 왔다. 하지만 신 중국 성립 이후 마오쩌둥이 여성은 하늘의 반이라고 말함으로써 남녀평등을 제창했다. 이후 중국에서는 여성들이 사회 각 부문에서 상당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표면적인 남녀평등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아직도 남존여비 사상이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주요 지도자 중 여성은 거의 없으며 지금까지 정치국원을 한 여성은 있었지만, 정치국 상무위원을 역임한 여성은 없었다. 중국의 많은 남성들이 아직도 부인의 사회적 지위가 자신보다 높은 것을 참지 못한다. 여성들은 가정을 가지게 되면 자신의 능력과 상관없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므로 일과 가정을 병행하기 어렵다. 능력 있는 여성들이 결혼 적령기가 지났는데도 이러한 이유로 결혼을 하지 않고 있다. 사회적인 환경도 여성이 취업 시 여전히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실정이다. 이런 차별대우는 저학력 여성뿐만 아니라 고학력 여성에게도 해당된다. 취업뿐 아니라 승진과 보수에도 남녀 불평등은 지속되고 있다. 결국 여성이 남성보다 강하다고 하는 것은 아직도 무늬만 그렇다는 것이다.

 

6. 빛을 감추고 어둠을 기르는 외교

 

중국은 1954년 평화공존 5원칙을 발표하고 이를 외교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이것은 영토의 보전과 상호존중, 상호 불가침, 내정 불간섭, 평등 호혜, 평화 공존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평화공존 5원칙은 오늘날까지도 실리를 중시하는 실사구시 외교의 기본 원칙이다. 이것은 철저히 실리를 중시하며 재능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으면서 때를 기다린다.는 원칙과 일맥상통한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전통적인 평화공존 5원칙과 함께 각국과의 정상적인 관계 유지 및 자국의 현대화 건설에 유리한 국제적 환경 조성에 모든 역량을 모아왔다. 반패권주의와 반강권정치 원칙에 기초하여 미국과 소련의 패권주의에 반대하면서도 양국에 대해 균형적인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3세계에 대한 영향력 확보를 위한 비동맹 외교도 적극 추진했다. 독립, 자주와 평화의 외교 전략은 개혁개방의 전면적 실시와 더불어 더욱 본격화되었으며, 현재 중국은 정치적 안정 및 경제의 고속 발전에 유리한 국제 환경 조성을 위해 적극적인 외교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중국의 대외 관계 중 가장 중요한 관계는 미국과의 관계로서 가장 민감한 문제는 타이완이다. 중국은 미국과 가능한 우호 관계를 갖고 싶어 하지만 타이완 문제는 주권과 영토 보전에 관한 문제로 내정 간섭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중국으로서는 이에 대해 신축성을 보일 수가 없다. 때문에 중국인들은 미국과의 관계를 아무리 좋아져도 한계가 있고, 아무리 나빠져도 한계가 있다.는 말로 표현한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인권은 또 다른 골치 아픈 문제이다. 현재 미국과 EU 등 서방 국가들은 중국의 인권 문제를 계속 제기하면서, 중국 내 인권 상황의 개선을 줄기차게 촉구하고 있다. 여기에 티베트 및 신장 자치구의 분리 독립 등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압력도 상당하다.

 

중국은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놀랄 정도로 인내하는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바로 중국 외교의 요체인 재능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으면서 때를 기다린다.는 도광양회의 정신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도광양회는 삼국시대 유비가 조조의 식객 노릇을 할 때 조조를 기만하기 위해 썼던 술책이다. 조조의 참모들이 유비를 일찍 제거하여 후환을 없애자고 건의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유비가 생존을 위해 몸을 낮추어 조조를 비롯한 참모들의 경계심을 없앤 것이다.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서방 국가들의 제재조치에 대해 중국은 다음과 같은 대응원칙을 지시했는데, 냉정하게 관찰하고, 흔들리지 말고 우리의 노선을 확실히 견지하며, 침착하게 대응하라는 것이었다. 중국이 이런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중국이 대국이긴 하지만 아직 경제적으로 취약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13억 인구를 제대로 먹여 살리려면, 경제 발전과 사회안정이 급선무이므로 외교도 경제 발전에 유리한 국제적 환경 조성에 집중하는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강대국이 등장할 때는 이미 존재하는 국제 관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때문에 서방 세계에서는 1990년대 초부터 중국위협론이 끊임없이 거론되어 왔다. 중국은 중국위협론에 대한 회답으로 화평굴기를 내세우면서 세계에 대해 중국은 패권을 추구할 생각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중국은 발전을 지속하면서도 현재의 국제질서에 충격을 가져오지 않고, 나아가 인근 국가들에 대해 이로움을 가져다줄 수 있는 굴기의 방식을 찾음으로써, 다른 나라들이 중국에 대해 과도한 경계심을 갖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다. 중국 경제가 지속적인 고도성장을 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굴기는 필연적인 결과가 될 것이다. 다만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이 화평을 추구하는 중국 외교의 기본 정책을 전 세계에 이해시킴으로써, 중국의 굴기에 대한 세계의 경계심을 해소시켜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7. 중국의 장래

 

중국의 안정된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중요한 전제 조건은 지속적인 경제 발전이다. 1978년 개혁개방 이래 매년 평균 7~8% 내외의 경제 성장을 이룩한 것은 한국을 제외하고는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다.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 발전은 단순히 경제라는 영역뿐 아니라 중국 사회 전체의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수십 년 동안 계획경제의 틀 속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에게 시장경제라는 새로운 개념이 튼튼하게 뿌리내렸다고 단정하기는 아직 어렵기 때문이다. 2020 GDP 2000년의 4배로 증가시키겠다는 중국 정부의 국민에 대한 약속이 주목받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한 나라가 경제적, 사회적으로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무엇보다 교육이 중요하다. 중국은 오랜 세월 사회주의 노선에 따른 지식인들에 대한 정신개조,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사실상 일반 국민들에 대한 교육이 충분하지 못했다. 중국이 세계적으로 경제적, 문화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기초 교육은 물론 과학 기술과 일반 국민들의 문화적인 욕구를 반영할 수 있는 교육, 그리고 국민들의 도덕과 인격을 양성하는 교육이 가장 긴요하다. 중국의 미래를 위해 또 한 가지 필요한 것은 법치제도의 확립이다.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법에 대해 익숙하지 않다. 중국인들은 도덕적으로 교화시키는 것을 중요시했고, 항상 인정과 체면을 중시했다. 때문에 한국의 많은 기업인들이 중국에 진출해 가장 먼저 느끼는 어려움은 관련법이 충분하지 않고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경제 대국인 중국이 과거와 같은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국이 21세기 국제사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려면 하루빨리 엄격하고 건전한 법제도의 정비를 통한 법제 사회의 건설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한국인들은 중국의 지도자를 생각할 때 항상 마오쩌둥과 같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지도자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중국이 비록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중국의 지도자들은 국가를 운영하는 데 항상 집단 의사 결정을 통해 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 한 사람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일이란 불가능하다. 중국은 고위 지도자 간에 권력 배분이 잘 되어 있다. 국가원수인 주석의 영향력이 가장 큰 것은 사실이나, 경제 등 일반 행정부에 관련된 사항은 국무원이, 입법에 관한 사항은 전국인민대표대회의가 관장한다. 특히 중국의 총리는 국무원의 총리로서 행정수반에 해당하기 때문에 국가 행정에 관계되는 모든 일을 관장한다. 이런 이유로 총리는 외국을 방문하더라도 행정수반으로서의 대접을 받고 있다.

 

현재 중국은 공산당의 통치를 기반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집단지도체제가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어느 특정 개인이 중국을 자기 마음대로 이끌고 갈 수 없게 되어 있다. 또한 조직적인 관료 집단과 잘살려는 국민들의 강력한 의지로 인해 가까운 시일 내에 중국에서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적어 보인다. 한편 대부분의 중국인, 특히 기성세대는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다. 자신과 직접 관련된 이익에만 관심이 있을 뿐 정치는 어떻게 되든지 정치인들이 알아서 하면 된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특히 중국인들은 안정이 깨지는 것을 가장 싫어하고, 안전과 안정을 위해 자신의 생활에만 충실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그리고 잘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에 이것이 궁극적으로 중국의 안정에 도움이 되고 있다.

 

8. 한국과 중국

 

한국과 중국은 2천 년에 걸친 교류 역사를 갖고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국력은 항상 중국의 국력에 못 미쳤고, 중국의 도움을 받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보다 잘사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가장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중국이 지금처럼 경제 성장을 계속한다면 중국이 한국을 월등히 앞지를지 모른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기에 한국인들이 겸허하고 우호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한국에 대한 감정의 응어리를 남겨놓을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이것은 다음 세대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중국인들이 한국인을 만나면 일부이긴 하지만 성이 같아서 친밀감을 느낄 때가 많다. 현재 한국인들의 성 중 어떤 성은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기 때문에 한국인들의 뿌리를 찾아보면 중국인들이 조상인 경우가 간혹 있다. 또한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이 한자나 중국 문화를 잘 알고, 중국 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 오늘날 중국은 문자를 간소화하여 일종의 약자 형태인 간체자를 쓰고 있는데, 한국은 약자보다 한자 고유의 형태인 번체자를 더 많이 알고 있어 중국인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또한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중국 문화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으며, 중국의 전통 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는 것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반면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중국인들은 한국인의 성격이 조급하고, 감정적이며,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한국인들의 말이 너무 직접적, 공격적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이 북한 위주의 한반도 정책에서 탈피하기 시작한 것은 1978년 이후이다. 당시 중국은 한국과의 무역 교류, 나아가 경제 발전을 이룩한 한국의 경험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더욱이 중국은 한반도에서 하나의 친구와 하나의 적을 두는 것보다 두 명의 친구와 적이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국의 전략적 이익에도 부합된다고 생각했다. 이후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기 시작하여 1991년 한국과 중국에 무역대표부를 설치한 데 이어, 1992 8 24일 역사적인 한중 수교가 이루어졌다. 수교 이후 양국 관계는 모든 분야에서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이것은 상호 보완성에 기초한 경제적 이익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협력 필요성에 더불어 양국 간의 지리적 인접성, 2천 년에 걸친 역사적 관계와 문화적 유사성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양국 관계를 촉진시키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한중 수교는 중국에 적지 않은 변화를 몰고 왔다. 과거 50년 동안 친구 아니면 적이라는 개념이 깨어짐으로써 탈냉전과 더불어 동북아에서 새로운 구도가 형성되었다.

 

한국과 중국은 북한 핵 문제 등 한반도 위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긴밀한 협의를 통해 긴장 국면을 진정시켰고, 이 밖에도 유엔 및 국제기구에서의 협력을 통해 상호 도움을 주고받고 있다. 한중 수교가 가져온 최대 이익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이다. 주변 환경의 안정이 절대 필요한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많은 역할을 했다. 1993년 발생한 북한 핵 문제 때는 남북한 사이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나름의 역할을 했으며, 지금까지 중요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건설적인 역할을 자청하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한반도의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는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이야말로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중국의 정책 및 이익과 일치하며 중국은 이런 한국의 대북정책을 일관되게 지지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의 제1의 무역 상대국이자 투자 대상국이다. 중국은 13억 인구에 한반도 면적의 44배라는 거대한 시장을 갖고 있으며, 여러 측면에서 상호보완적인 분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리 경제가 더욱 발전하기 위한 중요한 원동력을 중국에서 발견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한편 중국은 경제 통상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매우 중시한다. 한국은 중국이 필요로 하는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치른 경험이 있고,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구조조정, 불량자산 처리 등의 경험이 풍부하다. WTO 가입에 따라 이에 파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한 경험이 있는 한국은 같은 아시아 국가로서 제반 여건이 비슷해 한국의 경험 전수가 절실하다. 또 한국은 미국과 일본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공유하고 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중국은 이들 양 체제 사이에서 한국을 접점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중국에 필요한 존재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립 이후

중국은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서방 국가들로부터 고립이 되었으며,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나라 전체의

질서가 흔들리는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1978년 개혁개방을 계기로

오늘날 중국에는 정치,

경제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 상처 받은 용이 상처를 회복하고

일어나 기지개를 펴는 형상이라 할 정도로

중국은 눈부신 경제 발전을 바탕으로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강대국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중국은 정말 거대한

용이 되어 비약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과연 중국인들이 어떤 사람이며,

그들의 사고방식은 무엇인지,

현재 중국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그런 문제들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다룬다.

자연 조건과 역사적 환경,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중국인의 기질을 알기 쉽게 풀어냈으며,

개방의 혜택을 받은 도시와 혜택을 받지 못한

농촌이 살아 숨 쉬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나라,

중국에 대해 낱낱이 소개한다.

중국식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특징과

이에 따른 모순과 문제점을 분석하고,

중국의 미래와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발전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저자가

외교관으로서 오랫동안 축적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집필한 이 책은 한국 국민들의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이해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것이다.

 

728x90